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와 KBL을 모두 경험한 하승진 ‘작심 발언’, 농구계 공감도 높다

-미국 대학 졸업 후 유럽리그 거친 전태풍 “승진이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하지 마’”

-KBL 유일 NBA 진출 꿈꾸는 이대성 “승진이 형 작심 발언은 누군가 해야 했다”

-반대 의견도 존재, “휴식기 마친 선수들 몸 상태 보면 강한 훈련 불가피”

-“프로 감독은 선수와 마찬가지로 팬들에 이기는 경기로 보답해야 할 의무 있다”

방송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하승진(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방송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하승진(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내가 작심하고 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거예요.

6월 19일 엠스플뉴스와의 인터뷰(기사)를 마친 하승진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당시 인터뷰는 하승진이 유튜브에서 밝힌 ‘한국 농구가 망해가는 이유’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 농구 대표팀을 향한 열악한 지원, 창의적인 플레이를 가로막는 강압적인 훈련 분위기, 꾸준한 경기력을 가로막는 과도한 훈련 일정 등을 하나하나 꼬집었다.

하승진은 한국인 최초 미국 프로농구(NBA) 코트를 밟은 선수다. 2004년 NBA 신인선수 드래프트 45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돼 2시즌을 뛰었다. 이후엔 밀워키 벅스 유니폼을 입고 미국 도전을 이어갔다.

미국 도전을 마친 2008년엔 KBL(한국프로농구)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참여해 전체 1순위로 전주 KCC 이지스와 인연을 맺었다. 데뷔 시즌(2008-2009)부터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끈 하승진은 KBL 통산 347경기에서 뛰며 경기당 평균 11.6득점, 8.6리바운드를 올렸다. 두 차례의 챔피언 등극에 앞장섰고, 2010-2011시즌엔 MVP까지 받았다.

하승진은 한국에서 NBA와 KBL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선수다. 하승진의 연이은 작심 발언을 지나칠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하승진 발언 접한 농구계 반응? 선수들 사이에선 공감대 높다

2006년 프랑스 리그에서 뛰던 시절 전태풍(사진 왼쪽)(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06년 프랑스 리그에서 뛰던 시절 전태풍(사진 왼쪽)(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5월 14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은퇴를 발표한 하승진은 유튜버를 포함한 방송 활동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하승진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발언을 쏟아낸 건 농구를 향한 애정 때문이다.

1997년 KBL 출범 이전 농구대잔치 시절을 그리워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누군가는 현실을 짚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승진이 ‘한국 농구가 망해가는 이유’란 방송을 한 이후 농구계 반응은 엇갈렸다. 공감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쪽이 있었고,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상적인 말뿐이란 반응도 있었다.

하승진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대표적인 선수는 전태풍이다. 전태풍은 올봄 서울 SK 나이츠 유니폼을 입었다. KCC와 부산 KT 소닉붐,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이은 네 번째 팀이다.

전태풍은 NBA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선진 농구 시스템에 아주 익숙한 선수다. 미국에서 농구를 시작해 대학을 졸업했고 프랑스, 러시아, 터키, 그리스 등 유럽에서 프로 선수로 뛴 바 있다. KBL에 데뷔한 2009-2010시즌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드리블과 고난도 슛을 선보이며 농구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하)승진이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처음 한국 왔을 때부터 매일 들은 말이 ‘하지 마’였다. 그게 한국 농구라는 것이 이유였다. 내가 가진 기술 팬들에 보여주고 싶은데 10년 뛰면서 다 까먹었다. 감독 지시 조금만 어기면 빼 버리고 질책하고.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외국인 선수한테 패스 주고 외곽에서 슛 받아 쏘는 것 하나뿐이다.전태풍의 말이다.

전태풍은 10년간 KBL에서 뛰며 학생선수인지 프로농구 선수인지 헷갈리는 날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스스로 기량 발전에 힘쓰고 훈련하는 국외와 달리 한국은 감독의 뜻대로 훈련하고 움직이는 게 당연시된 까닭이다.

