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전 9위 예상 깬 KIA의 선전…리그 4위로 가을야구 진출 넘본다

-KIA 바꾼 맷 윌리엄스 감독 효과…“선수단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롯데 로이스터, SK 힐만 등 과거 외국인 감독 모두 성공

-소통과 협력, 선수 동기 유발 등 외국인 감독 장점 많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맷 윌리엄스 KIA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엠스플뉴스]

올 시즌 개막전까지만 해도 KIA 타이거즈의 기상도는 ‘매우 흐림’에 가까웠다.

ESPN이 예상한 파워랭킹에서 KIA는 10개 팀 중에 9위에 그쳤다. 국내 전문가들도 절대다수가 KIA의 하위권 성적을 예상했다. 지난 시즌 7위 선수 구성에서 크게 좋아진 점이 없고, 프랜차이즈 스타 안치홍마저 팀을 떠나면서 전력이 약해졌단 이유다. 안치홍-김선빈 계약 과정에서 허점을 드러낸 프런트 오피스를 향해선 비난과 원성이 쏟아졌다.

그러나 시즌이 절반 가까이 진행된 7월 24일 현재 KIA는 승률 0.547로 리그 4위에 올라 있다. 강력한 우승후보라던 3위 키움과는 1.5경기 차, 역시 우승후보라던 LG(5위)보다도 높은 순위를 유지하며 순항하는 중이다. ESPN과 전문가들의 시즌 전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성과다.

로이스터, 힐만, 윌리엄스까지…외국인 감독 ‘성공률 100%’

활짝 웃는 윌리엄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활짝 웃는 윌리엄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KIA의 선전엔 외국인 투수들의 호투, 불펜 안정, 우승후보 SK의 추락에 따른 반사 이익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외국인 감독 맷 윌리엄스 효과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 트레이 힐만 전 SK 감독에 이은 또 하나의 미국 출신 외국인 감독 성공 사례다.

현재까지 외국인 감독은 ‘불패’ 아닌가. 외국인 감독 부임 전과 재임 기간 성적만 비교해 봐도 답은 분명하다고 본다.과거 외국인 감독과 함께한 경험이 있는 구단 관계자의 말이다.

외국인 감독 부임전 2년간 성적과 재임 기간 성적 비교(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외국인 감독 부임전 2년간 성적과 재임 기간 성적 비교(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실제 그간 KBO리그에 다녀간 외국인 감독은 모두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고, 재임 기간 내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롯데를 이끈 로이스터 감독은 3년간 204승 185패 3무 승률 0.524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롯데 사령탑으로는 양승호 감도(0.537)에 이은 역대 승률 2위 기록이다.

2000년대 들어 ‘8-8-8-8-5-7-7위’로 ‘비밀번호’를 찍던 롯데는 ‘노 피어(No Fear)’를 강조한 로이스터 감독과 함께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이 됐다. 개성이 뚜렷한 야구를 선보이며 구름 관중을 불러모았고, 리그 흥행을 선도하는 구단으로 거듭났다.

2017년과 2018년 SK를 이끈 힐만 감독도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힐만 감독은 2년간 153승 133패 2무 승률 0.535로 2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에 올랐다. 2018년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왕조 시대 이후 한동안 중하위권을 맴돌았던 SK는 김용희 감독 체제에서 시스템을 재정비한 뒤 힐만 감독에서 결실을 거뒀다. 힐만 감독 시절 SK는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고, KBO리그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구단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잠시 곤두박질했던 KIA도 올 시즌 윌리엄스 감독과 함께 다시 힘을 내고 있다. 지난해 박흥식 감독대행 체제에서 차곡차곡 쌓은 젊은 선수들의 경험치가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 성과로 나타나는 중이다.

소통과 협력, 동기 유발과 잠재력 극대화, 선수를 위한 감독

경기전 땀 빼는 윌리엄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경기전 땀 빼는 윌리엄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이처럼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감독들이 하나같이 좋은 성과를 거두는 비결은 뭘까.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현대 야구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소통과 협력’에 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이 관계자는 “구단과 선수단 규모가 커진 지금의 야구에선 감독 혼자만의 힘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100명 가까운 선수단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가려면 프런트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방대한 데이터 분석 자료도 참고해야 한다”며 “구단과 소통이 잘 이뤄지는 게 외국인 지도자의 장점”이라 했다.

지방 구단 관계자도 “국내 감독 중엔 프런트의 조언이나 제안을 간섭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외국인 지도자들은 프런트와 감독의 역할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한다.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선 구단과 협력해야 한다는 걸 잘 알기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외국인 감독들은 코칭스태프, 선수단과도 격의 없이 소통한다.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최근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기존 국내 감독들은 권위 의식이 강했다.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며 “코치진의 의견을 존중하고,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게 외국인 감독의 장점”이라 했다.

외국인 감독 체제를 경험해본 구단 관계자는 “전에는 감독 눈도 똑바로 못 쳐다보던 선수가 외국인 감독과는 눈을 맞추고 먼저 다가가서 농담을 건네더라. 그런 자신감이 그라운드에서 그대로 성적으로 드러나더라”고 전했다.

윌리엄스 감독은 선수에 대해 결코 부정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긍정적인 면을 얘기하고 선수의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한다. 전날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른 선수에 대해서도,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진 선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자신은 여전히 선수를 믿고 있고, 144경기 중에 일부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진다. 선수들의 머리에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잡을 틈을 주지 않는다.

선수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이를 통해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도 외국인 지도자의 장점이다. 지방 구단 관계자는 외국인 지도자는 지연, 혈연, 학연을 따지지 않는다. 선수를 평가하고 기용하는 데 있어 국내 지도자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게 마련인 편견이 외국인 지도자에겐 전혀 없다그 자체가 선수들에겐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다.

정작 윌리엄스 감독이 생각하는 KIA의 선전 비결은 따로 있다. 그는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며 공을 온전히 선수들에게 돌렸다. 매 경기 집중해 최선을 다하고,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이 지금의 KIA를 만들었단 게 윌리엄스 감독의 생각이다.

“우리 선수들은 내일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결과에 개의치 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우리 팀이 좋은 결과를 낸 건 선수들이 보여준 성실함과 정신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올 시즌 KIA 선수들이 신나서 날아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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