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21일 시범경기 첫날 LG에 3대 2 역전승

-4사구 8개 얻어내고 삼진은 3개만 기록…워싱턴 코치가 주문한 ‘생산적인 타석’ 만들기 성공

-장타자, 강타자 없는 한화…자기만의 존 설정하고 투수 물고 늘어지는 전략 수립

-타자들에게 자신감 불어넣고 출루 중요성 강조…한화 타선, 만만히 보다간 당한다

끝내기 홈런을 날린 박정현(사진=한화)
끝내기 홈런을 날린 박정현(사진=한화)

[엠스플뉴스]

3월 21일 대전 시범경기를 앞두고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상대 팀 LG 라인업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베로 감독은 지난해 타율 3할에 10홈런을 때린 타자 오지환이 9번타자로 배치된 걸 지적하며 “LG 타선의 뎁스가 좋다. 타격 면에서 완성에 가까운 클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오지환은 지난 시즌 14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0에 10홈런 2루타 41개 OPS 0.823으로 활약했다. 조정득점창출력(wRC+) 119.9에 WAR 4.43승의 성적표는 한화 타선의 그 어떤 선수보다 뛰어났다(한화 1위 최재훈 WAR 2.79승). 오지환보다 홈런을 많이 때린 타자도 12홈런의 노시환 하나뿐이다.

지난 시즌 오지환보다 잘 친 타자가 1명도 없다는 게 ‘수베로호’ 한화의 객관적 현실이다. 한화는 올겨울 외국인 타자 라이온 힐리 외엔 별다른 외부 영입이 없었다. 커리어 있는 베테랑 타자들이 팀을 떠나고, 대전보다는 서산이 익숙한 젊은 타자들만 남았다. 전문가들은 지난 몇 년간 하위권에 그친 한화의 타격지표에 올해도 변화가 없을 거라고 예상한다.

상대 팀 9번타자보다 잘 치는 타자 하나 없는 타선으로 이길 방법이 있을까? 타격은 150km/h로 날아오는 공을 0.4초 안에 강하게 때리는 공격적 행위다. 좋은 타격은 자신감과 강한 확신에서 나온다. 그래서 한화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의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고 긍정적인 생각을 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코칭 스태프부터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단단히 무장했다. 조니 워싱턴 타격코치는 ‘한화 타선이 약하다’는 질문을 받고는 “내 생각은 다르다. 잠재력 있는 선수가 많아서 성장이 기대된다. 캠프 기간 한 팀으로서 좋은 에너지와 열정을 볼 수 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수베로 감독도 노시환, 하주석, 최인호 등의 재능을 칭찬하며 좋은 점에 주목했다. 하주석에 대해선 “축복받은 재능을 지녔다”는 표현까지 썼다.

노시환은 “코치님은 선수들이 항상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믿음을 주고 격려해 주신다. 기술적인 점은 물론 멘탈에서도 도움이 된다. 어떤 방향성을 갖고 타격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타석에 들어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간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지 않았나 돌아보고 멘탈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 코치는 노시환을 향해 “넌 슈퍼스타로 성장할 선수”라고 추켜세운 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고 크게 될 수 있는데, 작년같은 성적에 그쳤다는 게 너무 아쉽다. 여기 있는 동안 널 비롯한 한화 타자들의 타격 지표를 상위권으로 올려놓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화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의 단점보다 장점에 더 주목한다. 타율은 낮아도 출루능력은 수준급인 강경학은 “그전까지는 출루율에 대해 인정을 안 해주는 분위기였다. 타율이 나쁘면 약한 타자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며 “감독, 코치님이 출루가 내 장점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내가 그렇게 나쁜 타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존을 설정해, 확신을 갖고 강하게 스윙하라” 워싱턴 코치의 주문

유쾌한 조니 워싱턴 코치(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유쾌한 조니 워싱턴 코치(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최근 한화 팬 사이에서는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가 투수들과 나눈 대화를 담은 영상이 큰 화제가 됐다. 영상에서 로사도 코치는 “올 시즌 예상 순위를 물었을 때 높은 순위를 말해준 당신들이 자랑스럽다. 타자들에게 물었을 때는 10위 예상이 많아서 깜짝 놀랐는데, 우리는 꼴찌 하려고 야구하는 게 아니다. 10위 같은 나약한 생각을 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했다.

