9일 시범경기 첫날 사직구장 외야(사진 왼쪽부터), 수원구장 1루 더그아웃 쪽에 설치된 전자시계(사진=롯데, KT)
9일 시범경기 첫날 사직구장 외야(사진 왼쪽부터), 수원구장 1루 더그아웃 쪽에 설치된 전자시계(사진=롯데, KT)

[스포츠춘추=수원]

‘새 시대’를 앞둔 KBO리그가 3월 9일 시범경기 개막을 맞이했다. 이날 5개 구장에선 평균 7,236명 관중이 찾아올 정도로 열기가 매우 높았다. 참고로 직전 2023년 시범경기 개막전은 평균 799명을 기록한 바 있다.

KBO리그는 이번 개막전에서 이른바 ‘로봇심판’으로 불리는 ABS(자동 투구판정 시스템)를 필두로 새 규정들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2024년부터 ABS, 피치클락, 수비 시프트 제한, 베이스 크기 확대 등 '대변혁'을 시도 중이다.

이 가운데 9일 가장 큰 이목을 끈 건 다름 아닌 피치클락이었다. 올해 1군에선 전반기 동안 시범운영 예정인 피치클락은 불필요한 경기 지연 감소를 위해 도입됐다. 투수는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 23초, 없을 때 18초 내로 투구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시 볼로 판정된다. 또 타자는 피치클락 내 8초가 표기된 시점까지 타격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 지켜지지 않을 시엔 스트라이크가 부여된다.

KBO는 시범운영 중엔 위반 시 볼·스트라이크 제재 대신 구두 경고만 부여하기로 했다. 위반에 따른 제재 적용 여부와 시점은 전반기 운영 결과를 면밀히 검토한 후 추후 확정될 예정이다.

그런데, 현장에선 해당 규정을 향해 엇갈린 의견들이 오갔다. 몇몇 구단 사령탑은 ‘선수 부상 위험’을 강조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고, 일부 감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규정은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KT 위즈와 LG 트윈스가 맞붙은 수원 구장이 대표적이었다.


“부상 우려” vs “팬 퍼스트” 사령탑들의 엇갈린 시선, 왜?

9일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이강철 KT 감독(사진 왼쪽부터), 염경엽 LG 감독(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수원 KT 위즈 파크에선 전자시계가 홈·원정 팀 더그아웃, 외야 전광판 쪽으로 총 3곳에 설치됐다. 9일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취재진과 만난 이강철 KT 감독은 “일단은 시범운영 기간이고, ‘위반 시 구두경고’라고 들었다. 선수들이 그걸 너무 신경 쓰면 그동안 해온 게 많이 흔들릴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이 감독은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피치클락 대비 훈련을 하진 않았다”면서 그 이유로 “다칠 가능성이 있지 않나. 앞서 피치클락을 도입한 미국에서 부상 관련해서 우려가 있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MLB)는 지난해 피치클락을 도입해 경기 시간 단축 효과를 누린 바 있다. 미국 매체 ‘ESPN’은 지난 10월 “MLB가 지난해 대비 평균 경기 시간을 24분가량 단축했다”고 보도했다. 스피드업을 당면과제로 삼은 KBO 역시 피치클락을 통해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다만 빛과 그림자는 언제나 함께하기 마련이다. 바뀐 규정 때문에 선수들로부터 불만이 새어나온 것. 특히 맥스 슈어저 같은 베테랑을 포함한 일부 투수들은 피치클락으로 인한 빨라진 투구 템포가 선수 부상을 유도한다며 불만에 찬 목소릴 내기도 했다. 또 다른 미국 매체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익명의 내셔널리그 투수는 “피치클락 도입 전후로 투수들 팔에 누적되는 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을 내놓았다.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선수들에겐 너무 의식하지 말라고 했어요.”

투수 출신인 이강철 감독의 생각이다.

