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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판 브브걸, 역주행 유망주의 시대 [배지헌의 브러시백]

  • 기사입력 2021.05.16 09:55:06   |   최종수정 2021.05.16 10: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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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1년 차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유튜브 동영상 계기로 최고 인기 그룹 올라서

-야구장에도 ‘역주행’ 유망주 있다…데뷔 9년 만에 주전 도약한 두산 김인태

-김인태 입단 동기 장승현, 윤호솔, 김종수, 장운호 등도 올해 1군 선수 도약

-김대유, 김병희, 김성민, 김태진 등 수많은 역주행 유망주 사례

 

올 시즌 두산의 주전 멤버로 올라선 김인태, 양석환(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올 시즌 두산의 주전 멤버로 올라선 김인태, 양석환(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엠스플뉴스]

 

처음엔 유튜브에 올라온 한 영상이 시작이었다. 올초 한 유튜버가 올린 ‘브레이브걸스_롤린_댓글 모음’ 영상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게시 열흘 만에 조회 수 600만을 넘긴(현재 1900만 돌파) 영상은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군부대 공연 장면에 열광하는 군인들의 모습과 ‘군 생활을 이 곡 하나로 버텼다’ ‘이거 틀어주면 전쟁 이김’ 등의 댓글을 재치있게 이어붙여 큰 화제가 됐다. 

 

발매 후 4년간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으로 남아있던 ‘롤린’은 역주행 보름여 만에 각종 음원 순위 1위로 올라섰다. 방송차트에서도 아이유와 블랙핑크 로제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10년 무명 세월을 견디다 못해 해체를 준비할 때 기적처럼 찾아온 역주행. 만년 유망주였던 브브걸은 이제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걸그룹이 됐다. 4월 4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에선 시구까지 했다.

 

만년 유망주였던 김인태, 입단 9년 만에 찾아온 1군 주전 기회

 

데뷔 11년만에 역주행에 성공한 브레이브걸스(사진=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데뷔 11년만에 역주행에 성공한 브레이브걸스(사진=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꼬북좌’가 시구한 그 날, 1루 쪽 두산 베어스 더그아웃에는 외야수 김인태도 있었다. 천안북일고 시절 마운드에선 좌완 에이스로, 타석에선 중심타자로 고교 무대를 주름잡았던 유망주 출신이다. 유명 작곡가 용감한 형제가 만든 걸그룹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브브걸의 데뷔 초처럼, 김인태도 2013 신인 1라운드 3순위 지명으로 많은 기대 속에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두산 1군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경찰야구단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입단 4년 만인 2016년에야 겨우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이후 주로 이천 2군에 머물다 가뭄에 콩 나듯 잠실 땅을 밟는 생활이 반복됐다. 어쩌다 잠실에 가도 대수비나 대타 역할에 그쳤다.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자꾸 초라해졌다. 

 

1994년생으로 어느덧 20대 후반이 된 올 시즌. 정수빈이 FA 시장에 나가면서 기회가 생기나 했지만 두산 잔류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사라졌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았다. 김인태는 캠프 당시 인터뷰에서 “주전 선수 한 명이 빠진다고 내 자리가 무조건 생긴다고 생각 안 한다. 결국, 내가 잘해야 어떤 역할이든 맡을 수 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 더 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태는 “해마다 기회를 많이 얻었는데 내가 실력이 부족해 기회를 못 살렸다. 지난해보다 더 좋은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다. 타격과 수비를 모두 신경 써야 하는데 수비에 ‘6’ 정도로 더 비중을 두고 싶다”고 다짐했다. 무명 세월 속에도 매년 군부대 공연을 계속한 브브걸처럼, 주위 환경과 들려오는 얘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노력을 계속했다. 

 

브브걸이 시구한 개막전에서 김인태는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기회가 왔다. 주전 중견수 정수빈이 등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오랜만에 선발 출전한 4월 22일 롯데전에서 멀티히트를 날렸고 조금씩 출전 기회가 늘어났다. 30일 SSG전에선 3안타 경기를 펼쳤다. 나왔다 하면 볼넷과 안타로 두 차례 이상 출루를 이어갔다. 

 

공을 오래 보고 기다리며 자기 존에 들어온 공을 노리는 특유의 타격 스타일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다. 5월 16일 현재 김인태는 30경기에서 0.303의 좋은 타율을 기록 중이다. 0.426의 출루율은 박건우에 이은 팀 내 2위(50타석 이상), 1.14의 볼넷/삼진 비율도 호세 페르난데스와 김재호에 이은 팀 내 3위다. 조정득점창출력(wRC+)도 129.3으로 팀 내 타자 가운데 김재환-박건우-호세 페르난데스-허경민에 이은 5위에 올라 있다. 이젠 두산 팬들이 ‘매일, 매일, 매일’ ‘너무 보고 싶은’ 선수가 됐다. 

