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구본능 총재(사진 왼쪽부터)와 양해영 사무총장. 두 이가 함께 다녀온 'KBO 사장단 미국 시찰'에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삼성)
KBO 구본능 총재(사진 왼쪽부터)와 양해영 사무총장. 두 이가 함께 다녀온 'KBO 사장단 미국 시찰'에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삼성)

[엠스플뉴스]

KBO 사장단의 미국 시찰이 구본능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의 미국 유학 중인 ‘딸 졸업식’ 날짜에 맞춰져 진행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모 구단 관계자는 “구 총재가 자신의 딸 고교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KBO 사장단 미국 시찰 일정을 일부러 딸 고교 졸업식 날에 맞췄다”며 “실제로 일주일간의 미국 시찰 일정 가운데 구 총재가 시찰에 참여한 날은 절반에 불과했고, 나머지 절반은 공적 업무와 아무 상관 없는 사적인 일정을 소화하는데 썼다”고 털어놨다.


‘공적 일정’ 수행 차 미국으로 날아간 KBO 시찰단. 그러나 구본능 총재는 전체 일정의 절반을 '딸 졸업식 참가' 등 개인사에 써

KBO 이사회 장면(사진=KBO)
KBO 이사회 장면(사진=KBO)

구본능 KBO 총재, 양해영 사무총장, 8개 구단 사장(삼성, KIA 구단 사장 불참)은 5월 25일부터 6월 1일까지 일주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목적은 ‘선진야구 시찰’이었다.

한 구단 사장은 “KBO가 ‘선진 메이저리그 방문을 통해 신임 대표이사들의 야구단 운영 이해도를 높인다’는 취지 아래 10개 구단에 미국 시찰 참여를 독려하는 공문을 보냈다”며 “뉴욕, 워싱턴을 중심으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쿠퍼스타운 명예의 전당, MLB의 온라인 중계 관련 자회사 MLBAM 등을 차례로 시찰하겠다는 계획서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KBO 수뇌부와 구단 사장들로 구성된 ‘KBO 미국 시찰단’은 5월 25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탈자는 없었다. 본래 시찰단은 25일(미국 시간 기준)부터 28일까지 뉴욕에 머문 뒤 29일 워싱턴으로 이동해 31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시찰단은 본래 계획대로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외가 있었다면 구 총재였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구 총재는 시찰단에서 이탈해 혼자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로 이동했다.

당시 시찰단의 일원이었던 한 구단 사장은 “구 총재가 혼자서 어딜 갔는지 우린 알 길이 없었다. 나중에 호텔에 도착해 보니 구 총재가 보이지 않았다. 양해영 사무총장이나 다른 KBO 수행원도 구 총재 행방에 대해 일절 말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구 총재는 어째서 혼자 필라델피아로 이동한 것일까.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구 총재가 필라델피아로 이동한 건 딸을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필라델피아 H 고교에 재학 중인 구 총재의 딸 구00 씨는 5월 27일 졸업식을 앞두고 있었다.

현지에서 유학 중인 한 제보자는 “당시 H 고교 졸업식에 참석한 한국 학생 부모 가운데 대기업 회장도 포함돼 있었다”며 그 회장이 구 총재였냐는 질의에 "맞다”고 확인했다.

구 총재는 딸과 3일간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졸업식 다음 날인 28일 뉴욕으로 돌아와 시찰단과 합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장들 “KBO가 날짜 정해 일방적으로 알려왔다.”, KBO “시찰 일정, 일방적 통보는 아니었다.”

미국 H고 졸업 사진(사진=엠스플뉴스)
미국 H고 졸업 사진(사진=엠스플뉴스)

KBO 총재와 사장단의 미국 시찰은 고 박용오 총재 시절부터 시작했다. 박 전 총재 시절엔 ‘외유’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당시엔 구단 사장은 물론 사장 아내들까지 동행해 미국 ‘관광’을 즐겼다. 사장직에서 물러나면 KBO가 전별금까지 챙겨주던 시절이라, 당시 사장단의 국외 외유는 전형적인 ‘그들만의 잔치’였다.

유영구 전 총재 시절에도 미국 시찰은 계속 됐다. 유 전 총재 시절엔 규모가 다소 줄어 구단 사장들만 미국 시찰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말이 시찰이지, 관광이 주목적이었다”는 게 전직 KBO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런 관행이 사라진 건 구 총재가 KBO 수장을 맡고서였다. 구 총재 취임 이후 KBO 시찰은 사장들 사이에서 “쉴 틈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만큼 빡빡하게 진행됐다. 평소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구 총재 성향 때문인지 호텔과 식사도 이전보다 등급이 낮아지고, 저렴해졌다.

