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종언(사진=엠스플뉴스).
시대의 종언(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한화 김성근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 '자진 사의'라는 구단 발표와 달리 실제론 '경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감독 경질은 한화 모그룹 최고위층의 재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과 보낸 한화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적폐청산’의 시대적 흐름은 야구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이 전격 경질됐다.

한화는 5월 2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리는 2017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의 정규시즌 홈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이 5월 21일 홈경기 종료 후 구단과 코칭스태프 측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김 감독은 자진 사퇴가 아닌 경질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 그룹 관계자는 “김 감독 경질은 그룹 최고위층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차적인 이유는 성적 부진. 표면적 이유는 '특타를 둘러싼 감독과 단장의 의견충돌'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구단 및 모그룹의 이미지 제고’가 주된 이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 그룹 관계자는 “김 감독 체제가 시작된 이후 한화가 각종 이슈의 중심에 서긴 했지만, 긍정적인 이슈보다는 네거티브 이슈가 대부분이었다. 대외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구단과 모그룹 입장에선 적지 않은 손해였다”고 전했다. 최근 벤치 클리어링 사건에서도 한화가 ‘부정적인’ 주제로 입길에 오르자, 구단과 모그룹이 큰 부담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결국 그룹 최고위층의 재가로 김 감독 경질이 최종 확정됐다.

김성근 감독 경질은 예정된 결과다. 한화는 지난 3년간 김성근 감독 체제에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했고 야구 역사상 그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전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결과는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돌아왔다. 올 시즌에도 최하위 삼성에 3연패를 당하는 등 23일 현재 리그 9위로 추락한 상태다.

지난해와 올 시즌을 앞두고 적지 않은 전문가가 한화를 상위권 전력으로 예상했지만, 상식을 벗어나는 구시대적 야구 탓에 팀 전력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여기에 온갖 논란과 괴담, 선수들의 부상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김성근 야구를 둘러싼 온갖 부정적 이슈는 이미지 제고를 위한 한화 구단과 그룹의 노력을 무위로 돌렸다. 한 PR 전문가는 “아무리 모그룹이 기업 이미지 광고를 해도, 야구단에서 연일 부정적인 뉴스가 터지면 효과를 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때 김성근 영입을 주장하던 팬들이 지난 시즌 후반에는 김성근 경질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상황까지 빚었다.

이에 지난 시즌 뒤 한화 구단은 김 감독 조기 경질을 심각하게 검토했다. 그러나 ‘감독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2017년에도 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대신 구단의 의견을 수용해 박종훈 단장을 선임하고, 감독에 쏠린 권한 상당부분을 프런트에 이양해 ‘절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김 감독은 프런트와 권력 분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끊임없이 프런트와 마찰을 빚었고, 공개적으로 구단 고위층을 비난했다. 그간 수많은 비판을 받았던 자신만의 야구를 고집했다. 결국 김 감독 체제를 중단하는 것의 이익이 김 감독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는 판단에 따라,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됐다.

논란으로 점철된 부임 첫해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증명한 지난 시간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증명한 지난 시간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성근 감독은 2014년 11월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에 선임됐다. 김성근 감독 개인 팬들 주도로 ‘한화 팬들은 김성근 감독을 원한다’는 여론을 조성했고, 이에 한화 그룹 최고위층이 응답하며 선임이 이루어졌다.

공식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0억원을 보장하는 파격적인 계약 조건. 여기에 김성근 감독 요구대로 코칭스태프 조각과 선수 영입, 육성 파트까지 구단 운영의 전권이 감독 1인에게 주어졌다. 한화 팬들은 과거 SK 와이번스를 세 차례 우승으로 이끈 ‘야신’ 김성근 감독이 만년 하위권 팀으로 전락한 한화도 강팀으로 바꿀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기도는 응답을 얻지 못했다. 부임 첫해인 2015시즌 초반만 해도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권혁 등 새로 가세한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며 매 경기 접전을 연출했다. 6월까지 승률 5할 이상을 유지하며 5강 싸움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대전야구장이 연일 한화 팬들로 매진을 이루고, ‘마리한화’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하지만 시즌이 진행되면서 김성근식 야구는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빈볼 논란을 시작으로 최진행의 도핑 사건, 사인훔치기 논란 등 온갖 부정적 이슈가 줄을 이었다. 스프링캠프부터 지옥훈련에 시달린 주축 야수들이 부상으로 쓰러졌고, 전반기 혹사당한 투수들의 성적은 후반기 들어 수직 낙하했다. 불펜투수가 100이닝 가까운 투구를 하고, 선발투수가 수시로 불펜과 선발을 오가는 파행이 시즌 내내 거듭됐다.

