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O리그 새 트렌드로 주목받는 ‘데이터 야구’

-하위권 구단 너나없이 데이터 야구 강조…지도자 선임도 ‘데이터 활용능력’ 고려

-키움 히어로즈, SK 와이번스 등 데이터 활용 잘하는 팀이 성적도 좋다

-데이터 야구 성공하려면 현장과 소통 필수…구단도 그에 걸맞은 역량 갖춰야

최근 KBO리그는 데이터 야구가 대세다. 왼쪽부터 맷 윌리엄스 KIA 신임 감독, 장정석 키움 감독, 허삼영 삼성 신임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최근 KBO리그는 데이터 야구가 대세다. 왼쪽부터 맷 윌리엄스 KIA 신임 감독, 장정석 키움 감독, 허삼영 삼성 신임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데이터 야구. 최근 프로야구에서 가장 핫한 트렌드다. 용을 마스코트로 쓰는 팀부터 거인이 마스코트인 팀까지 너도 나도 다들 데이터 야구를 외친다. 특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하위권 팀 사이에서 유독 데이터, 데이터 합창 소리가 크다.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KIA 타이거즈가 대표적이다. KIA는 맷 윌리엄스 감독 선임을 발표하며 데이터 분석을 통한 선진야구를 내세웠다. 삼성 라이온즈는 아예 전력분석팀장을 감독 자리에 앉혔다. 데이터 야구에 강점을 갖고 있으며, 20년간의 전력분석 노하우를 갖췄다는 설명이다.

9위 한화 이글스도 정민철 단장 임명과 함께 이전보다 데이터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서산 2군 구장에 랩소도, 블라스트 등의 최신 장비를 설치해 데이터 활용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꼴찌 롯데 자이언츠는 기존 데이터 팀을 R&D 팀으로 확대 개편하고 향후 구단 핵심 부서로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키움, 데이터 분석 의사결정 반영해 성공…훈련부터 데이터 활용하는 SK

투수 불펜 피칭에 랩소도를 활용하는 두산 베어스(사진=엠스플뉴스)
투수 불펜 피칭에 랩소도를 활용하는 두산 베어스(사진=엠스플뉴스)

KBO리그 구단들이 데이터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소위 ‘신’이나 그 비슷한 별명으로 불린 올드스쿨 지도자들은 데이터 분석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낼 때가 많았다.

선수 출신 아닌 사람이 한마디 하면 곧장 “당신, 야구 해봤어?”란 반응이 돌아왔다. 야구장의 모든 의사결정은 운동장에서 오랜 시간 땀을 흘리며 직접 야구를 해본 사람만이 내려야 한다는, 야구인의 경험과 ‘직감’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믿음이 지배했다.

그러나 최근 진보적인 팀들이 빅데이터를 잘 활용해 성공을 거두면서, 데이터를 바라보는 리그 분위기도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흔히 하는 오해와 달리 데이터 야구’는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의사결정을 데이터가 감독 대신하는 게 아니다. 그보단 감독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가깝다.

선수 스무 명을 데리고 야구했던 1980년대와 달리, 지금의 야구는 선수단 규모만 100명에 달한다. 여기에 트래킹 시스템이 매 경기 7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쏟아내고, 사람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영역까지 포착해 낸다. 잠자리 눈을 가진 반인반신의 감독 혼자서 모든 걸 판단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키움 히어로즈는 장정석 감독과 파트별 코치, 전력분석 팀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의해서 큰 그림을 그린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찬사를 받는 불펜 운영도 감독 개인의 창의력과 천재성이 아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이룬 성과다.

장 감독은 전력분석팀에서 만든 자료를 검토한 뒤, 코치들과 상의해 보다 확률 높은 라인업을 짜고 불펜 기용 방향을 정한다. 물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건 감독의 몫이다. 가장 구위가 좋은 조상우를 9회 세이브 상황이 아닌 6회 승부처에 투입하는 결정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코치진과 상의해, 감독이 최종 선택한 결과다.

