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스플뉴스]

유승민. 대한민국 탁구 영웅이다. 2016년 그가 IOC 선수위원에 출마했을 때 대한민국 체육계는 낙선을 예상했다. 돕기는 고사하고, 방관에 이어 그의 출마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까지 했다. 지금 유승민은 한국 유일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다. 한국 스포츠 외교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답답한 현실 속에서 유 위원은 한국 스포츠 외교를 혼자 짊어진 채 고군분투하고 있다. '엠스플뉴스'가 유 위원을 만났다.

"생각해보면 제 삶은 도전의 연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탁구 영웅' 유승민(36)의 목소리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2004년 유승민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중국의 왕 하오를 물리치고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탁구 남자 단식에선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라 불리던 중국 남자 탁구의 독주를 금빛 드라이브로 날린 유승민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6년. 유승민은 다시 험난한 도전에 나섰다. 무대는 아테네의 반대편에 위치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였다. 유승민은 금메달이 아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당선에 도전장을 던진 터였다.

한국 스포츠계는 유승민의 도전을 격려하거나 지원하는 대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심지어는 "유승민이 돼선 안 된다"는 뻔뻔한 만류까지 했다. 하지만, 유승민은 주저앉지 않았다.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23명의 후보자 가운데 당당히 2위로 IOC 선수위원에 뽑혔다.

해가 지나 유승민 IOC 위원은 2017년 또 다시 도전에 나섰다. '국제스포츠재단' 신임 이사장에 도전한 것이다. 이전까지 국제스포츠재단 이사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던 문대성 씨가 맡아왔다.

국제스포츠재단은 국제 스포츠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한국 최고의 '스포츠 외교' 조직이다. 한국 유일의 IOC 위원이자 한국 스포츠 외교의 중심 역할이 기대되는 유승민 IOC 위원을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한국 유일 IOC 위원 유승민

한국 유일의 IOC 위원 유승민(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한국 유일의 IOC 위원 유승민(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일정이 늘 꽉 차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닙니다(웃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제가 한국에서 유일한 IOC 위원이라, 더 발로 뛰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일정이 좀 많은 편입니다. '긍정의 에너지'로 열심히 활동 중입니다.

최근 페루에 다녀오셨죠?

페루 수도 리마에서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131차 IOC 총회가 있었어요. 전 오히려 국외에 나가 있는 게 편해요. 국내보단 국외에서 할 일이 더 많으니까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입니다. 라면을 좀 챙겨 먹는 편이긴 합니다만(웃음).

페루 IOC 총회에서 의미 있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보통 '총회'는 일 년을 결산하는 회의라, 이번에도 별다른 내용은 없었어요. 아, 한국에서 봤을 땐 2개의 소식이 있었겠네요.

어떤 소식?

첫 번째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께서 이번에 IOC 신임 윤리위원장에 임명되셨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2017년 8월 11일 자로 자진 사임한 이건희 IOC 위원께서 명예위원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반기문 IOC 윤리위원장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IOC 윤리위원회는 IOC 위원들의 비위를 자체 조사한다(사진=IOC)
(사진 왼쪽부터) 반기문 IOC 윤리위원장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IOC 윤리위원회는 IOC 위원들의 비위를 자체 조사한다(사진=IOC)

IOC 선수위원이 하는 일이 뭔지 궁금합니다.

선수위원은 IOC 다른 위원들과 같은 대우와 책임을 부여받습니다. 올림픽 개최지 결정권 등의 권한을 행사하죠. 임기는 8년이고, IOC 선수 분과위원회에 소속으로 활동하죠. 전 세계 선수들 권익과 복지에 관한 모든 걸 선수 분과위에서 회의하고, 관장합니다. 선수들이 올림픽의 꽃이고 중심인 만큼 선수들의 목소리가 가장 존중받아야 한다는 게 IOC의 생각입니다.

유 위원의 임무도 '선수 권익'에 집중돼 있겠군요.

맞아요. 선수 권익을 주로 담당하고 있어요. 선수들이 겪는 애로 및 어려움을 개선하고자 늘 노력하죠. 참고로 IOC 교육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 스포츠 외교만큼이나 스포츠 교육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IOC 선수위원 선거 때 대한민국 체육계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던 유승민. 하지만, 지금은 한국 스포츠 외교를 위해 혼자서 뛰는 중

IOC 선수위원으로 활동중인 유승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IOC 선수위원으로 활동중인 유승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IOC 위원이 받는 대우, 국빈급이라 들었습니다.

언론에 소개된 것처럼 호화롭진 않아요(웃음). 다만,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IOC나 각 나라 정부에서 신경을 많이 써줍니다.

IOC 위원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선수, 지도자 생활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바로 선수 권익이에요. IOC 선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선수들의 권익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단기필마'로 선거 유세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거 같아요. 처음엔 선수들로부터 외면을 많이 당했어요. 문대성 전 위원이 IOC 선수위원 선거 운동할 때 태권도 도복을 입고 선거 운동을 펼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선수위원에 도전할 땐 규정으로 그런 걸 금지했어요. 전 아시아인이고, 탁구가 그리 인기 있는 종목이 아니라, 발로 뛰고 진심을 보여주는 선거 운동을 펼칠 수밖에 없었어요.

