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출연금 공약’으로 당선된 레슬링협회장

-대한체육회 경영공시엔 회장 출연금 ‘0’원, 레슬링협회 내부 자료엔 9천만 원 기재

-레슬링계 “부회장이 낸 1억 원 중 9천만 원 회장이 냈다고 거짓 회계” 폭로

-“회장 선거 때 불법 스포츠토토 자금 흘러갔는지 수사 필요” 주장

대한레슬링협회 이정욱 회장(사진=엠스플뉴스)
대한레슬링협회 이정욱 회장(사진=엠스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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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뉴스]

이정욱 현 대한레슬링협회장은 레슬링계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로 통한다.

통합 대한레슬링협회장 선거가 열린 2016년 10월 전까지만 해도 레슬링계에서 ‘이정욱’이란 이름을 아는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 회장은 레슬링 선수 출신도, 레슬링계와 특별히 인연이 있던 이도 아니었다. 이건희 레슬링협회 명예회장처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기업인은 더욱 아니었다.

굳이 레슬링계와의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레슬링 국가대표 박00 감독과 같은 사회인야구팀 소속이란 게 전부였다.

그런 이 회장이 2016년 10월 레슬링협회 회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체육계에선 대뜸 “이정욱이 누구냐”는 말이 나왔다. ‘무명’의 이정욱 회장은 어떻게 대한민국에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레슬링계의 수장이 된 것일까.

레슬링계 “이정욱 회장, 실세 레슬링인과 ‘파격 출연금’ 공약 덕분에 당선”

대한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직접 투자금을 대고, 수익금을 나눠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레슬링협회는 11월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엠스플뉴스 기사가 허위와 추측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에 해당 사건이 청원되면서 불법 스포츠토토 건과 관련해 레슬링협회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진행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레슬링협회 사무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직접 투자금을 대고, 수익금을 나눠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레슬링협회는 11월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엠스플뉴스 기사가 허위와 추측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에 해당 사건이 청원되면서 불법 스포츠토토 건과 관련해 레슬링협회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진행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레슬링협회 사무실(사진=엠스플뉴스)

레슬링인들은 입을 모아 이정욱 회장의 당선 비결로 레슬링계에서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는 김00 대한레슬링협회 현 사무처장의 전폭적인 선거지원을 꼽았다.

레슬링인 A 씨는 “이 회장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한 대표적 인물이 레슬링 대표팀 코치 출신의 김00 처장”이라며 “이 회장이 레슬링협회 수장으로 당선된 뒤 김00가 협회 살림을 책임지는 처장에 올랐다“고 증언했다.

A 씨에 따르면 레슬링 국가대표팀 박00 감독과 이정욱 회장은 같은 사회인야구팀에서 뛰었다. 이 인연으로 박 감독이 ‘협회 정권 창출’을 계획하던 김 처장에게 이 회장을 소개했다는 게 A 씨의 설명이다. 참고로 김 처장은 전현직 레슬링인들이 만든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자금을 대고, 불법 자금을 받아 합법 사업체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레슬링인 B 씨는 “'무명' 이정욱 회장의 당선 비결이 하나 있었다“며 ‘파격적인 찬조금 출연 공약’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고 힘줘 말했다.

이 회장 선거운동 진영에서 ‘이 후보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다. 최소 5억 원 이상 출연금을 낼 거다. 이제 협회 재정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선거운동 때 대의원들을 상대로 그런 말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고 다닌 사람이 바로 김 처장이다. 거액 출연금이 아니라면 이 회장을 협회 수장으로 뽑을 이유가 없었다. B 씨의 말이다.

협회의 만성적인 재정 적자로 어려움을 겪어온 레슬링인들에게 이 회장 진영의 ‘거액 출연금’ 약속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일지 몰랐다. 다른 경쟁 후보는 이 후보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금 3억 원을 약속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파격적인 출연금’ 공약에 힘입어 레슬링계에도, 재계에도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이정욱이 제35대 레슬링협회 회장에 올랐다는 게 레슬링인들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이 회장은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회장은 엠스플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상대 후보가 그런 말을 했을지 몰라도 난 출연금을 얼마씩 내겠다고 한 적이 없다. 그보단 ‘레슬링을 바로잡아보겠다’ ‘최대한 협찬사를 많이 끌어와 협회 재정이 풍요롭게 나갈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말을 주로 했다고 밝혔다.