SK 와이번스도 데이터 활용이 구석구석 생활화된 팀이다. SK는 불펜피칭과 타격 연습할 때부터 랩소도를 활용해 선수 컨디션을 체크한다.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코칭스태프에 전달해 타격자세 교정, 구종 디자인, 경기 전략을 짜는 데 활용한다. 선수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자신감을 불어 넣기도 한다. 이게 현대야구에서 구단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데이터 야구, 현장과 소통 필수…구단도 역량 갖춰야

최근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활용하는 초고속 카메라와 블라스트 모션 장비.
최근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활용하는 초고속 카메라와 블라스트 모션 장비.

물론 데이터 야구가 말로만 외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비싼 장비를 잔뜩 들여온다고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우수한 데이터 분석 인력을 갖춰도, 현장에서 활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장 야구인 가운데 가장 데이터 활용에 능하단 평가를 받는 SK 손 혁 코치는 우리 팀은 데이터를 놓고 데이터 분석 파트·전력 분석 파트·코치진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한다. 각자 의견을 제시하고 치열한 토론으로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나온 데이터 방향성을 선수들에게 제시한다. 각자 파트를 존중하고 최상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SK 데이터 분석가도 “우리 팀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건 현장과의 소통이다. 우리가 데이터를 만들어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현장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처음부터 전력분석 파트와 현장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계획하니까 효율적인 데이터 야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최근 삼성과 KIA의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삼성은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데이터 분석 인력을 보유했지만, 감독을 비롯한 현장 구성원들과 교감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 프런트와 현장의 엇박자 속에 구단 역사상 최초의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란 굴욕까지 맛봤다.

이에 삼성은 전력분석팀장을 아예 현장 감독 자리에 앉히는 파격 결정을 내렸다. 또 데이터 야구를 펼치는 데 걸림돌이 될 만한 코치는 내보냈다. 데이터 분석을 비롯한 프런트 오피스의 결정이 그대로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KIA의 외국인 사령탑 선임도 데이터 파트에 힘을 싣기 위한 선택이다. 비교적 최근 메이저리그 감독을 지낸 맷 윌리엄스는 구단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활용해 의사 결정을 내린 경험이 있다. 현장 감독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하면 구단 내에서도 데이터 파트에 보다 힘이 실린다.

물론 감독 한 사람의 힘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구단도 ‘데이터 야구’에 적합한 역량과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례로 KIA는 다른 9개 구단이 사용하지 않는 독자적인 레이더 추적 시스템을 사용한다. 다른 구단 데이터 분석가는 “KIA가 도입한 시스템도 그 자체 성능은 뛰어나다. 하지만 다른 9개 구단이 모두 받아보는 데이터를 KIA만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KIA를 제외한 9개 구단은 트랙맨을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트랙맨 수입 업체는 KBO리그 거의 전 구장에 설치한 장비에서 데이터를 모은 뒤, 이를 계약관계에 있는 9개 구단에 제공한다. KIA는 이 데이터 대신 독자적으로 수집한 데이터에 의존해야 한다. 자칫 데이터 야구 경쟁에서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른 예도 있다. 한화는 최근 서산 2군 구장에 ‘블라스트’라는 블루투스 장비를 도입했다. 배트 노브에 부착해 타자의 스윙 궤적과 속도 등을 실시간으로 트래킹하는 장비다. 사설 야구 아카데미에서도 활용할 정도로 간편하고 저렴한 장비지만, 구단 차원에서 제대로 운영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든다.

모 구단 관계자는 블라스트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수천만 원을 들여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이를 사용할 줄 아는 전문가와 지도자도 필요하다고 했다. 롯데가 최근 퓨처스 감독으로 임명한 래리 서튼은 블라스트를 비롯해 여러 첨단 장비 활용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활용 못 하는 고가 장비는 기자의 집에 있는 러닝머신과 다를 게 없다.

모 구단 데이터 분석가는 “데이터 야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구단 차원에서 데이터 분석 역량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현장과도 충분한 교감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데이터 야구는 자칫 구호에만 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야구 물결에 뒤늦게 뛰어든 구단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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