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가한 랜디 존슨(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가한 랜디 존슨(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2001년 5월 9일(한국시간) 랜디 존슨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세 번째(로저 클레멘스, 케리 우드)로 9이닝 동안 20탈삼진을 잡아낸 투수가 됐다. 좌완 투수로서는 첫 번째 기록이었다. 이날 경기가 연장 11회까지 가는 바람에 한동안 정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었지만, 다행히도 얼마 뒤 존슨이 9회까지만 던졌다는 것을 정상 참작해 정식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빅 유닛' 랜디 존슨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다.

통산 303승 166패 4875탈삼진 평균자책 3.29. 303승은 좌완 투수 가운데 역대 5위, 4875탈삼진은 놀란 라이언에 이은 역대 2위다. 하지만 숫자로는 존슨의 위대함을 표현할 수 없다. 존슨의 큰 키(208cm), 강렬한 구위에서 오는 위압감은 그가 등판하는 경기를 직접 봐야 체감할 수 있다. 그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투수였다.

존슨은 208cm의 큰 키에서 사이드암에 가까운 쓰리쿼터로 내리꽂는 시속 100마일(160.9km/h) 패스트볼, 좌타자의 뒤통수에서 날아들다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휘어져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그리고 타자들은 존슨이 둘 중 어떤 공을 던질지 글러브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타자들은 알고도 치지 못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위대한 투수들과는 달리, 존슨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는 만 29세였던 1993시즌부터다. 그전까지 존슨은 빠른공을 던지지만, 제구불안에 시달리는 그렇고 그런 투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992년 7월 전설적인 투수 놀란 라이언에게 도움을 받아 디딤발을 딛는 위치를 수정하면서 제구력을 안정시킬 수 있었고, 그때부터 전설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6시즌 동안 존슨은 평균 16승 5패 193.0이닝 252탈삼진 평균자책 2.95를 기록했다. 특히 만 31세엿던 1995시즌에는 18승 2패 214.1이닝 308탈삼진 평균자책 2.48으로 사이영상을 받았다(파업 여파로 단축시즌이었다). 이와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1998시즌이 끝나고 FA가 된 그는 신생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4년 534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이후 애리조나의 존슨 영입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FA 계약으로 남았다. 존슨은 FA 기간인 4년간 연속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남들은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만 35세부터 만 38세였다. 4년 연속 사이영상은 그렉 매덕스와 그만이 갖고 있는 기록이며, 1995시즌 사이영상을 포함해 5번의 사이영상은 역대 2위의 기록이다.

그리고 2001시즌은 존슨의 애리조나 시절 가운데 가장 빛나는 한해였다. 2001시즌이 시작될 당시 존슨은 300탈삼진을 3번이나 기록하며 이미 역대 최고의 삼진 머신 가운데 한 명이란 평가를 받았으나,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은 20개를 기록한 로저 클레멘스와 케리 우드의 차지였다. 하지만 2001년 5월 9일에서의 투구로 그것도 옛말이 됐다.

이날 펼쳐진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존슨은 9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 무볼넷 20탈삼진으로 상대 타선을 압도하며 역대 세 번째로 한 경기 20탈삼진을 기록한 투수가 됐다. 좌완 투수로선 역대 최초였다. 단 하나의 오점이 있다면 경기가 연장에 가는 바람에 한동안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다행히도 훗날 존슨이 9회까지만 던졌다는 것을 감안해 정식기록으로 인정받음에 따라, 또 하나의 진기록도 남겼다. 바로 9이닝 동안 20탈삼진을 기록하면서 볼넷을 한 개도 내주지 않은 유일한 경기로 남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존슨에 이어 10회 마운드를 이어받은 투수가 바로 김병현이라는 점이다. 김병현은 이날 0.1이닝 동안 2볼넷 1땅볼아웃을 기록했다.)

한편, 4월까지 평균자책 4.03에 머물렀던 존슨은 이날 경기를 기점으로 반등하기 시작해 최종적으론 21승 6패 249.2이닝 372탈삼진(개인 최다) 평균자책 2.49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게다가 이해 월드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뉴욕 양키스를 격파한 애리조나는 창단 후 네 번째 시즌 만에 우승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해 월드시리즈 MVP는 월드시리즈에서만 4승 무패 38.2이닝 45탈삼진 평균자책 1.40을 합작해낸 커트 실링과 랜디 존슨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둘은 지금까지도 역대 최강의 포스트시즌 원투펀치로 기억되고 있다. (2001시즌 김병현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6.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정규시즌 98.0이닝을 소화하며 누적된 피로로 인해 월드시리즈에선 3.1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다.)

2001시즌 이후 스토리는 '5월 19일 랜디 존슨의 역대 17번째 퍼펙트게임'으로 이어집니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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