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유전자' 장슬기. ”매 경기가 소중하고, 간절하다."

- 연령별 대표팀 명단엔 늘 장슬기 이름이 있었다.

- 순탄했던 축구 인생, 일본 진출 이후 큰 시련 맞아

-“은퇴 후 ‘여자 미드필더 하면 장슬기’란 얘기 듣고 싶다”

WK리그 인천현대제철 소속으로 뛰고 있는 장슬기 선수(사진=엠스플뉴스 박찬웅 기자)
WK리그 인천현대제철 소속으로 뛰고 있는 장슬기 선수(사진=엠스플뉴스 박찬웅 기자)

[엠스플뉴스]

“매 경기가 정말 소중하고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왼쪽 측면을 책임지며 동메달 주역으로 활약한 장슬기의 말이다.

장슬기는 학생 선수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며 ‘특급 유망주’로 불렸다. 2010년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개최한 U-17 여자 월드컵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고, 2013년엔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 U-19 여자 챔피언십에서 8골을 넣으며 한국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늘 주전 자리만 꿰찼던 장슬기의 축구 인생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2015년만 빼면 그랬다. 장슬기는 일본 여자축구리그 ‘고베 아이낙’ 생활이 큰 시련으로 다가올 줄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주전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며 방황한 장슬기는 집처럼 드나들던 대표팀에도 뽑히지 못하는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장슬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베에서의 생활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은 것.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자실업축구리그(WK리그)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에 입단하며 절치부심한 끝에 장슬기는 대표팀에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장슬기는 3시즌 동안 76경기에 출전해 30득점 15도움을 기록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 올 시즌 기록은 23경기 10득점 6도움이다.

장슬기는 이제 팀과 한국 여자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그녀의 축구 인생을 엠스플뉴스가 들어봤다.

'특급 유망주' 장슬기, 그녀에게 실패란 단어는 없었다.

실패를 모르던 소녀, 그녀는 늘 국가대표 주전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실패를 모르던 소녀, 그녀는 늘 국가대표 주전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주최한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지 8년이 지났습니다.

맞아요.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대한민국 최초 'FIFA 대회' 우승이었거든요. 당시 대표팀 일원이었다는 게 지금도 뿌듯하게 느껴져요(웃음).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 전부터, 차근차근 연령별 대표팀에 뽑혔습니다.

네(웃음). 2009년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주관하는 U-16 여자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2011년엔 AFC U-19 여자 챔피언십 4위에 올랐어요. 2012, 2014년엔 FIFA U-20 여자 월드컵 8강에 진출했었죠.

2013년엔 대회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AFC U-19 여자 챔피언십이었어요. 우리나라가 우승을 차지했고, 저는 동료들 덕분에 8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죠(웃음).

어려서부터 대회에서 거둔 성적이 대단합니다.

아버지와 오빠가 축구선수였어요. 아버지께서 부상으로 현역선수에서 은퇴하신 뒤 축구 클럽을 운영하셨죠. 오빠는 그 클럽 소속 선수였고요. 오빠가 초교 때부터 축구를 했는데 오빠와 함께 공놀이하면서 저도 초교 시절을 보냈어요. 축구와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게 언제입니까.

6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축구를 시작했어요. 어려서부터 워낙 뛰어노는 걸 좋아했는데 선수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웃음).


축구 시작했을 때, 가족이 반대하진 않았습니까.

오히려 지지를 해주셨어요. 다만, 아버지와 오빠 모두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둬서 제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지금도 크게 걱정하세요. 제가 여기까지 온 건 순전히 가족 덕분이에요.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웃음).

일본 고베 아이낙에서 축구 인생 첫 고배를 마셨던 ‘특급 유망주’

'2017 WK리그 올스타전'에서 장슬기(사진 왼쪽)의 친정팀 고베아이낙과 경기가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2017 WK리그 올스타전'에서 장슬기(사진 왼쪽)의 친정팀 고베아이낙과 경기가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진출했습니다.

보통은 대학 졸업하면 한국여자축구연맹에서 주관하는 'W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해요. 하지만, 전 2014년 말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않고, 일본팀 ‘고베 아이낙’에 입단했어요.


자신이 있었군요.

그보단 일본으로 축구를 경험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신났어요. 돌아보면 그게 문제였어요.

문제요?

너무 신난 나머지 아무 준비 없이 일본으로 떠났거든요. 일본어도 할 줄 몰랐고, 문화, 생활 습관 전부 몰랐어요. 통역해주시는 분도 없었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컸겠습니다.

맞아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왜 이 훈련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그냥 따라만 다녔어요. 팀에 소속돼 있었지만, 혼자 겉도는 기분이었죠.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려고 했겠군요.

다들 도와주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말이 안 통하니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렇다고 가족에게 알릴 수도 없고. 걱정할 게 뻔했거든요.

그런 영향일까요. 줄곧 합류했던 대표팀에 차출되지 못했습니다.

충격이 컸어요. 초·중·고·대학교,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면서 항상 주전 선수로 뛰었거든요. 일본에서의 첫 6개월도 '왜 내가 주전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오만한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어떻게 반전을 이끌어낸 겁니까.

