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를 달성한 임창민(사진=엠스플뉴스).
3년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를 달성한 임창민(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4년 연속 리그 최고 불펜을 구축한 NC 다이노스. 임창민-김진성-원종현으로 이어지는 필승조는 4년째 큰 멤버 교체도 부상자도 없이 철옹성을 유지하고 있다. 강력하고 오래 가는 NC 불펜의 비결을 엠스플뉴스가 살펴봤다.

야구에서 불펜투수는 소모품이란 인식이 강하다. 불펜투수는 과부하와 부상 위험이 크고, 기량의 변동 폭이 커서 롱런이 힘든 보직으로 분류되곤 한다. 실제 리그 상위권 불펜 투수들을 살펴봐도 2, 3년 이상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남기는 경우가 드물다.

올 시즌 KBO리그만 봐도 절반 가까운 팀이 마무리 투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넥센은 전년도 세이브 1위 김세현이 2군에 내려갔고, 삼성은 국가대표 투수 심창민이 마무리 자리를 내줬다. 두산 이현승도 마무리에서 내려온지 오래고, SK 마무리였던 서진용은 세이브 수보다 블론 숫자가 많다. LG와 KIA의 팀내 세이브 1위 자리는 지난해와는 다른 선수가 차지하고 있다.

연도별 각 팀 최다세이브 투수. 붉은색 글씨는 마무리 자리가 위태로운 투수들이다(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연도별 각 팀 최다세이브 투수. 붉은색 글씨는 마무리 자리가 위태로운 투수들이다(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비교적 관리 받는 마무리가 이 정도니, 다른 불펜 투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매년 혹사 논란이 생기고, 부상과 기량 저하로 불펜 멤버가 수시로 바뀐다. 같은 멤버로 구성된 불펜 필승조를 꾸준히 유지하는 팀이 매우 드물다. AAA 건전지나 아이팟 플레이리스트보다도 더 자주 바뀌는 게 불펜투수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서 예외인 팀이 있다. 리그 최강의 불펜을 자랑하는 NC 다이노스다. NC는 마무리 임창민과 셋업맨 김진성, 원종현의 필승 트리오가 변함없이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김진성과 임창민이 마무리 보직을 교대하고, 원종현이 수술로 한 시즌 자리를 비운 것 외엔 변화가 없다.

부상 이탈 선수도, 기량이 떨어져 밀려난 선수도 없이 4년 연속 같은 멤버다. 오히려 해를 거듭할 수록 기량이 발전하고 있다. 올해도 임창민이 세이브 13개로 이 부문 1위, 원종현은 12홀드로 홀드 부문 1위, 김진성은 8홀드로 3위다. 불펜은 소모품이라는 야구계 통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팀이 NC다.

2014년 이후 최근 4년간 불펜 상위 5개 팀의 기록(통계=스탯티즈).
2014년 이후 최근 4년간 불펜 상위 5개 팀의 기록(통계=스탯티즈).

주초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3연전은 NC 불펜의 강력함을 잘 보여줬다. 16일과 17일 경기에서 NC는 이틀 연속 두산을 2-1로 제압했다. 16일 경기에선 선발 구창모가 5회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갔지만, 원종현-임정호-김진성-임창민의 필승조가 나머지 4.2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승리를 챙겼다. 17일에도 선발 에릭 해커가 7이닝을 던진 뒤 8회는 원종현이, 9회는 임창민이 올라와 경기를 끝냈다.

4-7로 패한 18일 경기에선 필승조를 제외한 나머지 불펜이 위력을 떨쳤다. 선발 이민호가 1.1이닝만에 6점을 주고 내려간 상황. 그러나 후속 투수 강장산(2이닝)-윤수호(3.1이닝)-강윤구(1.1이닝)가 차례로 올라와 나머지 6.2이닝을 자책점 없이 틀어막았다(1실점). 초반 1-6으로 뒤졌던 NC가 4-7까지 추격한 건, 불펜이 버티면서 추격 기회를 제공한 덕분이다.

