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공인구 검사 결과 반발계수는 예년 그대로

-공인구 규격 변경 당시부터 ‘졸속’ 우려, 공인구 말썽 이번이 처음 아니다

-“공인구 규격 변경, 얼마나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했는지 의문”

-시범 경기 전까지 달라진 공인구 반발계수 관심 두지 않았던 KBO 운영팀

-'제도 변화'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테스트, 독립리그에 의뢰해 실험하는 메이저리그

공인구는 야구의 화폐다. KBO 새 공인구의 반발계수가 개정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사진=엠스플뉴스)
공인구는 야구의 화폐다. KBO 새 공인구의 반발계수가 개정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공인구가 또 말썽이다. 3월 19일 KBO(한국야구위원회)가 발표한 단일 경기사용구 1차 수시검사 결과에서 공인구 업체 '스카이라인'이 제조한 일부 경기사용구의 반발계수가 올해 개정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 시즌 KBO가 정한 공인구 반발계수 기준치는 0.4034~0.4234다. 그러나 무작위 검사한 샘플 3타 가운데 2타는 반발계수 0.4261과 0.4248로 기존 공인구(0.4134~0.4374) 수준의 반발계수를 보였다. 나머지 1타도 반발계수 0.4231로 새 공인구 기준치를 간신히 충족하는 수준이었다.

심각한 타고·투저를 완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반발계수를 낮춘 새 공인구를 도입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론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KBO의 공인구 말썽, 이번이 처음 아니다

KBO 공인구는 이미 여러 차례 말썽을 빚었다(사진=엠스플뉴스)
KBO 공인구는 이미 여러 차례 말썽을 빚었다(사진=엠스플뉴스)

이는 지난해 말 KBO가 공인구 변경을 추진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사태다. 취재 결과 KBO는 5월께부터 본격적인 공인구 변경 논의를 시작해, 스프링캠프를 한달 반 정도 남겨둔 같은 해 12월 14일 최종 확정된 새 공인구 규격을 제조사 스카이라인에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일이 촉박하다보니 당장 2019년 2월 1일 시작된 스프링캠프부터 공급 차질이 빚어졌다. 엠스플뉴스는 이 문제를 지난해 12월 19일 ‘[엠스플 이슈] 10개 구단 울상, “KBO 졸속 ‘공인구 정책’으로 혼란”’이란 제하의 기사로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엠스플뉴스가 접촉한 복수의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이번 캠프에선 이전 캠프 때 받은 공인구 수량의 절반(10박스)만 받을 것 같다재고로 남아있는 공인구를 활용해 캠프를 치러야 할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캠프에서 구단들은 타격, 수비 훈련 때는 기존 공인구를 사용하고, 투수들의 불펜 피칭 때만 새 공인구를 사용하는 식으로 공급 부족을 해결해야만 했다. 타자들은 투수들이 라이브 피칭을 시작한 캠프 중반이 돼서야 새 공인구를 접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당시 구단 사이에선 “갑작스런 공인구 변경이 공의 품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걱정이 나왔다. '스프링캠프 공급 물량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는데, 3월 말 시즌 개막 때까지 충분한 양의 공을 좋은 품질로 제조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새어나왔다. 1경기에 쓰이는 야구공은 약 120여개. 한 시즌을 치르는 데만 약 8만 개의 야구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야구공 제조업체 대표 A 씨는 “공의 둘레를 넓히고, 솔기를 낮추는 정도의 규격 변경은 제조 과정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솔직히 반발계수가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기사를 보고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인구 반발계수를 결정하는 건 공의 중심에 있는 코르크다. 코르크는 야구공 제조업체가 직접 제작하는 게 아니라, 전문 제조업체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사용한다. 코르크 공장에선 코르크를 반발계수 별로 세분화해 준비하고 있다. 기준치에 맞는 코르크를 사용하고, 다른 제조 과정에 변화만 없다면 반발계수를 맞추는 덴 큰 문제가 없다. A 대표의 말이다.

스카이라인 공인구가 말썽을 빚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카이라인은 2014년 본지 기자의 취재 결과로 양모 함량을 실제보다 높게 표기해 판매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스카이라인의 홈페이지에 표기된 양모 함량은 90%였으나 실제 함량은 70%대였다.