반면 이날 경기 전 염경엽 LG 감독은 “피치클락 규정을 최대한 지키려고 한다”면서 “언젠가는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수, 타자 모두 규정 적응을 위해 주어진 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 이에 염 감독은 다음과 같은 얘길 덧붙였다.

“피치 클락 시대에선 선수들뿐만 아니라 저도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벤치 사인도 신속해야 하고, 준비할 게 한둘이 아니죠. 규정 변화로 ‘스트레스를 받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팬들이 야구를 더 즐길 수 있기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하지만 염 감독은 그와 동시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피치클락과 관련된 한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도입이 늦어지고 있는 ‘피치컴’ 때문이다.

피치컴은 투·포수가 사인을 교환할 수 있는 전자장비로, 불필요한 경기 소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MLB에선 피치클락 규정과 함께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통한다. KBO는 지난 7일 규정 관련 미디어 설명회를 통해 “KBO리그도 피치컴을 올해 도입한다. 다만 현재 국내 전파 인증 단계를 거치고 있으며, 2개월 정도 걸린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염경엽 감독은 “유의미한 데이터를 쌓으려면 당연히 피치컴도 있어야 한다. 시범운영 기간 내에 빨리 도입했으면 한다. 시행착오도 겪어보고, 그것에 맞게 보완해야 정식 도입이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피치클락 첫 대면, 선수들은 “적응이 먼저” 관중들은 ‘5-4-3-2-1’ 진풍경

9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시범경기 도중 외야 쪽 피치클락 모습(사진=KT)
9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시범경기 도중 외야 쪽 피치클락 모습(사진=KT)

한편 피치클락을 직접 경험한 선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날 수원 경기에서 피치클락 위반으로 구두경고를 처음 받은 타자는 LG 포수 박동원(4회 초)이었다.

“당황스러웠습니다(웃음). 제가 4회 초 선두타자였거든요. 여느 때처럼 포수 장비를 벗고 헬멧을 쓴 다음 스윙을 한 번 하고 타석에 들어갔는데, 그게 딱 걸린 거죠. 외야수나 포수들은 준비 시간이 빠듯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기 종료 후 더그아웃에서 스포츠춘추와 만난 박동원의 말이다.

이어 박동원은 “그 뒤부턴 타석에서 계속 쫓기는 마음이 들었다”면서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까 의식이 되더라. 빨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계만 계속 확인했다. 앞으론 시범 운영 동안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수원 구장을 찾은 관중들은 피치클락과 관련해 색다른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경기 막판 몇몇 팬들이 외야 전광판에 위치한 전자시계를 보면서 시간(‘5·4·3·2·1’)을 큰 목소리로 외치는 등 그전과 다른 ‘진풍경’이 펼쳐진 것. 일부 관중들은 제 시간 내 투구하지 못한 투수를 향해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같은 날 수훈선수로 선정된 LG 좌완 디트릭 엔스는 과거 마이너리그를 통해 피치클락을 경험해 본 이다. 엔스는 경기 뒤 취재진을 만나 당시 경험과 함께 이날 투구를 설명하며 “경기 중 시계를 보면서 상황에 맞게 때때로 투구 템포를 조정하는 게 필요하더라. 결국 적응의 문제고, 지금 규정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또 엔스는 “(관중들이 피치클락 시간을 외치는 건) 미국에서도 경험해 봤다. 개인적으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마운드에선 팬들의 함성보단 내 투구에 좀 더 신경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흔히 ‘첫술에 배부르긴 어렵다’고 했던가. 그 예시로 9일 LG-KT전 경기 초 1~3회엔 기계 오류로 피치클락이 적용되지 않았고, 4회 초부터 정상 작동한 바 있다.

이처럼, 변화를 택한 KBO리그 앞엔 수많은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현재 시범운영 중인 피치클락은 더욱더 그렇다. KBO가 향후 팬들뿐만 아니라 현장의 마음까지 챙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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