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철 해설위원 아들 이성곤, 주말 롯데 3연전 맹활약 화제

-이성곤 외에도 NC 강진성, KIA 유민상 등 올 시즌 야구인 2세 활약 눈에 띄네

-오랜 무명 시절 이겨내고 뒤늦게 두각 드러낸 ‘늦깎이’ 야구인 2세

-아버지 명성이 주는 부담 이겨내야…야구 이해도와 훈련 태도는 장점

삼성 이성곤, NC 강진성, KIA 유민상(사진=엠스플뉴스)
삼성 이성곤, NC 강진성, KIA 유민상(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지난 주말 삼성-롯데의 3연전이 열린 부산 사직야구장에선 깜짝 스타가 탄생했다. 이틀 연속 홈런을 때려내며 팀을 승리로 이끈 삼성 내야수 이성곤이다.

이성곤은 26일 경기 1회말 대수비로 출전해 프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한 뒤, 이튿날인 27일에도 결승 솔로포를 때려내는 활약을 펼쳤다. 팀이 패하긴 했지만 28일 경기에서도 선취점을 올리는 적시타를 때려내며 뜨거운 타격감을 이어갔다. 3연전 11타수 6안타 2홈런 4타점. 24일 한화전부터 5경기 연속 안타 행진이다.

‘아들’ 이성곤의 활약은 마치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알고리즘처럼 자연스레 ‘아버지’ 이순철 해설위원(SBS 스포츠)을 소환했다. 아들의 첫 홈런 순간을 서울의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는 이순철 위원의 뒷모습부터,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들 질문에 활짝 웃는 모습까지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방송을 본 한 야구인은 “이 위원이 방송에서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모두까기 인형’이란 별명이 생길 만큼 방송에서 냉철한 독설가 컨셉을 유지하는 이 위원이지만, 자식 사랑까지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활약에 흐뭇한 아버지는 이 위원만이 아니다. 올 시즌 이성곤 외에도 NC 강진성, KIA 유민상 등 여러 2세 야구인 선수들이 프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전 선수로 도약했다. 강진성은 쌍방울 선수 출신인 강광회 심판위원의 아들이고, 유민상은 해태-빙그레 포수 출신 유승안 전 경찰야구단 감독의 아들이다. 이미 스타 대열에 오른 키움 이정후, 삼성 원태인, 두산 박세혁 등과 함께 본격적인 ‘야구인 2세’ 시대가 열렸다.

이성곤·강진성·유민상, 오랜 무명 터널 벗어나 올 시즌 주전 도약

이성곤의 깜짝 활약(사진=엠스플뉴스)
이성곤의 깜짝 활약(사진=엠스플뉴스)

야구인 2세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선두주자는 키움 이정후다.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이종범 전 LG 코치의 아들 이정후는 데뷔 시즌인 2017년 신인왕으로 출발해 해마다 진화를 거듭했다. 올 시즌엔 홈런 파워와 수비력까지 겸비한 완전체로 올라섰다. 30일 현재 타율 0.371에 7홈런 33타점. 손혁 감독은 이정후가 왜 잘하냐는 질문을 받고 “피는 무시 못 한다”고 했다.

삼성 우완 원태인도 지난해 입단하자마자 팀의 선발 한 자리를 꿰찼고, 올해도 10경기 4승 2패 평균자책 2.96을 기록하며 삼성의 차세대 에이스로 자릴 잡는 중이다. 원태인은 삼성 1차지명 선수 출신인 원민구 전 경복중 감독의 아들이다. 이종범-이정후, 원민구-원태인은 프로야구 역사상 둘밖에 없는 ‘부자 신인 1차지명’ 사례로 통한다.

그러나 모든 2세 야구인이 이정후, 원태인처럼 프로에 들어오자마자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 이성곤은 2014년 두산에서 데뷔해 올해로 프로 7년 차다. 강진성은 2012년 NC 창단 멤버로 입단해 벌써 9년째다. 유민상도 박세혁도 프로 입단 9년 차다. 이들은 오랜 2군 생활과 좌절의 시간을 견디고 버틴 끝에 나이 서른이 다 돼서야 비로소 1군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성곤은 올 시즌 전까지 6년간 1군에서 통산 30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타격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수비가 약해 1군 외야진이 두꺼운 두산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8년 2차 드래프트로 삼성에 합류해서도 이렇다 할 실적이 없었다. 당시 엠스플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성곤은 “늘 의욕이 앞섰다. 너무 간절한 마음에 잘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났고, 그게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고 했다.

주말 롯데와 3연전은 이성곤의 야구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한 경기 반짝 활약에 그치지 않고 3연전 내내 꾸준한 퍼포먼스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경기를 지켜본 심재학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레그킥에서 자유족을 내딛는 동작이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 또 대부분의 타구가 중견수 방향으로 형성되고 있다현재 타격감이 굉장히 좋다는 증거인데, 이 감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좋은 활약이 기대된다고 했다.