19일 현재 NC 불펜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170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3.39(2위), 불펜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 4.1승(1위), 불펜이 추가한 승리확률(WPA) 4.04(1위)를 기록 중이다. ‘압도적’이란 말이 어울리는 성적이다.

NC 코치의 겸손, “선수들이 성실히 훈련한 덕분이다”

커리어 하이를 찍을 기세인 김진성(사진=엠스플뉴스).
커리어 하이를 찍을 기세인 김진성(사진=엠스플뉴스).

“다른 거 없어요. 선수들이 성실하게 자기 관리 하고, 열심히 훈련한 게 가장 큰 비결이에요.”

지난해까지 투수코치로 NC 마운드를 책임졌던 최일언 수석 코치는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정말 성실하게 훈련하는 친구들입니다. 좀 잘한다고 자만하는 것도 없어요, 비시즌 기간에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몸을 만들어요. 조금이라도 야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해요. 그런 성실함이 비결 아닌가 싶네요.”

기량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어렵지만, 일단 끌어올린 기량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NC 마무리 임창민은 “저를 비롯해 진성이나 종현이는 아직 정상급 선수가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더 안주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야죠. 참, 우리 중에 술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겠네요.” 임창민의 말이다.

최근 4년간 임창민의 주요 기록(통계=스탯티즈).
최근 4년간 임창민의 주요 기록(통계=스탯티즈).

최근 4년간 김진성의 주요 기록(통계=스탯티즈).
최근 4년간 김진성의 주요 기록(통계=스탯티즈).

최근 4년간 원종현의 주요 기록(통계=스탯티즈).
최근 4년간 원종현의 주요 기록(통계=스탯티즈).

다른 구단에 비해 불펜 투수들의 ‘구력’이 길지 않다는 것도 최 수석이 생각하는 ‘불펜 롱런’의 비결이다. “그 친구들이 1군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던진 게 NC에 와서부터에요. 그 이전에도 퓨처스에서 던지긴 했지만, 1군에서 풀타임으로 던지기 시작한 게 2014년부터잖아요. 상대적으로 어깨가 ‘싱싱’했다는 거? 그게 이유 아닐까요.” 최 수석의 겸손한 발언이다.

최 수석은 ‘트레이닝 파트’의 역할도 언급했다. “우리 팀 트레이닝 코치들이 워낙 철저하게 잘 관리해 줍니다. 그 덕분이죠.” 임창민도 비슷한 얘길 했다. “정연창 트레이너를 비롯한 트레이닝 파트에서 정말 신경써서 관리를 잘 해주세요. 새로운 트레이닝 방법을 많이 연구해서 알려주는데, 그런 노력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임창민-김진성-원종현 트리오 외에 ‘궂은 일’을 하는 투수가 매년 등장한 것도 비결 중에 하나다. NC 불펜을 잘 살펴보면, 해마다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 ‘마당쇠’ 노릇을 하는 투수가 반드시 한 명은 있었다. 2014년엔 노장 손민한이 67경기에 등판해 노익장을 발휘했고, 원종현이 빠진 2015년과 지난해엔 최금강-이민호가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올해는 윤수호가 새로 등장해 필승조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눈여겨볼 건, 소모품으로 사용되다 부상으로 사라지는 많은 ‘마당쇠’들과 달리 최금강과 이민호는 여전히 1군 마운드에서 활약하고 있단 점이다. 최금강은 지난해부터 선발로 전향해 올 시즌 NC 3선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민호는 시즌 초반 햄스트링 부상을 겪었지만 팔이나 어깨 부상과는 거리가 멀다. 1군 합류 이후엔 선발투수로 기회를 받고 있다.

김경문 감독 “정말 신경쓰고 있습니다”

NC 김경문 감독. 같은 불펜도 어떻게 쓰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사진=엠스플뉴스).
NC 김경문 감독. 같은 불펜도 어떻게 쓰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사진=엠스플뉴스).

