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 영선고 야구부, 2019년 11월 끝으로 해체 위기

-교육청 반대 무릅쓰고 2015년 창단, 3년간 KBO 지원금 4억 원 받았다

-교육청 압박에 “2019년 11월 끝으로 해체” 약속…1, 2학년 선수들 강력 반대

-야구부 신규 창단 성과로 내세운 KBO, 이제는 지속가능성 고민할 때

영선고 야구부가 11월을 끝으로 해체될 위기다. 갈 곳을 잃은 야구부원들의 우려가 크다(사진=MBC)
영선고 야구부가 11월을 끝으로 해체될 위기다. 갈 곳을 잃은 야구부원들의 우려가 크다(사진=MBC)

[엠스플뉴스]

오늘(8월 13일) 오전 서울 신월야구공원에서 열린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2회전. 전북 고창 소재 영선고는 강호 부산고와 경기에서 0대 10, 6회 콜드게임으로 패했다.

영선고 야구부원들에게 이 경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 대회 첫 경기이자, 어쩌면 영선고 이름으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가 우리 3학년 선수들에겐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영선고 신동수 감독이 대회를 앞두고 들려준 말이다.

야구부를 올해 11월까지만 운영하고 해체하라는 게 전북교육청의 방침입니다. 만약 그 전에 교육청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영선고 야구부는 사라지게 됩니다. 1, 2학년 선수들도 뿔뿔이 흩어져 다른 학교를 찾아봐야 하는 형편이에요. 마음이 무겁습니다.

영선고, 야구부 창단 지원금 3년간 4억 원 수령…지원 끝난 올해 끝으로 해체

올해를 끝으로 해체 위기에 놓인 영선고 야구부(사진=영선고)
올해를 끝으로 해체 위기에 놓인 영선고 야구부(사진=영선고)

영선고는 지난 2015년 야구부를 창단했다. 전북 지역 야구 관계자는 기존 지역 리틀야구단과 고교 야구부, 그리고 2016년 창단하는 중학교 야구부를 연계해서 지역 초-중-고교 야구를 활성화해보자는 계획이었다. 2015년 7월부터 지도자 1명에 선수 9명으로 팀 훈련도 시작했다고 전했다.

구본능 총재 시절인 당시 KBO는 ‘아마야구 활성화’를 내걸고 전국의 신규 야구부 창단 학교에 지원금을 제공했다. 2012년부터 야구부를 창단하는 고교에 3년간 3억 원, 초등학교와 중학교엔 5년간 각각 6천만 원과 2억 2천만 원씩을 지원했다. 영선고 야구부도 1년차에 2억 원, 2년차 1억 원, 3년차 1억 원 등 야구부가 자리잡을 때까지 총 4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KBO와 창단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에 전북교육청이 제동을 걸었다. 학교 관계자는 교육청에선 ‘청의 승인 없이 창단할 경우 묵과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학교에서 교육청에 협의를 요구했지만 교육청에선 ‘승인 절차 없이 창단하면 2억 5천만 원의 재량사업비 지급제재, 교육청 각종 공모 사업 선정에서 영선고를 배제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선고는 절차에 따라 그해 10월 도교육청 학교운동부운영위원회에 야구부 창단을 신청했고, 10월 12일 교육청 정책토론실에서 위원 6명과 교장 등 학교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위원회가 열렸다. 결과는 창단 불허.

당시 위원회에선 ‘학생 수급을 위한 단체 운동부 창단은 허가할 수 없다’ ‘운동부로 인한 민원 발생으로 도교육청의 청렴도가 저하되는 문제가 예상된다’ ‘위장 전입에 의한 다른 지역 선수 수급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야구부 창단을 불허했다. 이를 전해들은 아마야구 관계자는 전북교육청의 기준대로라면, 전국에서 고교야구부를 창단할 수 있는 학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미 선수 18명을 모집하고, KBO 지원금 2억 원을 선집행한 영선고는 야구부 창단을 무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선고는 교육청 반대에도 창단을 그대로 추진했다. 11월 27일 정식으로 야구부를 창단했고 2016년부터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주최하는 각종 대회에도 출전했다.

