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사진=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사진=대한축구협회)

[엠스플뉴스]

김호곤 부회장이 국회 제출한 ‘국감 불출석 사유서’ 입수

김 부회장 “히딩크 논란 끝났고, 러시아 월드컵 준비에 바쁘다.”

국회 “히딩크건보다 축구협회 실정과 행정 난맥 짚으려 출석 요구한 것”

축구협회가 내세웠던 ‘FIFA 징계 겁박’, 사유서엔 단 한줄도 없다.

| “김호곤 부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면 자칫 '외부 간섭'으로 비쳐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김 부회장의 불출석 사유다. 하지만,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김 부회장이 국회에 제출한 ‘국감 불출석 사유서’엔 이런 내용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은 10월 10일 국회 교육문화관광위원회(교문위) 유성엽 위원장에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김 부회장은 사유서를 통해 “국정감사에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 관련’의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청받았으나, 출석하기 어려움을 알려드리오니 양해 바란다”는 불출석 결정을 전했다.

9월 초 ‘히딩크 한국 대표팀 감독설’이 불거졌을 때 김 부회장은 극도의 불쾌감을 나타내며 “히딩크 측으로부터 어떤 제안이나 접촉도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히딩크 전 감독이 기자회견을 통해 “신태용 감독 선임 전인 6월부터 축구협회 측에 ‘한국 축구를 위해 기여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털어놓으며 ‘김호곤 거짓말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김 부회장은 “어떤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고, 문자나 메시지로 주고받은 것도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 부회장과 히딩크재단 노 사무총장이 주고 받은 SNS(사회관계망) 메시지 내용이 공개되며 김 부회장은 재차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축구협회가 국회에 제출한 ‘김호곤 부회장 불출석 사유서’ 입수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김호곤 부회장이 국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김호곤 부회장이 국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사진=엠스플뉴스)

파문이 커지자 국회 교문위는 이 문제를 국감에서 다루기로 했다. 그리고 회의를 거쳐 김 부회장의 증인 채택에 여·야 합의를 이뤘다.

일각에선 ‘히딩크 감독 논란을 다룰 만큼 국회가 한가한 곳인가’라는 비판적 목소릴 냈다. ‘국민적 관심이 큰 이슈를 이용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교문위의 한 의원은 “단지 히딩크 하나 때문에 증인으로 신청한 것은 아니다. 축구협회는 최근 전·현직 임직원이 골프장, 유흥업소에서 법인카드를 1억 원대나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밖에도 알려지지 않은 적폐가 적지 않다. 논란의 중심에 선 김 부회장을 증인대에 세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게 교문위원들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은 국감 증인 출석을 거절했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불출석 사유는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최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히딩크 감독을 직접 면담하였으며, 히딩크 감독은 우리 대표팀과 관련하여 개인 사정상 공식적인 직책을 맡지 않는 것으로 협의되었다.

두 번째.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은 고유한 축구행정 업무의 하나로서, 다소 혼선이 있더라도 축구계 내에서 자체 논의하여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세 번째. 내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우리 축구대표팀의 준비를 위해 러시아 현지 베이스캠프 후보지 선정 및 해외 코칭스태프 추가 선임 업무차 해외 출장 중인 관계로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다.

교문위 위원들 “김 부회장의 불출석 사유, 한마디로 표현하면 국회와 축구팬을 개, 돼지로 아는 것”

국회 국정감사에 대한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이 불출석 의사를 알렸다. 사진은 지난해 교문위 국감 당시 텅 빈 증인석(사진=MBC)
국회 국정감사에 대한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이 불출석 의사를 알렸다. 사진은 지난해 교문위 국감 당시 텅 빈 증인석(사진=MBC)

그렇다면 과연 김 부회장이 국회에 제출한 국감 불출석 사유에 대한 교문위 관계자들과 축구계의 생각은 어떨까

첫 번째 불출석 사유와 관련해 한 교문위 의원은 다음과 같이 분개했다.

