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은 언론 보도 내용과 방향까지 조종했다(사진=엠스플뉴스)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은 언론 보도 내용과 방향까지 조종했다(사진=엠스플뉴스)


-전명규, 연맹 내부자료-사찰로 '정적' 뒷조사

-언론 보도 내용과 방향까지 직접 설계해 기자에 건넨 '빙상 대통령'

-일부 언론과 정치인, 전 교수가 원하는 프레임 만드는 데 적극 협력

-'86세 노인' 장명희를 자신의 대항마로 만든 건 전명규 자신이었다

[엠스플뉴스]

‘빙상 대통령’ 전명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에 대한 찬사 뒤엔 치밀한 언론플레이 기획과 설계가 있었다. 전 교수가 빙상연맹 내부 자료와 사찰을 통해 특정인을 음해하는 여론 조성을 계획한 정황, 언론 보도 내용과 방향을 직접 설계한 증거가 담긴 문건을 엠스플뉴스가 단독 입수했다.

엠스플뉴스는 앞서 보도([엠스플 추적] 한국체대 빙상장은 '전명규 라인'의 거점인가)를 통해 한국체대 실내 빙상장이 한국체대 출신 클럽팀 감독들에게만 대관을 허락하고, 그 배후에 전 교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전 교수가 대한항공에 '승무원 취업 청탁'([단독 입수] 전명규, 대한항공에 보낸 ‘취업 청탁 문자’ 공개)까지 일삼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4월 6일 보도([단독] 전명규, 대표팀 코치에 욕설·협박…녹취파일 입수)를 통해선 전 교수에게 반기를 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단독 입수한 음성 녹취파일을 통해 폭로했다.

빙상인 A 씨는 “빙상인들 사이엔 '전 교수가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반드시 부활해 돌아온다'는 공포감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살려달라'고 외쳐도 언론과 특정 포털이 외면한다는 걸 모두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며 "그 공포감과 외면 때문에 전 교수 문제를 알면서도, 그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살려달라'고 외친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건 전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전 교수의 '스피커'가 돼준 언론도 '침묵의 강요자'로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전 교수는 오래전부터 빙상계에선 ‘언론플레이의 달인’으로 불렸다. 자신과 가까운 언론을 활용해, 빙상계 정적과 반대자 제거에 나서고,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이 조성되면 ‘친 전명규 매체’로 꼽히는 이들을 내세워 프레임을 바꾼다는 의심을 사 왔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실제로 전 교수가 언론 보도의 내용과 방향까지 직접 기획하고, 설계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명규, 장명희 회장 사찰해 기자에게 넘겼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장명희 리포트'엔 개인 정보부터 사찰한 내용까지 담겼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장명희 리포트'엔 개인 정보부터 사찰한 내용까지 담겼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는 최근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여러 건의 문서와 녹취파일을 입수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명희 회장 관련 주요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이 문건은 전 교수의 지시로 측근이 작성한 것이다. 국정원 정보보고를 연상케 하는 형식으로 작성한 이 문건엔 장명희 아시아빙상경기연맹(ASU) 회장의 개인 신상과 각종 의혹이 자세히 담겨 있다.

장 회장이 운영하는 기업체 동향과 문제점부터 빙상계 지위를 이용해 개인 사업체에 부당 이익을 안긴 의혹, 빙상연맹 명예회장 재직 시 활동비 지급 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다. 빙상연맹 내부 자료를 활용하거나 ‘사찰’을 하지 않고선 좀체 알기 어려운 민감한 내용들이다.

전 교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론배포용으로 또 다른 문건을 만들었다. 역시 전 교수가 지시해 만든 ‘장명희 회장에 대해 기자에게 전달할 사항’이란 제목의 문건이다. 전 교수는 이 문건에서 구체적인 ‘보도지침’까지 내렸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문서. 이 문건은 전명규 교수 지시로 그의 측근이 작성해, 몇몇 기자와 정치권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문서. 이 문건은 전명규 교수 지시로 그의 측근이 작성해, 몇몇 기자와 정치권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엠스플뉴스)

먼저 문건은 ‘장 회장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을 맡기에 적당한지 의문’이라는 문제 제기로 시작한다. 장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를 거론하며, 그가 조직위에서 활동하는 목적이 ‘사업 수주에 있다'는 비난을 이어간다.

