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빙상경기연맹의 ‘사유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빙상연맹은 전체 예산 가운데 국민 세금이 50% 이상 되는 단체지만, 연맹은 극소수에 의해, 극소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 중심에 삼성이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사유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빙상연맹은 전체 예산 가운데 국민 세금이 50% 이상 되는 단체지만, 연맹은 극소수에 의해, 극소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 중심에 삼성이 있다(사진=엠스플뉴스)

- 빙상연맹, 관리단체 지정 위기에도 '모르쇠' 일관

- 빙상연맹 1년 예산의 52%는 국민 세금.

- 체육계 “빙상연맹은 ‘김재열 IOC 위원 만들기’가 목적인 곳”

- 2016년 ISU 선거에서 김재열 선거운동에 매진했던 빙상연맹. 기술위원으로 출마한 채지훈은 홀대로 일관. 채지훈 “북한도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줬지만…”

[엠스플뉴스]

법정관리 아시죠? 파산 위기에 몰린 회사들이 법정관리를 받잖아요. 체육계에선 법정관리가 ‘관리단체’에요. 파탄 직전까지 몰린 스포츠 단체들이 관리단체로 지정받기 때문입니다. 관리단체까지 갔다면 그 스포츠 단체 수장은 무한 책임을 느끼고, 단체 구성원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합니다.

5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의 ‘빙상연맹 특별감사 결과’를 지켜본 박지훈(법무법인 태웅) 변호사의 말이다. 문체부는 감사 발표에서 “특정 인물이 빙상계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권한도 없이 빙상연맹 업무에 개입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며 그동안 빙상연맹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돼온 만큼 대한체육회에 빙상연맹을 관리단체로 지정할 것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약 대한체육회가 관리단체로 지정한다면 빙상연맹은 집행부 총사퇴와 함께 ‘사무국 권한 정지‘란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다.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발끈했던 빙상연맹. 문체부 감사결과가 나오자 ‘침묵 모드’ 돌입


문체부의 강도 높은 감사로 빙상연맹의 민낯이 드러나게 전까지, 빙상연맹은 각종 논란과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사실확인과 반성 대신 ‘부정’과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는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저 난리냐”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실제로 엠스플뉴스가 단독 입수한 4월 20일 빙상연맹 이사회 녹취록에서 김상항 회장은 우리 이사님들의 울분이 많이 쌓였을 것이란 말로 ‘막장 행정’으로 상처받은 선수, 지도자, 빙상 팬들보다 ‘우리 이사님들’을 더 챙기기에 바빴다.

한술 더 떠 일부 이사는 “연맹이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 “사실이 왜곡됐다.”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고 발끈하며 “우호적인 언론을 확보해 연맹 주장을 보도하자”는 철지난 언론 플레이 반격안을 내놓기까지 했다.

문체부 감사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빙상연맹의 ‘모르쇠’는 여전하다. 빙상연맹은 문체부 감사 발표 이후, 단 한 줄의 입장문은 고사하고,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연맹이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던 이사들 역시 문체부가 빙상연맹에 무려 49건의 감사처분을 알리는 ‘무더기 부끄러운 일’이 발생했음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빙상연맹 회장사인 삼성도 입을 다물고 있긴 마찬가지다. 빙상연맹은 회장부터가 삼성에서 나온 사람이다. 부회장 두 명, 사무처 국장, 홍보 책임자 역시 삼성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그동안 빙상연맹의 일부 이사는 “빙상연맹이 곧 삼성이다. 삼성이 힘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는 말로 변화를 바라는 젊은 빙상인들을 겁박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ISU 선거를 앞두고 ‘ISU 내부 실력자’가 전명규 전 부회장에게 보낸 이메일. 삼성이 어떻게 ISU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잘 보여주는 이메일이다(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ISU 선거를 앞두고 ‘ISU 내부 실력자’가 전명규 전 부회장에게 보낸 이메일. 삼성이 어떻게 ISU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잘 보여주는 이메일이다(사진=엠스플뉴스)

1997년 빙상연맹 회장사가 된 이후 삼성은 빙상 발전을 위해 여러 지원을 했다. 삼성의 빙상 지원은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쇼트트랙에 이어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에서도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역시 삼성 공이 컸다는 게 체육계의 중평이다.

하지만, 빛에만 주목하기엔 그림자도 그만큼 짙었다. 많은 빙상인은 “삼성이 21년 동안 빙상연맹의 회장사를 맡으면서 외형적 성과는 거뒀을지 몰라도 내적으론 부정의와 불공정이 심화했다”고 주장한다.

한 실업빙상단 지도자는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신분의 전명규 전 부회장이 빙상계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도 ‘메달만 따주면 OK’란 의식이 팽배했던 회장사 삼성의 묵인과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목소릴 높였다.

