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구단들 “SK니까 가능했던 매각. 지방구단은 고려할 게 너무 많다”

-야구계 “‘현장은 최대한 존중, 프런트는 최대한 혁신적’으로‘ 지향했던 최창원 구단주, 최고의 구단주였다”

-재계 “SK 오너들, 야구단 애정 깊었는데...”

-“올 시즌도 무관중 각오해야. 남겨진 구단들은 2년 연속 위기와 싸워야 한다”

SK 최창원 구단주(사진 맨 왼쪽)가 김광현(사진 맨 오른쪽)과 악수하는 장면. 김광현의 미국행은 최 구단주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앞으로 최창원 같은 구단주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사진=SK)
SK 최창원 구단주(사진 맨 왼쪽)가 김광현(사진 맨 오른쪽)과 악수하는 장면. 김광현의 미국행은 최 구단주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앞으로 최창원 같은 구단주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사진=SK)

[엠스플뉴스]

“SK니까 가능한 매각이다.”

신세계 이마트의 SK 와이번스 야구단 인수 소식을 접한 모 구단 수뇌부는 담담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그룹은 야구단을 정리하고 싶어도 고려할 게 너무 많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SK는 구단 매각을 결정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충족돼 있던 상태”라고 말했다.

다른 구단 수뇌부도 비슷한 얘길 들려줬다. 한 구단 사장은 “프로야구단은 뻔히 적자를 예상하고 한해 수백억 원씩 투자하는 기이한 사업이다. 기업 홍보 도구로도 수명을 다한 지 오래다. 팀 성적이 나쁘거나 선수단 일탈 사건이 터지면 모그룹마저 죄인 신세가 되기 일쑤”라며 “발을 빼고 싶어도 빼지 못하는 다른 대기업에 비해 SK는 상대적으로 발을 빼기 쉬운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다른 구단 수뇌부들 "야구단 매각은 SK니까 가능했던 일. 다른 지방구단은 고려할 게 너무 많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SK(사진=SK)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SK(사진=SK)

이들이 설명하는 ‘SK니까 구단 매각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연고지다. 복수의 구단 수뇌부는 “SK 연고지가 ‘30년’ 이상 대구, 부산, 광주, 대전이었다면 지금처럼 매각을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단언했다.

모 구단 A 사장은 “대구 삼성, 부산 롯데, 광주 KIA, 대전 한화 등은 지역 밀착을 떠나 그 지역의 상징과 역사가 된 지 오래다. 고려할 게 많고, 떠날 때의 파장 역시 엄청나 구단 매각,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SK는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5번째 팀이다. 앞서 삼미, 청보, 태평양, 현대가 인천 연고지 팀으로 활동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다른 지방 구단보단 아무래도 지역민과의 끈끈한 감정이 덜하다. 인천 특성상 다른 지역과 비교해 지역민 스팩트럼도 다양한 편이고. SK가 구단 매각을 계획했을 때, 연고지와 관련해선 다른 지방구단과 비교해 ‘우려할 만한 리스크’가 매우 적었을 것이다.”

다음은 우승 욕망이다. 베테랑 구단 프런트 B 씨는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의 SK는 우승을 맛볼 만큼 맛본 팀이다. 우승에 대한 욕망이나 여한이 컸다면 매각에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SK 왕조’ 시대를 경험한 그룹 경영진 입장에선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 야구단에 애정이 깊었던 오너들

잠실구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최창원 SK 케미칼 부회장(사진 왼쪽부터),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태원 SK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사촌 지간이지만, 경영권 분쟁과는 담을 쌓은 이들로 유명하다(사진=SK)
잠실구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최창원 SK 케미칼 부회장(사진 왼쪽부터),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태원 SK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사촌 지간이지만, 경영권 분쟁과는 담을 쌓은 이들로 유명하다(사진=SK)

마지막은 오너다. SK 구단의 지배회사는 SK텔레콤이다. SK텔레콤이 SK그룹의 주력사임을 고려하면 야구단의 오너는 최태원 SK 회장이다. 하지만, 최 회장은 야구단 구단주를 맡지 않았다.

SK 손길승 명예회장이 구단주를 맡다가 이후 SK텔레콤 출신의 정만원 부회장이 구단주 대행을 맡았다. 2013년부턴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이 구단주로 선임돼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을 해줬다.

최 부회장은 ‘실질적 구단주’로 활동해왔다. 뛰어난 경영실력과 재계에서 대표적 인격자로 꼽히는 최 부회장은 전폭적인 야구단 지원과 함께 김광현의 미국 진출을 승인하는 등 구단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특히나 '현장은 최대한 존중하고, 프런트는 최대한 혁신적으로'를 지향하면서 최 부회장은 '최고의 구단주'로 불렸다.

최 부회장의 형이자 최태원 회장의 사촌 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도 야구단에 애정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K 사정을 잘 아는 재계 인사는 “최신원 회장은 구단 사장, 감독 선임 때 간혹 자신의 뜻을 밝힐 만큼 야구단에 관심이 많았던 분”이라며 “최태원 회장은 최창원-최신원 두 분이 야구단을 챙기는 걸 지켜만 봐왔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지난해 최신원 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가 변했다. 앞의 재계 인사는 “최신원 회장의 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검찰이 SK네트웍스를 비롯한 여러 SK 관련 회사를 들여다봤다. 최 회장 운신의 폭이 눈에 띄게 줄었다. 형의 조사에 최창원 부회장이 매우 안타까워했다”며 “갑작스러운 일들이 터지지 않았다면 야구단 구단 매각이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야구계 "SK 같은 대기업이 야구단에서 손 떼는 상황. 올 시즌도 무관중 각오해야"

신세계는 프로야구의 신세계가 될 수 있을까(사진=엠스플뉴스)
신세계는 프로야구의 신세계가 될 수 있을까(사진=엠스플뉴스)

SK가 야구단을 정리한 건 야구계엔 나쁜 뉴스다. ‘멀쩡한’ 세계적 대기업이 ‘자의’로 야구단을 매물로 내놓은 경우는 없었다. 야구계는 “가능성이 작지만”이란 단서를 달면서도 야구단 매각에 나서는 또 다른 구단이 나올까 염려하고 있다.

수도권 구단 고위 관계자는 “올 시즌도 관중 제한이 유력하다. 경우에 따라선 무관중도 각오해야 한다. 각종 구단 상품 판매도 지난해와 비슷한 '바닥 수준'일 것으로 예상한다. 기업 입장에서 이미 적자가 예정된 프로야구단을 운영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속으로 ‘우리도 SK처럼’하는 야구단 운영 대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 배구 등에서 손을 떼려는 기업이 점점 늘어날 게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이근승, 박동희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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