 

13일 정수빈이 엔트리에 복귀했지만 김태형 감독은 김인태를 계속 주전으로 기용할 계획이다. 김 감독은 “정수빈의 초반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다. 김인태가 타격에서 워낙 잘 맞고 있고, 수비도 잘하는 편이라 당분간은 김인태가 계속 나가줘야 한다”고 했다. 입단 9년 만에 찾아온 ‘역주행’ 기회다. 

 

4월 4일 시구자로 잠실을 찾은 브레이브걸스(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4월 4일 시구자로 잠실을 찾은 브레이브걸스(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김인태 외에도 역주행 찬스를 잡은 선수가 있다. 김인태와 같은 해 4라운드 6순위로 두산에 입단한 포수 장승현도 올 시즌 1군 안방마님으로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 수비형 포수로 이름을 날린 장광호 코치의 아들답게 안정적인 포수 수비가 장점이다. 

 

도루저지율 46.2%로 SSG 이흥련(60%)에 이은 리그 2위, 상대 도루 시도율 4.0%로 좀처럼 상대가 뛸 틈을 주지 않는다. 약점이라던 타격도 타율 0.292에 출루율 0.363으로 주전 포수 박세혁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 김태형 감독도 “경기 경험을 잘 쌓는 과정이다. 공격적으로 타격하면서 안타도 나오고 있다. 처음 우려보다 훨씬 더 잘해주고 있어 기쁘다”고 칭찬했다.

 

김인태의 북일고 동기 윤호솔도 역주행 조짐이 보인다. 북일고 시절 전국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던 윤호솔은 2013 신생팀 우선지명으로 계약금 6억 원을 받고 NC 다이노스에 입단했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지난해까지 7년간 1군 등판 경기는 단 11경기. 통산 평균자책 13.15로 언제 방출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부임한 올해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140km/h 후반대 강속구를 뿌리며 눈도장을 찍었고,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프로 입단 9년 만의 첫 홀드를 거뒀고, 첫 승리를 따냈다. 16일 현재 성적은 14경기 13.1이닝 평균자책 3.38로 수준급이다. “자신 있게 투구하고,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의 주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효과다. 

 

윤호솔 외에 주전 외야수 장운호(6라운드), 불펜 핵심 멤버 김종수(8라운드)도 2013년 한화에 입단해 오랜 무명기를 거친 선수들. 또 윤대경도 같은 해 7라운드 지명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던 선수다. 입단 당시 야수였던 윤대경은 지금 한화에서 필승조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브브걸처럼 10년까지는 아니지만 9년간의 시련과 인내, 시행착오와 노력이 조금씩 결실로 돌아오는 중이다. 굳게 닫힌 1군 벽도 어느새 무너져 버렸다. 

 

데뷔 12년 만에 첫 승 거둔 김대유, 입단 8년 만에 빛을 본 김병희

 

올해 LG 필승조로 발돋움한 김대유(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올해 LG 필승조로 발돋움한 김대유(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올해 ‘역주행’에 성공한 선수들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LG 트윈스 좌완 김대유는 2010년 넥센(현 키움) 3라운드 18순위로 입단한 프로 12년 차 선수다. 프로 입단 이후 첫 11년간 1군 기록은 39경기 1패 평균자책 6.11이 전부였다. 2019년 KT에서 21경기 평균자책 2.33으로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LG로 이적한 지난 시즌 3경기 평균자책 23.14로 무너졌다. 

 

방출 위기까지 겪은 끝에 어렵게 살아남은 올해, 김대유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시즌을 준비했다. 투수코치들과 상의해 팔 각도를 원래대로 낮은 스리쿼터로 조정했고, 크로스 스탠스 형태로 투구폼을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 140km/h 안팎의 구속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올 시즌 16경기에서 10홀드(2위)에 평균자책 2.40을 기록하며 LG 필승조로 거듭났다. 14일 삼성전에선 입단 12년 만에 첫 승리도 거뒀다. 매일 잠실 마운드에서 ‘Rolling’을 거듭하는 중이다. 

 

그뿐인가. 2014 신인드래프트에서 KT에 1라운드 후 특별지명으로 1억 3천만 원을 받고 입단한 김병희는 창단식 때 유니폼 모델로 나설 정도로 큰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부상과 여러 불운이 겹쳐 입단 첫 7년간 33경기에서 타율 0.143에 그쳤고 나이는 서른을 훌쩍 넘겼다.

