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 감독 퇴진만큼 충격 안긴 김창현 감독대행 임명

-전력분석원 출신 감독대행 임명에 야구인들 극심한 반발

-키움 구단에선 전력분석이 실세…선수들도 현장보다 전력분석 의존해

-키움에서 현장 출신 감독, 지도자 위상 하락하고 전력분석 비중 갈수록 커질 것

키움 히어로즈 김창현 감독대행(사진=키움)
키움 히어로즈 김창현 감독대행(사진=키움)

[엠스플뉴스]

“그런데 김창현이 누구예요?”

지난 10월 8일, 키움 히어로즈는 야구계에 두 번의 큰 충격을 선사했다. 시즌 막판 2위 싸움 중인 손혁 감독을 자진사퇴로 포장해 쫓아낸 것도 놀라웠지만, 김창현 퀄리티 컨트롤(QC) 코치의 감독대행 임명은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다. 키움을 잘 모르는 야구 관계자와 야구인들이 오히려 기자에게 ‘김창현 대행이 뭐하던 사람이냐’고 물어봤을 만큼 김 대행은 낯선 존재였다.

프로필만 놓고 보면 확실히 파격 인사가 맞다. 김창현 대행은 1985년생으로 올해 만 35세다. 팀 간판스타 박병호보다 나이는 한 살 위지만 친구로 지내는 사이. 1986년 만 35세에 감독이 된 청보 핀토스 허구연 감독(MBC 해설위원) 이후 역대 최연소 사령탑이다.

100%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채워진 최근 감독 명단과도 거리가 멀다. 대전고와 경희대에서 내야수로 선수 생활을 했지만 프로까지 진출하진 못했다. 현장 지도자 경험도 전혀 없다. 군 복무 뒤 2013년 넥센(현 키움)에 입사해 전력분석원으로 일하다 올해 QC 코치로 임명된 게 프로야구 경력의 전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김창현 대행도 키움 구단 내홍의 희생양 중 하나가 아니냐는 동정론이 나온다. 허민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고래들의 난리 통에 새우 등 터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단지 회사원으로서 시키는 일(감독대행)을 맡았을 뿐인데 밥그릇 사수에 눈먼 야구인들이 애먼 감독대행을 비난한다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키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야구 관계자와 키움 출신 야구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창현 대행은 고래 싸움에 피해를 본 희생양과는 거리가 멀다. 여러 키움 출신 야구인들은 입을 모아 “김창현 대행은 파격이나 깜짝 카드가 아닌 미리 준비해둔 카드”라고 이야기한다. 키움이 진작부터 손 감독을 쳐내고 김 대행으로 가려고 준비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키움 실세는 현장 아닌 전력분석팀…손혁 퇴진과 김창현 임명은 준비된 수순?

8일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손혁 감독(사진=키움)
8일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손혁 감독(사진=키움)

“키움 히어로즈는 다른 구단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움직이는 구단이다. 한 가지 예로 다른 구단에선 전력분석팀이 현장에 도움을 주는 역할에 머물지만, 키움에서는 전력분석팀이 ‘실세’ 역할을 한다.”

키움 출신 야구인은 키움 구단에서 전력분석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실세’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전력분석이 키움의 야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키움은 창단 때부터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영향으로 세이버메트릭스 등 데이터 야구를 중시했다. 허민 이사회 의장, 김치현 단장도 데이터를 중시하는 인물이고 염경엽 전 감독, 장정석 전 감독, 손혁 전 감독까지 최근 키움을 거쳐 간 감독들도 선수 출신 야구인 중에선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에 속했다.

지난해 키움이 포스트시즌에서 승승장구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을 때, 장정석 전 감독은 수시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력분석팀을 치켜세웠다. 당시 다른 구단 데이터 팀 관계자는 “사실 키움 정도 데이터 활용은 지금은 어느 구단이나 하고 있다. 다만 키움처럼 전력분석을 현장 지도자가 띄워주는 구단이 있고, 우리처럼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구단도 있다”고 말했다.

‘실세’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말 그대로 구단의 ‘실세’가 전력분석팀에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키움 전력분석팀장은 이장석 전 대표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구단 사외이사로 임명되기도 했고, 히어로즈가 키움증권과 메인스폰서 계약을 맺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만큼 구단 내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다.

키움 코칭스태프나 선수들도 이런 구단 내 권력 구조를 모르지 않는다. 코칭스태프는 선수단 구성, 엔트리 이동, 라인업 결정에서 전력분석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구단에서 정해놓은 가이드라인 안에서 필요할 때 ‘조언’해주는 소극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

선수들 역시 코칭스태프보다 전력분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키움 출신 야구 관계자는 “선수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코치보다 전력분석팀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1군 매니저에게 찾아가 얘기한다”며 “키움 1군 매니저와 전력분석팀장, 김창현 감독대행이 서로 절친한 관계로 선수단에 끼치는 영향력도 크다”고 전했다.

이미 힘의 균형이 전력분석 쪽으로 넘어간 키움 내부 구조를 생각하면, 김창현 감독대행 임명에 선임 코치들이 ‘순응’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과거 한 키움 코치는 “우리는 이장석의 사람이다. 이장석 구단주와 구단이 원하는 바를 운동장에서 구현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전력분석의 뜻이 키움에서는 곧 구단의 뜻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김창현 감독대행은 일부 야구인들이 말하듯 ‘기껏 35살짜리’ ‘프로야구도 안 해본’ 힘없는 임시대행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키움 코치들과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전력분석원 출신이라 선수들을 통솔하기 어려울 것이다’란 우려가 ‘기우’인 이유다.

