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7일 한용덕 감독 퇴진…8일 최원호 감독대행 임명

-감독 조기 퇴진, 6일 벌어진 ‘무코치 경기’가 결정적 계기

-코치 강등 둘러싼 감독과 구단의 대립이 감독 교체 결단으로 이어졌다

-부임 첫해 3위 성과, 이후 갈등과 성적부진 속에 쓸쓸한 퇴장

14연패 직후 감독직에서 물러난 한용덕 감독(사진=엠스플뉴스)
14연패 직후 감독직에서 물러난 한용덕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코치진 개편을 둘러싼 구단과 감독의 감정싸움은 사상 초유의 ‘무코치 경기’ 촌극으로, 그리고 감독 조기 퇴진으로 이어졌다.

한화 이글스는 6월 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전 직후 한용덕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한화는 NC에 2대 8로 지면서 구단 최다 연패 타이인 14연패를 기록하게 됐다.

한화는 “한 감독이 경기후 정민철 단장과 면담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고, 이후 박정규 대표이사에게 보고를 거쳐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몇몇 관계자는 “한 감독이 이미 7일 경기까지만 지휘하고 물러나기로 돼 있었다”고 전했다. 한화는 이를 부정했지만, 한 감독 퇴진 소식이 7일 경기 종료 전에 이미 보도됐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무코치 경기’ 사태, 감독 퇴진의 도화선 됐다

한용덕 감독과 장종훈 수석코치(사진=엠스플뉴스)
한용덕 감독과 장종훈 수석코치(사진=엠스플뉴스)

한용덕 감독의 퇴진은 6일 ‘무코치 경기’ 사태 때부터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게 구단 안팎의 중론이다. 이날 한화는 경기 개시를 앞두고 장종훈 수석코치, 김성래 이양기 타격코치, 정민태 투수코치까지 코치 4명을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은 박정진 불펜코치까지 포함하면 코칭스태프 10명 중에 절반이 자리를 떠났다.

해당 코치들은 경기 시작 3시간 전까지만 해도 운동장에 나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한화는 말소한 코치들을 2군 혹은 육성군 이동 없이 그대로 귀가 조처했다. 이날 경기에서 새로 1군에 올라온 코치는 없었다. 1루-3루 코치와 수비코치, 배터리 코치만이 남았다. 이 때문에 한 감독이 직접 투수를 교체하러 올라가고, 나중엔 차일목 배터리 코치가 투수를 바꾸러 올라가는 촌극을 빚었다.

이와 관련 한화 구단은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말 외엔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7일 감독 퇴진 발표 뒤 취재진과 만난 정민철 단장도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갑자기 감독님이 떠나신 마당이라 세세한 말씀을 드리기 어렵다는 점 이해를 부탁드린다”며 언급을 피해 의문을 더 키웠다.

취재 결과 ‘무코치 경기’는 코칭스태프 개편을 둘러싼 한 감독과 구단의 감정 대립이 빚은 사태였다. 한화 사정에 밝은 야구인에 따르면 팀의 연패가 길어지고 무기력한 경기가 계속되자 한화 고위층에서 감독 거취 얘기가 나왔다. 구단에선 아직 시즌 초반이란 점을 들어 감독 대신 우선 코치진을 개편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고, 한 감독에게 이를 알렸다.

구단이 요구한 코치진 개편의 핵심은 장종훈 수석코치 교체였다. 그러나 한 감독은 ‘절대 불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구단에서 재차 코치진 개편을 설득했지만, 역시 한 감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구단의 요구가 거듭되자 한 감독은 ‘그렇다면 아예 코치를 다 내리겠다’고 구단에 통보했다. 수석을 포함해 타격, 투수까지 주요 파트 코치가 한꺼번에 1군에서 사라진 배경이다.

한화 출신 야구인은 이 사건으로 이미 감독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던 구단 고위층에서 교체 결심을 굳히게 된 것으로 안다구단에선 감독에 대한 예우로 코치만 교체하려고 했고, 그조차도 감독의 동의를 구해서 진행하려 했는데 의도와 달리 오히려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보통 코칭스태프 개각은 내려보낼 코치와 새로 올릴 코치의 보직까지 미리 정한 뒤 발표한다. 그러나 구단과 감독이 맞서는 통에 경기 전까지 코치를 내리는 결정만 나오고, 새 코치진 인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 감독은 7일 취재진과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코치진 이동은 5일 경기 후 결정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새 코치진 발표는 6일 경기가 끝난 뒤에야 이뤄졌다. 깊이 고민하고 진행한 코치 인선은 아니었다. 7일 1군에 등록한 김해님, 마일영, 이양기 코치는 8일 오전 최원호 감독대행 선임과 함께 하루 만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반면 정현석, 박정진 코치는 말소 이틀 만에 다시 1군 코치로 부름을 받았다.

