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수호신’ 손승락(사진=롯데)
롯데 자이언츠 ‘수호신’ 손승락(사진=롯데)

[엠스플뉴스]

손승락의 가을이 뜨겁다.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 등판한 손승락은 리그 최고 마무리다운 활약을 펼쳤다. 포스트시즌 들어 더욱 강해진 손승락을 엠스플뉴스가 밀착 취재했다.

“끝이 좋아야 시작이 빛난다.”

메이저리그(MLB) 최고 마무리 투수였던 마리아노 리베라의 말이다. 리베라는 은퇴 전까지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통산 652세이브를 기록했다. 여기다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리베라가 위대했던 이유도 그가 정규시즌(평균자책 2.21)보다 포스트시즌(0.70)에 더 강했기 때문이다. 포스트시즌만 되면 리베라는 팀을 위해 2이닝 이상을 책임지곤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리베라가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던 가장 큰 무기는 ‘전기 톱날’로 불린 컷패스트볼(커터)이었다. 리베라는 날카로운 커터로 상대 타자들의 배트를 수도 없이 부러트렸다. 양키스와 양키스타디움을 찾는 팬들을 끔찍이도 아꼈던 마음 역시 리베라에겐 가장 강한 내면의 무기가 됐다.

KBO리그에도 리베라와 비슷한 스타일의 마무리 투수가 있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의 ‘수호신’ 손승락이다.

손승락은 10월 8일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9일 2차전에서도 9회 등판해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틀 동안 NC 타자들의 배트를 3개나 반 토막 냈다. 야구전문가들이 “마치 리베라를 보는 것 같다”고 평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손승락은 그런 평에 손사래를 쳤다. “리베라요? 말도 안 됩니다. 저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선수예요. 듣는 제가 다 민망할 정돕니다(웃음). 리베라보단 2차전을 이겨 한시름 놓았다는 게 더 의미 있어요. 지금부턴 3차전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손베라’의 참고, 견디며 이기는 방법

올 시즌은 유독 험난했다. 프로 14년 차 베테랑 손승락에게도 쉽지 않은 시즌이었다. 그래도 참고 견뎠다. 자신을 믿어준 팀과 동료들. 그리고 팬들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사진=롯데)
올 시즌은 유독 험난했다. 프로 14년 차 베테랑 손승락에게도 쉽지 않은 시즌이었다. 그래도 참고 견뎠다. 자신을 믿어준 팀과 동료들. 그리고 팬들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사진=롯데)

준플레이오프 2일 연속 투구. 정규시즌 종료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한 터라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손승락의 생각은 어떨까. 2차전이 끝난 직후, 손승락은 이렇게 말했다.

“가을엔 몇 경기 연투하더라도 견뎌내야 합니다. 단기전에선 당연한 일이고요. 그런 부분은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신경 써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일입니다.”

손승락은 참고, 견딜 줄 아는 투수다. 올 시즌 잔 부상이 끊이지 않았지만, 꿋꿋이 버텼다. 전반기 마지막엔 어깨 염증 주사까지 맞고서 경기에 나섰다. 잦은 연투에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제가 예민한 편이라, 몸 어디가 좋지 않으면 바로 알아차리는 편이에요. 기본적인 몸 관리는 직접 하고 있습니다. 전반기 막바지에 어깨가 좋지 않았어요. 빨리 치료하고, 조치했기에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어요.” 손승락의 말이다.

1차전 롯데 패배 이후 다시 등판한 2차전 마운드. ‘이번만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따랐다. 하지만, 손승락은 긴장하지 않았다. 반대였다.

“만약 부담감을 가졌다면 2차전에서 소극적으로 던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길 수 있단 의지가 더 강했어요. 그래 공격적으로 투구했는데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손승락은 올 시즌 더 강해졌다. 그의 투구를 보면 세월을 잊은 듯하다. 올 시즌 그의 속구 평균 구속은 146.7km/h. 최근 4시즌 가운데 가장 높았다. 반등의 비결을 그에게 물었다.

“제 앞에 있는 타자는 1명뿐입니다. 하지만, 전 야수와 팬까지 합쳐 9명이 함께 합니다. 투수인 저까지 포함하면 10대 1의 싸움이에요. 제가 훨씬 유리한 겁니다. 마운드에 등판할 때마다 든든한 ‘백’을 등에 업고 던지는 기분인데 어떻게 제가 공격적으로 던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준플레이오프 2차전 승리는 곧 롯데 불펜의 승리였다. 박진형(1이닝 무실점), 조정훈(1.2이닝 무실점), 손승락(1이닝 무실점)으로 이어지는 ‘필승조’가 제 몫을 다했다. 현대야구가 추구하는 불펜야구의 정석을 롯데가 보여준 것이다.