“9천만 원 이상 냈다”면서도 언제, 어떻게 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회장

대한체육회 경영공시. 레슬링협회 회장, 임원 기부금이 0원으로 돼 있다. 이정욱 회장은 레슬링협회 회장 선거 당시 “최대한 협찬사를 많이 끌어와 협회 재정을 풍요롭게 하겠다“고 공약했으나, 협찬금 역시 0원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체육회 경영공시. 레슬링협회 회장, 임원 기부금이 0원으로 돼 있다. 이정욱 회장은 레슬링협회 회장 선거 당시 “최대한 협찬사를 많이 끌어와 협회 재정을 풍요롭게 하겠다“고 공약했으나, 협찬금 역시 0원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거액의 출연금 공약으로 당선됐다”는 레슬링인들의 주장과 “난 출연금을 얼마씩 내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맞서는 이정욱 회장.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할 게 있다. 과연 ‘이 회장은 레슬링협회 수장이 되고서 출연금을 얼마나 냈을까’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2017년 대한체육회 회원종목단체 경영공시엔 이 회장의 협회 출연금(찬조금)이 ‘0원’으로 표시돼 있다. 한푼도 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한체육회 경영공시와 달리 레슬링협회가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공개한 협회 ‘2017년 수지결산서’의 수입지부 찬조금 내용엔 ‘회장님 찬조금’이 9천만 원으로 기재돼 있다. 이켄 부회장은 1천만 원이다. 주목할 건 '회장님 지인 기부금 1억 원'이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체육회 경영공시와 달리 레슬링협회가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공개한 협회 ‘2017년 수지결산서’의 수입지부 찬조금 내용엔 ‘회장님 찬조금’이 9천만 원으로 기재돼 있다. 이켄 부회장은 1천만 원이다. 주목할 건 '회장님 지인 기부금 1억 원'이다(사진=엠스플뉴스)

하지만, 엠스플뉴스가 추가로 입수한 자료는 달랐다. 레슬링협회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공개한 협회 ‘2017년 수지결산서’의 수입지부 찬조금 내용엔 ‘회장님 찬조금’이 9천만 원으로 기재돼 있었다. 대한체육회 경영공시엔 0원이던 회장 출연금이 어째서 레슬링협회 자료엔 9천만 원으로 적힌 것일까.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 공시에 회장 출연금이 ‘0원’인 것에 대해 그건 내가 잘 모른다. 사무국에 물어보라며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의원총회 제출 자료에 나온 ‘찬조금 9천만 원’에 대해선 회장 선거 때 (낸) 기탁금 5천만 원을 (찬조금으로) 전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9천만 원보다 더 될 거다. 작년 세계선수권대회 갈 때도 내가 한 5천만 원 냈을 거다. 그렇게 아마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니까 찬조금 9천 만원은 확실히 ‘내가 낸 돈’이지만, 정확히 언제 얼마나 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선거 기탁금 5천 만원을 찬조금으로 전환했다’는 주장에 대해 체육단체 회계 담당자는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고갤 갸웃했다.

이 회계 담당자는 “찬조금은 말 그대로 회장과 부회장이 협회 발전을 위해 내는 돈이다. 반면 선거 기탁금과 기부금은 ‘기타 수입’이다. 찬조금과 선거 기탁금, 기부금은 회계상 별개 항목이다. 따라서 선거 기탁금을 찬조금으로 전환하는 회계 처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만약 선거 기탁금을 찬조금으로 전환했다면 왜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 경영공시엔 9천만 원을 냈다고 기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회장이 낸 출연금 ‘1억 원’, 왜 1천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나

