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강진성, 입단 9년 만에 처음 맞이한 전성시대

-5일 경기로 규정타석 진입과 함께 타율 1위 등극

-고교 시절 특급 유망주에서 프로 입단 후 포수 전향, 수술까지 다사다난했던 시간

-레그킥 버리고 변화구 대응력 높여…꾸준한 출전 기회 속에 자신감 얻었다

호수비 후 드류 루친스키의 격한 포옹을 받는 강진성(사진=NC)
호수비 후 드류 루친스키의 격한 포옹을 받는 강진성(사진=NC)

[엠스플뉴스=대전]

‘깡’ 신드롬이 마침내 KBO리그 타격 순위까지 점령했다. 6월 5일 경기가 끝난 뒤 리그 타율 1위, 출루율 1위, OPS 1위의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부동의 1위였던 두산 호세 페르난데스를 제치고 차트 1위로 등장한 타자는 NC 다이노스 강진성이다.

강진성은 5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 7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 쐐기 3점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3타점 활약으로 팀의 대승(13대 2)을 이끌었다. 이날 4타석에 나선 강진성은 시즌 83타석(팀 27경기의 3.1배)으로 정확히 규정 타석을 채우며 장외에서 장내로 진입했다.

타율 0.443으로 1위, 출루율도 0.500으로 1위, OPS도 1.286으로 전체 1위다. 그 대단한 호미페도, 멜 로하스도, 김현수와 이정후도 강진성보다 순위표 뒤에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장면이다. 강진성은 “솔직히 저도 제가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수는 아니다. NC 간판스타 나성범은 진성이는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라며저렇게 열심히 하는 친구가 왜 안 될까 안타까웠다”고 했다. 나성범은 강진성과 2011년 NC 창단 멤버로 10년을 함께한 사이다. 리그 최고의 컨택트 히터 박민우는 예전 인터뷰에서 “진성이는 내 개인 타격코치”라 했다. 박민우 역시 강진성과 프로 입단 동기다.

이동욱 감독은 “8년을 뒤에서 준비했던 선수”라고 했다. 이 감독 역시 수비코치로 NC 팀 창단 때부터 오랜 세월 가까이에서 강진성을 지켜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쏟은 땀과 노력이 올 시즌에서야 비로소 결실을 보았다. ‘깡’진성 전성시대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주석 라이벌, NC 창단 멤버, 포수 전향, 팔꿈치 수술까지…롤러코스터 야구 인생

2011년 제주 캠프에서 타격 훈련하는 강진성(사진=엠스플뉴스)
2011년 제주 캠프에서 타격 훈련하는 강진성(사진=엠스플뉴스)

학창 시절 강진성은 전국 무대에서도 알아주는 유망주였다. 서울 다동 초등학교와 잠신중학교 시절엔 천재 소년 소리도 들었다. 경기고에 들어가서도 강한 어깨와 힘 있는 스윙을 무기로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다. 1학년 때 기록이 9경기 타율 0.346, 2학년 때는 10경기에서 타율 0.361에 1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 유격수, 3루수, 외야수에 투수까지 못 하는 게 없는 만능선수였다.

1학년 때 ‘이영민 타격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오른 신일고 하주석(한화)과는 서울권 라이벌 구도를 이뤘다. 2010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대표팀에 2학년으로 뽑힌 선수는 강진성과 하주석 둘뿐이었다. 지독한 ‘고3병’ 때문에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위가 4라운드까지 밀리긴 했지만, 지명 당시 NC 스카우트 팀에선 “1라운드급 선수를 4라운드에서 뽑았다”며 반색했다.

타고난 재능만큼 프로 무대 적응도 빨랐다. NC가 퓨처스리그에서 보낸 2012년, 강진성은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80경기 4홈런 19타점에 타율 0.274, 장타율 0.416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4홈런과 0.416의 장타율은 그해 NC 고졸 신인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이었다.

2013시즌 뒤 군 복무를 위해 입단한 경찰야구단에선 유승안 감독의 권유로 포수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장점인 타격 재능과 강한 어깨를 살려 공격형 포수로 키워보려는 의도였다. 입단 첫해(2014년) 강진성은 퓨처스 82경기에서 타율 0.320에 6홈런 35타점 장타율 0.533을 기록했다.

2년 차인 2015년엔 93경기 타율 0.347에 10홈런 64타점 장타율 0.522를 올렸다. 1군 스타 출신인 전준우, 안치홍 다음으로 뛰어난 공격력을 발휘하며 경찰 타선을 이끌었다. 경찰야구단을 거쳐 스타가 된 최형우, 양의지 사례처럼 강진성 앞에도 금방 꽃길이 펼쳐질 것처럼 보였다.

