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새 외국인 투수 에릭 요키시의 ‘가시밭길’ 야구인생

-2014년 빅리그 호투, 그러나 4년간 기약없는 마이너리그 생활

-“주위 환경 영향받지 않고 더 나은 투수 되려 노력했다”

-“키움은 우승후보, 우승 도전에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마운드에서 더 강한 인상을 주고 싶어 수염을 길렀다는 요키시. 덥수룩한 수염 속에는 선량한 미소가 숨어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마운드에서 더 강한 인상을 주고 싶어 수염을 길렀다는 요키시. 덥수룩한 수염 속에는 선량한 미소가 숨어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키움 히어로즈 외국인 투수 에릭 요키시는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에 익숙한 선수다. 야구 인생에서 원만하고 순탄한 길을 걸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요키시는 1989년 미국 중부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다. 스프링필드는 날씨가 흐리고 궂은 동네라 야구 같은 실외 스포츠를 하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야구보다는 링컨 대통령이 성장한 곳, 혹은 ‘심슨가족’에 등장하는 인외마경과 이름이 같은 도시로 더 유명하다.

맞아요, 제가 자란 지역의 날씨가 꽤 추웠던 건 사실입니다. 미국 애리조나 키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요키시가 말했다. 요키시와 만난 날, 애리조나는 전날 내린 비의 영향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고 찬바람이 불었다. 전혀 애리조나답지 않은 날의 연속이었다. “날이 추워서 야구는 물론 농구를 하기에도 그리 좋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요키시가 야구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데 날씨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살던 집이 세인트루이스와 꽤 가까웠습니다. 큰 규모의 카디널스 팬베이스가 형성된 지역이죠.” 요키시의 말이다. 세인트루이스는 스프링필드에서 약 1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야구를 하러 따뜻한 애리조나 지역에도 자주 내려왔어요. 이쪽에 와서 경기도 많이 했죠. 날씨는 제게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출신 고교 역시 요키시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키시가 나온 일리노이 세인트 버지니아 소재 버지니아 고교가 야구부 창설 이래 배출한 메이저리거는 딱 1명,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지명자도 딱 1명 뿐이다. 그 1명이 바로 요키시다.

요키시는 고교 졸업반인 2007 신인드래프트 39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지명을 받았다. 이후 ‘약체’ 노스웨스턴 대학에 진학한 요키시는 등 부상을 딛고 3학년 시즌 에이스로 활약한 끝에, 2010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컵스의 11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성했다. 그리고 2014년 9월 7일 빅리그 무대에 데뷔하며 버지니아 고교 출신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됐다.

투수들의 지옥, PCL에서 요키시가 살아남은 비결은?

요키시의 빅리그 꽃길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요키시는 4경기에서 14.1이닝 3실점(ERA 1.88)로 꽤 좋은 피칭을 선보였지만, 다시는 빅리그 마운드에 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5년엔 시범경기 부진 이후 부상이 겹치면서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렀고, 2016년엔 지명할당과 트레이드로 3개 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렀다.

솔직히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요키시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을 때 성적이 괜찮았으니까요. 아쉬웠죠. 하지만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실망감에 나쁜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요키시는 척박한 환경을 더 좋은 투수로 성장하는 계기로 삼았다. 요키시가 2017년과 2018년 활약한 퍼시픽 코스트 리그(Pacific Coast League, PCL)은 타자들의 천국이자 투수들의 지옥으로 악명높은 리그다.

16개 트리플 A 팀이 속한 이 리그엔 2,000피트 이상 고지대에 홈구장을 둔 팀이 많아, 대부분의 경기가 쿠어스필드 같은 환경에서 진행된다. 희박한 공기는 투수들의 숨을 옥죄고, 타구가 쭉쭉 뻗어나가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3할 타자와 20홈런 타자가 넘쳐나고, 3점대 평균자책 투수가 귀한 게 이 리그의 특징이다. 뉴욕 메츠의 ‘토르’ 노아 신더가드는 유망주 시절인 2014년 PCL에서 133이닝 동안 4.60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시속 100마일 광속구를 던지는 초특급 유망주 투수에게조차, PCL은 힘겨운 곳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요키시는 살아남았다. 요키시는 2017시즌 PCL에서 134.2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 4.21을 기록해 리그 평균자책 4위에 올랐다. 2018시즌에도 148.2이닝을 던지며 4.06의 빼어난 평균자책을 기록했고, 리그 평균자책 9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다.