“(조)정훈이는 책임감이 강하고, (박)진형이는 거침없이 공을 던지는 투수예요. 전 굳이 필승조를 구분 짓고 싶지 않습니다. 불펜에서 뒤를 받쳐주는 모든 투수 덕분에 앞에서 던지는 투수들이 마음 편히 공을 던질 수 있는 거니까요. 올 시즌 롯데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팀입니다.” 손승락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조원우 감독의 믿음과 손승락의 '믿음에 부응하는 야구'. 올 시즌 롯데야구의 상징이다

조원우 감독의 믿음과 손승락의 '믿음에 부응하는 야구'. 올 시즌 롯데 야구를 응축해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장면이다(사진=롯데)
조원우 감독의 믿음과 손승락의 '믿음에 부응하는 야구'. 올 시즌 롯데 야구를 응축해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장면이다(사진=롯데)

손승락은 ‘가을 남자’로 통한다. 현대 유니콘스와 넥센 히어로즈 시절 4번의 포스트시즌을 경험했다. 이 4번의 포스트시즌에서 손승락은 총 15경기에 등판해 23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2.74를 기록했다. 리베라처럼 가을만 되면 더욱 힘을 낸 것이다.

손승락의 마지막 가을은 2015시즌 넥센 시절이었다. 그리고 2017시즌 다시 가을 무대에 섰다. 이번엔 버건디 유니폼이 아닌 롯데 유니폼을 입고서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가을야구에요.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떤 유니폼을 입든 마운드에 서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게 프로예요. 물론 사직구장이 특별하긴 해요. 제가 공을 던질 때마다 많은 팬이 응원과 함성으로 힘을 주시니까요.”

롯데는 올 시즌 이전과는 다른 팀으로 거듭났다. 가을야구는 선수, 코칭스태프, 팬, 프런트가 모두 한 몸처럼 움직인 결과물이다.

“‘하나가 되자’ ‘우리 정말 잘해보자’ 같은 말을 한다고 하나가 되는 게 아닙니다. 결국, 승리 속에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뭉쳐야 하나가 될 수 있어요. 프런트, 선수단, 팬 할 거 없이 모두가 ‘승리’란 목표를 함께 갈구했습니다. 이젠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그게 올 시즌 우리 팀에 생긴 가장 큰 변화라고 봅니다.”

손승락은 ‘거인 군단을 움직인 남자'로 조원우 감독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 감독님은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분이세요. 지난 시즌부터 고민이 많으셨습니다. 팀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셨어요. 그런 부분에서 정말 존경스럽고, 우리 모두가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감독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 시즌 그라운드에서 잘 나타나지 않았나 싶어요.”

조 감독은 지난 시즌 손승락이 부진했을 때 그를 끝까지 믿고 기다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팀 마무리 투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 감독의 뚝심은 잠든 손승락을 기어이 깨우고 말았다. 그 믿음을, 손승락은 올 시즌 호투로 화답하고 있다.

손승락 “마운드에 서면 외롭지 않다. 투수인 내 뒤엔 팬 포함 9명의 야수가 있으니까”

더욱 더 뜨거워질 사직의 열기(사진=엠스플뉴스)
더욱 더 뜨거워질 사직의 열기(사진=엠스플뉴스)

정규 시즌과 포스트시즌을 관통하는 내내 많은 부산팬은 손승락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경기가 끝나면 손승락도 엄지를 세우고, 팬들의 성원에 화답한다. 팬들에게 전하는 손승락만의 ‘감사 인사’다.

“구장에 오셔서 열심히 응원해주신 팬들께 보내는 저만의 사인입니다. 팬들께 매 경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엄지를 높이 들게 됐어요. 선수들과 팬들이 하나가 됐기에 가을야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승리가 곧 팬들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손승락의 진심이다.

마운드에 오른 손승락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것이다. 손승락에게 팬은 곧 ‘에너지’이자 승리의 징표다.

“우리 롯데 선수들은 팬들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꿈꾸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조금씩 전진하고 있어요. 팬들의 응원보다 더 큰 에너지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큰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리베라와 손승락은 닮았지만, 이 점에선 다를지 모른다. 리베라는 ‘마운드 위에 서면 언제나 혼자’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손승락은 ‘마운드에 서면 외롭지 않다’고 한다.

손승락의 가을은 팬들과 함께하기에 전혀 외롭지 않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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