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신인 좌완 이의리, 도미니카공화국 상대 국제무대 데뷔전에서 5이닝 9K 호투

-1회 위기, 4회 피홈런 뒤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텼다…배짱과 자신감 돋보여

-류현진·김광현·양현종 뒤를 잇는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 탄생 예고

-일본에서도 이의리는 경계대상 1호…준결승 이후 만남 성사될까

1일 도미니카전에서 역투하는 이의리(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일 도미니카전에서 역투하는 이의리(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데자뷔(déjà vu). 한국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끝난 8월 1일 도미니카공화국 전은 마치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장면으로 가득했다. 9회말 이정후의 동점 2루타가 터진 순간, 경기를 중계한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을 떠올렸다.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일본전 9회 이종범이 때린 2타점 2루타 장면이 크게 포효하는 이정후의 모습에 겹쳤다.

2사 3루에선 주장 김현수가 끝내기 2루타로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기억을 소환했다. 당시 대표팀 막내였던 김현수는 2대 2로 맞선 일본전 9회초 2사 1, 2루에서 대타로 나서 일본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결승타를 뽑아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현수는 타율 0.370에 4타점을 올리는 활약으로 한국의 9전 전승 금메달 신화에 기여했다.

그리고 마운드에서는 19살 신인 좌완 이의리가 있었다. 이의리는 성인 국가대표 데뷔전을 눈부신 호투로 장식하며 류현진-김광현-양현종의 뒤를 잇는 ‘뉴 에이스’ 탄생을 예고했다. 김광현, 양현종보다도 어린 나이에 ‘난적’ 도미니카 상대, 패하면 그대로 패자부활전으로 추락하는 녹아웃 스테이지의 부담까지 모두 이겨냈다.

중압감 이겨낸 이의리 괴력투…류현진, 김광현 데자뷔

이의리는 도미니카공화국 강타선 상대로 5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아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의리는 도미니카공화국 강타선 상대로 5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아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의리는 8월 1일 일본 요코하마 베이스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야구 녹아웃 스테이지 도미니카공화국 전에 선발등판, 5이닝 4피안타 2볼넷 9탈삼진 3실점으로 호투했다.

도미니카는 비록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는 없어도 까다로운 상대다. 호세 바티스타, 멜키 카브레라, 에밀리오 보니파시오 등 왕년의 빅리그 스타들이 라인업에 포진했고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 유망주 중 하나로 꼽히는 훌리오 로드리게스 등 AAA, AA 레벨 선수들도 많다.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이의리도 경기 초반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올림픽 선발의 중압감이 그대로 투구에 드러났다. 1회초 시작하자마자 연속안타를 맞고 무사 1, 3루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폭투로 1점을 헌납했다. 19살 신인의 한계가 드러난 듯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불안했다.

그러나 강타자 훌리오 로드리게스를 삼진으로 잡고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경기를 현장 중계한 김선우 MBC 해설위원의 말대로 이 삼진이 반등의 계기가 됐다. 이의리는 메이저리그 2년 연속 홈런왕에 빛나는 호세 바티스타까지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1회를 추가 실점 없이 마친 이의리는 2회, 3회도 실점 없이 잘 막으며 호투를 이어갔다.

4회에 다시 위기가 왔다. 후안 프란시스코에게 던진 한가운데 공이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초대형 2점 홈런으로 연결됐다. 자칫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의리는 담대했다. 다음 타자 바티스타 상대로 과감한 몸쪽 속구를 던져 선 채로 삼진을 잡았다. 5회도 삼진 2개를 잡아내며 무실점, 대표팀 선발로는 처음 5이닝을 채우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날 이의리는 5이닝 동안 총 74구를 던졌고 삼진 9개를 잡아냈다. 140km/h 중후반대 강속구로 과감한 몸쪽 승부를 펼쳤고, 주무기인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모두 효과적이었다. 탈삼진 9개가 모두 우타자를 상대로 잡은 삼진이었다. 자신의 강점을 100% 발휘한 공격적이고 배짱 있는 투구로 강렬한 인상을 심은 이의리다.

19살 신인 좌완의 국제대회 호투는 한국 야구팬들에게 예전에도 봤던 것 같은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2000년대 한국야구를 이끈 좌완 에이스 트리오 류현진-김광현-양현종도 이의리처럼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합류, 일찌감치 에이스로 활약했다.

류현진은 이의리처럼 19살 신인 시즌에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이 류현진의 국대 데뷔전. 여기서 류현진은 첫 등판인 일본전 2.1이닝 5실점, 중국과 동메달 결정전 4이닝 2실점으로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그러나 2년 뒤인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쉬움을 만회했다. 캐나다전 완봉승, 쿠바 상대 결승전 8.1이닝 2실점의 괴력투로 한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김광현의 국제대회 데뷔는 더 화려했다. 김광현은 프로 2년차 시즌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통해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멕시코 상대 6이닝 1실점 승리, 타이완 상대 5이닝 3실점 승리로 데뷔 2연승. 올림픽 본선에서도 미국전 1이닝 무실점 홀드를 시작으로 8월 16일 일본전 5.1이닝 1실점 호투로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8월 22일 준결승에서도 다시 만난 일본 상대로 8이닝 2실점 승리, 팀의 결승행과 ‘일본 킬러’ 명성을 모두 거머쥐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 경험과 9전 전승 금메달의 자신감을 얻은 류현진-김광현은 이후 한국야구 대표 에이스로 성장했다. 류현진은 총 5차례 국제대회에 출전해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고, 김광현도 구대성의 뒤를 잇는 일본 킬러로 활약했다. 두 선수는 현재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도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의리의 KIA 팀 선배 양현종도 국제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양현종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결승 중국전에서 6이닝 1실점 호투로 국제대회에 데뷔, 이후 아시안게임 통산 6경기 2승 1패 평균자책 1.17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19살 투수라고는 믿기 힘든 호투” “올림픽 대표팀 최대 수확” 찬사

김진욱과 이의리 발굴은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수확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김진욱과 이의리 발굴은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수확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도미니카 상대로 삼진 9개를 잡아낸 이의리의 국제무대 데뷔전은 류현진, 김광현 등 선배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올림픽 무대의 중압감에 압도되지 않았고, 씩씩하게 자기 공을 던졌다. 향후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로 한국 마운드를 이끌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였다.

이날 이의리의 투구를 지켜본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첫 등판이라 3이닝 정도를 예상했는데 기대 이상의 투구를 보여줬다. 빠른볼 구위는 19살짜리 투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라고 찬사를 보냈다. 심재학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결과와는 별개로, 이의리와 김진욱이라는 투수를 얻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의리는 이번 올림픽 강력한 우승 후보 일본에도 경계 대상이다. 일본 스포츠지 ‘닛칸 스포츠’는 한국의 승리 소식을 전하면서 “고졸 1년차 좌완 이의리가 5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 140km/h 중반 속구로 도미니카 타선을 제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평가했다.

일본 대표팀은 본선을 앞두고 가진 라쿠텐 골든이글스 상대 평가전에서도 이의리를 상대로 가정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치렀다. 당시 라쿠텐 선발로는 150km/h대 강속구를 던지는 신인 좌완투수 하야카와 다카히사가 등판했는데, 이를 두고 ‘닛칸스포츠’는 “차기 한국 좌완 에이스인 이의리를 가정한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도미니카를 꺾고 기사회생한 한국은 오늘 정오 이스라엘 상대 녹아웃 스테이지 2회전에서도 이기면 준결승 진출 자격을 얻는다. 상황에 따라 준결승 이후 일본과 맞대결이 성사된다면, 이의리가 다시 한번 선발로 등판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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