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용규 소신 발언 뒤 심판진 퓨처스리그 강등…KBO의 신속 대응

-‘심판도 잘못하면 2군 간다’ 선례 남겼다…앞으론 제 식구 감싸기 없다

-이용규 발언으로 심판 날아간 모양새 된 데 비판도

-“심판 신뢰 회복이 해법” 로봇 심판 조기 도입 목소리도

시즌 초반부터 심판 판정이 또 논란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시즌 초반부터 심판 판정이 또 논란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한화 이글스 이용규의 ‘소신 발언’ 후폭풍이 거세다. 발언 다음날 해당 경기 심판진 전원이 퓨처스리그로 강등됐다. 이례적인 신속 조치에 야구팬들은 환영하는 반응이지만, 입장이 난처해진 선수와 권위가 실추된 심판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직 테스트 단계인 로봇 심판 도입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용규의 소신 발언, 심판진 퓨처스 강등…KBO의 전례 없는 신속 조치

인천 개막전을 앞둔 한화 선수단(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인천 개막전을 앞둔 한화 선수단(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발단은 5월 7일 인천에서 열린 한화-SK전. 이날 4타수 2안타로 팀 승리를 이끈 이용규가 방송 인터뷰 말미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도 되겠냐”며 입을 열었다.

이용규는 3경기 밖에 안 지났는데 선수들 대부분이 볼 판정의 일관성에 대해 불만이 굉장히 많다. 안타 하나를 치기 위해 잠 못 자고 새벽 3시까지 스윙 돌리고 그 안타 하나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그것을 알아주셨으면 심판들께 부탁 아닌 부탁을 드린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이용규는 “선수들이 너무 헷갈려하는 부분이 많다. 선수 입장도 조금만 생각해주셔서 조금만 더 신중하게 봐주셨으면 한다. 노력하시는 건 알고 있지만, 선수들 마음도 헤아려 주시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부탁의 말을 전했다.

현역 선수가 심판 판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건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발언의 파장은 컸다. KBO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발언 다음 날인 8일 오후 해당 경기 심판진 5명 전원을 9일 자로 퓨처스리그로 강등한다고 발표했다.

KBO는 “해당 경기 심판위원들의 시즌 준비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이에 따라 퓨처스리그로 강등해 재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중대한 오심을 저지른 심판이 벌금을 내거나 2군으로 내려간 경우는 있었지만, 경기 바로 다음 날 심판 조 전원을 한꺼번에 퓨처스리그로 보낸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전원 퓨처스 강등, ‘심판도 잘못하면 2군 간다’ 선례 남겼다

경기 다음날 심판 조 전체를 퓨처스로 내린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경기 다음날 심판 조 전체를 퓨처스로 내린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KBO의 이례적 심판 강등 조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야구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관련 기사 댓글난엔 ‘진짜 잃을 게 없단 마인드로 배짱있네 멋있다 용규야 앞으로도 계속 이런식으로 남들이 눈치보여서 못하는말들 시원하게 내지르자’ ‘심판 오심 바로잡으려면 앞으로 고참선수들이 이렇게 나서줘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바뀐다’ ‘용규야 죄졌냐??고개들어라 소신발언 응원한다’ 등이 ‘베스트 댓글’로 올라 있다.

과거 KBO는 심판을 둘러싼 논란이 생길 때마다 미온적인 대처로 빈축을 샀다. 2년 연속 비디오판독 번복 비율 최하위 심판도 계속해서 1군 자릴 지켰다. 심판위원장과 고참 심판이 언론 상대로 대놓고 거짓 해명을 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KBO와 심판위원회의 지나친 ‘제 식구 감싸기’가 심판 불신을 넘어 심판 혐오를 더욱 키웠다는 평가다.

이번 심판진 퓨처스 강등으로 ‘심판도 잘못하면 2군에 간다’는 선례가 생겼다. 허운 신임 심판위원장은 부임 당시 엠스플뉴스 인터뷰에서 공감을 못 얻는 오심이 나온다면 그건 용납하지 않겠다. 들쭉날쭉한 스트라이크 판정이 계속 나온다면 선수가 2군에 내려가듯 심판도 2군에 내려가야 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선수가 발언하면 심판이 날아간다? “KBO 결정, 이용규에 큰 마음의 짐 안겼다”

소신 발언 다음날 취재진 앞에 선 이용규(사진=엠스플뉴스)
소신 발언 다음날 취재진 앞에 선 이용규(사진=엠스플뉴스)

반면 야구계에선 KBO의 심판 강등 결정이 지나치게 성급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심판 출신 이규석 야구 원로는 “원래 시즌 초반엔 심판들도 긴장해서 실수를 많이 한다”며 “이제 겨우 3경기를 했을 뿐이다. 좀 더 지속적으로 판정을 지켜본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이용규가 심판 5명을 ‘보내버린’ 셈이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선수 딴에는 후배들과 동료들을 생각해 오랜 고민 끝에 큰 맘 먹고 한 얘기였을 텐데, 상황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선수가 큰 마음의 짐을 안게 됐다는 문제 제기다.