7월 이후 한화는 30승 41패 승률 0.423으로 해당 기간 리그 10개 팀 중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최종 성적도 68승 76패 승률 0.472로 6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이 끝났을 때 한화 선수단의 연봉 총액은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팀 삼성을 제치고 전체 1위가 되어 있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 성적을 내는데도 실패한 셈이다.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 감독 2년차

시대는 변하고, 야구도 바뀐다(사진=엠스플뉴스).
시대는 변하고, 야구도 바뀐다(사진=엠스플뉴스).

김성근 감독 부임 첫해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한화는 2016 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번 공격적인 투자를 쏟아 부었다. 메이저리그 출신 강타자 윌린 로사리오를 영입했고, FA 시장에서 심수창과 정우람을 영입해 마운드를 보강했다. 눈에 띄게 전력이 강화된 한화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승후보’ 혹은 ‘최소 5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여기에는 김성근 감독이 지난해 실패를 교훈삼아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전제가 달렸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기 1년차보다 더 강하게 선수들을 몰아쳤고, 더욱 극단적인 방식으로 투수를 기용했다. 주위의 조언에는 완전히 귀를 닫고, 현대 야구 흐름과는 동떨어진 자기만의 야구세계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김 감독의 오기와 독선이 심해질 수록, 한화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부임 첫해와 달리 2년차엔 시즌 초반부터 추락이 시작됐다. 개막 2연전에서 내리 연장전 패배를 당하며 선수들의 사기가 바닥을 쳤다. 4월 14일 송창식 벌투 논란을 시작으로 경기장 이탈 논란, 로저스 기강잡기 논란, 고바야시 투수코치 퇴단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투수진 붕괴와 타격부진 속에 한화는 4월 한달을 6승 17패 승률 0.261 최하위로 마감했다.

급기야 5월 5일에는 허리(추간판 탈출증) 수술을 이유로 감독이 시즌 중 입원해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한화는 약 2주 동안 김광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고, 이 기간 동안 2승 10패에 그치며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6월 이후 한화는 부진했던 타자들이 살아나고 주축 투수들이 힘을 내면서 잠시 상승세를 타는 듯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무리한 여파가 어김없이 발목을 잡았다. 주축 투수들이 하나둘씩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고, 결국 가장 중요한 시즌 막판에 힘을 쓰지 못한채 허무하게 5강 문턱에서 무너졌다.

시즌 최종 성적은 66승 3무 75패 승률 0.468로 전체 7위. 돈은 첫 해보다 더 쓰고서도 오히려 승수는 줄고 승률과 순위는 더 나빠졌다. 무엇보다 뼈아픈 건 팀의 핵심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하고 수술대에 오르며 팀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단 점이다. 안영명, 송창식, 권혁이 차례로 수술을 받았고 그외에도 선수단 상당수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올 시즌에도 김 감독의 야구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구단에선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알렉시 오간도 등 메이저리그 출신 최고의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고 트레이드로 포수 최재훈을 영입하는 등 성심껏 현장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화는 개막 첫 한달간 10승 16패 승률 0.385로 리그 9위에 그치는 부진한 성적을 냈다.

5월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전 야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불안하게 출발해 5월 3주차엔 넥센과 삼성을 상대로 1승 5패에 그쳤다. 최하위 삼성에 3연패를 당한 것도 충격이지만, 일요일 경기에서는 최악의 벤치 클리어링 사태까지 벌어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일요일 경기 패배로 팀 순위도 18승 25패 승률 0.419로 다시 9위까지 추락했다. 결국 23일, 경질이 결정됐다.