이어 장 회장이 평창 관계자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시한다. 근거는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한다’는 게 전부다. ‘많은 분이 알고 있지만, 불이익이 생길까 말을 못 한다’며 ‘누가 앞장서 기사화시키고, 수면 위에 올라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로 기사화를 유도한다.

전 교수는 장 회장과의 관계 악화가 '오랫동안 누린 이권을 빼앗긴 장 회장의 악감정 때문'이란 일방적 주장도 펼친다. 문건은 장 회장이 47년 동안 ‘본인의 이익을 취하고자 연맹의 모든 일을 독점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비난으로 끝을 맺는다.

빙상인 B 씨는 "'깨끗한 전명규 vs 부패한 장명희’ 프레임을 짜는 게 이 문건의 기본 목적이었을 것"이라며 "전 교수는 이런 식의 프레임을 짠 뒤 항상 정치인과 언론을 이용해 '프레임 확산'에 나섰다"고 폭로했다.

'죽은 권력' 장명희가 '산 권력' 전명규와 라이벌? 일부 언론과 정치인, 전명규 언론플레이에 적극적으로 놀아났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빙상연맹 문제를 '전명규 vs 장명희의 싸움'으로 정리했다. 전명규 부회장이 기획한 그림 그대로다(사진=MBC)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빙상연맹 문제를 '전명규 vs 장명희의 싸움'으로 정리했다. 전명규 부회장이 기획한 그림 그대로다(사진=MBC)

흥미로운 건 장명희 회장이 국내 빙상계에선 이미 ‘죽은 권력’으로 통한다는 점이다. 빙상계 관계자들은 “장명희가 '구악'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빙상계에서 힘을 잃은 지 꽤 오래다. 올해 나이 여든여섯인 사람이 ‘살아있는 권력’ 전명규와 맞선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살아있는 권력' 전명규는 '죽은 권력' 장명희에 대한 문건을 작성한 것일까.

전 빙상단 감독 C 씨는 “오래전부터 전명규의 기본 전략은 '흙탕물 싸움'”이라고 증언했다.

전 교수가 수세에 몰릴 때마다 꺼내든 전략이 있다. 흙탕물 싸움이다. '내가 나쁘면 저놈도 똑같이 나쁜 놈’이란 여론을 만들어 누가 적폐인지 피아간 식별을 흐리게 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주효하면 곧바로 언론을 동원해 ‘그래도 능력 있는 전명규가 낫다’는 여론을 확산시킨다. 전 교수 생각에 ‘약점 많은’ 장명희만큼 이 전략이 성공하기에 좋은 타켓도 없었을 것이다." C 감독의 얘기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전 교수는 측근들에게 "‘장명희 문건’를 기자들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시하면서도 "내 이름은 기사에 등장하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을 빼놓지 않고 한 것으로 밝혀졌다.

과연 전 교수의 치밀한 기획과 설계는 실제 언론 보도에 어느 정도 반영됐을까.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빙상연맹 부회장이던 전 교수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자 한 기자는 기명 칼럼을 통해 “빙상계 갈등은 겉으론 전명규의 독선과 전횡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A씨가 누렸던 각종 특혜가 끊기면서 생긴 감정싸움이라는 게 오히려 더 객관적”이란 주장을 펼쳤다.

덧붙여 “A 씨는 1997년 7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무려 11년 5개월간 ISU(국제빙상경기연맹) 활동비 명목으로 연맹으로부터 월 100만 원 씩 총 1억5,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ISU 선물비와 식대 명목으로 무려 6,2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상식을 벗어난 연맹의 지원비는 2010년부터 끊겼고, 이러한 지원 중단은 전명규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자연스럽게 '정의로운 전명규 VS 비상식의 장명희' 구도를 만들었다.

전 교수 지시로 작성된 '장명희 문건'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다. ‘장명희 문건’엔 "명예회장 재직 시 활동비와 선물대 등을 포함 총 2억여 원의 연맹 예산을 지원받아 사용”, “활동비 월 1백만 원과 교제비 지원이 2010년부터 중단되었음”, “전 교수님의 배후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등이 적혀 있다.

