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자격정지' 도핑 검사관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자격정지' 도핑 검사관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사진=엠스플뉴스)

+ 평창 동계올림픽, ‘자격정지’ 검사관이 도핑 검사 맡은 것으로 드러나

+ 문제 불거지자 ‘자격정지’를 ‘배정중지’로 바꿔 은폐에 나선 KADA

+ 일선 도핑 검사관들 “자격정지는 들어봤어도 배정중지는 금시초문"

+ KADA, '자격정지 검사관' 조사는 뒤로 하고, 공익 제보자들에게 겁박

[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는 3월 19일 '[단독] 평창올림픽, ‘자격정지’ 검사관이 도핑 검사했다' 기사를 통해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자격정지’ 상태인 도핑 검사관(DCO)들을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핑 핵심 인력과 도핑 검사관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자격정지'는 도핑 검사 과정에서 ‘중과실’을 범한 도핑 검사관에게 주어지는 중징계다. 중과실은 시료 번호 오기, 주요 정보 누락 등 검사의 유효성을 훼손시켜 검사의 취소를 초래하는 중대한 과실을 뜻한다. 중과실을 범한 도핑 검사관은 3개월간 검사 배정에서 제외되며, 소변 채취를 비롯해 도핑과 관련한 어떤 업무도 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엠스플뉴스의 취재 결과 KADA 전직 직원을 비롯한 일부 도핑 검사관이 중과실로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버젓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도핑 검사관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뿐 아니라 '자격정지 검사관'이 올림픽 도핑 전반을 관리하는 중요 업무인 ‘핵심 인력’까지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KADA가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KADA “'자격정지'는 오타, 원래 '배정 중지'라고 불러왔다.”

일선 도핑 검사관들 “'배정 중지'는 처음 듣는 말. KADA가 그동안 홈페이지에도 '자격정지'라고 표기했다.”

엠스플뉴스가 취재를 시작한 건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 끝났을 때였다. 당시 KADA(한국도핑방지위원회) 윤종구 기획운영부장은 "자격정지 도핑 검사관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도핑 검사 업무를 맡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도핑 검사관이 중과실을 범하면 '자격정지' 처리된다. 자격이 없으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DCO(도핑 검사관)로 활동하지 못한다”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윤 부장은 조금 뒤 다시 전활 걸어와 "자격정지 상태로 평창 올림픽에 참가한 알려진 이 모 도핑 검사관의 경우, 자격정지가 아니라 ‘배정중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씨가 평창 올림픽에서 도핑 관련 업무를 맡은 사실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배정중지가 도대체 뭘 뜻하는 말이냐"고 되묻자 윤 부장은 “더 정확한 내용은 KADA 도핑관리부 부장에게 문의하라”며 전활 끊었다.

KADA 도핑관리부를 책임지는 전인상 부장은 “우리는 그런 말(자격정지)를 쓰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 KADA는 원래부터 자격정지가 아닌 ‘배정중지’란 말을 써왔다"며 "‘배정중지’는 일시적으로 도핑 검사 배정을 중지시키고, 자숙 기간을 주는 의미의 처분”이라고 설명했다.

도핑 검사관 전용 홈페이지에 '자격정지'로 표기한 것에 대해선 “담당자가 (홈페이지에) 처분 결과를 쓰는 과정에서 '자격정지'라고 오타를 낸 것 같다”고 해명했다.

KADA 도핑 검사관 편람의 중과실 발생 시 조치 규정. 1회 오류 발생 시 3개월간 검사배정에서 제외하고, 3개월 후 검사를 재개할 수 있게 했다. 도핑 검사관 자격이 일시 정지되는 이 조치를 이전까지 KADA는 '자격정지'로 통보해 왔다.

KADA 도핑 검사관 편람의 중과실 발생 시 조치 규정. 1회 오류 발생 시 3개월간 검사배정에서 제외하고, 3개월 후 검사를 재개할 수 있게 했다. 도핑 검사관 자격이 일시 정지되는 이 조치를 이전까지 KADA는 '자격정지'로 통보해 왔다.

과연 그럴까. 엠스플뉴스가 접촉한 KADA 소속의 도핑 검사관들은 입을 모아 "'배정중지'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라고 답했다.

