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인드래프트에서 2년제 강릉영동대 돌풍…대학 최다 4명 지명 선수 배출

-4년제 대학은 몰락…전통의 강호 연세대, 동국대, 단국대는 지명 선수 전무

-2년제 대학 선호 현상 가속화…얼리 드래프트 도입 목소리 커진다

-대학 야구도 반대에서 찬성으로 선회…연말부터 본격 논의 시작

얼리 드래프트는 프로와 대학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길이다(사진=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얼리 드래프트는 프로와 대학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길이다(사진=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엠스플뉴스]

9월 21일 열린 2021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가장 많은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은 학교는 서울권 야구 명문 서울고등학교다. 서울고는 두산 1차지명 안재석을 포함해 총 6명이 프로의 선택을 받아 최다 신인 지명자를 배출한 학교가 됐다.

그렇다면 대학팀 가운데 가장 많은 지명 선수를 배출한 팀은 어디일까. 전통의 명문 고려대와 연세대? 아니면 대학 야구의 맹주 동국대나 단국대? 아니면 성균관대 혹은 홍익대일까?

모두 틀렸다.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사립 전문대학인 강릉영동대에서 총 4명의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아 ‘최대 신인 배출’ 대학이 됐다. 다음으로는 2명의 선수가 프로의 부름을 받은 광주 소재 동강대학교가 뒤를 이었다.

반면 전통의 대학 강호 연세대, 동국대, 단국대, 경성대에선 1명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고려대가 2명, 성균관대가 2명으로 그나마 체면을 세웠고 한일장신대에서도 2명의 지명자가 나왔다. 중앙대, 경남대, 동의대, 홍익대, 계명대, 원광대, 영남대 등 4년제 학교에선 각각 1명이 지명받았다.

2년제 대학 돌풍에 발등에 불 떨어진 4년제…얼리 드래프트 찬성 목소리 커졌다

대학야구 경기 장면(사진=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대학야구 경기 장면(사진=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2년제인 강릉영동대가 대학팀 중에 가장 많은 프로 지명 선수를 배출한 건 이례적이다. 한 스카우트는 “2년제에서 이렇게 많은 지명 선수가 나온 건 처음 본다”고 했다. 2, 3년 전부터 본격화한 고교 선수들의 2년제 대학 선호 추세가 올해 신인드래프트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한 수도권 4년제 대학 감독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드래프트 결과를 접하고 나니 충격”이라며 “요즘 선수 수급하기가 정말 어렵다. 야구 잘하는 친구 중에 프로 진출에 실패한 친구들이 죄다 4년제가 아닌 2년제를 선호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대학을 마치고 프로에 재도전하려는 계산”이라 했다.

서울 구단 스카우트도 “최근엔 미지명 고교 선수들이 2년 뒤 재도전을 목표로 2년제 대학을 많이 가다 보니, 2년제 학교는 거의 포화상태다. 과거엔 2년제가 4년제를 이기는 경기가 거의 보기 드물었는데, 요즘은 그 반대가 됐다”고 했다.

프로구단 입장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신인은 고졸 신인이나 2년제 출신보다 매력이 떨어진다. 수도권 구단 단장은 “4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단장은 “KBO리그 선수들은 2년 동안 군 복무를 해결해야 하지 않나. 대졸 선수가 군 복무를 마치고 프로에 적응해 1군에 자리 잡으면 어느새 20대 후반이 된다”는 말로 고졸 선수를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최원호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은 “대졸 투수는 아무리 입대를 늦춰도 최대 5년인데, 그동안 선발투수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지 않다. 잘못하면 선발 수업만 받다가 군대에 간다”며 “대학을 졸업한 즉시 전력감 투수들은 선발보다는 불펜 쪽이 낫다고 본다”고 했다. 프로에서 대졸 투수의 활용도가 불펜에 국한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만약 대학 선수가 1년이라도 일찍 프로에 올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2년제 학교 선수를 뽑은 모 구단 스카우트는 “4년제 선수보다 두 살 어린 건 엄청난 장점”이라 했다.

이 스카우트는 “고교 때부터 쭉 봤던 선수인데, 2년 사이 기량이 훨씬 좋아졌더라. 보통 대학 3, 4학년 때 찾아오는 슬럼프나 혹사도 겪지 않은 상태다. 4년제 졸업 예정 선수보다 2년이란 시간이 메리트로 작용한 건 분명한 사실”이라 설명했다. 프로 구단들은 2년제 대학 선수를 선발해 사실상 ‘얼리 드래프트’와 마찬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고교 졸업 예정자들의 ‘2년제 선호 현상’에 대학 야구도 발등이 떨어졌다. 그간 얼리 드래프트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4년제 대학 감독과 학교 관계자들의 기류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한국대학야구연맹 고천봉 회장이 ‘임기 내 얼리 드래프트 도입’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대학 감독 중에서도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많아졌다.

한 4년제 대학 감독은 “이대로 계속 2년제 학교에 선수가 몰리면, 4년제 학교들의 전력은 크게 약화할 수밖에 없고 대학 야구 전체의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라며 “2년제에 선수를 ‘완전히’ 보내는 것보다는, 프로에 1년 먼저 내주더라도 우리 쪽에 조금이라도 더 오게 하는 편이 낫다”고 털어놨다.

대학 야구 관계자는 “대학야구연맹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 얼리 드래프트 도입 논의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KBSA가 KBO에 관련 공문을 보낸 단계”라며 “프로와 대학 야구 간에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얼리 드래프트, 대학-프로-학생선수 모두가 윈윈하는 길

2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한 한일장신대(사진=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2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한 한일장신대(사진=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만약 얼리 드래프트가 도입된다면, 대학 2학년보다는 3학년을 마친 뒤 드래프트에 나오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물론 프로 입장에서야 1년이라도 빨리 선수를 데려오고 싶지만, 2학년을 데려가는 건 대학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전했다.

모 구단 단장도 “미국 사례처럼 3학년 이후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게 하는 편이 합리적”이라 했다. 이 단장은 “2학년이 나오는 건 대학 쪽에 너무 불리하다. 2학년 때부터 해마다 ‘누가 프로를 가네’ ‘누구는 못 가네’ 하면서 2, 3, 4학년을 보내면 야구부 운영이 제대로 되겠나. 대학이란 의미도 퇴색할 것”이라 지적했다.

2학년의 드래프트 참가 허용은 프로 구단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앞의 단장은 “선수를 지명해도 ‘다시 대학에 돌아가겠다’며 계약 협상에 난항을 빚을 수 있다. 계약금이나 구단이 맘에 안 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 아닌가”라며 “전문대는 1학년. 4년제는 3학년 때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으면 프로와 대학 모두 만족할 만한 그림이 될 것”이라 했다.

얼리 드래프트는 대학과 프로, 선수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다. 대학은 조금이라도 기량이 나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어, 바닥까지 떨어진 대학 야구의 경쟁력이 나아질 전망이다. 프로 역시 대학에서 기량 발전을 이룬 선수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지명할 수 있어 이익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보다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 언제든 방출당할 수 있는 하위 순번 지명으로 무리하게 프로에 가는 대신, 대학에 진학해 ‘재도전’하는 선택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대학 진학 뒤 프로 진출에 실패해도 대학 교육을 통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 올해 신인드래프트 2년제 대학 돌풍이 얼리 드래프트 도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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