2013년엔 국외에서 제조한 공을 국내산으로 표기해 판매한 사실이 관세청에 적발돼 과징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새 공인구 규격이 발표된 뒤 스카이라인 관계자는 엠스플뉴스에 시범경기 전까지 필요한 만큼의 공인구를 생산하는 데 전혀 차질이 없다. 이미 시즌 중에 KBO와 공인구 규격 변경을 두고 여러 차례 의견을 교환하면서 새 공인구 생산을 준비했다. 공 물량은 물론 품질에도 전혀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호언장담과는 달리 정규시즌을 앞두고 공인구 불시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되면서, KBO의 시즌 운영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 KBO는 공인구 제조사인 스카이라인에 불량 반발계수와 관련해 주의 조치와 함께 제재금 1천만 원을 부과했다. 과거 여러차례 문제를 빚었던 스카이라인 공인구는 또 한번 불신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야구의 미래 내다본 메이저리그의 실험, KBO는?

스카이라인 스리랑카 공장(사진=엠스플뉴스)
스카이라인 스리랑카 공장(사진=엠스플뉴스)

이번 공인구 반발계수 사태가 아쉬움을 주는 이유는 또 있다. 공인구는 야구의 화폐다. 안정적 화폐 정책이 시장의 발전을 이끌듯, 안정적인 야구공은 리그 발전과 공정한 경기로 이어진다. 반면 야구의 화폐인 야구공이 불안정하면 리그 전체가 흔들리고, 경기의 공정성에 불신이 생긴다.

지난해 공인구 변경 계획이 발표되자 KBO 내부와 구단 실무자들 사이에선 “공인구 변경은 리그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인데 너무 서둘러 진행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구단 운영팀 관계자 사이에서도 리그 전반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KBO가 얼마나 세밀하게 분석하고 고민했는지 의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취재 중 만난 한 야구 관계자는 메이저리그에선 새로운 규칙이나 제도를 바로 메이저리그에 도입하는 대신, 우선 마이너리그에 도입해 충분한 검증기간을 거친다. 부작용은 없는지, 예상했던 효과를 내는지 검증이 끝나면 선수노조와의 협의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도입한다. 구단 사장과 단장들끼리 모여서 뚝딱 결정하는 KBO와 비교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논란인 ‘20초 룰’은 이미 2014년 애리조나 가을리그부터 시행해, 2015년부터 마이너리그에서 4년간 운영됐다. 올해는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 테스트를 거치는 중이며, MLB 사무국과 선수노조의 협상이 타결되면 정규시즌부터 적용된다.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곧바로 시행하는 제도 변화는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에 의뢰해, 야구의 미래를 바꿀 중요한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트랙맨 레이더 추적 시스템을 활용한 ‘로봇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비롯해, 마운드 모임 금지, ’1투수 3타자’ 의무 규정, 루간 거리 축소, 투구 거리 연장 등을 앞으로 3년 동안 실험할 예정이다.

메이저리그는 앞으로 3년, 10년 뒤를 내다보고 야구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반면 아직도 우리 야구는 그때그때 문제가 생기면 땜질식 처방을 하고, 미국과 일본의 제도 변화를 따라하기 급급하다. 이번 공인구 반발계수 사태로 드러난 것처럼 충분한 준비와 검증을 거치지도 않는다.

특히나 KBO 운영팀은 정규시즌이 다가오도록 공인구 업체가 반발계수를 잘 관리하고 있는지 별다른 체크를 하지 않았다. 시범경기 시작 전 KBO 박근찬 운영팀장은 공인구 반발계수 검사는 아직 진행한 게 없다. 예년과 같이 시범경기 기간에 1차 불시 검사할 계획이란 말만 했다.

결과적으로 시즌을 코 앞에 둔 상태에서 공인구 업체는 반발계수를 맞추지 못했다. 반발계수를 새롭게 조정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KBO였다. 그렇다면 공인구 업체가 그에 맞는 반발계수를 유지하도록 관심을 기울였어야 하는 곳도 KBO다. 그게 당연한 업무다. 하지만, KBO 운영팀은 시범경기 기간만을 기다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KBO 수뇌부가 과거처럼 은폐와 축소로 일관하는 대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새 대안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공인구 관리에 보다 만전을 기하길 야구계는 바라고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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