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학교 야구부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글러브‘의 한 장면
성심학교 야구부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글러브‘의 한 장면

[엠스플뉴스]

| 각종 TV 다큐멘터리와 영화 '글러브'를 통해 소개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는 그간 많은 이에게 큰 용기와 감동을 줬다. 하지만, 지금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는 번성이 아닌 해체의 길로 가고 있다.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궜던 ‘젊은 청춘들의 혼’이 자칫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몰린 것이다.

2002년 9월 9일. 전국의 청각 장애인 야구 동호인들에게 이날은 매우 특별한 날로 기억된다. 청각 장애인들로 구성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야구부 창단을 주도했던 조일연 성심학교 전 교장은 “성심학교 야구부 창단은 전국의 청각 장애인 학생들에겐 새로운 희망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하다”고 벅찬 표정을 지었다.

청각 장애인 학생선수들로 구성된 ‘성심학교 야구부’는 창단하자마자 세상의 관심을 모았다. 여러 방송사에서 TV 다큐멘터리로 다루며 성심학교 청각 장애인 학생선수들의 감동 스토리는 많은 이에게 큰 용기와 감동을 줬다. 특히나 2011년 성심학교 야구부를 영화화한 '글러브'는 188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창단 초반엔 성심학교 야구부를 ‘야구 동아리’로 보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창단 때부터 성심학교 야구부는 동아리 그 이상을 지향했다. 대한야구협회(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전신)에도 전국 57번째 정식 고교야구부로 등록한 터였다.

각계의 관심과 지원으로 '희망 촛불'을 들었던 성심학교 야구부

전국 청각 장애인들의 꿈과 희망이던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가 해체 위기에 몰렸다. 과연 우리 사회와 어른들은 아이들이 들고 있는 ‘희망의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을까(사진=MBC)
전국 청각 장애인들의 꿈과 희망이던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가 해체 위기에 몰렸다. 과연 우리 사회와 어른들은 아이들이 들고 있는 ‘희망의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을까(사진=MBC)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들에게 ‘야구’는 접근하기 용이한 스포츠가 아니다. 반대다. 소통이 가장 중요한 야구에서 청각 장애인들은 빠른 의사전달을 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위험한 타구가 날아와도 ‘타구음’이 들리지 않기에 그만큼 수비하기도 어렵다. 반사 신경 역시 비장애인 학생선수들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에도 성심학교 학생선수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 했다. 마운드를 밟거나 타석에 서는 그 순간만큼은 청각 장애인이 아닌 보통의 ‘학생 야구선수’였기 때문.

각고의 노력 끝에 성심학교 학생선수들은 마침내 꿈을 이뤘다. 그토록 꿈꾸던 전국고교야구대회인 봉황대기 출전을 제 손으로 이뤄낸 것이다. 야구부가 창단한 지 1년여 만인 2003년 8월 13일의 일이었다.

이후 성심학교 야구부엔 도움의 손길이 줄을 이었다. 많은 야구인과 사회 각계각층에서 성심학교 야구부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류중일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비롯해 송진우 전 한화 이글스 코치, 조계현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 메이저리거 추신수, 김현수 등 많은 유명 야구인이 직접 나서 성심학교 야구부를 도왔다. 이때만 해도 성심학교 야구부의 가혹한 운명을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국 청각 장애인들의 꿈와 용기의 상징이었던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지금은 학생선수 부족으로 전국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

교내 실내체육관인 ‘성심관’에서 스윙 연습 중인 성심학교 야구부 학생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교내 실내체육관인 ‘성심관’에서 스윙 연습 중인 성심학교 야구부 학생선수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성심학교 야구부 소식을 다시 들은 건 2017년 3월이었다. 그즈음 충청지역 야구인은 기자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건 바로 ‘성심학교 야구부가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다음은 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초였다. 성심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학교 관계자가 ‘야구부 학생선수가 부족해 2017년엔 전국야구대회 출전이 어렵다’고 알려왔다. 실제로 주말리그에 참가하려면 서류를 내야 하는데 올해 성심학교에선 아무 서류도 제출하지 않았다. 솔직히 언제 주말리그에 복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엠스플뉴스는 성심학교 야구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충주로 취재진을 보냈다. 취재 결과 예상치 못한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게 됐다. 성심학교 야구부원수가 총 12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2명이면 대회 출전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니 ‘안타까운 현실’이라 칭하는 건 과장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12명 가운데 5명은 ‘중등부 학생선수’이거나 스무 살을 넘긴 ‘전공과 학생’이었다. 7명만 전국고교대회에 참가 가능한 ‘고등부 학생선수’였다. 7명으론 경기는 고사하고, 선발 라인업도 짤 수 없는 상황.

