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빙상경기연맹이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코치로 '무자격 코치'를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이 코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빙상 장비 정비 기술자'로 확인됐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이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코치로 '무자격 코치'를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이 코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빙상 장비 정비 기술자'로 확인됐다(사진=엠스플뉴스 이동섭 기자)

- 빙상연맹, 세계 쇼트트랙 주니어대회에 ‘무자격 대표팀 코치’ 보냈다.

- 빙상연맹 “2급 지도사 자격증 없어도 대표팀 코치 될 수 있다.”

- 대한체육회 “무자격 대표팀 코치 임명? 상식적이지 않은 일”

- '무자격 코치', 장비 정비 기술자로 확인되자 말 바꾼 빙상연맹 “단순 행정 착오”

[엠스플뉴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경이로운 단체다. ‘갈 데까지 갔다’는 위기감이 들 때마다 어떻게든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엔 ‘무자격 대표팀 코치’ 논란이다.

최근 엠스플뉴스는 “빙상연맹이 ‘201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주니어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로 무자격 지도자를 선임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3월 초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끈 코치진 가운데 한 명이 ‘2급 전문스포츠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 코치로 밝혀졌다”며 “빙상연맹이 이를 알고도, ‘누군가’의 지시로 무자격 코치 선임을 강행했다는 여러 정황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보자 "빙상연맹이 세계 주니어 대회 한국팀 대표팀 코치로 '무자격 코치' 보냈다. 당사자 “2급 자격증 없는 건 사실. 빙상연맹 연락 받고서 주니어 대표팀에 합류했을 뿐”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대표팀 정00 코치는 “자격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사진=대한빙상경기연맹)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대표팀 정00 코치는 “자격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사진=대한빙상경기연맹)

2급 전문스포츠지도사는 ‘학교·직장·지역사회 또는 체육단체 등에서 체육을 지도할 수 있도록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부여하는 자격증’을 뜻한다.

그렇다면 과연 대표팀 코치와 2급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엠스플뉴스에 ‘무자격 대표팀 코치 선임’ 사실을 알린 제보자는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가 되려면 2급 전문스포츠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건 상식”이라며 “그간 빙상연맹도 대표팀 코치 자격을 ‘2급 지도자 자격증 소유자’로 제한해왔다”고 강조했다.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엔 두 명의 코치가 있었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이 가운데 정00 코치는 지도사 자격증이 없었다.

자격증 소유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 정 코치는 “(2급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이) 없는 게 맞다”며 “빙상연맹의 연락을 받고서 주니어 대표팀에 합류했을 뿐, 나도( 주니어 대표팀 코치로 임명된 과정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답했다.

정 코치가 자신의 대표팀 코치 선임 과정을 모른다면 그를 뽑은 빙상연맹은 소상히 알지 않을까. 하지만, 빙상연맹 관계자는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놨다. “주니어 대표팀 코치가 되려면 반드시 2급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답변이었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빙상연맹과 대한체육회 규정엔 ‘국가대표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같은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다”며 “2급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이 없다고 대표팀 코치가 될 수 없다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자료엔 빙상연맹의 주장과 180도 다른 내용이 명기돼 있었다.

1월 29일 빙상연맹이 공지한 '2018/2018 쇼트트랙 대표선수 및 지도자 선발규정'에 명시된 청소년 대표 지도자 자격(사진=대한빙상경기연맹)
1월 29일 빙상연맹이 공지한 '2018/2018 쇼트트랙 대표선수 및 지도자 선발규정'에 명시된 청소년 대표 지도자 자격(사진=대한빙상경기연맹)

1월 29일 빙상연맹은 ‘2018/2019 쇼트트랙 대표선수 및 지도자 선발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국가대표, 국가대표 후보선수, 청소년선수의 지도자는 반드시 ‘2급 이상 경기지도자 자격증(현 2급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 소유’와 ‘해당종목 지도경력 2년 이상인 자’란 자격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한체육회도 빙상연맹의 주장을 “상식적이지 않은 말”이라고 반박했다. 대한체육회 훈련기획부 관계자는 “자격증이 없는 지도자를 주니어 대표팀 코치로 임명한 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라며 “단, 체육 관련학 박사 학위자나 국가대표 경력자라면 빙상연맹 차원에서 이를 고려했을 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정 코치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대표 경력도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빙상인들 "정00 코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주로 스케이트 날을 가는 한국체대 빙상장 장비 담당 스태프"

3월 2일부터 4일까지 폴란드에서 열린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여자 계주 경기 장면. 이 대회 한국 대표팀에서 코치로 활약한 정00 씨는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장비 정비 담당자로 일하는 이로 밝혀졌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3월 2일부터 4일까지 폴란드에서 열린 '2018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여자 계주 경기 장면. 이 대회 한국 대표팀에서 코치로 활약한 정00 씨는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장비 정비 담당자로 일하는 이로 밝혀졌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무자격 코치’를 선임해야할 만큼 한국 빙상 지도자 저변이 취약한 건 아닌지 살펴봤다.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 발급 주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그건 아니”라고 했다. 공단 측은 “빙상 종목에서 2급 이상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보유한 지도자를 살펴본 결과 정확히 500명”이란 답변을 들려줬다.