문제는 이런 긍정적 변화에도 구 총재가 역대 어느 총재도 하지 않은 ‘KBO 공식 일정의 사유화를 시도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시찰 계획이 발표될 당시, KBO 안팎에선 “왜 한창 시즌 중인 5월 말에 KBO 수뇌부와 사장단이 미국에 가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모 구단 사장은 “시즌 시작한 지 채 2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솔직히 ‘이렇게 (미국에) 가도 되나’하는 걱정이 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KBO 시찰단은 굳이 5월 25일부터 6월 1일까지를 시찰 기간으로 잡은 것일까. KBO 홍보팀 관계자는 "구단 사장들이 모이는 KBO 이사회에 몇 가지 날짜와 동선을 제시했다"며 "해당 날짜를 직접 선택한 건 사장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장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 시찰 일정은 KBO가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해준 날짜”라며 “일정과 관련해 사장단과 사전 조율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KBO 다른 관계자도 사장단과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걸 인정했다.

다만, “사장들이나 단장들이나 KBO가 시찰 계획을 잡으면 ‘KBO가 일정을 잡아 우리에게 알려달라’고 하지, 자기들이 직접 날짜를 잡는 법이 없다. 일정을 확정할 땐 아무 소리 없다가 왜 이제 와 ‘일방적인 통보’란 말로 KBO에 책임을 떠넘기는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릴 냈다.

그러나 엠스플뉴스의 추가취재 결과 이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확인됐다. KBO 사장단 시찰에 이어 20일 뒤 진행된 ‘KBO 단장단 미국 시찰’에선 단장들이 직접 논의해 일정을 잡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 단장은 “KBO로부터 미국 시찰 계획을 전달받자마자 단장들이 논의해 가능한 한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날짜가 언제인지 논의했다”며 “단장단 시찰 일정은 KBO가 아닌 단장들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사장단에 볼멘소릴 내며 억울해했던 KBO 관계자는 “최초 시찰 일정을 5월 25일부터 6월 1일까지로 잡은 이가 누구냐” “이 기간에 구 총재 딸 졸업식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느냐” “시찰 일정을 처음부터 구 총재 개인 일정을 중심으로 잡은 게 아니냐” “단장단 시찰은 단장들이 결정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난 아는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 뒤 전화를 끊었다.

“딸 졸업식 날짜에 맞춰 공적 일정을 짰다는 건 KBO를 개인 소유물로 생각했기 때문”

구 총재가 다니던 학교에서 졸업생들에게 졸업증을 나눠주는 장면. 미국 시간으로 졸업식은 5월 27일 열렸다
구 총재가 다니던 학교에서 졸업생들에게 졸업증을 나눠주는 장면. 미국 시간으로 졸업식은 5월 27일 열렸다

구 총재는 누구보다 공사(公私) 구분과 근검절약을 강조해온 이다. 자녀들에게도 이를 교육해, 구 총재 자녀 대부분이 재벌 2세 답지 않게 ‘평범한’ 생활을 하고, 사회봉사에도 열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주변에선 이런 구 총재의 가정교육과 자녀 사랑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구 총재는 ‘딸 졸업식 참가’라는 사(私)를 위해 ‘KBO 선진야구 시찰’이란 공(公)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로 구 총재는 KBO 시찰 기간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딸 졸업식 참석' 등 개인 일정을 소화하는데 할애했다.

엠스플뉴스는 구 총재 시찰 경비가 어떻게 집행됐는지 확인하고자 KBO에 문의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시찰과 관련돼 항공권 구매, 호텔 예약 등을 대행한 여행사도 "담당자가 휴가"라는 말만 할 뿐,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딸의 졸업식 참석은 중요한 가정사다. 어느 아버지라도 만사 제쳐두고 참석해야 마땅한 행사다. 하지만,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려면, 정식으로 휴가를 내고, 사비를 들여 참석하는 게 정상적이다. KBO 공적 업무를 앞세워 ‘겸사겸사’ 방문하는 식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KBO 총재 자리는 그렇게 해도 될 만큼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만약 구 총재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부하 직원들이 이를 강행했다면 '과잉 충성'이고, 설령 과잉 충성을 했다손 쳐도 구 총재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이나 공기업 사장이 공적 일정과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해 물의를 빚을 때마다 국민은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구 총재를 바라보는 야구계의 시각 역시 비슷하다.

구 총재가 '딸 졸업식 참석을 KBO 공적 일정을 조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한 야구인은 “KBO 고위층이 말로만 공사 구분을 외칠 뿐,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아니겠느냐"며 "KBO를 '내 사유물'로, 총재를 '제왕적 보스'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총재 딸 졸업식'에 미국 시찰 일정을 짜맞추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 취재 후 : KBO는 추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엠스플뉴스의 질의에 전 직원이 전화기를 꺼놓거나 휴무, 외근을 이유로, 혹은 '난 모르고 윗분이 안다'는 말로 일절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8월 1일 취재가 끝날 즈음 KBO는 홍보팀을 통해 "구 총재가 출장 때 딸 졸업식에 참석한 게 맞다"며 "개인 일정 소화 시 숙소는 총재 본인이 해결했다"고 전해왔다.

엠스플뉴스 탐사취재팀

박동희, 배지헌, 김원익, 전수은, 김근한, 강윤기, 이동섭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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