한때 전국의 청각 장애인 학생들이 앞다퉈 야구를 하려고 몰려들었던 성심학교 야구부는 어째서 학생선수 부족 시달리게 된 것일까. 도대체 그사이 야구부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변화하는 시대, 위기에 놓인 학교, 해체 직전의 야구부

학생수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 충주 성심학교(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학생수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 충주 성심학교(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성심학교에서 만난 조용남 교감은 “최근 몇 년간 지속해서 성심학교 학생수가 줄었다”며 “청각 장애인 학생만 모집하는 학교 입장에선 존립을 위협받을 만큼 심각한 학생수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성심학교 전체 학생수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야구부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전교생이 줄어들면서 야구부에서 뛸 만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줄고 있다.” 조 교감의 얘기다.

기자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장애인 학교가 꾸준히 느는 데다 장애인 자식에게 학교 교육을 받게 하려는 부모도 과거와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심학교가 학생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 교감은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의 의문에 이렇게 답했다.

“장애인 학교가 느는 건 맞다. 하지만, 그건 청각·시각 장애 학생 등이 함께 다니는 종합 장애인 학교를 두고 하는 소리다. 청각 장애인 학교는 계속 줄고 있다. 과거 22개였던 전국의 청각 장애인 학교는 지금은 6개교만 남아있다.”

그렇다면 청각 장애인 학교수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교감은 “인공와우 수술(인공 달팽이관)이 보편화하고, 첨단 보청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청각 장애인이 줄어드는 게 첫 번째 이유”라며 “접근성이 좋고, 다양한 시설이 갖춰진 종합 장애인 학교를 청각 장애인 학교보다 선호하는 학부모들의 성향이 두 번째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때 성심학교 야구부 버스는 30명 가까운 학생선수를 태우고서 전국을 누볐다. 지금 이 버스엔 7명의 외로운 야구부원만이 탄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한때 성심학교 야구부 버스는 30명 가까운 학생선수를 태우고서 전국을 누볐다. 지금 이 버스엔 7명의 외로운 야구부원만이 탄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7월 30일 기준 성심학교 전교생은 109명이다. 이 가운데 ‘순회 학급 학생’을 제외한 정상 등교 초·중·고교생은 86명밖에 되지 않는다. 성심학교는 2014년 122명, 2015년 104명, 2016년 91명으로 꾸준히 학생수가 감소해왔다.

“정상 등교 86명 가운데 고등부 학생은 남·여 포함 총 42명이다. 42명 가운데 남학생은 27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이 모두 야구부에 소속돼야 그나마 야구부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다고 모든 남학생에게 야구부에서 뛸 것을 강요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조 교감의 설명이다.

원체 학생수가 줄다 보니 성심학교도 한때 ‘종합 장애인 학교로의 전환’을 검토했다. 이를 위해 외부 컨설팅 업체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안팎에서 들려오는 ‘청각 장애인 전문학교 자부심을 계속 이어가자’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결국 검토를 중단했다.

지금처럼 학생수가 감소한다면 성심학교와 야구부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대로 성심학교 야구부는 해체 수순을 밟아야 하는 것일까.

성심학교 문종태 야구부장은 “야구부는 우리 학교의 상징이다. 야구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학생들에게 야구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야구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사정, 사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야구부 인원 확충을 놓고 학교 선생님들과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며 야구부 회생의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학생수 부족과 후원금 감소, 이중고를 겪는 성심학교 야구부

성심학교 야구부 학생선수들은 ‘성심관’에서 꿈을 키워왔다. 아이들이 토해내는 함성과 웃음소리로 성심관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지금 성심관은 진공관처럼 조용하기만 하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성심학교 야구부 학생선수들은 ‘성심관’에서 꿈을 키워왔다. 아이들이 토해내는 함성과 웃음소리로 성심관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지금 성심관은 진공관처럼 조용하기만 하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는 취재 도중 성심학교 측 설명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를 만났다. 성심학교 야구부 창단을 주도했던 한 인사는 “학교가 정말 야구부 운영에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아쉬움을 토해냈다.

