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야구단 35번 한유섬, 이름과 등 번호 바꾸고 2021시즌 새 출발

-한동민으로 쌓은 수많은 기록과 역사, 별명까지 지우고 한유섬으로 다시 시작

-“아쉽지 않냐고요? 야구 잘하면 더 좋은 기록과 별명 생기겠죠”

-추신수 합류로 숨 막히는 외야 경쟁 “내 할 도리만 잘한다면, 좋은 기회 생길 것”

2018시즌의 재현을 꿈꾸는 한유섬(사진=SK)
2018시즌의 재현을 꿈꾸는 한유섬(사진=SK)

[엠스플뉴스=제주]

“모든 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 이름이 바뀌었고, 등 번호도 바뀌었고, 나중엔 팀 이름까지 바뀌더라고요. 모든 게 바뀌었는데, 제 기록도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SK 와이번스 62번 한동민. 지난해까지 인천 야구팬들이 소리높여 외친 이름이다. 외국인 타자를 연상케 하는 거구에 공을 둘로 쪼갤 듯한 파워, 저돌적이고 호방한 플레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 경기 4홈런, 플레이오프 5차전 끝내기 홈런, 한국시리즈 6차전 결승 홈런으로 2018년 팀을 우승까지 이끌었다. 역대 대졸 타자 최초 40홈런과 SK 단일시즌 최다타점 기록도 역사에 아로새겼다.

하지만 2021시즌, SK 62번 한동민은 더는 없다. 우선 구단 이름이 바뀌었다. 신세계 이마트는 23일 SK 와이번스 구단 지분 100%(보통주식 100만 주)를 1000억 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가칭 ‘신세계 일렉트로스’로 KBO 회원 가입 신청도 완료했다. 이로써 21년 역사의 SK 와이번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름도 바뀌었다. 한동민에서 ‘한유섬(韓萸暹)’으로 이름을 바꿨다. ‘수유 유(萸)’자에 ‘햇살 치밀 섬(暹)’자를 써서 한유섬이라 한다. 25일 서귀포 강창학야구장에서 취재진과 만난 한유섬은 “작명소에 문의해서 받은 이름이다. 뜻을 많이들 물어보는데 심플하다. ‘수유나무 위에 떠 있는 해’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최근 거듭된 부상과 부진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개명의 동기가 됐다. 2018년 40홈런과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2019시즌엔 사타구니 부상과 저 반발 공인구 여파로 부진했다. 지난해에도 한창 맹타를 휘두르다 정강이 미세 골절로 상승세가 꺾였고, 9월엔 좌측 엄지손가락 척골 인대 파열로 일찌감치 시즌을 마쳤다.

한유섬은 “너무 자주 아프다 보니 야구를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좀 나갈 만 하면 다치고, 조금 하다 보면 또 다치는 게 반복되다 보니 심적으로 지치더라” “지난 시즌 끝난 뒤엔 정말 힘들었다. 필드에서 야구하는 날보다 TV로 보는 날이 많아지니까 심적으로 힘들더라. 그래서 큰 결심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다만 손아섭처럼 엄청난 개명 효과를 바라고 이름을 바꾼 건 아니라고 했다. 한유섬은 “뭔가 결과물을 내고자 이름을 바꾼 건 아니다. 야구도 야구지만, 야구 인생이 끝나면 선수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야 하기에 멀리 보고 결정한 것”이라며 “무슨 크리스마스 때 산타클로스에게 소원을 빌듯 ‘이름 바꿔서 야구 잘하게 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바꾼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직은 적응하는 중입니다. 선수들은 거의 다 바뀐 이름을 불러줘요. ‘동민아’하고 불렀다가 바로 정정하기도 하고요. 저도 가끔 헷갈립니다. 뒤에서 ‘유섬아’ 하면 안 돌아보다가 ‘동민아’ 하면 돌아볼 때도 있어요. 그래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니폼, 등번호, 이름(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니폼, 등번호, 이름(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또 하나의 변화는 등 번호 교체다. 한유섬은 SK 입단 때부터 달았던 62번을 내려놓고 올해부터 35번을 사용한다. 그는 “프로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달고 싶은 번호를 달기가 어렵다. 남는 번호 중에 고른 게 62번인데, 좋은 선배님(박재홍 해설위원) 번호를 받아서 좋은 결과도 냈지만, 마음 한편에는 부담과 무거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 등 번호 35번은 경성대학교 시절 1학년부터 3학년 때까지 달았던 번호다. 한유섬은 “대학 때 35번을 달고 잘했던 기억이 있다”며 “2~3년 전부터 등 번호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 계기가 돼서 바꾸게 됐다”고 했다. 현역 시절 35번을 달았던 이진영 타격코치가 한유섬의 등 번호 교체를 반겼다고.