베테랑 도핑 검사관 A 씨는 “보통 중과실을 범한 도핑 검사관에겐 KADA가 ‘3개월간 자격정지 됐다’는 통보와 함께 '앞으로 3개월 동안은 어떤 대회에서도 도핑 업무를 볼 수 없다'는 설명을 들려준다"며 "그동안 홈페이지에도 누구나 볼 수 있게 '자격정지'라고 표기해 왔다”고 말했다.

도핑 검사관 B 씨도 “'배정중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며 “나만 해도 일전에 자격정지 처분을 받아 한동안 도핑검사 업무를 하지 못했다. 마침 국내에서 큰 국제대회가 열리는 기간이었는데, 자격정지 때문에 도핑 검사관 일을 할 수 없어 속이 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증언했다.

도핑 검사관 C 씨는 더 구체적인 증언을 들려줬다.

"동료 도핑 검사관의 실제 경험이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기간에 그 검사관이 도핑 검사관으로 선정돼 업무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중과실로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진 통에, 테스트 이벤트 때 모든 업무에서 배제됐다. KADA가 이토록 엄격하게 자격정지 도핑 검사관을 관리해왔는데 자격정지 검사관이 다른 대회도 아니고, 평창 올림픽에서 도핑 검사관으로 일했다? 믿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같은 중과실인데 누군 평창에 가고, 누구는 가지 못한 불공정한 일이 벌어진 거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지난해 '중과실'을 범한 도핑 검사관 20명 가운데 19명은 자격정지 기간인 3개월간 모든 도핑 검사와 업무에서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예외가 있다면 손 모 씨다. 손 씨는 지난해 12월 말 중과실을 범했다. 정상적이라면 손 씨는 2월에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도핑 검사관으로 근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버젓이 도핑 검사관으로 일했다.

손 씨는 “KADA로부터 '자격정지'라고 통보 받은 게 맞다.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며 “자격정지 기간이 평창 기간과 겹치긴 했지만, 올림픽 관련해 따로 통보받은 게 없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해도 문제가 안 될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KADA는 2016년 12월 평창 조직위와 동계올림픽 및 테스트 이벤트 기간 도핑관리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사진=평창 조직위)
KADA는 2016년 12월 평창 조직위와 동계올림픽 및 테스트 이벤트 기간 도핑관리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사진=평창 조직위)

그렇다면 어째서 KADA는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써왔던 '자격정지' 대신 '배정중지'라는 신조어를 급조한 것일까.

"자격정지는 말 그대로 도핑 검사관 자격을 ‘정지시킨다’는 의미다. '배정중지'는 단순히 도핑검사 배정에서만 뺀다는 뜻이다. 배정중지가 자격정지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뉘앙스를 풍기는 게 사실이다. KADA가 원래 쓰던 자격정지 대신 '배정중지'라는 신조어를 꺼내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 위해서다." 도핑 검사관 A 씨의 말이다.

KADA, 취재 시작되자 홈페이지 문구까지 조작

3월 6일까지 KADA 홈페이지 도핑 검사관 명단에는 '자격정지'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수년째 사용한 이 표현을 KADA 도핑검사부 부장은 '오타'라고 주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3월 6일까지 KADA 홈페이지 도핑 검사관 명단에는 '자격정지'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수년째 사용한 이 표현을 KADA 도핑검사부 부장은 '오타'라고 주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며칠 뒤 다시 확인했을 때는 문구가 '배정제외'로 바뀐 뒤였다(사진=엠스플뉴스)
며칠 뒤 다시 확인했을 때는 문구가 '배정제외'로 바뀐 뒤였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가 3월 6일 '자격정지'와 관련한 질의를 하자 KADA(한국도핑방지위원회)는 다음날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표기한 '자격정지'를 '배정제외'로 슬그머니 바꿔놨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엠스플뉴스 취재진은 KADA가 오랫동안 '자격정지'로 표기했다는 다양한 캡처와 증언을 확보한 터였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KADA 측은 "왜 '자격정지'를 '배정중지'로 바꿨느냐"는 취재진의 질의에 재차 "'자격정지'는 '배정중지'의 오타"라고 주장하며 "도핑 검사관 전용 페이지에 '자격정지'를 오해가 없도록 '배정중지'로 수정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KADA의 '오타 수정'은 또 다른 오타의 시작이었다. 기껏 '배정중지'란 신조어를 만들어 놓고서도, 정작 도핑 검사관 전용 페이지엔 '배정중지' 대신 '배정제외'라고 명기했기 때문이다.