“야구부 창단 당시만 해도 학교 관계자들이 전국의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청각 장애인 학생선수 발굴에 매달렸다. 모든 학교 구성원이 야구부 일이라면 내 일처럼 동참했다. 덕분에 미약했지만, 희망이 보였던 곳이 바로 성심학교 야구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말만 할 뿐, 행동으로 야구부를 살리겠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엠스플뉴스가 각종 자료를 취합한 결과 성심학교는 어느 순간부터 선수 모집을 위한 맞춤 프로그램 개발이나 홍보 방문 등을 일절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성심학교 한 교사는 “2002년 창단 직후, 야구부는 남학생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귀히 여긴 교장 수녀님이 직접 음식과 선수들 빨래를 도맡기도 했다. 교사도 하나가 돼 아이들 지원에 최선을 다했다. 모두의 노력 덕분인지 '야구부에 들어오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쳤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문의 전화마저 끊긴 상태.

끊긴 건 전화만이 아니다. 후원금도 끊겼다. 대개 고교 야구부는 동문회나 연고지 프로구단의 후원을 받게 마련이다. 성심학교도 그랬다. 외부 후원금으로 야구부 운영비를 충당했다.

창단 초기엔 후원금이 1억 원을 넘을 정도였다. 개인 후원과 야구인들의 도움, 여기에 재직 교사들까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야구부 운영에 힘을 보태며 한때 성심학교 야구부는 웬만한 야구 명문고 부럽지 않은 탄탄한 후원금을 자랑했다.

그러나 지금은 후원금이 턱없이 줄었다. 성심학교 관계자는 “예전과 비교하면 후원금이 3분의 1도 안 된다. 한해 야구부 운영에 수천만 원이 쓰이지만, 지금은 그 돈을 감당하기조차 벅차다. 후원금이 줄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아이들”이라고 고갤 떨궜다.

문제는 야구부 후원금이 줄어든 덴 외부 요인도 있지만, 내부 요인도 있다. 성심학교 한 관계자는 “학교가 꾸준히 후원자를 관리하고, 관계 유지에 적극적이었다면 지금도 많은 후원이 줄을 이을 것”이라며 “후원금 감소 이유 가운데 상당수는 학교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엠스플뉴스와 만난 한 후원자는 “해마다 성심학교 야구부에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담당자와 연락이 끊겼고, 학교에 전화해도 ‘저는 잘 모르니 홈페이지 안내사항을 따르라’는 말만 들었다"며 “그 후엔 기분이 상해 후원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후원금 감소로 성심학교 야구부는 2대 감독으로 14년간 일한 박상수 씨를 떠나 보내야만 했다. 성심학교 야구부 학부모는 “박 감독은 14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야구부를 지킨 이다. 청각 장애인 학생선수들의 성향과 특징까지 모두 꿰던 지도자”라며 “박 감독이 떠나면서 야구부가 더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교내 파벌 싸움과 무관심으로 멍들어간 성심학교 야구부

2015년 10월 18일 수안보 구장에서 열린 '클럽팀 초청 전국농아인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성심학교 야구부와 학교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촬영한 사진(사진=충주 성심학교)
2015년 10월 18일 수안보 구장에서 열린 '클럽팀 초청 전국농아인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성심학교 야구부와 학교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촬영한 사진(사진=충주 성심학교)

성심학교 야구부 해체 위기는 감소하는 학생수와 줄어든 후원금 때문만은 아니다. 학교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야구부 창단과 함께 자라난 학교 내 파벌 싸움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2002년 야구부 창단 때부터 학교가 삐꺽거렸다. 야구부 창단을 두고 찬성과 반대쪽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당시 몇몇 교사가 야구부 창단을 강행하면서 반대쪽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물론 반대쪽도 야구부 자체를 싫어했던 건 아니다. 야구부 대외 활동으로 누군가가 자릴 비우면 그 자릴 남은 교사가 떠맡을 게 분명했기에 반대한 거였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서 야구부 반대쪽 불만이 더 커진 게 사실이다.” 성심학교 한 교사의 증언이다.

