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엠스플의 눈] 몸값 거품? 거품을 만든 건 구단들 자신이다

-KBO 이사회, '외국인 선수 몸값 제한' 이어 'FA 몸값 제한'도 논의

-몸값 거품이 문제? 거품 만든 건 성적에 눈먼 구단들 자신이다.

-수요에 비해 제한된 공급이 원인, 외국인 보유 제한 풀고 FA 연한 단축해야

-'커미셔너'로 불리려면 커미셔너에 걸맞은 역할 해야

 

10일 열린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사말을 하는 정운찬 총재. 자신을 '커미셔너'로 소개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10일 열린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사말을 하는 정운찬 총재. 자신을 '커미셔너'로 소개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한국 프로야구가 병들었다. 인체가 병들면 진단과 처방을 하듯, 병든 KBO도 적절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진단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정운찬 KBO 총재가 9월 12일 기자들 앞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정 총재는 최근 일어난 야구 국가대표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11일 열린 이사회 결정 사항에 대해 알렸다.

 

그런데 내놓은 처방전이 어째 좀 이상하다. 정 총재의 발언과 11일 이사회 결과를 보면 KBO와 구단들은 ‘몸값 거품’을 현 KBO리그의 위중한 병으로 진단하는 듯하다.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 몸값 총액 제한을 결정하고, FA(자유계약선수) ‘몸값 거품’ 대책도 논의했다. 이사회끼리 밀실에서 정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해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렸다. 

 

외국인 선수 몸값 제한, 반시장적인 임시방편

 

지난해 KIA 우승의 일등공신 헥터 노에시. 수준급 외국인 선수 영입은 우승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진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KIA 우승의 일등공신 헥터 노에시. 수준급 외국인 선수 영입은 우승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진다(사진=엠스플뉴스)

 

날로 치솟는 선수 몸값. 구단 운영에 큰 부담인 것은 맞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할 문제인 것도 맞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 원인을 올바로 진단해야 적절한 처방이 나온다. 일부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휘둘려도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기 어렵다. 정 총재가 존경받는 경제학자 출신이니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발표된 내용을 보면 정확한 진단보다는 잘못된 상황 인식과 일부 구단의 이기적인 의도가 작용한 것 같아 우려가 된다.

 

KBO 이사회는 내년부터 한국에 오는 신규 외국인 선수의 몸값 총액(이적료 포함)을 100만 달러로 제한했다. 일부 에이전트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미국 구단에게 선수 몸값에 육박하는 이적료를 주지 않기 위해서, 한국야구가 더는 ‘봉’이 되지 않기 위해 몸값 제한을 결의했다고 한다.

 

이상한 소리다. 일부 구단이 외국인 영입 시 에이전트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사실이나, 이건 어디까지나 그 구단의 역량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외국인 선수 영입을 잘하기로 소문난 구단들은 절대 에이전트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협상을 잘해서 구단 의도를 관철하거나, 얘기가 안 통하면 새로운 영입 후보를 찾는다. 에이전트 때문에 몸값이 올라서 힘들다는 볼멘소리는 구단의 능력 부족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선수 몸값에 육박하는 이적료가 문제라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최근 메이저리그 구단이 한국에서 관심 가질 만한 선수를 40인 로스터에 묶은 뒤 이적료 장사를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적료 없이 선수를 영입해 잘만 활용하는 구단도 얼마든지 있다. 

 

넥센 히어로즈는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 선수만 주로 영입한다. 지난해 합류해 에이스로 변신한 제이크 브리검, 올해 영입한 제리 샌즈가 대표적이다. 굳이 수십만 달러의 이적료를 쓰지 않고서도 시즌 치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성적 욕심에 특급 외국인 선수에 목을 맨 몇몇 구단의 행태가 지금처럼 선수 이적료를 폭등하게 했다. 한국야구가 미국 구단의 ‘봉’이 되게 했다. 미국야구 출신의 한 방송 해설가는 “주로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던 팀들이 외국인 선수를 무리해서 영입한 경향이 있었다. 무리한 이적료를 주고 선수를 데려온 팀을 보면 대개 하위권 구단”이라 했다. 