따지고 보면 문체부 감사결과로 밝혀진 여러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빙상연맹 운영은 지금 갑자기 드러난 게 아니다. 전명규 전 부회장의 전횡과 절대권력 행사를 삼성이 몰랐던 것도 아니다.

과거서부터 꾸준히 ‘관행’과 ‘비밀주의’ 속에서 지속해온 각종 불공정과 부정의가 이번 감사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을 뿐이고, 지금껏 전명규 전 부회장을 앞세워 빙상계를 지배했던 회장사 삼성의 비호가 2018년 5월이 돼서야 세상에 알려진 것뿐이다. 관리단체 지정까지 검토될 만큼 만신창이가 된 빙상연맹을 보면서 체육계 행정가들이 ‘삼성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이나 빙상연맹이 말이 없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빙상연맹이 호성적의 배경으로 ‘삼성의 전폭적 지원과 관심’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태도다.

빙상연맹 순수 예산의 52%를 부담하는 건 국민 세금

2018년 빙상연맹 예산(사진=엠스플뉴스)
2018년 빙상연맹 예산(사진=엠스플뉴스)

‘삼성 책임론’이 나오자 빙상계 일각에선 “삼성이 회장사에서 물러난다는 건 한국 빙상계의 젖줄이 끊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이 아니면 그 많은 빙상연맹 예산을 누가 감당하겠나. 당장 연맹 살림이 쪼그라들어야 삼성의 고마움을 알겠느냐”는 말로 ‘삼상 사수론’을 펼치고 있다.

과연 삼성이 없으면 정말 빙상연맹의 젖줄이 끊기고, 연맹 살림이 쪼그라들까.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2018년 빙상연맹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빙상연맹 전체 예산은 120억 6천 742만 9천 278원이다. 이월금(34억 4천만 원)을 빼면 86억 원이 ‘순수 예산’이다. 이 가운데 회장사 삼성이 내는 돈은 17억 원이다.

대한체육회가 45억 3천만 원으로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SK 텔레콤·KB 금융·동아오츠카·영원무역 등이 마케팅비로 17억 4천500만 원을 모아 낸다. 여기다 국내·외 대회 각종 수익금과 지원금(5억 8천 500만 원), 기타수입(6천300만 원) 등도 전체 예산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예산안만 본다면 빙상연맹의 가장 큰 젖줄은 삼성이 아니라 대한체육회, 즉 국민 세금이다. 순수 예산 가운데 52%를 국민 세금인 까닭이다. 삼성에서 파견된 빙상연맹 직원은 “삼성은 17억 원을 내면서도 어떤 이익도 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6년 6월 ISU 총회가 끝나고 회장, 부회장, 집행위원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 앞줄 맨 왼쪽에서 두 번째가 스포이체브(삼성으로부터 갖가지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한 이), 세 번째가 김재열, 네 번째가 양양, 여섯 번째가 디케마 회장이다(사진=ISU)
2016년 6월 ISU 총회가 끝나고 회장, 부회장, 집행위원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 앞줄 맨 왼쪽에서 두 번째가 스포이체브(삼성으로부터 갖가지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한 이), 세 번째가 김재열, 네 번째가 양양, 여섯 번째가 디케마 회장이다(사진=ISU)

하지만, 체육계는 삼성 지원금 17억 원에 ‘사심이 충분하다’고 본다. 한 체육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빙상연맹 최고 역점 사업이 무엇인지 체육계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김재열 전 빙상연맹 회장 ‘IOC 위원 만들기’다. 얼마 전 ‘삼성이 직접 나서 ISU(국제빙상경기연맹) 내부 실력자에게 핸드폰을 주는 등 갖가지 선물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선물을 준 이유가 뭔가? 김 전 회장을 ISU 집행위원에 당선시키기 위해서였다. ISU 집행위원에 당선되는 게 IOC 위원이 되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지름길이란 삼성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수백억 원을 쏟아부어도 ‘자력’으로 될 수 없는 IOC 위원을 그 정도 돈을 투자해 거머쥘 수 있다면…삼성 입장에선 ‘밑지는 장사’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국회 전문위원으로 일했던 인사는 “빙상연맹만큼 국민과 집권층에 어필할 수 있는 스포츠협회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스포츠에서 확실한 ‘올림픽 메달밭’은 하계에선 양궁, 동계에선 빙상의 쇼트트랙이다. 양궁은 현대가 회장사고, 빙상은 삼성이 회장사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나올 때마다 해당 종목에 대한 전국민의 격려가 쏟아지고, 집권층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런 격려와 관심을 어느 종목 회장사가 받을 수 있겠나. 특히나 올림픽이 끝나면 청와대에서 항상 초청해 오찬을 한다. 회장사 기업으로선 이보다 좋은 눈도장 기회도 없다. 삼성이 ‘대가 없이 빙상을 후원한다’는 건 기업 논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2010년 3월 3일 이명박 대통령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엔 당시 IOC 위원이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참석했다. 오찬 간담회가 끝나고서 정확히 21일 후, 이 회장은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검수사’로 회장직에서 퇴진한 지 23개월 만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한다.