“국감에서 다룰 만한 사건인지 아닌지는 증인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판단할 일이다. 축구협회의 일 처리 과정에 문제점을 따져보려고 신청한 증인인데, 증인 멋대로 ‘문제가 해결됐으니 안 나가도 된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건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일이다.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겠다.”

두 번째 불출석 사유에 대해선 다른 교문위 의원이 반박했다.

“축구협회가 국감 대상이 된 건 협회가 자초한 일이다. 그간 축구협회는 온갖 실정과 행정 난맥으로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축구협회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자정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정치권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항변하기 전에, 오죽하면 국회까지 나섰을지 생각해 보는 게 순서다.”

세 번째 불출석 사유와 관련해선 많은 의원이 한목소릴 냈다.

“교문위에서 출석 요구서를 전달한 게 9월 29일이다. 그런데 출석 요구를 받고도 10월 2일 버젓이 출국해서 출석 요구일(10월 13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 ‘불출석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베이스캠프 사전 답사는 부회장이 직접 가지 않고, 실무직원이 처리한 뒤 보고만 받아도 될 일이다. 이걸 핑계로 불출석 하겠다는 건 국회와 축구팬을 ‘개, 돼지’로 알기 때문이다.”

김호곤 부회장(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한국-모로코전을 관전하다가 눈을 감고 있는 장면(사진=MBC)
김호곤 부회장(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한국-모로코전을 관전하다가 눈을 감고 있는 장면(사진=MBC)

참고로 축구 대표팀과 동행하며 7일 열린 러시아전, 10일 모로코와 평가전을 관전했다. 모로코와 평가전에선 김 부회장이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이 중계 화면에 포착되면서 축구팬의 거센 비난을 샀다.

김 부회장은 1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외국인 코치 면접을 치른 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2곳의 베이스캠프 후보지를 방문하고, 15일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 일정을 절묘하게 피해 가는 스케줄이다.

‘김호곤 불출석 사유서’에 ‘국감 출석하면 FIFA 제재를 받는다’는 내용은 한 줄도 나와 있지 않다.

김호곤 부회장(사진 맨 왼쪽)이 대한축구협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MBC)
김호곤 부회장(사진 맨 왼쪽)이 대한축구협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MBC)

흥미로운 건 정작 축구협회가 내세운 불출석 사유는 사유서에 단 한마디도 언급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축구협회는 김 부회장의 국감 증인 채택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언론을 통해 ‘국감 증인 출석이 정치권의 간섭으로 비치면 국제축구연맹(FIFA)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자칫 월드컵 출전권을 발탁당할 수도 있다’는 여론전을 펼쳤다.

FIFA 규정에 '협회는 독립적으로 행정을 수행해야 하며 제삼자의 개입을 막을 의무가 있다’는 조항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축구협회 내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전면 반박했다.

“FIFA 징계 운운은 축구협회에 대한 검증의 칼날을 피하기 위한 여론 호도용 발언이다. 2012년 조중현 전 회장이 국감에 불출석할 때도 축구협회는 똑같은 협박성 논리를 동원했다. 하지만 ‘정치의 축구 개입 금지’ 원칙은 특정한 정치 이념이 축구에 개입돼선 안 된다는 취지이지, 축구협회 행정을 국가가 방임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왜 축구협회가 팬들에게 지탄받을 거짓말을 늘어놓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체육계의 한 관계자도 “2005년 조중연 당시 축구협회회장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다. 그러나 FIFA가 정치 불개입 원칙을 내세워 축구협회를 징계했단 말은 듣지 못했다. 더구나 축구협회는 정몽준 전 회장이 장기집권하며 축구의 힘을 빌려 대선과 서울시장까지 도전할 때 직접적으로 관련된 단체다. ‘FIFA 징계’를 들먹이는 건 일부 부패한 축구계 인사들이 몇몇 언론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정치의 축구 개입 금지 원칙을 과도하게 부풀린 결과”라고 꼬집었다.

배지헌, 박동희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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