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다시 타오른 가을 야구의 향기는 진하고 깊었다(사진=롯데)
5년 만에 다시 타오른 가을 야구의 향기는 진하고 깊었다(사진=롯데)

[엠스플뉴스]

| 롯데 자이언츠의 2017시즌이 끝났다. 부산 팬들을 '롯데 홀릭'에 빠뜨린 거인 군단의 여정을 다시 만나보자.

축제가 끝났다.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진격은 여기까지였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가을 무대에서 롯데는 부산 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정규 시즌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롯데는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정규시즌 3위를 차지했고, 2012년 이후 5년 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과 함께 100만 관중 달성에 성공했다(1,038,492명).

여기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돋보였다. ‘에이스’ 박세웅을 시작으로 박진형, 김원중, 나경민 등 젊은 선수들의 좋은 기량을 뽐내며 팀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고질적인 문제점도 개선했다. 그간 롯데를 괴롭혔던 ‘불펜진’과 ‘수비’ 불안을 눈에 띄게 개선한 것이다. 이젠 강팀의 향기마저 풍기는 롯데다.

‘NC 포비아’ 이겨낸 롯데

비록 NC엔 졌지만, 더 큰 감동과 명승부를 팬들에게 안긴 롯데다(사진=롯데)
비록 NC엔 졌지만, 더 큰 감동과 명승부를 팬들에게 안긴 롯데다(사진=롯데)

10월 1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롯데의 준플레이오프(준PO) 5차전.

이날 롯데는 NC에 0대 9로 패하며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그래도 5차전까지 가는 끈기를 보였다.

1차전에선 연장 접전 끝에 NC가 9대 2로 승리했다. 2차전은 롯데 마운드가 살아나며 1대 0 짠물 승을 거뒀다. 3차전은 무대를 창원으로 옮겼다. 이번엔 NC 타선이 폭발하며 롯데에 13대 6 대승을 거뒀다. 4차전은 조시 린드블럼의 호투와 손아섭의 홈런 2방으로 7대 1로 롯데가 이겼다. 명승부 덕분인지 준PO엔 총 99,107명의 관중이 몰렸다.

그러나 ‘가을 좀비’ NC의 벽은 높았다. 롯데가 간격을 좁히면 이내 도망갔다. 4년 연속 가을 야구 진출의 저력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 시즌 이런 NC를 상대로 우세 시리즈를 이끈 팀이 바로 롯데였다.

롯데는 올 시즌 ‘천적’ NC를 상대로 9승 7패로 우세했다. 이 승리로 롯데는 지난해 대 NC전 1승 15패의 굴욕을 말끔히 씻어냈다.

사실 롯데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3년간 NC와의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보인 적이 없었다. 2014년 7승 9패, 2015시즌 5승 11패로 열세였다. 우세를 기록한 시즌은 NC가 1군에 처음 올라온 2013년 8승 2무 6패가 마지막이었다.

NC만 만나면 작아졌던 롯데 선수들은 이제 더는 NC가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두 팀의 다음 시즌 맞대결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성장한 롯데, 올해보다 내년을 더욱 기대된다.

조원우 감독의 리더십은 올 시즌 거인 군단을 깨어나게 했다(사진=롯데)
조원우 감독의 리더십은 올 시즌 거인 군단을 깨어나게 했다(사진=롯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한 시즌 쉼 없이 달려왔는데, 여기서 끝나 조금 아쉽습니다.”

준PO 5차전을 끝내고, 롯데 조원우 감독이 한 말이다. 정규 시즌 대반전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을 법도 하다.

전반기를 리그 7위(86경기 41승 1무 44패)로 끝낸 롯데는 후반기 58경기에서 39승 1무 18패의 대반전을 이끌었다. 후반기 성적만 놓고 보면 정규시즌 우승팀 KIA 타이거즈보다 좋다(59경기 30승 1무 28패).

조 감독의 리더십이 빛난 결과였다. 조 감독은 2년 차 감독답지 않게 경기마다 초연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선수들을 신뢰하는 장면에선 베테랑 감독의 향기마저 풍겼다. 감독의 진중함에 자극받은 선수들은 누구 한 명도 시즌을 포기하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롯데 코칭스태프와 구단이 부진과 부상,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기다린 덕분이었다.