실제 이용규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해당 경기에 대한 문제 제기라기보단 전반적인 선수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차원에 가까웠다. 한용덕 감독도 “올 시즌 3경기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항상 볼 판정에 대해 말들이 있었다”고 했다. 특별히 이날 경기 심판진을 ‘저격’해 발언한 게 아니란 설명이다.

이용규의 소신 발언이 나온 날, 정작 심판 판정이 논란이 된 경기는 따로 있었다. 광주 키움-KIA 경기에서 권영철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큰 논란을 빚었다. 이날 권 심판은 최원태의 낮은 쪽 스트라이크 여러 개를 볼로 판정했다. 바깥쪽 벗어나는 공에는 스트라이크를 선언하고, 그보다 안쪽으로 들어온 공은 볼로 판정하는 장면도 나왔다.

이 경기를 지켜본 심판 출신 야구인은 “분명 주심 콜에 문제가 있었다. 중요한 상황에 잡아줘야 할 스트라이크를 여러 번 놓쳤다”고 지적했다. 이 경기에서 키움은 5대 8로 역전패를 당했다. 키움은 해당 심판이 주심으로 나온 경기에서 8승 13패로 같은 기간 팀 승률보다 크게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이 경기 심판진에 대해선 별다른 제재가 주어지지 않았다.

앞의 구단 관계자는 “선수가 심판 판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발언이 나왔다면, 즉각적으로 징계부터 할 게 아니라 전체적인 심판진의 경기 운영을 살펴보고 바로잡을 부분은 바로잡는 게 바람직한 수순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선수가 야구 선배인 심판들을 날린 것밖에 안 된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발언 당사자인 이용규도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용규는 발언 다음 날인 8일 취재진 앞에서 “선수의 고충과 노력을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쁜 의도로 얘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논란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모든 질문에 “오늘부터 야구에만 집중하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할 만큼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에 대해 KBO는 “이용규의 발언 하나 때문에 심판진 강등을 결정한 게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KBO 관계자는 “해당 심판진의 경기 내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한 결과, 이미 시즌이 개막했는데도 아직 시즌을 치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징계라기보단 좀 더 준비하고 올라오라는 차원의 결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해명했다.

거듭되는 판정 논란, 로봇 심판 도입 앞당길까

허운 심판위원장은 로봇 심판 도입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사진=엠스플뉴스)
허운 심판위원장은 로봇 심판 도입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사진=엠스플뉴스)

이번 결정으로 심판진이 크게 위축되고 사기가 저하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심판 출신 야구인은 “심판의 권위가 실추되고, 심판진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선수가 자신감이 떨어지면 좋은 플레이가 나오지 않듯이, 심판도 마찬가지인데 심리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좋은 판정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이 야구인은 “신임 심판위원장이 후배 심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걱정이다. 너무 센 카드를 일찌감치 써버린 것도 문제다. KBO가 앞으로 남은 시즌을 운영하는 데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자칫 이번 사건으로 선수도, 심판도, 심판위원장도, KBO까지 모두가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편 허운 심판위원장은 엠스플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심판진이 선수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데서 생긴 문제다. 심판들이 잘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심판진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 했다.

그러나 모든 경기가 중계방송되고 모든 투구가 투구추적 시스템을 통해 측정되는 시대에, 심판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신뢰 회복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아무리 심판진이 공정하고 정확하게 판정하려 노력해도, 기계로 측정한 데이터와 비교하면 실수와 오류가 나올 수밖에 없다. 로봇 심판을 도입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판정 논란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KBO에선 현재 ‘로봇 심판’ 도입을 준비 중이다. 공개 입찰을 통해 로봇 심판 사업을 진행할 업체를 선정했고, 퓨처스리그부터 단계적으로 시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허운 위원장은 “(로봇 심판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심판진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중요하지만, 그것 외에도 심판이 해야 할 일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 위원장은 “팬들이 원한다면 기술 발전에 따른 기계 판정 도입은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요구라고 본다. 심판들은 스트라이크 존 스트레스를 없애고 다른 판정에 집중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며 로봇 심판 도입이 판정 불신을 해소하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