이미 창단 최다 14연패를 당한 마당에 한용덕 감독의 거취 문제가 불거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화는 연패 기간 트레이드 등 별다른 상황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타 구단의 트레이드 제안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 1·2군 선수 엔트리 이동도 9연패 직후인 3일이 마지막이었다.

감독의 오른팔인 수석코치 교체를 요구한 건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신호였다. 결과적으론 구단의 코치 교체 요구에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면서 한 감독 스스로가 수명을 단축한 셈이 됐다. 물론 이 과정을 매끄럽게 조율하지 못해 내부 갈등을 외부에 드러낸 한화 구단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레전드’ 한용덕, 최다연패 수모 속에 불명예 퇴진

한용덕 감독은 부임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 성과를 이뤘지만, 이후 성적 부진으로 결국 중도 퇴진했다(사진=엠스플뉴스)
한용덕 감독은 부임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 성과를 이뤘지만, 이후 성적 부진으로 결국 중도 퇴진했다(사진=엠스플뉴스)

한용덕 감독은 한화 레전드 스타 출신 지도자다. 한화 전신인 빙그레 배팅볼 투수로 시작해 1988년 정식 선수가 됐고, 이후 17년 동안 한화 마운드를 지키며 통산 120승을 거뒀다. 이는 송진우, 정민철에 이은 팀 역대 최다승 3위 기록이다.

2018년 한 감독 선임 당시만 해도 ‘레전드 출신’ 감독을 향한 팬들의 기대감은 컸다. 이미 2012년 감독대행으로 5할 이상 승률을 기록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던 한 감독이다. 앞선 김응용, 김성근 등 구시대 감독들의 실패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은 다를 거란 기대가 있었다. 장종훈, 송진우 등 레전드 출신 코칭스태프의 재결합도 기대를 키웠다. 한 감독은 ‘하나 된 한화’를 외치며 의욕적으로 닻을 올렸다.

시작은 좋았다. 부임 첫해 베테랑과 젊은 선수의 조화 속에 정규시즌 3위로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첫 시즌의 성공이 독이 됐다. 강한 세대교체 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베테랑 선수들과 마찰이 생겼고, 지난 시즌 이용규 사태 등을 거치며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2019시즌을 9위로 마친 뒤엔 자신을 임명한 사장과 단장이 모두 교체되면서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 하나 없이 세대교체 총대를 멨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성적 부진과 커지는 비판 여론 속에 리빌딩 동력을 잃었다.

올 시즌의 한화는 총체적 난국이다. 팀 득점 100점으로 1위 NC(207득점)의 절반도 안 되는 압도적 꼴찌다. 팀 실점은 190점으로 최다 실점을 내줬다. 팀 OPS 0.632로 꼴찌, 팀 평균자책도 6.20으로 꼴찌다. 득점과 실점으로 구하는 피타고리안 기대승률은 0.236에 불과하다. 참고로 1999년 쌍방울이 0.304, 2002년 롯데가 0.314를 기록한 바 있다. 현재 한화보다 저조한 기대승률을 기록한 팀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0.235) 뿐이다.

한화 출신 야구인은 “한 감독은 부임 첫해부터 작전 실패와 야수 기용 미스가 많았다. 투수 출신 감독이다 보니 작전이나 야수들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며 “올해는 시즌 초 3점 앞선 경기 후반 무사 2루에서 번트를 시도하는 등 조급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런 장면이 거듭되면서 연패와 레임덕으로 이어졌다고 본다”는 생각을 밝혔다.

한 방송사 해설위원도 올해 한화의 불펜 운용엔 의문스러운 장면이 많았다. 승리조와 추격조 구분이 불분명했고, 투수교체가 대량실점으로 이어지는 상황도 자주 나왔다고 했다. 5일 경기에선 0대 11로 크게 뒤진 9회초 야수 노시환을 마운드에 올렸다. 11연패 중인 팀이 할 만한 서커스로는 부적절했단 평가다. 투수가 바닥났다면 몰라도, 한화 불펜엔 나흘을 쉰 정우람이 있었다.

한화의 시즌 준비가 안이하고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한화 투수진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26개의 도루를 내줬다. 김민우, 채드벨, 김이환 등 주요 투수들이 나오면 거의 ‘자동문’ 수준으로 상대가 작정하고 뛴다. 투수들의 투구폼이 완전히 읽혔단 증거다. 다른 구단 타자들이 공인구 적응에 성공해 홈런과 장타를 쏟아내는데, 한화만 홀로 투고타저 리그를 치르고 있다.

1위 NC와 주말 3연전에서 한화는 35점을 내주면서 단 6득점에 그쳤다. 같은 리그 팀 간의 경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투수, 타격, 수비 등 모든 면에서 힘의 차이가 뚜렷했다. 현장 사령탑이 완전히 통제력을 상실했음이 증명된 가운데, ‘무코치 경기’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한용덕 체제는 파국을 맞았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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