꽤 힘들었겠습니다.

정말 힘들었죠(웃음). 그래도 느낀 게 많아요.

어떤 겁니까.

'세계 어디서든 진심은 통하는구나'였어요. 처음엔 절 외면하던 선수들이 꾸준히 진심을 보이니까 나중엔 자기들이 먼저 다가와 "힘내라"고 격려해주더군요. 덕분에 마지막까지 열심히 선거 운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힘들게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됐습니다만, 오히려 한국 스포츠는 지금 '외교 암흑기'란 소릴 듣고 있습니다. IOC 위원이 유 위원 한 명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속상합니다. 많은 부담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요. 사실 IOC 선수위원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 저에 대한 지원이 많지 않았어요. '스포츠 외교력 강화'란 측면에서 그런 점이 좀 아쉬웠던 게 사실입니다. 지금은 막중한 사명감을 느끼면서 몇 배는 더 일을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에 IOC 위원직을 수행한다는 것. 특별한 경험 아닐까 싶습니다.

동전의 양면 같아요.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면 칭찬받을 테지만, 안 되면 휴-. 상상하기도 싫네요(웃음). 전 평창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그만한 힘이 있어요. 저도 회의 가면 늘 IOC 위원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을 잘 맞이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합니다(웃음).

신임 국제스포츠재단 이사장직을 맡은 유승민 IOC 위원

현역 시절의 유승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현역 시절의 유승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또 하나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어깨가 무거운 일을 맡게 됐어요. 국제스포츠재단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IFs(국제연맹) 등 국제스포츠 기구들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국제스포츠 정보와 지식을 한국 체육계에 전달하고, 공유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곳입니다. 이를 위해 늘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어요. 재단이 가장 어려울 때 이사장을 맡아 정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국제스포츠재단이 한국 스포츠에 주는 순영향이 무척 크다는 생각입니다. 국외 스포츠 고급 정보를 국내에 전달하는 거의 유일한 창구 인데다 구성원들의 능력 역시 매우 뛰어나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좋은 콘텐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국제스포츠재단' 하면 딱 떠오르는 뭔가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재단의 정체성을 확립할 시기라고 봅니다. (양)준혁이 형이 하는 '양준혁 야구재단' 사업을 지켜봤는데요. 재능기부도 하고, 어린 유망주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처럼 우리 재단도 앞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스포츠 발전과 일상에서 볼거리가 많아지면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네.

(강한 어조로) 올림픽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함이 있어요. 올림픽 오륜기에서 나오는 올림픽 정신. 그 가치는 프로스포츠가 아무리 인기를 끈다고 해도 절대 넘어설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프로스포츠에 비해 올림픽이 부족할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4년에 한 번 올림픽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은 드라마 이상의 감동을 줍니다. 올림픽 무대를 위해 4년 동안 굵은 땀방울을 흘린 선수들의 노력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사진 왼쪽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때 선출된 선수위원들. 헝가리 수영 선수 출신 다니엘 규르타, 러시아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에바, 미국 안젤라 루기에로 IOC 선수위원회 의장, 유승민, 독일 브리타 하이데만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사진=IOC)
(사진 왼쪽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때 선출된 선수위원들. 헝가리 수영 선수 출신 다니엘 규르타, 러시아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에바, 미국 안젤라 루기에로 IOC 선수위원회 의장, 유승민, 독일 브리타 하이데만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사진=IOC)

평창 올림픽을 세계에 알려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땅이 넓지 않은 작은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보다 강한 힘이 있어요. 사실 강원도 평창은 평소 쉽게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작은 도시에서 이런 큰 대회를 개최하고, 공식 국제석상에서 '평창'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픽 개최도시는 아무 도시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평창 올림픽 경기장에 대한 사후 활용방안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봐요. 강원도 평창과 강릉에 마련된 경기장은 올림픽 레벨입니다. 즉,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겁니다. 그만한 시설을 가진 곳은 흔치 않아요. 또한, 2020년엔 일본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2022년엔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려요.

그렇지요.

우리가 대회를 끝내고 나서도 올림픽이 2번 더 동북아시아에서 열린다는 소립니다. 그렇다면 올림픽을 앞두고 참가국들이 연습할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에 걸맞은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평창이에요. 전지훈련지로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전 올림픽 적응훈련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평창이라고 봐요. 이런 점을 활용하기 위해 스포츠 외교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평창 올림픽에 대한 국외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사실 걱정하는 부분도 있고, 만족하는 부분도 있어요. 대회를 앞두곤 항상 우려와 걱정이 교차하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개최국들은 그런 것들을 잘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러왔어요. 우리나라가 가진 힘과 열정이 있기에 충분히 잘 개최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IOC 위원으로서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습니까.

IOC 선수위원 뽑을 때 선수들에게 약속한 게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선수들을 위해서만은 정말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앞으로 7년 남은 IOC 선수위원 기간에 선수들의 복지,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열심히 활동할 계획입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향후 80년, 800년이 지났을 때도 한국 스포츠 외교가 세계 강국과 견줘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외교력을 갖게 하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 정말 열심히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윤기 기자 stylekoo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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