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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13초 벽’ 도전하는 허들 여제 “자면서도 벽을 차요.” [엠스플 인터뷰]

  • 기사입력 2020.08.11 09:50:03   |   최종수정 2020.08.11 09: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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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여제’ 정혜림, 최근 국내 대회 2연패로 올림픽 준비 순항

-“너무 기뻤던 2018년 AG 금메달, 인천의 아픔을 씻은 순간”

-“육상 꿈나무들이 끈기 있게 도전하길, 공부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도쿄 올림픽이 마지막 도전, 한국 여자 허들 첫 12초대 기록 조준”

 

한국 여자 허들 간판스타 정혜림(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한국 여자 허들 간판스타 정혜림(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광주]

 

‘허들 공주’에서 ‘허들 여제’까지. 한국 여자 허들 간판 정혜림(33, 광주시청)은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국제대회에 참가해 혜성처럼 주목받은 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선 8년 만에 한국 육상에 금메달을 안긴 선수가 됐다. 

 

1987년생인 정혜림은 이제 1년 연기된 도쿄 올림픽을 운동 인생 마지막 허들을 넘어갈 무대로 바라본다. 단순히 올림픽 메달뿐만 아니라 정혜림이 반드시 마지막 허들을 넘는 순간 깨고 싶은 기록은 한국 여자 허들 100m에 있는 ‘마의 13초 벽’이다. 

 

현재 은퇴한 이연경이 보유한 한국 여자 허들 100m 최고 기록은 13초00이다. 정혜림은 12초대 신기록을 세우는 자신의 마지막 전력 질주를 꿈꾼다. 자면서도 벽을 찰 정도로 허들을 향한 열정을 내뿜는 정혜림의 얘길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그냥 달리는 것보단 허들 넘는 것에 재미 느껴, 내 길이구나 느꼈다."

 

정혜림은 그냥 달리는 것보단 허들을 넘으며 달리는 것에 더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사진=gettyimages) 정혜림은 그냥 달리는 것보단 허들을 넘으며 달리는 것에 더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사진=gettyimages)

 

‘허들 공주’를 직접 만나 영광입니다(웃음).

 

이제 나이를 생각하면 ‘공주’ 소리 듣기엔 조금 낯간지럽습니다(웃음). ‘허들 여제’라는 얘기도 봤는데 그렇게 불러주시면 정말 기분 좋아요. 관심 하나하나에도 감사할 뿐입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국내 무대에선 적수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뒤 재개된 국내 무대(제49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제48회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에서 모두 여자 허들 100m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회 순위 자체는 만족스러운데 우승 기록(13초65, 13초49)을 보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전지 훈련에서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도쿄 올림픽 1년 연기는 저에게 기회라고 봅니다. 지난해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을 위한 국제 랭킹 포인트도 조금 부족했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확실히 생겼으니까요.

 

‘허들 여제’가 허들에 빠지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달리기에 자신감을 느꼈습니다. 초등학교 때 남자 친구들이 저와 달리기로 한번 붙어보자고 할 정도였죠(웃음). 저도 달리기에 흥미를 많이 느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육상 선수로서 제대로 뛰기 시작했죠.

 

프로 종목도 아닌 아마추어 종목이었기에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을 듯싶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반대하셨습니다. 제가 농구부에서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는데 부모님은 무조건 농구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한 달을 넘게 싸웠죠(웃음). 저는 농구에 관심도 없었고요. 결국, 제가 너무 하고 싶어 하니까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허락한 분위기였습니다. 부모님도 달리기가 빠르신 편이라 유전자를 잘 물려받아 지금까지 운동한 듯싶어요. 

 

많은 육상 종목 가운데서도 허들을 택한 점도 눈에 들어옵니다. 

