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체육관광부가 야구·축구·남자농구·여자농구·배구 등 프로스포츠 선수계약서 5종을 도입했다. 문체부는 이전보다 진일보한 제도 개선이라고 강조하지만, 한편에선 독소조항이 그대로고 전혀 진보한 게 없다고 비판한다.

문화체육관광부(사진=엠스플뉴스)
문화체육관광부(사진=엠스플뉴스)

문화체육관광부가 프로 선수 권익 보호와 공정한 계약문화를 위한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구단 측 의무조항을 강화하고 트레이드 시 선수와 협의를 거치게 하는 조항, 임의탈퇴를 ‘임의해지’로 변경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한편에선 과거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 판결에서 인정된 내용을 재확인한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체부는 6월 3일 프로스포츠계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고 공정한 계약문화를 만들기 위해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문체부는 “기존 계약서는 선수의 의무 조항은 자세한 반면, 구단의 의무 조항은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표준계약서에는 폭력 및 성폭력 방지, 선수 인권 존중 및 차별 금지, 품위유지, 부정행위 금지 등 계약 양 당사자 간의 균형 있는 의무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트레이드 시 선수와 협의, 임의탈퇴 제도 개선, 계약해지 사유-절차 규정

KBO 건물 (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KBO 건물 (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새 표준계약서에선 선수 트레이드 시 선수와 사전 협의하도록 한 대목이 눈에 띈다. 그동안 프로스포츠 구단은 선수 의사에 관계없이 선수 교환(트레이드)을 진행했으나, 표준계약서에서는 선수와의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또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선수 일방에게 더 불리한 조건으로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도록 했다. 교환 계약 이후에는 선수에게 사유를 상세히 설명하도록 하고, 선수가 요청하는 경우 3일 이상의 준비 기간을 부여하도록 했다.

논란이 됐던 임의탈퇴 규정도 바뀐다. 그간 임의탈퇴 선수는 구단 동의가 없으면 리그 내 타 구단 이적이 불가능해, 구단들이 임의탈퇴를 선수 징계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문체부는 “임의탈퇴가 본래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부정적 어감을 주는 용어를 ‘임의해지’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축구의 경우 아예 임의탈퇴 제도를 폐지한다.

임의해지 선수가 되면 원 구단이 해제하지 않는 한 영구적으로 임의해지 선수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의해지 공시 후 3년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해제되도록 했다. 군 복무 기간, 해외·실업 기간은 산입하지 않는다. 또한 선수의 ‘서면’에 의한 자발적 신청을 전제로 임의해지 절차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구단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방지하기 위해 계약해지 관련 사유와 절차도 규정했다. 웨이버, 임의해지 등 선수 신분 관련 중요한 사항이 기존에는 규약·규정에만 언급되고 계약서에는 명시되지 않았다.

이번 표준계약서에서는 선수가 알기 쉽도록 선수 신분 관련 절차를 계약서에 규정하도록 했다. 또한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방지하기 위해 계약해지 관련 사유와 절차를 규정했다.

인격 표지권(퍼블리시티권) 인정 범위와 기간도 명확하게 정리했다. 구단이 갖는 선수의 퍼블리시티권은 계약 기간 동안 선수 활동(경기 및 훈련 참여, 공식행사 참여, 팬서비스 활동, 대언론 활동, 홍보 활동, 사회 공헌 활동)에 한정한다.

계약 기간 종료 후에는 1년간 이미 생산된 상품의 판매, 자료 보관(아카이빙) 목적인 경우에만 선수와의 협의를 거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반대로 선수가 선수 활동과 관련이 없는 광고, 방송, 강연 등의 활동을 할 경우 구단의 서면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항도 넣었다.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 사건은 트레이드, 임의탈퇴 등 불공정한 선수 계약의 문제에 주의를 환기했다(사진=엠스플뉴스)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 사건은 트레이드, 임의탈퇴 등 불공정한 선수 계약의 문제에 주의를 환기했다(사진=엠스플뉴스)

문체부는 “그동안 프로스포츠계에서 임의탈퇴 제도 논란, 선수협회의 불공정약관 심사청구 등 프로스포츠계 불공정한 계약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하여 왔다” “지난해 12월 스포츠산업 진흥법을 개정해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한국프로스포츠협회, 법무법인 세종과 함께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 도입을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종목별 연맹·구단·선수 대상 간담회 총 15회, 공개토론회 등의 현장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관계자는 “표준계약서 도입을 앞두고 KBO와 만나 선수 측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과정을 거쳤다. 다만 요구한 모든 내용이 반영되지는 않았고 수정된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는 야구, 축구, 남자농구, 여자농구, 배구 종목별 5개 선수계약서로 이루어져 있다. 문체부는 해당 표준계약서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해설서를 함께 마련해 문체부,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종목별 연맹 누리집 등을 통해 배포할 예정이다.

표준계약서가 현장에 실질적으로 적용되도록 하고 관계자들의 계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교육과 홍보 활동도 이어갈 계획이다. 또 프로스포츠 보조금 성과 평가 항목에 ‘공정 환경 조성 노력’을 추가해 표준계약서 활용 현황을 점검해나갈 방침이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이번 표준계약서 제정은 프로스포츠 분야에서 바람직한 계약서와 계약문화에 대해 정립해나가는 첫걸음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선수 권익 보호와 공정한 계약의 원칙 아래에 현장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법적 검토를 거쳐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다”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앞으로도 선수 권익을 보호하고 프로스포츠계의 공정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김선웅 전 선수협 사무총장 “표준계약서가 진일보? 전혀 아니올시다”

선수협 사무총장을 지낸 김선웅 변호사(사진=엠스플뉴스)
선수협 사무총장을 지낸 김선웅 변호사(사진=엠스플뉴스)

한편 이번 표준계약서 발표와 관련해 일각에선 “이미 20년 전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 명령한 내용을 재확인하거나 법원판결에서 인정되어 KBO 규약에 반영된 내용”이 대부분이란 비판도 나온다.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선웅 변호사(김선웅 법률사무소)는 3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오늘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선수권익 보호를 위한 표준프로선수계약서가 진일보한 내용일까? 전혀 아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오히려 현재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퍼블리시티권을 더 제한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늘어났으며, 방송 출연 등 대외활동도 계약 기간 내외를 구분하지 않고 구단의 사전서면동의가 필요하다고 하여 과거 공정위에서 계약 기간 외에는 구단의 사전동의가 필요 없다는 결정을 뒤집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트레이드 조항에도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고 하는데 20년전 공정위 시정명령에는 사전에 합의하도록 되어있으며, 현재 KBO규약에도 사전에 구단과 선수가 협의하게 되어있다”며 이미 규정에 있는 내용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작 들어가야 할 조항은 표준계약서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김 변호사는 “독소조항인 3억 원 이상 연봉자의 1군말소시 연봉 감액 규정은 그대로고, FA가 아닌 선수들의 장기계약이 20년 전 허용되었음에도 여전히 실무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문제가 남아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무엇보다도 선수의 계약자유의 원칙이 여전히 제한받고 있는 부분인 보류권제도의 개선이 없다”며 “FA를 해도 4년 보류권이 유지되고, 포스팅으로 해외를 갔다 와도 FA 기간 이상으로 구단이 보류권을 행사하는 문제, 그리고 FA 미아를 발생시키는 보상제도의 문제는 전혀 시정되지 않고 있다”며 ‘반쪽짜리’ 표준계약서의 문제를 지적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