리그 전반기 끝나고 저를 한번 돌아봤어요. 이대로 끝낼 순 없겠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조금씩 일본 축구에 적응할 무렵, 감독님께서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뭐라고요?

“네가 눈에 띌 찬스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후반기엔 주전이야”라고 하셨어요.


아.

고베팀에선 2군 선수들이 1군 선수가 최적의 훈련을 할 수 있도록 200% 이상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해요. 제가 2군 멤버였죠. 입단 초엔 제가 보조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꽤 당황스러웠어요. 그러다 '경쟁에서 이겨 무조건 1군 멤버에 들어가자'고 다짐했죠. 네, 간절함이 생긴 거예요. 그때부터 1군 멤버를 200% 이상 보조하면서 감독님 눈에 띄기 위해 애썼어요.

노력의 결실일까요. 후반기 들어 감독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선발 18명 안엔 매번 들어갔고, 주전으로도 꽤 뛰었어요. 어려서부터 성공만 경험했던 저에겐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값진 경험이었어요.

다시 펼쳐진 꽃길, 이번엔 제대로 걸어보겠다는 장슬기

인천에서 그녀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사진=엠스플뉴스)
인천에서 그녀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사진=엠스플뉴스)

일본에서 1년 만에 귀국했습니다.

주전으로 꾸준히 뛸 수 있는 팀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W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군요.

경기를 뛰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거든요.

WK리그 최고의 팀 ‘인천 현대제철’에 입단했습니다.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솔직히 좀 멍했어요.

멍하다?

어느 팀에 가도 힘들 테지만, 인천은 매년 국가대표팀에 가장 많은 선수를 보내는 팀이거든요. 모든 선수 실력이 뛰어나요. ‘또 경쟁인가’하는 생각에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어요. ‘주전으로 뛰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최강 팀에서 지금 꾸준히 주전으로 뛰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경험이 정말 컸어요. 선배들이 "고베 다녀온 뒤로 사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무슨 의미일까요.

선배들이 "일본에 다녀온 뒤 경기 임하는 자세나, 태도에서 간절함이 보인다"고 하세요. 이전에는 축구보단 노는 게 더 좋았거든요. 축구를 너무 쉽게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축구에만 몰두해야,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에요. 다시는 후보가 되고 싶지 않아요(웃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 다녀왔습니다.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메달 색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웠어요. 일본과의 4강전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경기력에선 큰 차이가 없었는데, 뭔가 하나를 넘지 못한 느낌이에요.

동메달도 정말 값진 성적입니다.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쉬질 못했어요. 팀에 복귀하자마자 바로 훈련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 원하는 플레이가 잘 안 나와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지만, 이겨내야죠. 그게 프로니까요.

본인에게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더 최선을 다하려 해요. 기껏 절 보러 경기장에 찾아와 주셨는데 엉망인 경기력을 보여 드릴 순 없잖아요(웃음).

“지켜봐 주는 팬들이 있어 한 걸음이라도 더 뛰려 합니다.”

9월 15일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 삼성 블루위즈와의 경기에 '인천 현대제철' 홍보를 위해 경기장을 찾은 장슬기(사진 오른쪽 두 번째)(사진=엠스플뉴스)
9월 15일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 삼성 블루위즈와의 경기에 '인천 현대제철' 홍보를 위해 경기장을 찾은 장슬기(사진 오른쪽 두 번째)(사진=엠스플뉴스)

팬 서비스가 무척 좋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프로선수가 팬 서비스를 잘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런 당연한 일을 '금전'과 '대가'가 수반돼야만 하는 선수가 태반입니다.

다른 선수는 모르겠고(웃음). 전 팬들께서 사인이나 사진 요청을 하시면, 최대한 다 해드리려고 노력해요.

고정 팬들도 많겠군요.

기자님. 저, 팬클럽도 있는 선수예요(웃음).

축구선수로 지낸 지 이제 13년이 됐습니다.

지금보단 어릴 땐 별 생각이 없었요. 그저 경기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죠. 지금은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야할 선수가 됐어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압박감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베테랑 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2019 프랑스 FIFA 여자 월드컵에서도 활약할 것을 다짐한 장슬기다(사진=엠스플뉴스 박찬웅기자)
2019 프랑스 FIFA 여자 월드컵에서도 활약할 것을 다짐한 장슬기다(사진=엠스플뉴스 박찬웅기자)

2019년 프랑스에서 FIFA 여자 월드컵이 열립니다.

월드컵 대표팀에 뽑히는 게 목표에요. 강팀과 맞붙으면서 달라진 절 확인하고 싶어요. 소속 팀에서 죽을 힘을 다해 뛰다 보면, 대표팀에서도 절 받아주지 않을까요?(웃음)

먼훗날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부끄럽지만 “한국 여자축구 왼쪽 측면 미드필더는 ‘장슬기’”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여자축구에 한 획을 긋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켜봐 주세요(웃음).

박찬웅 기자 parkkoppett@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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