영상을 접한 한화 팬들은 타자들이 10위를 예상했다는 데 실망감을 드러냈지만(한화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는 타자 중에 서너 명 정도만 ‘객관적으로 보면 10위’라고 말했다고), 사실 영상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다.

로사도 코치는 상위권을 예상한 투수들을 칭찬하며 “볼넷을 줄이고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타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타자라면 볼넷을 하나라도 더 골라내고, 투수가 공 하나 더 던지게 하면 된다. 현재 주어진 선수단 전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이자, 워싱턴 코치가 강조하는 ‘퀄리티 있는 타석’을 만드는 길이다.

한화 코칭스태프가 세운 전략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단순하다.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해 원하는 공이 오면 망설임 없이 강한 타구를 생산하라는 메시지다. 수베로 감독은 “스트라이크존 전체를 커버하려는 생각보다는, 내 장점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타격 존을 정해야 한다. 존을 분할해서 내가 커버할 영역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볼카운트 초반에는 원하는 코스가 아닌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여도 흘려보낼 수 있다. 대신 노리는 코스와 구종이 들어오면 지체말고 강한 스윙을 해 타구를 멀리 보내라고 강조한다.” 수베로 감독의 말이다. 워싱턴 코치도 “강하게 치는 걸 목표로 스트라이크존을 잘 컨트롤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말했다.

쉽게 아웃당하지 않고 투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타격도 중요하다. 워싱턴 코치는 “아웃이 되더라도 퀄리티 있는 타석을 만들어야 한다. 투수가 아웃카운트를 어렵게 잡게끔 괴롭히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한화는 자체 청백전과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2낫싱 상황, 2볼 상황 등 다양한 상황을 정해놓고 훈련을 진행했다. 타자에게 2낫싱 상황을 준 뒤 계속 볼을 골라내고 파울을 만들며 볼카운트 싸움을 길게 끌고 가도록 단련시켰다. 수베로 감독은 “연습경기에서 노시환이 한 경기 2볼넷을 골라냈는데, 작년에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선수들이 코칭스태프의 메시지를 생각하며 야구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뿌듯해했다.

“3할타자보다 출루율 4할 타자 택한다” 출루, 출루, 출루 노래하는 한화

올겨울 부쩍 성장한 노시환(사진=한화)
올겨울 부쩍 성장한 노시환(사진=한화)

출루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한화의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이제 출루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화 코칭스태프는 그야말로 선수들의 귀에 못이 박이고 피가 날 때까지 강박적일 만큼 출루를 강조한다. 막연하게 ‘출루가 중요하다’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 출루를 목적으로 타석에 나서도록 단단히 중무장한다.

수베로 감독은 다소 극단적인 예까지 사용했다. A라는 선수가 100타석에 볼넷 없이 30안타를 기록했고, B라는 선수는 100타석에 안타 없이 볼넷 40개를 얻어냈다면 수베로 감독은 B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수베로 감독은 “타율이 0.000일지 몰라도 출루율은 0.400인 선수를 택할 것”이라 힘줘 말했다.

코칭스태프가 이렇게 나오면 출루를 바라보는 타자들의 생각도 달라진다. 정은원은 “현대야구에서 출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타율보다 출루율이 많은 인정을 받는다. 안타든 볼넷이든 출루해야 득점할 기회가 생긴다”며 “지금은 모든 타자가 출루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타순에서든 출루를 첫 번째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만의 존을 설정하고, 강한 타구를 만들고, 투수를 괴롭히고, 볼넷을 골라 나가는 한화의 전략은 첫 공식전인 21일 LG전에서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이날 한화는 케이시 켈리를 상대로 4회 2아웃까지 득점은 못 올렸지만, 3안타 볼넷 3개를 얻어내며 공 69개를 던지게 했다.

0대 2로 끌려가던 8회말엔 안타 3개와 폭투로 동점을 만들었고, 9회말에 나온 박정현의 끝내기 홈런으로 수베로 감독에게 첫 공식경기 승리를 안겼다. 이날 한화 타자들이 얻어낸 4사구는 총 8개(볼넷 6개). 오지환이 9번 치는 LG 타선이 삼진 17개를 당할 동안, 한화 타자들은 삼진 3개만 기록하며 수베로 감독이 원하는 ‘퀄리티 있는 타격’을 보여줬다.

수베로 감독은 경기 후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동점에 결국 역전까지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수들의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승리로 이어졌다”고 칭찬했다. 단 1경기이고 어디까지나 시범경기일 뿐이지만, 한화 타선을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이유를 보여준 승리였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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