이제 힘 세고 오래 가는 NC 불펜의 진짜 비결을 얘기할 차례다. 철옹성 NC 불펜의 가장 결정적인 비결은, NC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철저한 관리에 있다. 쓰는 사람이 불펜을 소모품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소모품이 되지 않고 4년 연속 빛날 수 있는 것이다.

NC 불펜에선 ‘3연투’를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최일언 수석은 “우리는 사흘 연속 게임에 내보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올 시즌 임창민-김진성-원종현의 등판 기록을 보면 3연투한 경기는 한 차례도 없었다. “우리는 연투하면 다음 날엔 안 써요. 그날 경기는 어떻게든 나머지 투수들 갖고 싸우려고 하죠.” 최 수석의 말이다.

연투한 투수는 아예 ‘없는 투수’로 생각한다는 게 최 수석의 설명이다. “오히려 편해집니다. 다 없다고 생각하니까. 다 있을 때는 누굴 먼저 내보낼지 궁리하느라 머리가 아픈데, 없을 때는 있는 투수 가운데 가장 좋은 투수를 내보내요.” 최 수석의 말이다. “만약 이기고 있어도 연투 안 한 투수가 롱릴리프 밖에 없다? 그럼 그 중에 컨디션 좋은 투수를 냅니다.”

실제 NC가 이긴 경기 중에는 필승조 없이 ‘나머지 투수’들만 갖고 승리를 지킨 경우가 적지 않다. 강장산, 윤수호, 이형범, 강윤구 등의 투수들로 이긴 경기가 꽤 많다. 4월 22일 삼성전에서도 선발 장현식이 2.1이닝만에 물러났지만 강장산-윤수호-임정호-이형범이 나머지 6.2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중반 이후 타선이 폭발해 승리를 챙겼다.

임창민은 NC의 불펜 운영에 확실한 원칙이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마무리지만 가끔 긴 이닝을 던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보통 사흘 정도 던지지 않은 상태거나, 다음날이 월요일 휴식일인 경우에요. 또 주초 경기에선 불펜이 긴 이닝을 던지게 하지 않구요. 이건 분명 코칭스태프에서 생각을 하고 계신 부분일 거에요.”

반면 최일언 수석은 ‘매뉴얼’처럼 정해진 원칙이 있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가끔이지만 필승조가 3이닝 던지게 하는 날도 있잖아요. 원칙이라면, 컨디션이 좋아야 던지게 한다는 것 정도가 원칙이겠네요. 투수 본인은 ‘던질 수 있다’고 해도 어깨가 무거운 날이면 가급적 던지게 하지 않습니다. 좋은 상태에서 마운드에 내보내는 게 좋죠. 그래야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으니까요.”

병마를 딛고 돌아와 더 위력적인 투수가 된 원종현(사진=엠스플뉴스).
병마를 딛고 돌아와 더 위력적인 투수가 된 원종현(사진=엠스플뉴스).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NC는 매년 리그 상위권 경쟁을 펼치는 팀이다. 이기는 경기가 많다는 건, 필승조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NC가 ‘판타스틱 4’처럼 강력한 선발진 덕분에 불펜 부담이 적은 팀도 아니다. 선발이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가는 날도 많다. 불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는 마운드 구성이다. 그럼에도 불펜 필승조가 4년 내내 강력함을 유지한다는 건, 생각할 수록 대단한 일이다.

“NC는 불펜이 워낙 좋아서 선발이 5회만 던져도 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김경문 감독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럴 수가 있나요. 그렇게 하면 불펜 투수들이 너무 힘들잖아요. 경기에서만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불펜에서 몸 풀며 던지는 공까지 하면 한 시즌 동안 던지는 공 개수가 엄청나요. 쉬게 해 주고, 아껴 줘야 합니다. 정말로 신경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김 감독의 말이다.

NC 불펜이 언제나 최강인 이유,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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