KADA 사무총장, 위원장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위원장실은 불꺼진 상태였다(사진=엠스플뉴스)
KADA 사무총장, 위원장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위원장실은 불꺼진 상태였다(사진=엠스플뉴스)

홈페이지 표기가 바뀐 사실을 확인한 도핑 검사관 A 씨는 “홈페이지 표기가 바뀐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오랫동안 사용한 용어를 하루아침에 바꿔 놓고서 도핑 검사관들에겐 아무런 설명도 하질 않아 다들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KADA가 얼마나 부정직하고 투명하지 못한 조직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 아니겠냐”고 말했다.

도핑 검사관 C 씨는 "문제의 본질은 KADA가 도핑 검사관의 자격을 평창 조직위에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고, 조직위 역시 KADA 측에 제대로 확인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전에 열린 모든 국제대회에서 자격정지 검사관을 배제해 놓고, 정작 가장 크고 중요한 올림픽에선 검사관 자격 확인을 소홀히 한 셈"이라며 "명백한 실수를 감추고 회피하려다 보니 계속 배정중지니, 배정제외니 하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성 대신 일선 도핑 검사관 겁박하는 KADA.

쳬육계 인사들 "KADA 같은 조직에 한국 도핑 맡겨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

KADA 사무실 벽에 붙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포스터. 이 중요한 대회에 검사관의 자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건 심각한 문제다(사진=엠스플뉴스)
KADA 사무실 벽에 붙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포스터. 이 중요한 대회에 검사관의 자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건 심각한 문제다(사진=엠스플뉴스)

오랫동안 도핑 검사관으로 일한 D 씨는 "착오가 있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문제를 시정하면 되는데, KADA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말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이번에도 문체부가 뒤를 봐주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니 저렇듯 큰 실수를 범하고도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라며 "말만 바꿨다뿐이지 배정중지든 배정제외든 올림픽에 문제 검사관을 배정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 아니냐"고 일갈했다.

덧붙여 “평창에 간 자격정지 도핑 검사관들은 자원봉사자로 일한 게 아니다, 전문인력으로서 KADA 규정에 따라 수당을 받고, 각종 혜택을 받았다”며 “국내에서 열린 작은 대회도 아니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올림픽에서 도핑 검사관 자격을 이런 식으로 소홀히 취급했다는 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KADA가 도핑 검사도 홈페이지 조작하듯 처리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 부정직하고 투명하지 못한 기관에 '도핑 검사'라는 중대한 일을 계속 맡겨도 될지, 심각하게 논의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가장 우려 되는 건 자격정지 검사관이 검사한 도핑검사 결과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복수의 국내 도핑 전문가들은 “올림픽에서 도핑에 적발된 선수 가운데 ‘자격정지 도핑 검사관'이 검사한 선수가 있다면, 검사 결과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며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WADA(세계반도핑기구) 차원의 진상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 취재 후 : 엠스플뉴스 취재진이 “일선 도핑 검사관들은 ‘배정중지나 배정제외 같은 단어는 들어본 적 없다’고 증언한다”고 하자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전인상 부장은 “그 도핑 검사관들이 검사관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도핑 검사관은 검사 관련 기밀 사항을 결코 외부에 발설하지 않기로 서약했다. 언론에 기밀 사항을 유출한 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만 알고 계시라”며 목소릴 높였다.

거대 기업이 공익 제보자를 겁박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을 KADA가 그대로 따라하는 현실. 이것이 한국 도핑의 민낯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출신의 KADA 김춘섭 사무총장은 엠스플뉴스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김 총장의 문체부 후배이자 KADA를 담당하는 문체부 정원상 국제체육과 과장은 19일 세종 청사로 찾아간 취재진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한 뒤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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