주변 환경이나 저를 둘러싼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더 나은 투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요키시의 말이다.가능하면 정타를 맞지 않기 위해 낮은 존을 공략하려 애썼고, 주자 있는 상황에서는 홈런을 맞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면서, 타자를 공격한다는 느낌으로 피칭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최근 몇년간 PCL 평균자책 순위를 살펴보면 낯익은 이름들이 여럿 눈에 띈다. 2016년 리스트엔 덱 맥과이어(ERA 5.10), 듀에인 빌로우(ERA 5.27), 조 윌랜드(ERA 5.43), 드류 루친스키(ERA 5.92)가 보이고 2017년에는 세스 후랭코프(ERA 4.40), 스캇 코프랜드(ERA 4.97)의 이름이 있다. 2018년에도 케이시 켈리(ERA 4.76)가 풀타임 PCL 투수로 활약한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과거 KBO리그에서 활약했거나, 올 시즌 활약할 예정인 투수들이다. 이 가운데 요키시(총 50만 달러)보다 적은 몸값을 받은 선수는 시즌 중 대체 선수로 합류했던 빌로우(총 30만 달러) 뿐이다. 대부분은 100만 달러에 가까운 높은 몸값을 받는 ‘귀한’ 몸이다. 하지만 PCL에서 거둔 성적은 요키시가 훨씬 좋았다.

“저 스스로 좀 더 나은 투수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때마침 키움으로부터 계약 제의를 받게 됐습니다. 이전부터 KBO리그 진출에 관심은 있었는데, 시즌 끝난 뒤 키움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고 계약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요키시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요키시의 각오 “키움과 함께하는 우승 도전, 내겐 큰 동기부여”

요키시는 한국 무대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여러 장점을 갖춘 투수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요키시는 한국 무대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여러 장점을 갖춘 투수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비록 빅리그 마운드를 밟은 지 4년이 지났고, 몸값은 외국인 선수 총액 상한선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요키시는 KBO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만한 경쟁력을 갖춘 투수다.

188cm의 큰 키에 좌완이라는 이점을 지녔고, 트리플 A 통산 9이닝당 볼넷 2.6개로 수준급 제구력에 투심을 비롯한 다양한 구종을 던진다. 140km/h 중후반대 패스트볼 평균구속도 KBO리그 기준에선 경쟁력이 충분하다.

마정길 투수코치는 요키시에 대해 디셉션이 굉장히 뛰어나다타자 입장에선 공이 잘 보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을 끝까지 숨겼다가 빠르게 던지는 투구폼이라, 타자에겐 공이 실제보다 더 빠르게 느껴질 것이란 평가다.

장정석 감독은 한국야구를 배우고 빠르게 적응하려는 요키시의 태도를 높게 평가했다. 장 감독은 “한국야구에 대해 궁금한 점을 전력분석팀은 물론 브랜든 나이트 코치, 제이크 브리검에게 끊임없이 물어본다. KBO리그의 분위기나 특징에 대해 빨리 파악하려는 자세가 긍정적”이라고 했다.

“브리검과 과거 잠시 같은 팀에 있었고, 롯데 브룩스 레일리와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입니다.” 요키시의 말이다. “이 친구들이 한국야구에 대해 많이 알려준 덕분에 시즌 준비에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또 나이트 코치에게도 많은 것을 배우면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요키시는 시즌 전체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목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 그날 매 경기마다 잘 준비하고, 집중해서 좋은 투구를 하는 데 주의를 기울입니다. 나중에 시즌이 다 끝난 뒤 한 시즌 동안 거둔 성과를 돌아보는 편이 더 좋더군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요키시에겐 장기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었는지 모른다.

미국 시절보다 훨씬 길게 기른 수염에서도 요키시 특유의 ‘생존본능’이 잘 드러난다. 요키시는 “사실 난 수염 기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키움과 계약한 뒤 타자에게 좀 더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싶어 기르기 시작했다. 아내도 내 수염을 좋아한다. 지금보다 더 기르진 않고, 다듬는 정도로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험난했던 요키시의 야구인생에 KBO리그는 새로운 도전이자 동기부여의 기회다. “물론 야구는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죠. 하지만 이제 키움과 계약하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목표의식을 갖고 야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요키시의 말이다.

지난 시즌 키움이 얼마나 좋은 성적을 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올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란 것도 알고요. 비록 메이저리그에선 큰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키움에선 팀의 우승 목표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돼서 기쁩니다. 제게는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추운 날씨와 허약한 소속팀의 전력, 기약없는 마이너리그 생활과 투수에게 악몽같은 리그 환경도 요키시의 야구를 향한 사랑을 무너뜨릴 순 없었다. 요키시는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이제 KBO리그에서 요키시는 ‘생존자’를 넘어 ‘승리자’가 되길 열망하고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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