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팀 18연패로 1985년 삼미 팀 연패 기록과 나란히 역대 1위

-6월 13일 대전 두산전 패하면 삼미도 넘어서는 한화

-모기업 매각설에 더 뒤숭숭했던 쌍방울 마지막 해 “숨쉬기도 버거웠다.”

-동네북이었던 삼미, 상대 에이스 ‘꾀병’ 맞춤 등판에 마운드 연쇄 붕괴까지

삼미 슈퍼스타즈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한 장면(사진=슈퍼스타 감사용)
삼미 슈퍼스타즈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한 장면(사진=슈퍼스타 감사용)

[엠스플뉴스]

한화 이글스는 KBO리그 사상 ‘팀 최다 연패 타이’라는 불명예의 역사를 작성했다. 한화는 5월 23일부터 6월 12일까지 무려 ‘18연패’에 빠졌다. 21세기엔 찾아볼 수 없는 추억의 이름인 쌍방울 레이더스를 넘어 삼미 슈퍼스타즈와 나란히 서게 됐다.

한화는 6월 12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 패배(2대 5 패)로 KBO리그 역대 최다 연패 2위 기록인 쌍방울 레이더스의 17연패(1999년 8월 25일~10월 5일)을 넘어 최다 연패 1위 기록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1985년 3월 31일~4월 29일)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최근 한화는 코치진 대규모 교체와 한용덕 전 감독의 자진 사퇴, 그리고 최원호 감독대행 선임 등 다사다난한 시간을 겪었다. 감독대행 선임 뒤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말소된 뒤 2군 젊은 선수들이 1군 무대를 밟았다. 한화는 패기 있는 젊은 선수들을 내세워 반전을 원했다. 하지만, 긴 연패라는 부담스러운 조건에서 당장 1군급 선수들과 맞대결을 펼치는 상황이 젊은 선수들에겐 버거운 모양새다.

한화와 나란히 서게 된 쌍방울과 혹여나 함께 설 수도 있는 삼미는 20세기 참혹한 연패 과정을 겪은 팀들이다. 이들의 끝없는 연패의 추억은 어땠을까. 쌍방울의 17연패를 경험한 최태원 코치(삼성 라이온즈)와 삼미의 18연패를 지켜본 KBO(한국야구위원회) 허 운 심판위원장의 얘길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모기업 악화에 더 고통스러웠던 1999년 쌍방울 17연패

쌍방울 소속 현역 시절 최태원 코치의 훈련 장면(사진=최태원 코치)
쌍방울 소속 현역 시절 최태원 코치의 훈련 장면(사진=최태원 코치)

1993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한 최태원 코치는 1999년까지 쌍방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1999시즌 종료 뒤 쌍방울 구단이 해체됐고, 2000년 SK 와이번스가 기존 쌍방울 선수단을 이어 받아 새롭게 창단됐다. SK 유니폼으로 바꿔 입은 최 코치는 1995년 4월 16일 해태 타이거즈전부터 2002년 9월 8일 현대 유니콘스전까지 무려 1,014경기 연속 출전(KBO리그 통산 1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최 코치는 1999년 8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17연패에 빠졌던 쌍방울의 쓰라린 추억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처음엔 ‘연패를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어어 하다가 어느덧 17연패까지 갔습니다. 당시 더그아웃에서 제대로 숨쉬기도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최 코치의 회상은 한숨으로 시작됐다.

최 코치는 당시 쌍방울 선수단 전체에 퍼지는 패배 의식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패배 의식에 젖어 있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 점 차라도 지고 있으면 ‘오늘도 졌구나’라는 분위기였죠. 저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팀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역전만 당하면 졌다고 바로 포기해버리는 거죠. 그러면 투수와 야수 간의 신뢰가 흔들리게 됩니다. 팀마다 이기는 공식이 있는데 그게 아예 없어지는 거예요. 실책도 연패 기간에 더 큰 타격을 주고요.” 최 코치의 말이다.

쌍방울 소속 현역 시절 김원형 코치(사진=엠스플뉴스)
쌍방울 소속 현역 시절 김원형 코치(사진=엠스플뉴스)

단순히 연패 숫자만 쌍방울 선수단에 고통을 주는 게 아니었다. 당시 IMF 사태로 모기업인 쌍방울의 사정이 어려워지며 매각설이 나도는 분위기는 긴 연패의 고통을 더 크게 느끼도록 했다.

모기업이 어려워지고 연패의 고통이 더 가중됐습니다. 선수단 전력 문제도 그랬지만, 구단 재정적인 문제도 겹쳤던 상황에서 긴 연패는 정말 버티기 힘들었죠. 실력과 환경 모두 안 좋으니까 연패에서 탈출하기가 어려웠어요. 결국, 어떻게 연패를 끊었는지 기억도 희미합니다. 구단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연패 탈출을 기뻐할 여력도 없었던 거죠.