교육청은 다양한 방법으로 영선고에 압박을 가했다. 학교 관계자는 모든 학교 목적사업비 및 공모사업 지원금에서 영선고가 배제됐다고 밝혔다. 1천만 원에 달하는 유도부 코치 지원과 5백만 원 상당의 유도 체전 입상종목 지원금, 9백만 원 상당의 전국기능경기대회 훈련 지원금이 끊겼고 그외에도 9개 항목에 걸쳐 수천만 원의 지원이 중단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교육청은 장학관을 학교에 보내 “야구부를 계속 운영할 시엔 2016년 8월부터 교직원 인건비(재정 결함 보조금)를 지급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영선고는 백기를 들었다. 영선고는 “2017년 신입생까지만 야구부원을 모집하고, 2017년 신입생이 3학년이 되는 2019년 11월까지만 야구부를 운영하겠다”고 교육청과 협의했다. 교육청은 이 협의 내용과 관련해 각서와 공증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선고는 2017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 신입 야구부원을 모집했고, 그 결과 2018년 입학한 2학년 5명과 올해 신입생 2명이 현재 야구부 소속으로 남아 있다. 이같은 사정을 모르고 입학한 학생선수들 입장에선, 야구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황당한 상황을 겪게 생겼다. 야구부가 해체되면 이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하거나,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

영선고 학부모들은 학교에 입학한 뒤 3월이 돼서야 해체 예정 사실을 알았다. 이미 다른 학교 야구부의 선수 구성이 마무리된 상황이라 전학도 쉽지 않고, 전학해도 경기 출전은 불가능하다. 야구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교육청에선 ‘영선고가 협약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선수를 선발해서 생긴 결과’란 입장이다.

올해 야구부에 부임한 신동수 감독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해태 타이거즈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신 감독은 “야구부를 3학년만으로 운영하는 건 불가능한 얘기다. 그간 신입생을 받아 팀을 운영할 동안에도 교육청에선 아무런 제재가 없었고, 신입생들을 데리고 대회에 출전해도 별 말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전북 지역 야구 관계자는 영선고 창단 때부터 교육청은 온갖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들어가며 학교 운동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당장 야구부가 사라지면 1, 2학년 선수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인데 무작정 해체하라는 건 과도한 행정이라 주장했다. 전북교육청은 최근 상산고 자사고 취소 사태, 전북지역 모 중학교 야구부 코치의 선수 ‘유사강간’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곳이다.

영선고 사태가 준 교훈…이제는 ‘신규 창단’보다 ‘지속가능성’ 고민할 때

우신고 야구부 창단 지원 협약에 참석한 정운찬 총재. 이제는 아마야구 신규 창단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KBO)
우신고 야구부 창단 지원 협약에 참석한 정운찬 총재. 이제는 아마야구 신규 창단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KBO)

영선고 야구부 학부모들은 7월 22일 전북교육청 앞에서 ‘해체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체될 야구부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영선고에 진학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야구선수의 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해체 결정을 돌이켜달라”는 게 학부모와 학생선수들의 요청이다.

학부모들은 영선고와 교육청을 상대로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영선고와 교육청은 KBO 창단지원금이 나오는 해까지만 야구부를 운영하고, 그 뒤엔 해체하기로 자기들끼리 협의했다. 해체를 정해놓고 KBO 창단지원금을 받았다면, KBO 지원금을 횡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실제 KBO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영선고 야구부에 총 4억 원을 지원한 바 있다. 사실상 창단 때부터 해체가 예정된 팀에 거액의 돈을 지원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KBO는 ‘야구부 창단을 지원할 뿐 운영까지 관여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KBO 관계자는 “학생야구의 활성화는 프로야구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KBO가 창단을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지원금 지급은 학생수와 신입생 수 등 명확한 기준에 따라 협약을 맺어서 이뤄진다. 학교가 지원금을 받는 3년 동안 협약 이행사항을 잘 준수했다면 그 이후까지 문제삼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영선고 사태를 계기로 그간 ‘창단’ 위주로 이뤄진 KBO의 아마야구 지원 정책에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KBO는 최근 “우신고등학교와 야구부 창단 학교 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KBO의 지원으로 고교 야구부 수는 한국야구 사상 최초로 80개가 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KBO가 창단 지원금 정책을 시행한 2012년 이후 고교 26개, 중학교 23개, 초등학교 6개 야구부가 창단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야구 관계자 사이에선 야구부 숫자의 증가가 반드시 아마야구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란 비판적 의견도 적지 않다. 우후죽순 창단하는 야구부 중에는 자질미달 지도자 문제, 선수수급 문제, 운동장 문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가 적지 않다.

현재로선 3년간의 지원이 끊긴 뒤 학교가 야구부 운영을 중단해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한 야구인은 앞으로 영선고 같은 사례가 또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제는 아마야구의 양적 증가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KBO도 신규 창단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KBO의 정책 개선을 촉구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