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 청주고 감독(사진=한화)
김인철 청주고 감독(사진=한화)
[엠스플뉴스]
| '원조 오타니' 김인철이 청주고 감독에 선임됐다. 그간 프로 선수와 구단 프런트로 활약했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그간 순탄치 않았던 야구 인생과 지도자로서의 야구 철학을 엠스플뉴스가 물었다.
KBO리그는 정글과도 같다.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과 무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프로 선수에게 실력은 곧 힘이자, 생명의 원천이다.
많은 선수가 생존을 위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한다. 때론 포지션 변경을 감행한다. 투수가 타자로 나서는가 하면, 타자가 투수로 변신해 마운드를 밟는다.
최근엔 이를 모두 겸하는 선수들이 등장했다. 바다 건너 일본프로야구(NPB) 니혼햄 파이터즈의 오타니 쇼헤이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엔 서울고 강백호가 투, 타 겸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강백호는 투수로 150km/h가 넘는 공을 던지고, 타자론 엄청난 장타력을 선보였다. 여기다 주 포지션은 포수다.
시간을 조금만 돌려보면 KBO리그에도 투, 타 겸업의 꿈을 이룬 선수가 있었다. 1982년 해태 타이거즈 김성한은 ‘원조 이도류’로 통했다. 김성한이 기록한 한 시즌 10승-3할 타율은 현대 야구에서도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하지만, 김성한 이후엔 투, 타를 넘나드는 선수가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이후 등장한 선수가 바로 전 한화 이글스 외야수 김인철이었다. 1990년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된 김인철은 1997년까지 투수로 뛰며 통산 15승 22패 평균자책 4.56을 기록했다. 1992년엔 선발투수로 등판해 한 시즌 개인 최다승인 8승을 거뒀다. 이후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시달렸던 김인철은 2000년 타자로 변신해 그라운드에 다시 섰다.
김인철은 타자로 나쁘지 않았다. 2005년엔 두 자릿수 홈런(10홈런)을 기록했고, 시즌 초반엔 팀 1번 타자로 나서 맹타를 휘두르기도 했었다. 당시 한화 감독이었던 김인식 KBO 총재 특보는 “다른 건 몰라도 야구에 대한 재능만큼은 정말 뛰어난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기록 외에 김인철의 야구 인생엔 특이점이 많다. 김인철은 투수로 프로에 데뷔했지만, 타자로 더 오랜 기간을 뛰었다. 투수로 7시즌 이상을 활약한 이가 타자로 변신한 사례는 KBO리그에서도 찾기 힘들다.
은퇴 후엔 구단 프런트로 변신했다. 김인철은 한화 전력분석원을 거쳐 스카우트로 수많은 아마추어 현장을 누볐다. 올 시즌엔 김성근 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다시 전력분석팀에 합류했다. 김 전 감독은 김인철을 선수 시절부터 눈 여겨봐왔다. 구단 내부에서도 김인철의 성실함과 분석력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변신의 귀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번엔 지도자로 변신해 새로운 야구 인생을 꿈꾼다.
‘변신의 귀재’ 김인철, 청주고 사령탑에 오른다.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시절의 김인철 감독(사진=김인철)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시절의 김인철 감독(사진=김인철)

김인철은 청주고 감독으로 새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비교적 안정적인 구단 프런트의 삶을 포기하고 선택한 결정이었다.
“솔직히 걱정되긴 합니다. 수년간 아마추어 야구를 지켜봐 왔기에 이 바닥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여전히 열악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그 열악함은 평생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저 또한 언제나 변화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후배들에게 정말 학생선수다운 야구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김 감독의 말이다.
김 감독이 맡게 될 청주고는 전임 감독의 학생선수 폭행 사건으로 시끄러운 상황이다. 현재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자 주전급 학생선수들이 대부분 전학을 가버렸다. 초보 감독에겐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정면 승부하겠단 각오를 밝혔다.
김 감독은 “충청도는 내겐 ‘제2의 고향’이다. 야구를 그만두려 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준 곳이기도 하다. 나 또한 위기에 처한 청주고 학생선수들을 돕고 싶었다. 그들에게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단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주고 측은 ‘김 감독의 열정적인 야구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팀 분위기 쇄신은 청주고에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와 더불어 학생선수다운 야구를 실현하겠단 김 감독의 야구 철학이 학교 측의 마음을 움직였단 후문이다.
이에 한화 관계자들도 아쉽단 반응을 보였다. 김준기 전력분석팀장은 “좋은 인재가 팀을 떠나 아쉽다. 안정을 버리고, 도전을 선택한 만큼 늘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란다”라고 했다.
운영팀 한 관계자는 “우리가 아쉬워한들 뭐하겠나. 그간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늘 웃으며 성실하게 일했다. 비록 팀은 다르지만, 충청도 야구 발전을 위해 큰 힘을 보태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인철 “내 꿈은 공부하는 지도자”
“대학 강단에서 제대로 된 야구인 양성하고 싶다”

2005시즌 타자 김인철의 활약은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지만, 김인철의 활약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사진=한화)
2005시즌 타자 김인철의 활약은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지만, 김인철의 활약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사진=한화)

청주고는 올 시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제 올해 남은 대회는 봉황기 전국고교야구대회뿐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서두르지 않겠단 뜻을 확고히 했다. 이어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고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대회에 나가서 성적을 올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명문 팀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시스템 구축’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생선수들이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결과'보단 ‘과정’을 중요성을 인지하는 게 우선입니다.” 김 감독의 생각이다.
이런 김 감독의 야구 철학 뒤엔 공부란 밑바탕이 깔려있다. 김 감독은 공부하는 야구인으로 유명하다. 바쁜 프런트 생활 속에서도 짬이 날 때마다 펜을 잡았던 터다. 그의 꿈은 ‘스포츠 박사’가 되는 것이다. 선수 시절부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다.
최근엔 대학원 입학을 목표로 주경야독(晝耕夜讀)에 빠져 있다. 대학 강단에 올라 제대로 된 야구인을 양성하겠단 꿈을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김 감독은 “심판, 기록원, 스카우트 등 야구계 전반에서 활동할 이들에겐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예전같이 주먹구구식으로 배우고, 넘어가선 한국 야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성과를 내기 위해선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시스템의 기본은 인재”라고 설명했다.
프로 데뷔 17년 차. 그간 김 감독은 언제나 팬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화려한 성적이나 특출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 이제 그런 소중한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나눠줄 시간이다.
2005년 한화 입단 당시 김 감독이 받은 연봉은 2천8만 원. 지금으로 치면 신인 선수에게나 줄 법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2천8백만 원을 2억8천만 원처럼 생각하고 뛰었다. 야구가 좋았고, 그라운드에 서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김 감독은 학생선수들에게 '돈'보단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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