“김성근이 한화보다 위에 존재하는가?"

한화는 이상군 코치 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운영한다(사진=엠스플뉴스).
한화는 이상군 코치 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운영한다(사진=엠스플뉴스).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한화는 현재 성적은 고사하고 팀의 미래를 보호하는데도 실패했다. 임기영, 김민수, 노수광, 오준혁, 조영우 등은 김성근 부임 이후 한화가 FA 보상선수 혹은 트레이드로 다른 팀에 보낸 유망주들이다. 팀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라던 김민우는 혹사에 시달린 끝에 어깨 관절와순 손상이라는 치명적 부상을 입었다.

거듭된 유망주 유출과 노장 영입으로 한화 선수단 평균 연령은 약 31세, 10개 구단 중 최고령이 된지 오래다. 한화가 김성근 감독을 최고 연봉과 대우를 보장한 건, 성적과 유망주 육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다른 팀의 한 코치는 “FA영입과 외국인 선수에 거액을 써서 4강에 진출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며 “김성근 감독은 한화에서 그 많은 돈을 쓰고도 그조차도 해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오랜 기간 구축한 구단 운영 시스템도 김성근 체제 동안 엉망진창이 됐다. 엄연히 존재하는 구단 공식 홍보팀을 놔두고 감독의 ‘오른팔’을 개인 홍보담당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구단의 미래를 준비하는 스카우트 영역에도 감독 입맛에 맞는 인사가 임명됐다. 퓨처스팀은 본래의 목적인 육성이 아닌 1군을 위한 선수공급기지로 전락했다.

한 야구인은 “도대체 김성근 감독이 한화를 위해 존재하는지, 한화가 김성근 감독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며 “야구단은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다. 이런 시스템을 무시하고 감독 1인이 멋대로 구단을 좌우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결과는, 지난 기간 드러난 그대로다.

김성근이 남긴 폐허의 재건, 한화에 주어진 숙제

팀보다 위에 있는 감독은 없다(사진=엠스플뉴스).
팀보다 위에 있는 감독은 없다(사진=엠스플뉴스).

한화 구단 역사를 살펴보면, 김 감독 경질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한화는 1986년 빙그레 이글스로 창단한 이래 대부분의 감독에 계약 기간을 끝까지 보장해 왔다. 1998년 시즌 도중 경질된 강병철 전 감독, 2012년 시즌 막판 경질된 한대화 전 감독 정도가 예외다. 계약기간을 반년 이상 남겨두고 중도 퇴진한 한화 감독은 김성근 감독이 처음이다.

한편 김성근 감독 개인적으로는 임기 중 경질은 이번이 세 번째다. 김 감독은 앞서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인 1999년 구단과 마찰 끝에 자진사퇴 형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SK 시절인 2011년에도 재계약 보장을 둘러싼 갈등 끝에 시즌 중반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김 감독은 구단이 재계약 제의를 해오지 않자 구단과 상의 없이 “시즌 마친 뒤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다음날 바로 경질됐다.

김성근 감독 퇴진으로 한화는 코칭스태프 구성에도 대대적 개편이 이뤄질 전망이다. 김 감독의 ‘가신’으로 통하는 계형철 코치를 비롯한 측근 그룹이 줄줄이 한화 유니폼을 벗을 가능성이 커졌다. 시즌 중 코치 충원이란 쉽지 않은 숙제를 한화가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된다. 여기에 김성근 감독의 전횡으로 망가진 구단 시스템을 재건하는 것도 시급하게 해결할 과제다.

김성근 감독과 함께 한 시간은 한화에 막대한 재정적 손해와 이미지 실추, 선수 유출과 구단 시스템 붕괴라는 상처를 남겼다. ‘실패한 감독’은 팀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 피해는 남겨진 선수들과 구단, 한화를 응원하는 팬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이제 풀 한포기 남지 않은 폐허에서, 한화를 새로운 모습으로 재건하는 일이 남은 사람들에 과제로 주어졌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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