 

처음엔 중·장거리 선수로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학교 지도자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허들 한 번 해보자’라고 제안하셔서 그때부터 허들 선수로 뛰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그냥 달리는 것보단 허들을 뛰어넘는 게 더 재미있었죠. ‘이 길이 나에게 딱 맞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인천 좌절 딛고 AG 금메달리스트로 올라선 허들 여제

  

정혜림은 어린 나이부터 주목받아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까지 올라섰다(사진=정혜림 제공) 정혜림은 어린 나이부터 주목받아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까지 올라섰다(사진=정혜림 제공)

 

허들 강자로 명성을 얻으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국가대표에 선발됐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부터 단체 생활을 하면서 같이 운동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학창 시절 슬럼프도 딱히 없었고요. 고향이 부산인데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국가대표에 선발돼 태릉 선수촌으로 올라가게 됐죠. 그땐 와 닿는 게 없었는데 국가대표 생활을 하다 보니까 이게 정말 사명감이 있는 자리인 걸 느꼈어요. 대표팀에서 잘하는 선배들을 보며 더 큰 꿈을 꾸게 됐죠.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굵직한 국제무대에 출전했지만, 가장 먼저 주목받은 건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였습니다. 당시 대회 결승전에서 마지막 허들에 걸려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대회가 인천에서 열렸으니까 부모님도 오신 자리였습니다. 마지막 순간 걸리지 않고 제대로 뛰었다면 메달 싸움을 했을 텐데 정말 아쉬웠어요. 주위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죠.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을 잘 만들어야겠단 생각으로 다시 힘을 냈습니다. 국내대회보단 수준이 더 높은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했어요. 2016년부터 광주시청에 입단했는데 국제대회 출전 지원을 잘해주셨습니다. 국내대회 성적만 올리길 바라는 팀들이 많은데 심재용 감독님(광주시청)께선 더 높은 수준에서 뛰는 걸 원하셨죠. 

 

그 결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 육상에 8년 만의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13초20)을 안깁니다. 

 

사실 아직도 잘 안 믿기는 순간입니다.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순간 너무 기뻤어요. 당장 그만둬도 여한이 없겠다고 할 정도로 모든 걸 다 가진 느낌이었죠. 무엇보다 4년 전과 달리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됐으니까 더 뿌듯했습니다. 인천의 아픔을 완전히 씻는 순간이었죠. 

 

육상 꿈나무를 향한 정혜림의 조언 "공부도 포기하지 말고 병행하길"

 

정혜림은 2021년 열리는 도쿄 올림픽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준비 중이다(사진=정혜림 제공) 정혜림은 2021년 열리는 도쿄 올림픽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준비 중이다(사진=정혜림 제공)

 

‘육상 신동’ 양예빈 선수가 16살의 나이로 최근 한국 육상계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육상 선배로서 어떤 응원을 전해주고 싶나요. 

 

정말 착하고 열심히 하는 후배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너무 큰 주목을 받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큰 관심을 받은 적이 없는데 최근 경쟁자들이 레이스를 포기해 양예빈 선수 혼자서 뛴 상황이 기사로 나왔잖아요. 주위에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 있고, 악플도 달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흔들리지 말고 좋은 선수로 잘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허들 여제를 보고 육상을 시작하는 학생선수들도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궁금합니다. 

 

최근 육상계에서도 육성 시스템이 잘 구축됐습니다. 훈련 방법이 다양해졌고 더 좋은 육상 선수로 성장할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봐요. 비록 비인기 종목이지만, 자기 개성을 잘 발휘할 환경 속에서 뛴다면 오히려 더 주목받을 기회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육상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면 끈기 있게 도전해봤으면 해요. 제가 그 롤모델이 된다면 영광이고요(웃음). 또 학창 시절 공부를 완전히 놓지 말라는 얘길 전하고 싶어요.

 

공부요?

 

제가 학창 시절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계속 아쉬웠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조금 힘들더라도 공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으면 해요. 저도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어요. 더 늦기 전에 공부하려고 합니다.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있었던 고(故) 최숙현 사건까지 생각하면 아마추어 종목 환경에도 큰 변화가 필요할 듯합니다.