 

성적 내겠다고 이적료를 펑펑 퍼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높은 이적료가 문제니 몸값 총액을 제한하자고 한다.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제도를 수시로 바꾼다. 몸값 거품을 자초한 자신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 선수 몸값을 제한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일단 온갖 꼼수가 판을 칠 게 명약관화하다. KBO가 전수조사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다. 총재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구단들은 코웃음 친다. 정부가 규제를 만들면 누군가는 피해갈 창의적 방법을 찾아낸다. 정 총재가 경제학자 출신이니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외국인 선수 수준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도 예상된다. 규정대로 선수를 영입하려면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 외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가난한’ 구단들이 이런 선수를 싼값에 영입해 재미를 봤다. 앞으론 돈 많은 구단이 이 선수들에게 웃돈을 주고 영입할 수 있다. 모두가 불행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외국인 선수 몸값이 치솟는 근본 원인은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일본 구단까지 거물 외국인 영입에 뛰어들면서 수요와 공급의 간극이 더 커졌다.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을 풀고, 1군 등록 인원을 정하는 게 그나마 나은 대안이다. 

 

이렇게 하면 수백만 달러짜리 귀한 몸을 모시느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일도, 그렇게 데려온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부진에 빠져 거액을 날리고 시즌까지 망치는 일도 막을 수 있다. 다양한 국적과 출신의 잠재력 있는 선수를 영입해 키우는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구단의 진짜 스카우트 능력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총재와 이사회는 이런 대안들은 제쳐두고, 몸값 총액 제한이라는 반시장적인 임시방편을 ‘뚝딱’ 정해서 발표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일부 가난한 구단들과 야구를 보는 팬들에게 돌아간다. 어째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FA 몸값 제한? FA 자격 완화가 해법이다

 

미국야구를 경험하고 돌아온 황재균은 4년 총액 88억 원의 FA 대박을 터뜨렸다. 원하는 구단들이 있으니 선수 몸값이 치솟는 건 당연한 결과다(사진=엠스플뉴스) 미국야구를 경험하고 돌아온 황재균은 4년 총액 88억 원의 FA 대박을 터뜨렸다. 원하는 구단들이 있으니 선수 몸값이 치솟는 건 당연한 결과다(사진=엠스플뉴스)

 

11일 이사회에서 일부 구단은 FA 선수의 몸값 총액을 제한하자고 강력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구단이 ‘4년 80억, 100억 원을 상한선으로 하자’고 주장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실이라면 이상한 얘기다. FA 80억, 100억 시대는 선수들이 아닌 구단들 스스로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일부 구단은 발표한 액수 이상의 웃돈까지 줘가며 FA 대어 영입에 공을 들였다. 미국야구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선수들에게 미국 진출 이전보다 훨씬 많은 돈을 안겼다. 이유는 단 하나. 단지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선수들이 원해서 거품이 생긴 게 아니다. 거품을 지금처럼 크게 만든 건, 구단들 자신이다.

 

FA 몸값 총액을 제한하면 해결될까. 80억 원 이상의 거액을 받은 선수 중에는 실제로는 발표액 이상의 돈을 받은 선수가 적지 않다. 구단들이 여론의 비난을 의식해 정직하게 발표하지 않은 것뿐이다. 몸값 총액을 제한하면 생길 결과는 뻔하다. 다운계약과 온갖 꼼수가 판을 칠 것이다. 

 

일부 구단으로 우수 선수가 몰리는 문제도 예상된다. 가령 100억 원을 상한선으로 정했는데, A란 선수에게 3개 구단이 모두 최고액을 제시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아무래도 돈 많고 인기 많고 전력 좋은 구단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최고 수준의 선수는 부자 구단으로 몰리고, 비인기 팀과 만년 하위권 팀은 그보다 못한 선수만 데려오는 상황이 얼마든 벌어질 수 있다. 