SK 62번 한동민으로 남긴 수많은 기록과 역사가 아쉽진 않을까. 한유섬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지만, 한동민으로 해놓은 업적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고민도 했다”면서도 “나중에 바뀐 이름으로 잘해서 좋은 결과를 내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동미니칸’ ‘갓동민’ 등의 별명이 사라지는 데 대해서도 “야구를 잘하면 더 좋은 별명이 생길 거라고 믿는다”며 미소를 보였다.

“대학 시절 좋아했던 추신수 선배…내 할 도리만 잘한다면 기회 찾아올 것”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한유섬(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한유섬(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이제 2021시즌 한유섬은 새 이름과 새 등번호, 새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다. 최근 2년간 그를 괴롭힌 부상에선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 한유섬은 “캠프를 일찍 시작한 감이 있어서 조금 피로하긴 하지만, 아픈 건 없다”며 “캠프 때는 야구가 잘 되는 건 둘째고 몸이 중요한데, 현재 몸 상태는 괜찮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패턴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지난 시즌 한유섬은 정강이 부상 전까지만 해도 페이스가 나쁘지 않았다. 5월 한 달간 타율 0.317에 6홈런 장타율 0.667로 2018시즌의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한유섬도 “비록 팀은 연패했지만, 부상 전까지 개인 페이스는 나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오랜 약점인 좌완투수 상대로도 타율 0.290에 4홈런 장타율 0.710으로 우투수 상대보다 오히려 강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강이 부상으로 인한 2달 공백, 손가락 부상에 따른 시즌 아웃이 모든 걸 앗아갔다. 한유섬은 “항상 보면 좋을 때 너무 잘하려다 보니 ‘업’돼서 다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안 좋을 때는 아프지도 않는다”며 “좋을 때일수록 스스로‘컴다운’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슈퍼스타 추신수의 합류도 같은 코너 외야수 한유섬에게는 정신이 번쩍 드는 소식이다. 한유섬은 “처음 추신수 선배가 우리 팀에 온다는 얘길 듣고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복잡한 마음을 털어놨다.

“제가 신수형을 되게 좋아했어요. 대학교 3학년 때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사직야구장에서 훈련했는데, 윤영환 감독님께 찾아가서 ‘훈련 보조를 하고 싶다’고 자청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4학년 올라가는 중요한 시기인데 훈련을 해야지 어딜 가느냐’고 말리셨지만, 전 훈련보다도 더 얻을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두 차례 훈련 보조로 참여했습니다.”

한유섬은 “추신수 선배를 직접 보니, 정말 다르더라. 외야에서 공을 주우며 신수 선배 타격하는 걸 봤는데 아름다웠다. 과연 나도 저렇게 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몸 관리하는 모습도 달랐다. 라커 안에서도 혼자 계속 스트레칭하고 보강 운동을 하더라. 신수형은 기억 못 하겠지만, 얼리 배팅 끝난 뒤 사인도 받으러 갔었다.”

이제는 롤모델이자 우상이 아닌 팀 동료이자 경쟁자가 됐다. 한유섬은 “신수형이 오면 좋은 점이 많을 거다. 좋은 시너지 효과를 팀원들에게 골고루 줄 것”이라며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췄다. 이어 “신수형이 오면 붙박이 아니겠나. 경쟁해야 한다. 거기에 동요하기보단, 내가 할 도리만 잘한다면 좋은 기회가 오고 좋은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 다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유섬의 올 시즌 목표는 2018시즌 한동민의 재현이다. 한유섬은 “2017, 2018년도에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만큼 잘하고 싶다”며 “재활로 운동을 일찍 시작했고 고생했는데, 그만큼 보람을 찾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신세계 35번 한유섬의 야구 인생, 그 새로운 챕터가 막 시작됐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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