 

저도 그 사건을 듣고 정말 속상했습니다. 아직도 아마추어 종목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파헤치면 끝이 없지 않을까요. 말 못 할 사정이 매우 많았을 겁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실업팀 실태에 대해 조사가 많이 진행되더라고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더 나은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지도자들도 경각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였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아마추어 종목을 선택한 걸 후회합니까.

 

아무래도 아마추어 종목 가운데서도 육상이 더 비인기 종목이긴 합니다. 가끔 프로종목 선수들이 부럽긴 한데 나름대로 육상만의 매력이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허들이란 종목에서 제 이름을 알렸던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출전할 기회도 있으니까요. 마지막 도전을 생각한다는 자세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의 13초 벽 넘어 12초대 신기록 달성 꿈꾸는 허들 여제

 

자신의 마지막 허들을 넘는 순간 웃고 싶은 게 허들 여제의 바람이다(사진=정혜림 제공) 자신의 마지막 허들을 넘는 순간 웃고 싶은 게 허들 여제의 간절한 바람이다(사진=정혜림 제공)

 

1년 뒤 열리는 도쿄 올림픽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궁금합니다.

 

올림픽 메달은 어렸을 적부터 꿈입니다. 물론 메달 획득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솔직한 제 목표는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는 겁니다. 한국 여자 허들 사상 처음으로 ‘마의 13초 벽’을 깨는 거죠. 그 기록 경신을 올림픽 무대에서 한다면 더 행복할 거고요. 

 

지금까지 가장 빠른 개인 기록은 몇 초입니까.

 

13초04가 개인 최고 기록입니다. 현재 은퇴한 이연경 선배가 보유한 한국 최고 기록(13초00)과 0초04 차이죠. 한국 여자 허들 사상 첫 12초대 기록을 달성하며 선수 인생 마지막 허들을 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정말 찰나의 기록 싸움이군요.

 

제가 몸 상태가 아무리 좋아도 경기장 날씨가 안 좋거나 바람이 안 좋게 불면 기록이 안 나옵니다. 예전에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서 12초80 기록이 나왔는데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초속 2.0m 이하 공인 기록 인정) 때문에 공인 기록이 안 됐거든요. 

 

그만큼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인 무장’도 중요하겠습니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제 남편(장대높이뛰기 대표팀 김도균 코치)이 저의 코치이자 정신적인 멘토로 큰 도움을 줍니다. 저의 모든 걸 돌봐주는 존재인데 거의 업어 키워준 거죠(웃음).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을 겁니다. 내년 올림픽 때 결혼 10주년인데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하는 열정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더 모범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제 저도 어린 나이가 아니니까요. 젊은 선수들과 붙었을 때도 경쟁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마지막까지 박수받을 수 있는 선수가 돼야죠. 

 

정혜림 선수에게 ‘허들’이란 의미는 무엇입니까.

 

인생에선 항상 어떤 것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시간이 오잖아요. 저에게 허들도 그런 존재인 듯싶어요. 엉키고 넘어지면서도 끝없는 연습 끝에 그걸 넘어야 하니까요. 결국, 제 인생에서 허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죠. 자면서도 허들을 넘는 꿈을 꾸며 벽을 차고 그런다니까요(웃음). 


‘허들 여제’가 마지막 허들을 넘어서는 순간까지 팬들도 많은 응원을 보낼 듯합니다.

 

제가 마지막 허들을 넘는 순간 웃을 수 없는 기록이라면 정말 아쉬움이 클 겁니다. 마지막 허들을 넘는 순간 웃으며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면 정말 후련하게 그만둘 수 있을 거예요.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더 열심히 뛰려고요. 마지막까지 한국 육상의 본보기가 될 만한 ‘허들 여제’로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그 순간까지 많은 응원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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