대한레슬링협회 2017 수지결산총괄표(오른쪽)와 손익계산서(왼쪽). 다른 항목은 모두 일치하나, 기부금과 찬조금 총액은 4천만 원 차이가 난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레슬링협회 2017 수지결산총괄표(오른쪽)와 손익계산서(왼쪽). 다른 항목은 모두 일치하나, 기부금과 찬조금 총액은 4천만 원 차이가 난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레슬링협회 2017 수지결산총괄표(오른쪽)와 손익계산서(왼쪽). 다른 항목은 모두 일치하나, 기부금과 찬조금 총액은 4천만 원 차이가 난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레슬링협회 2017 수지결산총괄표(오른쪽)와 손익계산서(왼쪽). 다른 항목은 모두 일치하나, 기부금과 찬조금 총액은 4천만 원 차이가 난다(사진=엠스플뉴스)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은 또 있다. 레슬링협회가 정기 대의원총회에 제출한 ‘2017년 수지결산서’의 수입지부 찬조금 내역엔 ‘회장님 찬조금 9천만 원’과 이켄 부회장님 찬조금 1천만 원이 함께 기재돼 있다. 둘의 찬조금을 합치면 정확히 ‘1억 원’이다.

회장이 부회장보다 더 많은 찬조금을 내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취재 중 만난 레슬링인들은 이정욱 회장은 9천만 원을 낸 적이 없다. 이켄 부회장도 1천만 원을 내지 않았다. 이 회장의 9천만 원과 이 부회장의 1천만 원을 합한 1억 원 모두 이 부회장이 냈다고 폭로했다.

레슬링계에서 이켄 부회장이 찬조금으로 1억 원을 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회장도 1억을 내는데 회장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대의원총회 자료를 봤는데 이 회장이 9천 만원, 이 부회장이 1천만 원을 찬조금으로 낸 것으로 돼 있었다.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레슬링인 A 씨의 얘기다.

이정욱 회장은 엠스플뉴스 취재진에 “2017년 이켄이 1천만 원, 내가 기탁금 낸 거 5천만 원을 (찬조금으로) 전환했다”며 이 부회장이 1억 원을 낸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켄이 1억을 냈다. 2017년 초에 1억을 낸 것으로 안다”고 말을 바꿨다.

부회장이 낸 1억 원이 대의원총회 자료에선 1천만 원으로 둔갑하고, 대한체육회 경영공시엔 ‘0원’인 회장 찬조금이 대의원총회 자료에선 ‘9천만 원’으로 불어나는 기적.

이 문제를 처음 발견한 레슬링인 D 씨는 “레슬링협회가 회계 자료를 조작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며 “이켄 부회장이 1억 원을 냈다면 사라진 9천 만원이 누구 수중으로 들어갔는지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 밝혀야 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레슬링계가 ‘협회 자료 조작’을 의심하는 이유는 더 있다. 협회가 대의원총회에 제출한 손익계산서와 수지 결산 총괄표의 ‘기부금+찬조금 총액’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레슬링인 E 씨는 엠스플뉴스 취재진에 2017 수지 결산총괄표엔 기부금, 찬조금을 합한 항목이 ‘3억 원’으로 돼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손익계산서를 보면 기부금이 2억 원에 찬조금 6천만 원으로 총액이 2억 6천만 원이다. 4천만 원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장부를 허위 기재했거나, 4천만 원을 누군가 횡령하지 않았다면 이 돈이 사라질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레슬링협회 경리업무는 2016년 11월부터 이00 사원이 담당하고 있다. 레슬링계에서 이00 사원은 이 회장의 친척으로 알려졌다. 채용공고가 나기 전부터 협회 근무를 시작했단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회장은 이와 관련해 “나완 관계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이00 사원은 입사 때부터 다른 사원은 물론 대리보다도 평균 50만 원 이상 많은 급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엠스플뉴스에 여러 자료를 제공한 공익 제보자는 “김 처장과 박 모 감독을 비롯한 몇몇 레슬링인이 전권을 휘두르려고 ‘명목상 회장’을 세운 게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됐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목상 회장’을 당선시키는데까진 성공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파격적 출연금’을 약속했으나 정작 회장이 출연금을 내지 못하면서 회장 옹립 세력이 코너에 몰렸다. 부회장 출연금을 회장이 낸 것처럼 회계 조작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의혹투성이인 찬조금 뿐만 아니라 2016년 10월 회장 선거 때 이 회장 측이 사용한 선거운동 자금과 선거 기탁금에 대한 사법기관의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불법 스포츠토토 수익금이 흘러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동희, 배지헌, 박찬웅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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