그래도 교사끼리의 반목은 ‘교육’이란 테두리 안에서 어느 정도 용해될 수 있었다. 정작 문제는 교장 수녀의 '야구부 호불호'였다.

“교장 수녀님이 바뀔 때마다 야구부 운영을 놓고 말이 많았다. 마치 한 나라의 정권 교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야구부를 좋아해 적극 지원하는 교장 수녀님이 있던가 하면 야구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교장 수녀님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교사들은 교장 수녀님 눈치를 보느라 우왕좌왕했고, 야구부도 일관성 있게 운영되지 못했다.” 성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 교사의 이야기다.

파벌 싸움을 주도했던 이들은 지금은 모두 학교를 떠난 상태다. 덕분에 학교는 조용해졌지만, 후유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한 이는 “성심학교 내 파벌싸움은 청각 장애인계에선 잘 알려진 이야기다. 가톨릭 교구 쪽에서 파벌 싸움을 일찌감치 중재했다면 지금처럼 성심학교와 야구부 모두 지금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이라며 “정말 아이들을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학교 구성원 모두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심학교 야구부원의 꿈 "친구, 후배들과 마지막 전국대회에서 후회없이 뛰어보고 싶어요."

올해 내내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성심학교 야구부원들. 하지만, 그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전국 대회를 위해 오늘도 비지땀을 흘린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올해 내내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성심학교 야구부원들. 하지만, 그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전국 대회를 위해 오늘도 비지땀을 흘린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규정엔 ‘고교 야구팀이 2년 연속 전국 대회 불참 시 야구부 등록을 취소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만약 내년에도 전국대회에 불참한다면 성심학교 야구부 역시 등록이 취소된다.

하지만, 협회는 성심학교 야구부 정상화를 위해 보조를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엠스플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규정상으론 그렇다. 하지만, 성심학교가 특수학교임을 고려하면 예외 조항을 적용할 수도 있다”며 한발 나아가 “만약 성심학교가 야구부를 정상화하려 노력한다면 협회 차원에서도 많은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로 성심학교 야구부는 창단 15년째를 맞이했다. 공식 경기에서 아직 첫 승을 거두지 못한 고교 야구부는 성심학교가 유일하다.

졸업생 장00씨는 “재학 시절엔 졸업하기 전에 1승을 거두는 게 목표였다. 내가 이루지 못한 목표를 후배들이 꼭 이루어줬으면 좋겠다”며 “내가 학창 시절 야구부에서 보낸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하듯 후배들도 지금 야구부에서 공부와 야구를 맘껏 즐겼으면 한다”는 덕담을 들려줬다.

재학생이라고 선배들의 바람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야구부 주장인 문 모 군은 “요즘 야구부원 수가 줄어 고민이 많다. 올해가 지나면 이제 졸업인데 마지막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해 정말 아쉽다”며 “제 후배들에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많은 분이 야구부를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졸업을 앞둔 문 군의 꿈은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 학생선수를 지도하는 야구코치다. 하지만, 꿈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나 그만큼 차갑다. 졸업 후엔 생계를 위해 취업 일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올해가 야구선수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인 것이다.

성심학교 출신의 프로야구 선수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대학 야구팀에 합격한 선수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지 모른다. 졸업생 대부분은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한다.

성심학교 야구부 학생선수들은 지금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비싸 보이지 않는 배트지만, 부지런히 휘두르며 밝게 웃고, 한동안 사용하지 못한 글러브지만, 아이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전국 무대를 꿈꾸며 글러브에 연방 로션을 바른다.

조일연 대한농아인야구협회 회장은 “성심학교 학생들에게 야구는 곧 꿈이다. 어른들이 그 꿈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누가 이 아이들의 꿈을 지켜줄 수 있겠느냐”며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건 야구가 아니라 아이들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의 성녀’로 불리는 마더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이 어둡다고 저주하지 말고, 당신이 먼저 작은 촛불을 켜십시오." 성심학교 학생선수들이 든 촛불이 꺼지지 않게 이제 우리가 바람막이가 돼줄 차례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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