전명규 교수가 작성을 지시한 문건 나오는 '장명희 회장 활동비' 언급 대목. 한 매체 칼럼의 지적과 동일하다. 역설적이게도 빙상계의 대표적 적폐이자 수구로 알려진 전 교수를 가장 옹호해왔던 건 '진보 성향'의 매체들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전명규 교수가 작성을 지시한 문건 나오는 '장명희 회장 활동비' 언급 대목. 한 매체 칼럼의 지적과 동일하다. 역설적이게도 빙상계의 대표적 적폐이자 수구로 알려진 전 교수를 가장 옹호해왔던 건 '진보 성향'의 매체들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비슷한 내용은 다른 매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진보 성향의 한 인터넷 매체는 노선영-김보름 사태 이면을 다룬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노선영 폭로의 배후에 연맹 반대파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윱니다. 특히 연맹 전직 회장이 십수 년 동안 누려온 각종 이권과 혜택이 끊기자 반대파들을 선동해 사태를 확대시킨다는 지적입니다.” '장명희 문건'의 판박이다.

많은 빙상인이 대표적 ‘친 전명규 정치인’으로 꼽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도 최근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장명희 전 회장을 '적폐'로 보는 시각이 있어요. 이분은 지금 빙상과 관련된 그런 사업을 하니까 이권에 개입한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가 있죠. 그래서 전명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장명희 전 회장을 중심으로 뭉치는, 그래서 '전명규 세력 대 장명희 세력' 그렇게 두 세력이 존재하는 거예요.

빙상연맹을 둘러싼 온갖 문제와 논란의 프레임을 ‘전명규 vs 장명희’ 구도로 단순화하고, 빙상계 1인 권력독점 문제를 ‘파벌 싸움’으로 치환해 논점 자체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만든 '장명희 문건' 내용 그대로다.

전명규 vs 장명희 구도, 전명규가 기획하고, 언론이 협조했다.

그렇다면 일부 매체와 정치인이 주장하는 ‘전명규 vs 장명희’의 대립 구도는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중견 빙상인 A는 “'전명규 대 장명희의 세력 다툼'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단언했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헛소리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빙상계 내부 사정을 전혀 몰랐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했거나, 알면서 이를 악용했거나, 셋 중의 하나"라며 "언론과 정치인에게 세 번째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고 목소릴 높였다.

전 빙상단 감독 C도 “빙상계의 '구악'인 장 회장은 삼성이 빙상연맹 회장사가 된 뒤 밀려난 사람이다. '전명규 대 장명희' 구도를 주장하는 분들께 최근 몇 년 동안 장 회장이 빙상연맹 행정에 관여했거나 영향력을 행사한 걸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현재 빙상연맹은 전 교수가 전체 권력을 장악한 채 독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파벌 싸움'은 전명규를 비호하는 유력 정치인과 언론이 합작해 만든 창작물이다. 파벌과 반대파가 있다면 반대 세력에 수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 과거엔 있었지만, 전명규에게 모두 투항해 한자리씩 차지한 지 오래다. 전명규 세력이 절대적 힘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파벌 싸움이 가능하겠는가.


지금까지 장 회장이 라이벌로 언급되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한국 빙상계에 전명규에게 대항할 인물이 없다는 얘기일지 모른다. 힘없는 ‘허수아비’가 대항마로 여겨지는 상황, 전 교수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었을 것이다.

허상이든 창작물이든 전 교수가 의도한 ‘전명규 vs 장명희’ ‘파벌 싸움’ 프레임은 큰 성공을 거뒀다. 빙상연맹 논란이 한창일 때마다 많은 언론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뿌리 깊은 파벌 싸움’이란 식의 번지수를 잘못 찾은 비판을 내놨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처럼 헛다리를 짚다 보니, 일부 누리꾼 사이에선 “전명규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지만, 전명규에게 쫓겨난 '장명희파'는 더 부패할 뿐만 아니라 무능한 세력이다. 전명규가 물러나면 장명희 세력이 다시 빙상계를 장악할 것”이란 식의 망상이 현실성 있는 얘기처럼 설득력을 얻는 실정이다.

배지헌, 이동섭, 김근한, 박동희 기자 jhpae117@mbcplus.com

+ 제보를 받습니다. 삼성과 빙상연맹의 관계에 대해 제보해주실 분은 dhp1225@mbcplus.com, dinoegg509@mbcplus.com으로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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