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불펜의 믿을맨으로 돌아온 김진성(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NC 불펜의 믿을맨으로 돌아온 김진성(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고척]

“무사 3루 상황에 올라갔는데, 3루 주자가 박건우란 걸 경기 끝난 뒤에야 알았어요. 주자가 누군지 신경도 안 썼습니다. 타자에만 집중하자, 구창모 실점을 무조건 막아주자는 생각으로 집중해서 던졌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 특히 경기 후반 주자 있는 상황은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막아내기 쉽지 않다. 이런 클러치 상황이 되면, NC 다이노스 불펜에서 어김없이 올라오는 투수가 있다. 1985년생 베테랑 우완투수 김진성이다.

김진성은 올해 눈부신 가을을 보내는 중이다. 한국시리즈 5경기에 모두 등판해 5.2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나오는 상황도 6회, 7회, 8회로 경기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은 상황에 올라온다. 정규시즌보다 더 빨라진 속구와 포크볼로 두산 타자들을 압도하는 투구를 보여준다. 제일 어려운 상황을 김진성이 막고 나면, 다른 불펜투수들이 좀 더 편안한 가운데 마운드에 올라오는 패턴이다.

23일 고척 5차전에서도 김진성은 놀라운 역투를 선보였다. 5대 0으로 앞선 8회초 무사 3루 상황. 점수 차가 있긴 해도 실점할 경우 자칫 두산의 분위기가 살아날 위험성이 있었다. 여기서 NC 이동욱 감독은 김진성을 선택했다. 김진성은 첫 타자 허경민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았다. 3루 주자가 들어올 수 없는 얕은 플라이. 이어 정수빈을 4구 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호세 페르난데스는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무사 3루 위기에서 한 점도 내주지 않고 두산을 막아낸 김진성이다. 이날 두산에 팀 완봉승을 거둔 NC는 2경기 연속 무실점과 19이닝 연속 무실점을 이어갔고, 시리즈 3승 2패로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뒀다.

김진성은 한국시리즈 5경기에 모두 등판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김진성은 한국시리즈 5경기에 모두 등판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24일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김진성은 당시 상황에 대해 “불펜에서 몸을 풀다 마운드에 올라왔다. 3루 주자가 박건우였다는 걸 경기 끝난 뒤에 알았다. 그만큼 주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았다”며 “오히려 타자에 집중하자, 구창모 실점을 무조건 막아주자는 생각으로 집중해서 던진 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이동욱 감독도 “김진성이 어제도 좋은 투구내용을 보였다”고 칭찬했다. 이 감독은 “김진성의 경기당 투구 수가 많지 않다. 준비하는 과정은 똑같겠지만 투구 수가 많지 않아, 어제도 (구위가)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항상 준비하는 자세 면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투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진성은 ‘5경기 모두 나왔는데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힘든 것) 전혀 없다”고 답했다. 위기 상황에서 잘 던지는 비결에 대해선 “마운드에 올라갈 때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항상 마운드에서 내 루틴대로 집중해서 던지려 한다. 내가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 타자는 더 기가 세질 것 같다. 오히려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면 유리하지 않을까 해서, 마운드에서 즐기고 있다.” 김진성의 말이다.

경기 중후반 승부처에 등판할 때 어떤 느낌인지 묻자 “2014년 마무리를 할 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승계주자가 있으면 몸이 반응한다.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몸 상태가 달라진다. 전투력이 상승하는 느낌”이란 설명이다.

2016년 한국시리즈를 떠올리며 김진성은 “그때는 힘이 없었다. 컨디션도 안 좋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며 “이번 한국시리즈에선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없고, 오히려 힘을 비축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김진성의 2020시즌은 파란만장했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첫날 중도귀국해 파문이 일었다. 수년간 연봉 협상 과정에서 쌓인 설움이 폭발한 탓이다. 이후 2군에서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시즌 개막 후에도 중반까지는 대부분 시간을 2군에서 던졌다. 2군에서 13세이브로 퓨처스리그 전체 세이브 1위에 올랐을 정도.

김진성은 “많이 던졌어도 힘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지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감독님께 체력적으로 괜찮으니까 많이 내보내 달라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또 한국시리즈 활약을 통해 “시즌 초 동료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2군에서 보낸 시간, 김진성은 “후회를 남기지 말자”는 마음으로 훈련하고 공을 던졌다. 그는 “퓨처스에선 내가 고참이라 누가 터치할 사람도 없고 편한 대로 야구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날 보는 후배들도 있고,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며 “퓨처스에 있으면서도 최선을 다했던 게 좋은 성적으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힘든 시간을 통과한 김진성은 다시 NC 불펜에서 가장 믿음직한 투수로 올라섰다. 후반기 39경기에서 평균자책 2.09를 기록했고 9월 이후로는 29경기 평균자책 0.95다. 한국시리즈에서도 5경기 모두 등판해 무실점 행진. 제2의 전성기가 활짝 열렸다.

김진성은 올 시즌 반등 비결에 대해 “첫 번째로는 체력적으로 좋아졌고, 두 번째로는 김수경 코치님, 손민한 코치님으로부터 중심이동에 대해 조언받은 게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투수는 미세한 것 하나에 밸런스가 좌우된다. 겉으로 보기엔 티가 안 날지 몰라도 제게는 크게 느껴진다. 거기서부터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매년 두 자릿수를 허용했던 피홈런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게 대해선 “운이 좋았다 생각한다”면서도 “원래는 볼넷을 줄 바엔 홈런을 맞다는 생각으로 던졌다. 그러다 보니 홈런을 맞았는데, 올해는 타자를 한번 잡아보자는 생각을 하고 던졌다. 그 외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이전 포스트시즌과 올해 NC가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김진성은 “2016년에는 여유가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는 한국시리즈를 하면서 쫓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해볼 수 있겠다, 쉽게 지진 않겠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며 “양의지도 왔고, 워낙 우리 야수들도 잘하기 때문에 올해는 다르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잘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포수 양의지와의 호흡에 대해서도 “편안하다. 투수 입장에선 마운드에서 많은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을 없애주는 게 의지”라며 “워낙 경험이 많다 보니 의지가 유도하는 대로만 잘 따라가면 된다. 투수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제일 큰 장점”이라 칭찬했다.

스프링캠프 중도귀국 등 사연 이후에도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기회를 준 이동욱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김진성은 “시즌 초엔 감독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후반기에 믿고 내보내 주셔서,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면 더 열심히 던지는 길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던졌다. 자주 나가면서 결과가 좋으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좋은 성적이 난다”며 “자주 내보내 주신 감독님께 감사하다. 저보다 더 좋은 투수, 후배들도 많은데 믿고 기용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6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고 첫 우승을 차지하는 게 NC의 목표다. 김진성은 “선수들끼리 오늘 무조건 이기자는 얘기밖에 안 했다. 모든 걸 쏟아부어서 우승하자, 이기자고 다들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NC의 분위기를 전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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