최 코치는 SK 유니폼을 입은 뒤에도 SK 구단 창단 최다 연패 기록인 11연패(2000년 6월 23일부터 7월 5일까지)까지 경험했다. 역사적인 연패 기록을 두 차례 경험한 최 코치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긴 연패로 가는 과정을 막아야 한다고 바라봤다.

“SK 와이번스에서 새 출발했지만, 결국 선수단 자체는 똑같았으니까 어려움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훈련을 더 많이 하거나 분위기를 편안하게 바꿔도 계속 연패가 오더라고요. 결국, 연패에 한 번 빠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평소 야구에서 상식적인 걸 깨서라도 긴 연패로 이어지는 건 막아야 한다고 봅니다.”

에이스 장명부 하락세와 상대 에이스 표적 등판이 겹친 삼미 18연패

삼미는 1983년 시즌 30승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친 투수 장명부(오른쪽)의 하락세와 더불어 1985년 팀 18연패를 기록했다(사진=삼성)
삼미는 1983년 시즌 30승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친 투수 장명부(오른쪽)의 하락세와 더불어 1985년 팀 18연패를 기록했다(사진=삼성)

한화는 6월 12일 대전 두산전에서 패하며 삼미의 18연패(1985년 3월 31일~4월 29일)와 나란히 섰다. KBO리그 원년(1982년)에 창단된 삼미는 1985년 시즌 39승 1무 70패(승률 0.358)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허 운 심판위원장은 삼미 원년 멤버 출신으로 1982년 한 시즌 특정 팀 상대(OB 베어스) 16전 전패와 1985년 팀 18연패 기록을 현장에서 제대로 느꼈다. 허 위원장은 통산 76경기 출전/ 타율 0.229/ 44안타/ 2홈런/ 12타점의 기록을 남기고 1987년 무릎 부상 여파로 은퇴한 뒤 심판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갑작스럽게 프로야구가 생겨 ‘프로 선수’라는 게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같이 야구를 했습니다. 그때 삼미 구단이 인천 지역 연고 신인 선수를 지명했는데 서울이나 광주, 대구, 부산 등과 비교하면 선수 실력이 떨어졌던 건 사실이었고요. 지금도 투수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땐 더 심각했죠. 삼미 구단에도 투수가 없었습니다.” 허 위원장의 말이다.

마운드가 계속 무너지자 버틸 여력이 없었다는 게 허 위원장의 회상이다.

“경기 초반에 타선이 12득점을 기록해도 결국 13실점으로 지는 팀이 삼미였습니다. 원년엔 OB 베어스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기록도 있고요. 18연패 기록도 세웠는데 한 7~8번 연속으로 지니까 경기에서 이기겠단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마운드가 약하니까 조금만 실점을 해도 ‘오늘도 지겠구나’라는 마음이 먼저 생겼습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죠.”

연패 기간 삼미와 맞붙으려는 상대 에이스 투수들의 ‘꾀병’도 있었다.

삼미는 경기 초반부터 마운드가 무너져 실점하는 팀이니까 상대하기가 편했습니다. 상대 팀들도 에이스 투수들을 다 삼미와 경기에만 맞추더라고요. 만나면 1승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상대 에이스 투수들만 만나니까 더 연패가 길어진 거죠. 상대 에이스 투수들이 갑자기 아프다고 그전 경기에서 빠졌다가 우리 팀만 만나면 갑자기 다 낫더라고요(웃음).

1983년 시즌 30승(16패)을 달성하며 60경기 등판에서 무려 427.1이닝을 소화했던 삼미 에이스 장명부의 하락세도 긴 연패가 이어진 원인이었다. 장명부는 구단과 불화 및 혹사 여파로 1984년 45경기 등판 13승 20패 평균자책 3.30, 1985년 45경기 등판 11승 25패 평균자책 5.30에 그쳤다.

“장명부가 첫 해 던졌을 때를 떠올리면 마치 프로 투수가 리틀야구 리그에 와서 던지는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프로야구를 경험하고 온 선수라 당시 한국 타자들이 보지도 못한 변화구 구종과 더불어 제구력이 완벽했어요. 그런데 1983년 시즌이 끝난 뒤 돈 문제로 구단과 문제가 있었고, 점점 성적이 떨어졌어요. 시즌 30승을 쌓던 투수가 결국 팀 18연패를 막지 못할 정도로 팀이 무너졌던 겁니다.”

한화는 앞선 쌍방울처럼 모기업이 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고, 프로라는 이름이 어색했던 삼미처럼 시작부터 악조건에 처한 것도 아니었다. 한화는 6월 12일 대전 두산전에 외국인 투수 채드벨을 앞세웠지만, 악몽 같은 긴 연패를 끊는 것에 실패했다. 한화가 삼미를 넘어 19연패라는 끔찍한 연패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걸 피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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