 

몸값 거품의 근본 원인은 제한된 공급이다. 한국의 FA는 취득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데뷔해서 9년을 꼬박 채워야(대졸 8년) 겨우 첫 FA 자격을 얻는다. 9년을 뛰려면 아무리 빨라야 20대 후반이다. 대졸 선수는 30대나 돼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 나이까지 살아남아 FA 자격을 얻는 선수는 극소수다. 공급이 제한적이니 일부 선수 몸값이 치솟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공급을 늘리는 게 답이다.

 

먹튀 문제도 마찬가지다. FA 자격이 30대 이후에 뒤늦게 주어지는 게 문제다. 운동선수의 신체 능력은 30세 이후로 점차 감퇴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먹튀가 될 확률도 높아진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FA 자격을 얻는 게 상책이다. 결국 FA 몸값 거품을 걷어내려면 상한선을 만들 게 아니라, 취득 요건을 지금보다 완화하는 게 답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도 비슷한 의견이다. 선수협 김선웅 사무총장은 만약 FA 몸값 제한 같은 규제가 생긴다면, FA 자격 연한을 지금보다 단축하는 등의 조처가 수반돼야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11일 이사회에서 이런 논의가 함께 이뤄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KBO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FA 문제도 논의한 것은 맞지만, 선수협과도 얘기가 필요한 사안이라 선수협 총회가 열리는 12월이 돼야 결론이 날 것”이라 했다. 자칫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몸값 거품’이 문제란 식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선수협에 통보하는 식이 되진 않을지 우려된다.

 

말로만 커미셔너, 실제로는 일부 구단 주도에 휘둘리는 이사회

 

KBO 이사회는 이기적인 집단이다. 자기 구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사회를 잘 중재하고 이끌어가는 게 커미셔너의 역할이다(사진=엠스플뉴스) KBO 이사회는 이기적인 집단이다. 자기 구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사회를 잘 중재하고 이끌어가는 게 커미셔너의 역할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정운찬 총재는 자신이 ‘커미셔너(Commissioner)’라고 주장한다. 기자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도 항상 “KBO 커미셔너 정운찬입니다”라고 한다. 커미셔너의 사전적 의미는 ‘프로 야구나 프로 권투 따위에서, 질서 유지 따위를 위하여 전권(全權)이 위임된 최고 책임자’다. 

 

전권이 위임된 최고 책임자. 정 총재가 처음 취임했을 때 야구계에선 바로 그런 역할을 기대했다. 전직 총리 출신이자, 한국 최고 상아탑의 수장 출신답게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단들을 주도해 KBO 개혁을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사회에 이리저리 끌려만 다니다 임기를 마친 이전 총재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 총재가 보여준 행보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준다. 각종 사건과 사고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총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야구 대표팀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신인 1라운드 지명자와 포토타임 시간에 주로 눈에 띄었다. 

 

뒤늦게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과하고 해명하는 시간을 가진 건 잘한 일이다. 하지만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또 현재 KBO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제대로 된 진단도, 만족스러운 대안도 나오지 않았다. 

 

일부 사안에 대해선 일반적인 인식과 동떨어진 답을 내놨다. 총재를 보좌하는 이들이 과연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논란 해소를 위해 무슨 무슨 ‘협의회’를 만든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관료식 해법이다. 쓸데없는 명함만 늘어날 뿐, 문제 해결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총재가 벌써 KBO 이사회에 휘둘린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사회는 이기적인 집단이다. 자기 구단의 이익과 성적이 이사회의 최우선 가치다. 대부분의 구단 사장은 야구단 운영 전문가도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한국야구 발전을 위한 대승적이고 발전적인 생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총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일부 구단이 주도해 외국인 선수 몸값 제한 안이 통과됐다. 총재 생각도 다르지 않다고 하니 더 절망적이다. FA 몸값 제한도 논의가 이뤄졌고, 결국엔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역시 일부 구단의 유불리가 작용한 땜질 처방이다. 총재는 자신이 커미셔너라고 주장하지만, 한국야구에 커미셔너 역할을 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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