2014년 3월 5일엔 박근혜 대통령이 소치 동계올림픽 선수단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자리엔 이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당시 빙상협회 회장이 ‘올림픽 선수단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체육계엔 “김 회장이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 체육계에서 ‘실력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평이 많다.

2016년 ISU 총회에서 ‘김재열 회장 ISU 집행위원 만들기’에 올인했던 빙상연맹. 같은 총회에 ISU 기술위원으로 출마한 채지훈에 대해선 무시로 일관. 빙상연맹을 사유화한 건 전명규만이 아니다.

문체부의 감사결과는 많은 국민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의 모든 의혹과 논란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빙상연맹은 반성과 책임 대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문체부의 감사결과는 많은 국민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의 모든 의혹과 논란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빙상연맹은 반성과 책임 대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문체부의 충격적인 감사 발표에도 빙상연맹이 침묵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스포츠 외교 전문가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삼성도 빙상계에서 손을 떼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6월 5일부터 8일까지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리는 제57차 ISU 총회까진 어떻게든 버티려 할 것이다. 이 총회에서 ISU 회장, 부회장, 집행위원, 기술위원 등을 뽑고, ‘ISU 몫의 IOC 위원으로 누굴 낙점할지’ 논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총회에서 김재열 전 회장이 ISU 집행위원 선거에 다시 출마할 예정이다. 그는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ISU 몫의 IOC 위원’ 후보다. 삼성은 지금 빙상연맹 감사나 관리단체 지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2016년 6월, 빙상연맹은 불가리아에서 열린 ISU 총회에 무려 10명의 인사를 파견했다. 다른 나라 대표단보다 월등히 큰 규모였다.

당시 총회에 참가했던 한 빙상계 인사는 “이렇게 많은 대한민국 빙상 대표단이 총회에서 한 일이 뭔지 아나? 김재열 회장의 ISU 집행위원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이었다. 당시 한국 대표단이 ‘맨투맨’식으로 선거운동을 펼친 덕분에 김재열 회장이 2위로 집행위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며 “그분들이 ‘김 회장이 ISU 집행위원이 돼야 한국 빙상 위상이 올라간다’고 주장하고 다녔지만, 정작 한국인으로 ISU 기술위원에 출마한 채지훈 후보에 대해선 도움은 고사하고, 무시로만 일관했다”고 폭로했다.

실제로 ‘빙상연맹에 단단히 찍혔다’고 소문났던 채지훈은 ISU 쇼트트랙 기술위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채지훈은 “심지어 북한 대표에게조차 ‘당신에게 투표했다. 열심히 해라’는 얘길 들었지만, 한국 대표단으로부터 지원은커녕 ‘수고한다’는 흔한 격려조차 들은 기억이 없다”고 고백했다.

2016년 예산 세출 기록에 따르면 빙상연맹은 김재열 회장이 출마한 56차 ISU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7천만 원을 썼다. 항공료와 체재비로 5천만 원, 활동비와 선물비로 1천 500만 원, 기타경비로 500만 원을 썼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2018년 빙상연맹 예산 세출부’에 따르면 빙상연맹은 6월 5일부터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릴 예정인 ISU 총회 파견비로 4천 791만 원을 책정했다. 2년 전 총회 때보다 2천 200만 원가량 줄었다. 하지만, 파견 인원은 총 10명으로 2년 전과 다르지 않다.

2018년 빙상연맹 세출부에 기록된 'ISU 총회 파견비'. 2년 전처럼 이번에도 10명이 스페인으로 떠나 7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엠스플뉴스)
2018년 빙상연맹 세출부에 기록된 'ISU 총회 파견비'. 2년 전처럼 이번에도 10명이 스페인으로 떠나 7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엠스플뉴스)

이 많은 인원이 2년 전처럼 김재열 전 회장 ISU 집행위원 재선 선거운동에 투입될지 지켜볼 일이다. 중요한 건 2년 전엔 김재열 전 회장이 빙상연맹 회장이었지만, 지금은 빙상연맹과 ‘무관’한 사람이란 것이다.

문체부의 감사결과를 통해 많은 빙상인은 ‘빙상연맹이 특정인(전명규)에게 사유화됐다’는 의심이 명백한 사실이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빙상연맹을 사유화한 건 전명규 전 부회장만이 아니었다. 빙상연맹은 여전히 ‘사유화’된 상태다.

‘사유화’된 빙상연맹을 빙상인과 빙상팬들에게 돌려주려면 ‘관리단체 지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삼성도 이와 관련해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 그것이 회장사다운 태도다.

박동희, 이동섭 기자 dhp1225@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