 

주전 내야수 황재균의 부상으로 4월 25일 1군 콜업 기회가 왔다. 이날 9회말 공격에서 입단 8년 만의 첫 끝내기 안타로 팀을 구했다. 이틀 뒤엔 6타석 1안타 4볼넷으로 5출루 경기를 펼쳤다. 다음날엔 홈런 포함 멀티히트를 날렸다. 14경기 타율 0.389에 장타율이 0.833다. 7안타 가운데 2개가 2루타, 2개가 홈런이다. 

 

청룡기 MVP 출신 키움 김성민도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올해 불펜 에이스로 도약했다. 아닌 척 모르는 척 고민하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팔 각도를 사이드암에 가깝게 내리는 변신을 시도했고, 구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올해 16경기에서 1승 5홀드 평균자책 1.42에 WAR이 0.85승으로 팀 내 1위다. 에릭 요키시(0.76승)도 최원태(0.48승)도 김성민의 승리 기여도에 미치지 못한다. 홍원기 감독의 불펜 운영에서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투수가 됐다.

 

KIA 내야수 김태진도 올 시즌 팀 간판타자로 도약했다. NC 시절 공·수·주 가능성은 인정받았지만 확실한 자기 자리가 없었다. 지난해 트레이드로 KIA 이적한 뒤 3루수로 많은 기회를 받았고, 올해 타격 포텐이 완전히 터졌다. 4월 30일 KT전부터 5월 15일 NC전까지 15경기 연속 안타 행진. 시즌 타율 0.400에 wRC+는 136.1로 팀 내 1위다. 강렬한 눈빛과 근성 있는 플레이가 맷 윌리엄스 감독의 선발 오더에 자꾸만 맴돌게 한다. 입단 이후 무려 8년이 걸렸다.

 

모두가 강백호-이정후 될 순 없기에…절대 포기하지 마라

 

시련을 이기고 투수로 돌아온 나균안(사진=롯데) 시련을 이기고 투수로 돌아온 나균안(사진=롯데)

 

날고 기는 재주꾼들이 모인 연예계처럼, 프로야구도 한국에서 제일 야구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무대다. 하지만 모든 가수가 블랙핑크처럼 나오자마자 대박나는 법이 없듯 모든 선수가 강백호, 이정후처럼 처음부터 바로 잘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은 브브걸처럼 오랜 무명기간과 2군 생활을 거치며 단단해지는 기간을 거친다.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일찍 기회가 오기도 하지만, 2군밥만 8년 먹은 김인태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강백호가 천재다운 초대형 홈런을 날린 15일 사직 경기 롯데 선발 나균안은 원래 포수 유망주였다. 용마고를 졸업하고 2017 신인 2차 1라운드로 입단할 당시만 해도 강민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전포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1군의 벽이 높았다. 데뷔 이후 온갖 고난과 설움과 모욕의 시간을 지나 지난해 투수로 변신했고, 말로는 다 표현못할 노력 끝에 마침내 1군 마운드에 섰다.

 

생애 첫 1군 선발등판에도 긴장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오승환 같은 표정으로 차분하게 140km/h 초·중반대 속구를 스트라이크로 꽂아 넣었다. 투심, 커브, 스플리터 등 다양한 변화구도 골고루 스트라이크로 구사했다. 함께 상동에서 구슬땀을 흘린 포수 지시완과 찰떡 호흡을 선보이며 5이닝 무실점으로 KT 타선을 잠재웠다. 비록 불펜진의 난조로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투수 나균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상적인 경기였다. 

 

브레이브걸스가 그토록 바랐던 기회는 숙소 생활을 정리하고 해체를 준비하던 바로 그 순간에 찾아왔다. 관객 없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뱃길로 10시간 걸리는 외딴섬까지 찾아가 공연을 펼친 노력이 마침내 기적 같은 역주행으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알고리즘 덕분이라고, 운이 좋아서라고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멤버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해피엔딩은 불가능했다. 

 

야구장의 역주행 스토리도 다르지 않다. 이천에서 기약 없는 2군 생활을 견디며 흘린 김인태의 땀방울이,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밤새 배트를 놀린 장승현의 노력이, 감독이 외면해도 더그아웃에서 스윙 연습을 계속한 지시완의 간절함이 마침내 응답을 받았다. 그러니 야구장의 수많은 ‘브브걸’들도 포기하지 말고 Rollin’ rollin’ rollin’. 끝까지 용감하게 Rollin’ rollin’ rollin’ 하기를. 언젠가 찾아올 역주행의 날을 기다리며.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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