(좌로부터)박세웅, 강민호. 롯데는 변화하고 있다. 특히 신·구의 조화는 올 시즌 롯데의 강점으로 꼽혔다(사진=엠스플뉴스)
(좌로부터)박세웅, 강민호. 롯데는 변화하고 있다. 특히 신·구의 조화는 올 시즌 롯데의 강점으로 꼽혔다(사진=엠스플뉴스)

무엇보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엔 조 감독의 기다림이 큰 역할을 했다. 긴 레이스를 펼치다 보면 때론 좋고, 나쁨의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젊은 선수들은 그 편차가 더 크다. 그래선지 조 감독은 애초부터 한 시즌을 144경기로 봤다. 따라서 1경기 결과만을 놓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런 긴 안목으로 조 감독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횔 줬고, 젊은 선수들은 기어이 그 기회를 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베테랑들도 조 감독의 믿음에 응답했다. 지난 시즌 조 감독의 고민이었던 마무리 손승락과 선발투수 송승준은 올 시즌 완벽하게 부활했다. 올 시즌 손승락은 롯데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웠고(37세이브), 후반기 들어선 ‘언터처블’의 위용을 뽐냈다.

송승준도 4년 만에 두 자리 승수(11승)에 성공했다. 올 시즌 불펜으로 출발했지만, 선발로 돌아와 11승 5패 평균자책 4.21의 호투를 펼친 것.

지난 시즌 두 선수가 부진에 빠지자 팬들의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조 감독은 이에 동요하지 않았다. "언젠간 기량이 올라올 선수들"이라며 끝까지 신뢰를 보였다. 두 베테랑은 올 시즌 멋진 활약으로 그 신뢰에 보답했다.

손승락은 “(조원우) 감독님은 정말 강한 분이다. 지난 시즌부터 고민이 많으셨다. 하지만, 고민을 표출하기보단 팀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만 집중하셨다. 정말 존경스럽고, 우리 모두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감독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선수들의 마음’이 올 시즌 그라운드에서 잘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롯데'란 이름이 만들어낸 기적. ‘가을야구’

내년에도 부산 팬들의 힘찬 환호성을 들을 수 있을까(사진=롯데)
내년에도 부산 팬들의 힘찬 환호성을 들을 수 있을까(사진=롯데)

올 시즌 롯데의 진격엔 ‘성공’이란 단어를 붙여도 부족함이 없다. 비록 그 진격이 준PO에서 막을 내렸지만, 분명 다음 시즌을 기대케 하는 활약이었다.

그 비결은 바로 ‘하나’됨에 있다. 주장 이대호는 “우리 팀은 올 시즌 감독님을 중심으로 코칭스태프, 선수단, 프런트가 ‘하나’로 똘똘 뭉쳤다"며 "당연히 팀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 선수단 모두 한 몸, 한뜻으로 움직였다.

롯데 코칭스태프는 조 감독 외에도 모든 코치가 정신없이 바쁜 시즌을 보냈다. 선수들의 아쉬움을 하나라도 달래주기 위해 끝까지 그라운드에 머물렀다. 부상 투혼도 있었다. 장재중 배터리 코치는 맹장 수술로 1군에서 잠시 말소됐지만,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선수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코치들 사이에선 미묘한 경쟁 의식보단 칭찬 일색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마운드의 성장을 이끈 김원형 수석코치와 이용훈 배터리코치, 후반기 롯데 타격을 되살려낸 김승관, 정보명 타격코치. 롯데 수비진을 ‘금손’으로 만든 김민재, 김대익 수비코치와 ‘사직마’를 성장시킨 최만호 주루코치는 올 시즌 롯데 상승세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휴식과 훈련의 중심을 잡은 장재영, 이영준 트레이닝 코치와 김종훈 컨디셔닝 코치 역시 칭찬이 아깝지 않은 이다.


올 시즌 내내 마음 졸였던 코칭스태프의 노력은 성적으로 결실을 맺었다(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내내 마음 졸였던 코칭스태프의 노력은 성적으로 결실을 맺었다(사진=엠스플뉴스)

프런트도 쉴 새가 없었다. 전 입장 관중에게 ‘동백’ 유니폼을 전달하고, 사직구장을 붉게 물들인 것은 KBO리그 마케팅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형 이벤트였다. 롯데는 김창락 사장과 이윤원 단장이 직접 나와 부산 팬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행사를 기획하며 롯데와 팬이 하나임을 몸소 증명했다.

그리고 ‘부산 팬’이 있다. 롯데가 승리해야 할 이유는 바로 팬들이었다. 이대호는 “올 시즌 부산 팬들과 함께 가을 야구를 하겠단 목표로 최선을 다했다. 그 목표를 이뤄 너무 행복하다”고 밝힌 바 있다. 팬들도 이에 응답하듯 '100만 관중'이란 선물을 롯데에 선사했다.

거인 군단의 진격은 허상이 아니었다. 뜨겁게 타오는 태양처럼 내년 시즌 또 다시 떠오를 일출(日出)이다. 올 시즌 즐거움과 행복을 팬들에게 선사한 롯데. 그들은 칭찬받기에 마땅하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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