전태풍은 10년 전 자신을 만난다면 ‘너 자신을 잃지 말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단 한 번도 명확한 이유를 가르쳐준 적이 없는 훈련과 패턴 등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내 영상을 보면 ‘저런 플레이도 했었나’란 생각이 든다는 말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KBL에서 유일하게 NBA 진출을 꿈꾸는 이대성 역시 하승진의 말에 큰 공감을 나타냈다. 이대성은 “(하)승진이 형이 한 말 100% 공감한다”며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형이 큰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내 꿈은 NBA 선수’라고 말한 초교 3학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넌 안 된다’다. 미국 진출을 위해 학창 시절 ‘포인트 가드를 맡고 싶다’고 하면 ‘네가 뭔데’란 반응이 돌아왔다. 초교 시절부턴 산을 탔는데 그게 기량 향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려준 지도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냥 하는 거고 남는 건 부상뿐이다. 한국 농구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선 농구계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이대성의 말이다.

이대성은 두 차례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바 있다. 중앙대 재학 시절엔 브리검 영 대학에 편입해 NCAA 디비전 2를 경험했고, 2017년 10월엔 NBA 산하 G-리그를 뛰었다. KBL로 돌아온 뒤엔 2018-2019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를 받는 등 리그 정상급 가드로 우뚝 섰다. 이대성은 선진 농구를 경험한 KBL의 몇 안 되는 선수다.

부정적 반응도 존재···“휴식기 마친 선수들의 몸 상태를 보면 훈련량 늘릴 수밖에 없다”

KBL 개막이 17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한 전·현직 선수들의 목소리에 농구계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궁금하다(사진=KBL)
KBL 개막이 17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한 전·현직 선수들의 목소리에 농구계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궁금하다(사진=KBL)

하승진의 작심 발언에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하승진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을 표하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A 구단 감독은 휴식기를 마치고 복귀한 선수들의 몸 상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프로 선수라면 휴식기에도 몸을 만들어야 하는 게 맞지만, 뛸 준비 안 된 선수가 태반이다. 새 시즌까지 준비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훈련량을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 프로 감독은 팬들에 이기는 경기로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

KBL에서 10년 넘게 뛴 베테랑 B 선수도 A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승진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지만 KBL 현실에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선수는 농구를 처음 시작한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스스로 관리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자율이 주어져도 어떻게 몸을 만들어야 하는지 몰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이 주장의 핵심은 선수들의 훈련 부족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휴식기 몸 관리에 소홀하고, 시즌 중엔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이는 날이 적다고 본다. 오픈 찬스에서 3점슛을 놓치고 심지어 에어볼이 나는 게 노력 부족의 대표적인 예다. 그런 선수들이 코트를 누빌 수 있는 건 많은 훈련 덕분이란 생각이다.

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선수들은 한 시즌의 성과를 만회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감독은 성적이 부진한 경우 실직자가 될 위험성을 항상 지니고 있다. 강압적이고 많은 훈련량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하승진 주장에 공감하는 선수들의 생각은 다르다. 전태풍은 “SK에서 깜짝 놀란 게 하나 있다.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야간 훈련에 모든 선수가 참여한다. 동생들은 ‘기술 좀 가르쳐 달라’면서 기량 향상에 의지를 보인다. 감독은 이런 노력의 성과를 평가하면 된다. 선수가 비시즌 준비에 소홀했다면 출전 시간과 연봉이 준다. 책임은 선수의 몫”이라고 말했다.

훈련 때 선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다. 성인이고 프로 선수지만 학생선수처럼 코칭스태프 눈치 보면서 훈련하고 시합에 나선다. 비상식적으로 많은 훈련량 때문에 경기 당일 최상의 몸 상태로 나서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 그런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 현장을 찾은 관중을 즐겁게 해준다? 이젠 정말 바뀌어야 한다.하승진을 포함해 여러 선수가 공감한 말이다.

하승진은 은퇴한 선수이기 때문에 거침없는 주장을 내뱉을 수 있었다. 본인 역시 은퇴하지 않았다면 농구계를 비판하는 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소속팀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로 하승진의 주장에 대한 생각을 말 못 한 선수가 여럿이었다.

하승진을 비롯한 몇 선수는 큰 용기를 냈다. 이런 문화 속 농구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감독과 선수 역시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자신들의 발언이 불필요한 논쟁을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까닭이다. 이는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농구계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한국 농구를 이끌어가는 소중한 농구인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에 그치지 않으려면 발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단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승진의 작심 발언 안에 담긴 개선책은 감독, 선수, KBL, KBA(대한민국농구협회) 관계자 등이 한데 모여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일 수 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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