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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익의 휴먼볼] 우리는 ‘타격천재’ 장효조를 잊지 않았다

  • 기사입력 2016.09.09 11:40:41   |   최종수정 2017.01.31 20: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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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사의 '불세출의 타격천재'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다. 삼성 레전드인 그를 기리려는 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삼성) 한국야구사의 '불세출의 타격천재'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다. 삼성 레전드인 그를 기리려는 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동희 기자)

[엠스플뉴스] 

 

9월 17일 삼성 라이온즈파크 야구전설로 1가. 구장 오른쪽 벽에 고인의 생전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경기 전엔 생전 고인의 활약이 전광판을 통해 흘러나왔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대로 고인은 열정적이고, 투지가 넘쳤다.

 

“야구밖에 모르던 미련한 남자,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야구인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고인의 생전 바람이 야구장에 울려 퍼졌다. 삼성에서 남긴, 수많은 영광의 순간들.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들이 함께 재조명됐다. 수만 명의 관중과 삼성, kt 위즈 양팀 선수단 감독 및 코칭스태프 이하 선수단이 추모에 동참하며 모두 고개를 숙였다. 

 

'기억하겠습니다. LEGEND 0.331‘ 

 

9월 7일은 한국야구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레전드 타자'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이날은 그의 5주기 기일이기도 했다. 

 

화려한 선수 생활의 이면 속에 늘 고독했던 타자. 장 전 감독이 지도자로 품은 꿈을 다 펼치지 못하고 떠난 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삼성은 그를 잊지 않았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도 그랬다.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타자, 이만수가 떠올린 장효조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의 5주기 기일인 2016년 9월7일. 라팍에 장효조가 떴다. (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의 5주기 기일인 2016년 9월7일. 라팍에 장효조가 떴다. (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저는 장효조 선배만큼 타격을 잘하는 타자를 아직도 본 적이 없습니다.” 삼성의 또 다른 '불세출의 레전드' 이만수 SK 전 감독의 말이다.

 

짧았지만, 누구보다 화려했던 장효조다. 장효조는 10시즌 동안 3년 연속 타격 1위, 통산 4차례의 타율왕, 5년 연속 출루율 1위에 올랐다. 통산 타율 0.331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이다.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헷갈린다? 그땐 장효조 선배가 볼이라면 그건 볼이었습니다. 그만큼 선구안이 좋았던 타자였어요.” 고인을 기억하는 김성래 삼성 수석코치의 생생한 증언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슈퍼스타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행동도, 생활도 뭔가 달랐고 늘 신비스러웠죠. 어떻게 보면 그게 진짜 프로 선수의 자세가 아니었나 싶어요.” 김용국 삼성 수비 코치에게 못처럼 단단하게 박혀있는 ‘진짜 프로’ 장효조에 대한 기억은 그랬다.

 

스스로를 ‘야구 장인(匠人)’으로 단련했던 한국야구사의 천재. 하지만, 그 이면엔 야구선수로선 치명적일 수도 있는 작은 체구를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었다. 

 

이만수 전 SK 감독은 장 감독의 5주기 되던 날 기자가 추모식 내용을 알려주자 “참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면서 이내 “벌써 그렇게 됐네요…”하고 애잔한 목소리로 추억을 쏟아냈다. 

 

“그 형님과 저는 사실 추억이 참 많습니다. 대구중학교때 처음 만나서 대구상고(상원고)-한양대-삼성까지 줄곧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었거든요. 제가 대구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신입생이 돼서 (장)효조 선배를 처음 만났어요. 저는 뒤늦게 야구를 시작해서 그땐 정말 아무 것도 몰랐거든요(웃음). 그래서 하루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선배 댁으로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들기고 ‘선배, 야구 좀 가르쳐 주십시오’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저도 웃음이 나고,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나 싶은데 그땐 야구를 잘하는 효조 선배가 정말 멋있게 보여서 그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러자 고인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나타나서 ‘야! 이 새벽에 찾아오는 놈이 어디있노. 니 오늘 밤 늦게 다시 와.’ 하고 저를 쫓아낸 기억이…. 형님 생각하면 그 기억이 제일 먼저 납니다. 그리고 그때부턴 선배와 야간 특훈을 시작했어요. 둘 다 참 열심히 했습니다. 저녁 늦게 학교 훈련 마치고, 두 까까머리 중학생이 으슥한데 모여 달이 언제 뜨는 줄도 모르고 손에 물집이 잡히고 피가 터지도록 그렇게 훈련했어요. 밤새 배트를 휘둘렀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더 야구를 잘하고 싶었던 소년 이만수.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에 계신 아버지를 여의고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소년 장효조. 한국야구의 레전드이자 삼성의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될 두 이의 전설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또 누구보다 ‘연습벌레’였던 두 사람은 그렇게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갔다. 한양대 시절 두 사람은 어느덧 선의의 경쟁자가 됐다. 