2017년 스프링캠프 당시 포수 훈련하는 강진성(사진=엠스플뉴스)
2017년 스프링캠프 당시 포수 훈련하는 강진성(사진=엠스플뉴스)

그러나 전역 이후 시련이 시작됐다. 2015년 9월 전역하자마자 오른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이후 일 년을 통째로 쉬었다. 재활을 마치고 2017년 스프링캠프에서 ‘포스트 김태군’ 경쟁에 참가했지만, 오랫동안 포수 한우물만 판 선수들과 경쟁에서 이기긴 쉽지 않았다. 캠프가 끝난 뒤 강진성은 김경문 당시 감독의 권유로 다시 내야수로 자릴 옮겼다. 그 뒤엔 송구 불안을 이유로 외야로 포지션을 바꿨다.

NC 코치와 관계자들이 강진성 얘기만 나오면 늘 하던 말이 있다. “방망이에 재능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확실한 자기 포지션이 없는 게 문제다.” 당시 NC 1루엔 에릭 테임즈가, 3루엔 박석민이 버티고 있었다. 외야 역시 나성범, 김성욱, 권희동이 한 자리씩 차지했고 지명타자 자리엔 이호준(현 타격코치)이 버티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따금 대타로 나와 좋은 타격을 해도 그때뿐, 1군에서 지속적인 기회가 주어지진 않았다.

수비가 돼야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반드시 송구 문제를 극복하고, 탄탄하게 수비를 준비할 거다. 그래서 때가 되면, 타석에서 내 스윙을 한 번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4년 전 인터뷰에서 강진성이 들려준 말이다.

“레그킥 버리고 노스텝으로 타격자세 변경…자신감과 집중력이 활약 비결”

이제는 1일 1깡은 기본, 1일 2깡도 가능하다(사진=NC)
이제는 1일 1깡은 기본, 1일 2깡도 가능하다(사진=NC)

매년 1군과 2군을 오가며 좀처럼 자릴 잡지 못한 강진성은 올 시즌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입단 후 9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지만 좀처럼 빛이 보이지 않았다.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시즌 전 아버지(강광회 심판위원)와 얘길 나눴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정 힘들면 그만두고 서울 집에 올라와도 된다’고요. 평생 야구만 할 것도 아닌데, 편하게 마음먹으라고 하시더군요.강진성의 말이다.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아들은 무거운 마음의 짐을 벗었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올해는 한번 후회 없이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열심히 했으니까 편하게 생각하자고 마음을 바꿨어요,” 강진성의 말이다.

강진성은 “아버지 말씀처럼 ‘안 되면 다른 일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며 “아버지처럼 심판을 해도 좋고, 지도자도 괜찮고…여러 가지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즌. 후회 없는 시즌을 만들기 위해 강진성은 과감한 변화부터 시도했다. 이동욱 감독과 상의해 특유의 레그킥 타격자세를 버렸다. 강진성은 레그킥에서 노스텝으로 폼을 바꿨다하체가 안정되니까 떨어지는 공에도 안타를 칠 수 있게 됐다. 자신감이 생기고, 좋은 타구가 나온다고 했다.

지난 시즌 강진성은 속구엔 타율 0.306으로 강했지만 슬라이더 타율 0.167, 커브 타율 0.154, 포크볼 타율 0.286으로 변화구에 약점을 보였다. 그러나 올 시즌엔 슬라이더(0.455), 커브(0.571), 포크볼(1.000)로 오히려 속구(0.409)보다 강한 모습이다.

5일 한화전에서 날린 6호 홈런도 김진영의 몸쪽 슬라이더를 받아쳐 만든 홈런이었다. 강진성은 “김진영 투수의 공은 고교 때부터 자주 봐서 자신이 있었다”며 “변화구가 올 것 같아서 앞에 놓고 하나 시원하게 돌려보자 했는데 마침 딱 맞아 떨어져서 좋은 타구가 나왔다”고 했다.

강진성은 좋은 활약의 비결로 “멘탈과 자신감”을 들었다. 자신감은 대타 홈런에서 시작했다. 5월 8일과 10일 LG전에서 2경기 연속 대타로 나가 홈런을 날렸다. 13일 KT 전에선 마무리 투수 이대은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까지 때렸다.

