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토토 적발하며 ‘무조건 특진’ 소리 들은 형사들

-수사 끝나고 돌아온 건 ‘특진’ 대신 부서 이동과 타 경찰서 전보

-"이 사건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돼 있다." 주장 제기

-국내에 남은 사건 관련자들 수사에 적극 협력. "혐의 전면 부인했던 이들, 도주와 증거인멸 가능성 높다."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들이 운영해온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적발한 경찰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들이 운영해온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적발한 경찰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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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 원대 불법 토토…전·현직 레슬링 지도자들이 운영했다

[엠스플뉴스]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를 적발했지만, 경찰 상부는 입을 다문다. 열심히 사건을 수사한 형사들은 영문 모르게 부서 이동되거나 전보됐다. 수사 중 사건 관련자가 국외로 도주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나, 구속된 이는 아무도 없다. 그 흔한 출국금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국외 도주자의 자수를 설득하는 등 사건 해결에 적극 협력하는 건 사건 핵심 관련자들이다. 검찰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지 9개월이 되도록 별 움직임이 없다. 이 모순적인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경기북부청)은 2017년 5월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들이 운영해온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MVP 00’를 적발했다. 경기북부청은 세 명의 수사관으로 수사팀을 이뤄 전국을 돌며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주력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사건 관련자들 사이에 세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며 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신기하게도 특정 지역에 사는 부산 소재 ‘D 대학교’ 출신의 전·현직 ‘레슬링 지도자’였다고 귀띔했다.

경찰은 여느 불법 토토 사건과 비교해 사안이 다르다는 판단 아래 레슬링계 관계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 성과는 컸다. 경찰은 ‘MVP 00’이 9년 동안 운영되면서 1조 원대 불법 스포츠 도박판을 벌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건 주요 관련자들로부터 혐의를 인정하는 답변까지 받아냈다.

특히나 경찰은 레슬링계에서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는 대한레슬링협회 사무처장이 불법 토토 사건에 관련된 정황을 포착했다. 불법 자금이 이 사무처장이 운영하는 합법 사업체에 유입된 단서도 찾아냈다.

원체 두 형사가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경찰 내부에선 이 정도 사안과 수사 성과라면 무조건 특진이란 소리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A씨도 “형사들이 정말 열심히 수사했다. 수사로 모든 게 밝혀질 것으로 예상했다. 조만간 신문에 우리 사건이 대서특필될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무조건 특진' 소리 듣던 불법 토토 수사 형사들. 수사 끝나고 돌아온 건 부서 이동과 전보

사건 관련자에서 공익 제보자로 돌아선 모 레슬링인은 “중국 선양에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사무실을 얻을 때 현 대한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이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다“며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얻은 수십억 원의 수익금이 김 처장이 운영하는 합법 사업체에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중국 선양에서 불법 스포츠도박 관련자들, 중국 유력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김 사무처장(사진=엠스플뉴스)
사건 관련자에서 공익 제보자로 돌아선 모 레슬링인은 “중국 선양에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사무실을 얻을 때 현 대한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이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다“며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얻은 수십억 원의 수익금이 김 처장이 운영하는 합법 사업체에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중국 선양에서 불법 스포츠도박 관련자들, 중국 유력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김 사무처장(사진=엠스플뉴스)

하지만, 현실은 180도 달랐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현장의 스포츠인들이 합심해 운영하고, 불법 자금이 합법 사업체를 통해 ‘돈 세탁’됐다는 정황이 포착된 1조 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사건임에도 이 사건은 조용히 처리됐다. 사건 수사 발표는 고사하고, 그 흔한 보도자료 하나 나오지 않은 채 검찰로 사건이 넘겨졌다.

경기북부경찰청을 취재하는 지역지 기자는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 정도 사건이라면 경찰이 브리핑을 하거나 보도자료라도 뿌릴 텐데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백억 원대 불법 토토 사건도 보도자료를 뿌리는 마당에 1조 원대 사건에 대해선 왜 아무 언급이 없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고갤 갸웃했다.

‘특진’이나 포상도 없었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이 사건을 수사한 두 형사는 수사를 끝낸 뒤 자릴 옮겼다. 한 형사는 경기북부청 사이버수사대에서 교통계로 부서를 옮겼고, 다른 형사는 아예 경기도 모 경찰서로 전보됐다.

이 사건의 수사 과정을 상세히 아는 레슬링계 관계자는 “일상적인 부서 이동이나 전보로 볼 수도 있겠지만, 경찰 내부에서조차 두 형사의 부서 이동과 전보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고전했다.

사건 관련자들, 수사에 적극 협조. 국외로 피신 중인 도피자들 자수 설득도 사건 관련자들이 자발적으로 담당

대한레슬링협회를 찾아간 엠스플뉴스 취재진. 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은 “만나서 모든 얘길 하겠다”고 했으나, 엠스플뉴스 취재에 항의하는 내용증명만 보낸 뒤 답변을 거부했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레슬링협회를 찾아간 엠스플뉴스 취재진. 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은 “만나서 모든 얘길 하겠다”고 했으나, 엠스플뉴스 취재에 항의하는 내용증명만 보낸 뒤 답변을 거부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는 레슬링인들이 연루된 불법 스포츠토토를 적발하고, 직접 수사를 진행했던 두 형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두 형사는 “담당했던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부적절할 거 같다.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한 뒤 전활 끊었다.

두 형사의 상급자였던 경기북부청 사이버수사대 팀장도 “이미 검찰로 넘어간 사건이다. 끝난 수사라 설명해 드릴 게 없다”는 짧은 답변만을 들려줬다.

경기북부청에서 조사를 끝낸 이 사건은 올해 2월 의정부지방검찰청으로 넘어갔다. 그러다 다시 제주지검으로 이송됐다.

사건 관련자들은 “8월 말 제주지검으로부터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임을 알렸다. 2017년 5월부터 경찰이 수사를 벌였으니, 1년이 훨씬 넘어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엠스플뉴스가 11월 초 제주지검을 취재했을 때 수사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가까웠다. 경찰 수사 뒤 곧바로 추가 수사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몇몇 사건 관련자는 국외에서 돌아오지 않는 상태다. '불법 자금을 받아 합법 사업체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는 대한레슬링협회 김00 사무처장은 레슬링계에서 여전히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핵심 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검경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외에 있는 사건 주요 관련자의 자수를 설득하는 것도 이들이다.

취재 중 만난 경찰 관계자는 국내에 남아 있는 사건 관련자들은 도주 위험이나 증거 인멸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사건 수사에 가장 협조적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라며 정작 도주 위험과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큰 이들은 경찰 수사 때 완강하게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던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사건 관련자였으나 지금은 ‘불법 스포츠도박 근절 캠페인’에 앞장서는 A 씨는 “제주지검이 사건을 이송받은 뒤 열심히 수사하고 있다. 사건 관련자들도 국외에 있는 다른 관련자에게 자수를 설득하는 등 최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스포츠인들이 자신의 삶과 스포츠 전체를 갉아먹는 불법 스포츠도박에 더는 관련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동희, 배지헌, 박찬웅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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