키움 1군 코칭스태프(사진=키움)
키움 1군 코칭스태프(사진=키움)

키움 출신 다른 야구인은 “김창현 대행의 원래 역할이 퀄리티 컨트롤 코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퀄리티 컨트롤 코치는 본래 대기업의 ‘품질 관리’ 부서에서 착안한 보직으로, 보통은 구단 전력분석과 현장 사이에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게 ‘통역’과 다리 역할을 한다.

키움 출신 야구인은 “손혁 감독이 허민 의장의 잦은 개입과 과도한 지시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경기가 끝난 뒤 누군가를 통해서 허 의장의 지시를 전달받고, 경기 운영에 대해 지적받곤 했다”고 전했다.

이 야구인은 “팀 성적이 내림세로 접어든 9월 중순 이후에는 경기 후 지시를 하달받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졌고, 강도도 심해졌다. 손 감독이 가까운 야구인들에게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호소하곤 했다”며 “과연 그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을 누가 수행했을 것 같느냐”고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키움 사정에 밝은 야구 관계자는 “손혁 감독이 물러나고 김창현 대행이 사령탑을 맡은 건 키움 구조상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며 “김 대행의 퀄리티 컨트롤 코치 임명, 시즌 중 1군 엔트리 등록, 자진사퇴로 포장한 손 감독 퇴진 등이 일련의 과정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말했다.

키움은 8일 오전 손혁 감독의 사임을 공식화한 뒤 곧바로 김창현 대행에게 감독대행직을 제안했다. 김 대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행직을 수락했다. 이날 정오쯤엔 야구계에 ‘손혁 감독이 오늘 물러날 수도 있다’와 ‘김창현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는다’는 소문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졌다. 다른 구단 코치가 기자에게 전화해 ‘김창현이 누구냐’고 물어봤을 정도.

지방구단 관계자는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보통 감독대행 임명과 수락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기존 코칭스태프도 아닌 전력분석원 출신 코치를 대행으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라면 더욱더 그렇다. 시즌 13경기를 남겨놓고 포스트시즌까지 앞둔 팀이 전력분석원을 감독대행에 임명하는 결정을 즉흥적으로 내릴 수 있나?”라고 물었다.

하지만 키움의 손 감독 퇴진과 감독대행 임명은 8일 오전 중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와중에 손 감독이 선수단을 모아놓고 작별인사를 하고, 감독대행과 인사를 나누는 훈훈한 그림까지 연출했다. 쪽대본으로는 도저히 연출하기 힘든 시나리오다.

물론 키움에선 “손 감독이 갑자기 사임 의사를 밝혀 놀랐다”며 손 감독 퇴진과 대행 임명이 급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후임 감독 임명에 대해선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야구계에는 이미 “김창현 감독대행이 내년 정식 감독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

“키움 선수단의 전력분석 의존도,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

김창현 감독대행. 낯선 역할을 맡았지만 전혀 긴장하거나 당황한 기색이 보이지 않아 놀랐다는 반응이 많다(사진=키움)
김창현 감독대행. 낯선 역할을 맡았지만 전혀 긴장하거나 당황한 기색이 보이지 않아 놀랐다는 반응이 많다(사진=키움)

일부 야구인들의 말처럼 나이나 선수 경력을 갖고 김창현 감독대행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롯데를 우승으로 이끈 강병철 전 감독도 불과 37살에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김응용-김성근-김재박 감독은 42살에 처음 감독이 됐다. 프로에서 화려한 경력이 지도자로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키움의 파격 사령탑 임명을 ‘야구인 기득권’의 눈으로 보면 중요한 핵심을 놓치기 쉽다.

감독대행 체제에서 키움이 오히려 나은 성적을 내지 못하란 법도 없다. 키움처럼 전력분석 의존도가 높고 선수들의 개인기가 뛰어난 팀에선 감과 경험에 의존하는 현장 출신의 필터가 거추장스럽게 여겨질지 모른다.

감독의 ‘통솔력’ ‘장악력’을 얘기하지만, 키움은 원래부터 그런 게 통하는 팀이 아니었다. 구단주가 총애하는 몇몇 스타 플레이어의 파워가 오히려 현장 지도자보다 강한 팀이 키움이다. 전임 감독만 해도 간판선수와 기싸움에서 밀리면서 리더십에 손상을 입었다. 구단 높은 곳에서 현장 지도자보다 전력분석 쪽을 신임한다는 사실이 똑똑히 드러난 만큼, 앞으로 선수단의 전력분석 의존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키움 출신 야구인은 “앞으로 스타 출신이나 이름있는 지도자가 키움에서 감독 혹은 현장 지도자 역할을 맡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다음과 같이 내다봤다.

“키움이 원하는 감독상은 전통적인 의미의 감독이 아닌 현장 관리자에 가깝다. 구단이 추구하는 야구를 그라운드에서 그대로 구현하는 게 앞으로 키움에서 감독의 역할이 될 것이다. 김창현 대행처럼 데이터 전문가를 사령탑에 앉히거나, 구단 지시에 순응하는 지도자를 무늬만 감독으로 앉히는 형태가 될 것이다. 코칭스태프도 구단에서 현역 은퇴한 선수나 외국인 선수, 아마야구 출신 지도자 외에는 키움에서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지도자들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거다. 현장 출신 지도자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질 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이번 손혁 감독 사태가 보여준 실상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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