강진성은 대타 홈런과 끝내기가 나오고, 스타팅으로 계속 나가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이 생기니까 타격할 때 크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특히 클러치 상황에서 타점을 올리려고 집중하다 보니까 계속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동욱 감독은 “스타팅으로 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준비하는 게 달라진다”고 했다.

확실한 수비 포지션이 생긴 것도 꾸준한 활약에 도움이 된다. 대타로 시즌을 시작한 강진성은 5월 9일 모창민의 부상 이탈 이후 줄곧 1루수로 출전하고 있다. 강진성은 “대체요원으로 나갔다가 어떻게 잘 맞으면서, 그 뒤로 감독님께서 믿고 내보내 주신 게 큰 도움이 됐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강진성이 8년 넘게 뒤에서 준비하면서 그간 못 느껴봤던 것들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했다. “요새 인터뷰도 많이 하는데, 항상 보면 ‘야구장에 나오는 게 재밌다’고 하더라. 그렇게 재미있게 한다는 게 중요하다. 즐기면서 하는 게 좋은 성적을 내는 바탕이 아닐까 생각한다.” 입단 때부터 지켜본 제자의 활약에 흐뭇한 이 감독의 말이다.

“팬들의 ‘1일 1깡’ 응원 기분 좋아…앞으로도 1일 1깡 해야죠”

5일 경기로 규정타석에 진입하며 타율 1위에 올랐지만 강진성은 차분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5일 경기로 규정타석에 진입하며 타율 1위에 올랐지만 강진성은 차분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사실 강진성은 몇 년 전에도 1군 무대에서 ‘반짝’ 활약을 펼친 적이 있다. 타율 0.296에 OPS 0.925로 올 시즌 전까지 ‘커리어 하이’였던 2017시즌. 그해 강진성은 6월 한 달간 타율 0.417에 장타율 0.500으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8월 다시 1군에 올라와서도 이틀 연속 2루타를 날리는 등 한창 타격감이 좋았다. 하지만 시즌 막판 주전 선수들의 복귀와 함께 출전 기회가 서서히 줄어들었고, 강진성의 1차 신드롬은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났다. 이후엔 다시 1군과 2군을 오르내리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그래서일까. 규정타석 진입과 타율 1위를 동시에 이룬 5일 경기 후에도 강진성은 차분하고 담담했다. 그는기분은 좋지만 지금 1위를 한다고 크게 좋아할 건 아니다라며규정타석, 타율 1위 이런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그런 걸 떠나서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 좋은 감을 끝까지 잘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의 활약을 시즌 끝까지 이어가는 게 중요하단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강진성이다.

4년 전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주전 1루수 모창민이 돌아와도 여전히 강진성은 NC 라인업에서 가치 있는 선수다. 1루수는 물론 좌익수, 우익수 수비가 가능해 다양한 라인업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성범이 본격적으로 외야 수비에 나서면 지명타자 자리를 나눠 가질 수도 있다. 경기 후반 정말 급할 땐 포수도 가능하다.

강진성 신드롬은 이미 개막 한 달을 넘어 6월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SK전에서 2경기 연속 안타를 때린 데 이어 한화전에선 홈런 포함 멀티히트를 날렸다. 강진성의 맹활약과 함께 NC는 21승 6패로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NC가 부상 선수 공백에도 지난 시즌처럼 휘청이지 않고 1위를 달리는 건 강진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나성범은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진성이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욱 감독도 “5월 한 달을 잘 보내면서 팀도 함께 상승세를 탔다”고 칭찬했다. 강진성은 “NC 창단 멤버로서 지금 이렇게 경기에 나오면서 저도 잘하고, 팀도 1위를 하고 있어서 기분이 정말 좋다”며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강진성이 좋은 활약을 할 때마다 NC 팬들은 ‘오늘도 1일 1 깡 했다’ ‘1일 2깡은 해야 한다’며 응원을 보낸다. 가수 비의 ‘깡’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으며 생긴 신조어가 강진성의 성과 결합해 야구팬들 사이에 통하는 유행어가 됐다. 그러고 보면 발표 3년 만에 뒤늦게 신드롬이 된 ‘깡’과 입단 9년 만에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강진성 사이엔 통하는 면이 있다.

강진성도 ‘1일 1깡’이란 팬들의 응원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그는 어떻게 제가 잘하는 타이밍에 그 뮤직비디오가 나왔는지, 기분이 좋다1일 1깡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재치있는 답변을 내놨다. 포기하지 않고 버틴 9년의 세월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 강진성의 야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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