올 시즌 신드롬의 주인공이 된 강진성(사진=NC)
올 시즌 신드롬의 주인공이 된 강진성(사진=NC)

‘1일 1깡’ 신드롬의 주인공 NC 강진성도 2012년 데뷔 후 지난해까지 1군보다 2군에서 보낸 날이 많았다. 이성곤과 마찬가지로 타격 능력에 비해 확실한 수비 포지션이 없는 게 발목을 잡았다. 3루수로 출발해 잠시 포수 전향까지 시도했고, 다시 3루수로 돌아갔다가 외야까지 온갖 포지션을 방랑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1루수 변신을 시도한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대타로 시작해 연일 홈런포를 쏘아 올리다 주전 1루수 모창민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았다. 타격폼 변화도 성공의 비결이다. 레그킥 타법을 토탭 타법으로 바꾸면서 변화구 약점을 극복했고,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파워를 키우면서 부쩍 타격 능력이 좋아졌다.

KIA 유민상도 기존의 웅크리는 배팅 스탠스를 지난해부터 ‘업라이트(upright)’ 스탠스로 바꾼 뒤 타격 성적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지난해 타율 0.291에 5홈런 OPS 0.849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타율 0.337에 3홈런 OPS 0.859로 상승세다. 2012년 입단 이후 2018시즌까지 때린 홈런이 9개. 지난해 타격폼을 바꾼 뒤 현재까지 때려낸 홈런은 8개다.

유민상의 활약에 아버지 유승안 전 감독도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유 전 감독은 “민상이가 그간 형의 그늘에 가려 있었는데 이제야 실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라며 “맷 윌리엄스 감독과 대화가 잘 통해서 그런가”라고 짐짓 농담을 던졌다. 유민상은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녀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한다. 마침 올 시즌 형 KT 유원상도 재기에 성공(18경기 5홀드 평균자책 3.79), 5월 26일 수원 KIA-KT 전에선 사상 두 번째 ‘형제 대결’까지 성사됐다.

“프로야구 출범 39년, 앞으로 야구인 2세 선수 더 많이 나온다”

해태 스타 출신 이순철(사진=엠스플뉴스)
해태 스타 출신 이순철(사진=엠스플뉴스)

스타 출신 아버지는 야구선수 아들에게 넘어서야 할 산이자, 무거운 짐이다. 이제는 국가대표 포수로 성장한 두산 박세혁도 한때 야구인 2세와 ‘해태 박철우의 아들’이란 타이틀에 부담을 느꼈다. 그는 선수 출신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행동을 조심해야 했고, 절제해야 할 일도 많았다고 했다.

이성곤도 몇 해 전 엠스플뉴스와 인터뷰에서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이성곤’보다는 ‘이순철 아들’로 더 유명세를 탔다. 친구들과 비슷한 실수를 해도 ‘이순철 아들이 저것밖에 못 한다’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이성곤은 “대학 때까지만 해도 야구 좀 한다고 했는데, 프로에 들어와서 몸으로 느껴지는 실력 차이에 소심해졌다”고 했다.

‘아버지 덕을 본 게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도 2세 선수들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이에 대해 한 야구인은 “아버지가 대신 타석에 나와서 쳐 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프로는 자기 실력이 있어야 살아남는 무대다. 선수 출신 아버지의 존재가 어린 시절 야구를 접하고 야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 순 있지만, 프로에서 성공은 결국 선수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만든 결과”라는 의견이다.

수도권 한 고교 감독은 야구인 출신 부모를 둔 선수들은 대체로 훈련 태도와 야구를 대하는 자세에서 또래 선수들보다 장점이 많다. 힘든 훈련도 잘 이겨내고, 지도자와 선배에 대한 예의도 바르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게 있기 때문일 것이라 했다. 이성곤, 강진성 등은 무명 시절에도 성실성 하나만큼은 팀 내 최고라는 평을 받았던 선수들이다. 유원상은 구단 프런트 사이에서 ‘미래 지도자감’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야구인 2세 리스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화 포수 출신 신경현의 아들 신지후, 빙그레 외야수 출신 임주택(현 키움 스카우트)의 아들인 임지열이 퓨처스리그에서 대기 중이고 장정석 KBSN 해설위원의 아들인 덕수고 장재영, OB 선수 출신 강규성의 아들 충암고 강효종 등 1차지명 후보로 꼽히는 고교 유망주도 있다.

학생선수 자녀를 둔 모 구단 코치는 “과거엔 부자 야구선수가 흔치 않았지만, 앞으로는 부자 선수가 점점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제 선배들 때만 해도 운동선수는 힘든 직업이었다. 구타나 기합도 많고,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아들이 야구한다면 말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의 위상과 대우가 달라진 지금은 자녀에게 야구를 권하는 부모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란 설명이다.

중학교 선수 자녀를 둔 심재학 해설위원은 “야구가 하고 싶다는 데 말릴 수 있겠나”라고 했다. 심 위원은 “최근엔 선수 아버지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녀들이 야구가 좋다고 해서 시작하는 사례도 많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야구인 2세 전성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