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청백전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집념의 14구 승부’

-큰 무대 체질 “관중이 있어야 아드레날린 솟아…팬 앞에서 야구하고 싶다”

-“풀타임 출전 목표…144G 체력 위해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

-“무관중 경기한다면 아쉬울 것…하루빨리 코로나19 잠잠해지길”

올 시즌 풀타임 출전을 목표로 개막을 기다리는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올 시즌 풀타임 출전을 목표로 개막을 기다리는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숨 막히는 긴장감, 팽팽한 대결, 치열한 명승부. ‘자체 청백전’ 관련 기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표현이다. 응원하는 관중도 없고, 이겨도 순위가 바뀌지 않으며, 홈런을 쳐도 기록으로 남지 않는 야구에서 정규시즌 수준의 긴장감과 집중력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하지만 3월의 마지막 날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 자체 청백전의 8회초는 조금 달랐다. 2대 5로 뒤진 청팀 공격. 1사 2, 3루에서 타석에 나선 3번타자 이정후는 언더핸드 양현을 상대로 14구 승부를 펼쳤다. 콘택트 능력이 뛰어난 이정후는 양현의 투구가 날아오는 족족 파울로 걷어냈다. 뒤로 넘어가는 파울, 좌측 파울, 우측 파울이 잇달아 나왔다. 회심의 13구째 공마저 파울이 됐을 땐, 이정후도 양현도 서로를 향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가 끝나도 계속될 것만 같던 긴 승부는 14구째를 받아친 이정후의 타구를 중견수가 잡아내면서 마침내 끝났다. 임병욱 타석까지 4타자 상대 14구였던 양현의 투구수는 이정후와 상대한 뒤 28개로 불어났다. 결국 손혁 감독이 개입해 8회초 청팀 공격은 2아웃으로 끝을 맺어야 했다.

“형들한테 혼났어요.” 집념의 ‘14구 승부’를 펼친 이정후가 경기 후 싱긋 웃으며 한 말이다. 사실 연습경기, 청백전에서 집중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청백전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좀 더 집중해서 경기에 임하려 했습니다. 아까 같은 상황에선 진짜 경기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 구 한 구에 집중하면서 했던 게 좋은 승부가 된 것 같아요.

이정후는 상대 투수 양현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실은 초구부터 계속 치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잘 안 맞더라고요. 양현 형의 볼이 워낙 좋아서, 계속 빗맞고 파울 타구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이정후의 바람 “팬들 앞에서 야구하고 싶다”

양현의 13구째를 파울로 연결한 뒤 미소짓는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양현의 13구째를 파울로 연결한 뒤 미소짓는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원래 이정후는 큰 무대 체질이다. 크고 중요한 경기일수록, 많은 관중이 와서 응원할수록 힘이 난다는 이정후다.

다른 팀과 연습경기든 청백전이든 관계없습니다. 저는 관중 없이 경기할 땐 좀처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질 않아요. 관중이 있고, 시끄럽고, 앰프도 크게 틀어놓고 해야 뭔가 아드레날린이 올라오죠. 이정후의 말이다.

이정후에겐 상대 팀이 누구인지보다 관중의 존재 유무가 더 중요하다. 4월 7일로 예정됐던 구단 간 연습경기가 21일로 미뤄졌단 소식에 크게 실망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정후는 “(다른 팀과) 연습경기를 한다고 아드레날린이 올라올 것 같지는 않다”며 “그보단 관중 앞에서 경기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시즌 개막이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어요. 7일부터 연습경기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크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시즌 일정도 정확히 나온 게 없잖아요.” 이정후의 말이다. “다시 하던 대로 준비해야죠. 해왔던 것들 똑같이 하면 되니까, 크게 아쉽거나 하진 않습니다.”

이정후는 “우리는 프로 선수”라고 강조했다. 모든 팀이 다 똑같은 상황입니다. 예전에 있었던 상황이면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코로나19는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프로 선수라면 어떤 상황이든 맞춰가는 게 저희 할 일이라 생각해요.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제 페이스대로 준비하려고 합니다.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려 해요.

진지하게 수비에 임하는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진지하게 수비에 임하는 이정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스프링캠프를 마친 뒤 “풀타임 소화”를 목표로 내걸었던 이정후다. 목표 달성을 위해 이정후는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144경기를 뛸 수 있는 체력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개막 연기로 준비할 시간이 더 주어진 만큼, 만반의 준비로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시즌 중이라면 웨이트 트레이닝도 조절하면서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시즌 시작 전이잖아요. 개인적으로는 홈런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144경기 동안 한 경기라도 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후반에 가서 체력적으로 뒤처지는 일은 없어야죠.” 이정후의 말이다.

이날 청백전에서 이정후는 안타 2개와 볼넷 1개, 타점 하나를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연습경기지만 전력을 쏟아부은 이정후는 “10이닝 경기는 오랜만이라 그런지 살짝 힘들다”고 했다. 다행히 키움은 1일 자율훈련 뒤 2일과 3일 이틀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이정후는 “쉴 수 있을 때 잘 쉬어야 한다”며 “이렇게 팀에서 휴식 일정이 나왔을 때나, 시즌 중 휴식일에 잘 먹고 잘 쉬는 게 답”이라 했다.

공 하나하나가 모여 한 경기를 이루고, 경기 하나하나가 모여 144경기 시즌 전체를 이룬다. 이정후는 풀타임 출전이란 목표를 위해 청백전 한 경기에도, 투수의 공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부터 잘 준비해서, 나중에 개막했을 때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이정후가 말했다. “만약 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 경기를 하게 된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부디 하루빨리 이 사태가 종식됐으면 합니다. 팬들이 보는 앞에서 야구하고 싶어요.”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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