공단 측의 답변을 듣고, 엠스플뉴스는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 번째 의문은 ‘자격증을 소유한 지도자가 500명이나 되는데도 빙상연맹이 굳이 무자격 지도자를 주니어 대표팀 코치로 선임’한 이유였다. 두 번째 의문은 ‘대체 빙상연맹은 정 코치의 어느 점을 높이 사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그를 주니어 대표팀 코치로 뽑았느냐’였다.

취재 중 만난 빙상인 B 씨는 뜻밖의 얘길 들려줬다. B 씨는 “정 코치로 알려진 정00 씨는 한국체육대학교(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장비 정비를 담당하는 인물”이라며 “그 실내 빙상장의 실질적인 총책임자가 ‘빙상 대통령’으로 알려진 전명규(한국체대 교수) 빙상연맹 부회장”이라고 알렸다.

“정 씨는 쇼트트랙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니다.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에서 주로 스케이트 날을 가는 장비 전문 기술자다. 정 씨의 신분을 누구보다 전명규 부회장이 잘 알았을 거다. 실내 빙상장을 관리하는 한국체대 평생교육원장이 전명규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정 씨가 세계 주니어 대회에 대표팀 코치로 나간다는 얘기가 들렸을 때 빙상인 모두가 자연스럽게 ‘전명규’란 이름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B 씨의 얘기다.

엠스플뉴스는 현재 빙상연맹을 감사 중인 유태욱 감사(목동 아이스링크 관리소장)에게 ‘무자격 코치 논란을 아는지’ 물었다. 유 감사는 “금시초문”이라며 “빙상연맹에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이틀 후, 유 감사는 엠스플뉴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무자격 코치 선임 논란’을 “빙상연맹의 행정 착오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정00 씨가 처음부터 코치가 아니라 장비 담당으로 주니어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처음엔 주니어 대표팀 선수 2명을 배출한 한국체대 안00 조교를 대표팀 코치로 임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안 코치가 개인 사정으로 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되자 빙상연맹 경기위원회가 ‘차라리 코치 대신 장비 담당을 선발하자’고 결정했다. 그래서 정00 씨를 장비 담당으로 주니어 대표팀에 합류시킨 거다. 실제로 세계 주니어 대회에서 정 씨는 코치가 아닌 장비 담당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 감사의 설명이다.

유 감사는 마지막으로 “정 씨를 행정 서류에 ‘장비 담당’이라고 써야 하는데 빙상연맹이 실수해 ‘코치’로 썼다”며 “이는 빙상연맹의 명백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빙상연맹은 "정 씨가 평소 학생들로부터 '선생님'으로 불려 공식문서에 '지도자(코치)'로 넣었을 뿐"이라는 황당한 해명을 들려줬다.

“선생님이라고 불려서 코치로 썼다? 빙상연맹이 빙상인들과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빙상연맹을 향한 빙상인들의 불신은 팽배해있다(사진=엠스플뉴스)
빙상연맹을 향한 빙상인들의 불신은 팽배해있다(사진=엠스플뉴스)

하지만, 빙상계는 유 감사와 빙상연맹의 해명을 “빙상연맹의 잘못을 ‘실수’로 규정해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문제 자체를 ‘사소한 일’로 격하하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유 감사 말대로 빙상연맹의 ‘단순 행정착오’였다면 빙상연맹이 장비 정비 담당인 정 씨를 줄곧 ‘코치’라고 우기지 않았을 거다. 빙상연맹이 엠스플뉴스 취재진에 ‘자격증이 없어도 국가대표 코치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해 들려주지도 않았을 거다. 정 씨가 누군지 밝혀지니까 빙상연맹이 이제와 ‘행정 착오’ '선생님' 운운하는 것이다. 빙상인들과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소리다. 이런 조직에 언제까지 한국 빙상을 맡겨야 하는지 강한 회의감이 든다.” 빙상인 C 씨의 분개다.

+취재후: 익명을 요구한 빙상연맹 경기위원은 “경기위원회에서 ‘코치를 장비 담당으로 바꾼다’거나 ‘정00 씨를 주니어 대표팀 코치로 임명한다’는 식의 얘기는 언급된 적이 없다”며 “만약 그랬다면 경기위원들도 모르게 ‘누군가’ 정 씨를 대표팀 코치로 임명했다는 소리”라고 증언했다.

엠스플뉴스는 빙상연맹을 둘러싼 각종 논란마다 등장하는 ‘누군가’의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추적할 예정이다.

+제보를 받습니다. 삼성과 빙상연맹의 관계에 대해 제보해주실 분은 dhp1225@mbcplus.com, dinoegg509@mbcplus.com으로 연락주십시오.

이동섭, 박동희 기자 dinoegg509@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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