 

“한양대 진학하면서 효조 선배가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어요. 제가 뒤따라 한양대로 진학하면서 선배가 3번, 제가 4번을 치면서 드디어 함께 야구 할 수 있는 위치가 됐죠. 삼성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성에서 다시 만나 우승도 하고, 참 좋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때 참 효조 선배 야구를 많이 보고 배웠어요. 제가 투박한 스타일이었다면, 고인은 참 세련되게 야구를 하셨어요. 당시엔 다운스윙이 대부분인 시절이었는데 선배는 레벨스윙을 하셨던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부챗살 타법’으로 유명했죠. 타구가 구장 전 방향으로 날아갔으니까요. 보면서 ‘와! 참’ 하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죠. 제가 야구를 46년간 해왔는데 아직도 효조 선배만큼 타격을 잘하는 타자를 전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전 감독은 KBO리그 역대 타자들 가운데 손가락에 꼽히는 강타자다. 동시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코치, KBO리그에서 감독을 역임한 야구계의 산증인이다. 그런 그가 꼽는 '최고의 타자'는 바로 장효조였다.

 

대학야구를 방망이 하나로 평정한 장효조는 1983년 삼성 입단 첫 해 타율 0.369로 타율왕에 올랐다. 장타율(0.601)과 출루율(0.475) 모두 1위에 오르며 ‘타격천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을 고려하면 프로로 활약한 기간은 짧았다. 10시즌 동안 96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1, 1009안타, 54홈런, 437타점, 109도루를 기록했다. 5번의 골든글러브(1983~1987)를 수상했고, 1987년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삼성의 레전드에서 1989년 롯데로 트레이드 되는 등 선수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장효조는 생전 인터뷰서 삼성을 떠나야 했던 이유로 “연봉 협상 문제로 구단과 자주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장효조는 롯데 소속으로 뛴 1992년, 82경기서 타율 0.265에 그치자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고인은 평소 '절정일 때 옷을 벗자'고 생각해왔고, 그 생각을 현실로 옮겼지만, 야구계는 그의 은퇴 소식에 놀라워했다. 충분히 더 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효조는 ‘제 2의 야구인생’을 열었던 롯데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외롭고 고독했던 슈퍼스타 

 

추모식 당일. 삼성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은 정중하게 레전드를 기렸다. (사진=삼성) 추모식 당일. 삼성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은 정중하게 레전드를 기렸다. (사진=삼성)

 

“그 선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라운드에서의 활약이나 인상만 보고 ‘독하다’, ‘독종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그분은 강직하면서도 참 여린 분이셨어요. 제가 프로에 입단하면서부터 룸메이트를 했는데 내면이 굉장히 부드러운 분이었어요.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하셨고. 지금도 전 고인을 집념이 강하고, 의지가 대단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삼성 레전드 타자의 계보는 '장효조·이만수-김성래'로 이어진다. 또 1명의 불세출의 강타자 김성래 삼성 수석코치는 장효조를 ‘참 여린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의지가 강했던 사람’으로 추억한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예전에 쓰던 원정 숙소 가운데 산 근처에 있는 호텔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선배가 한밤 중에 배트를 들고 산으로 가시더라고요. 그곳이 공동묘지 구역이었는데 거기서 밤새 타격 훈련을 하시는 거예요. 하늘같은 선배가 그러는데 ‘쫄따구’인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었겠습니까(웃음). 저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밤늦게까지 훈련했던 기억이 참 많습니다.”

 

생전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는 소릴 들었던 장효조는 흔히 '천재'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천재보단 지독한 노력파에 가까웠다. 그는 타격만 뛰어난 타자가 아니었다. 선구안도 최고였다. 김 수석코치는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헷갈린다면 장효조 선배를 보면 됐습니다. 그 선배가 ‘볼이다’하면 그건 진짜 볼이었죠(웃음)”하며 고인의 선구안과 관련한 일화를 들려줬다. ‘장효조가 안치는 공은 볼이다’라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또 1명의 대타자 양준혁 MBC 스포츠+ 해설위원은 “공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무릎으로 봐야 한다”는 장 전 감독의 지도를 야구인생 평생의 금과옥조이자, 선구안의 기본자세로 삼아왔던 이다.

 

이처럼 뛰어난 대타자들에게 많은 영향과 영감을 준 장효조이지만 지도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993년부터 6년간 롯데 타격코치로 재직한 장 전 감독은 1999년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리그 코치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000년 삼성 타격코치로 돌아왔다. 하지만,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장효조가 삼성의 유니폼을 다시 입고 야구계로 복귀한 것은 2005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보직은 코치가 아닌 스카우트였다. 지금은 전문성을 인정받고 대우도 많이 개선된 스카우트 분야지만,  당시까진 그렇지 못했다. 분명 ‘슈퍼스타’ 장효조에겐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하지만, 당시 장효조는 “야구장에 출근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4년간 스카우트로 일하며 삼성 미래를 책임질 옥석을 골랐다. 그리고 2009년. 드디어 삼성의 타격코치로 복귀했다. 

 

고인과 같은 대구상고-한양대-삼성을 거친 김용국 삼성 수비코치는 당시를 잘 기억하는 이다. 장 효조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 코치는 “그 형님을 생각하면 늘 이렇게 가슴이 울컥하고 저릿하네요. 벌써 5년이 됐어요. 살아계셨다면 지금 한창 많은 것을 누릴 나이신데…”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김 코치는 특히 장효조가 지도자로 빛을 보지 못한 걸 가장 안타까워하는 이다.

 

“이만수 선배가 화려한 빛무리에 감싸인 슈퍼스타였다면 장효조 선배는 신비롭고 고독한 슈퍼스타였어요. 장효조 선배는 우리완 뭔가 달라도 한참 달랐죠. 경기 후에 가는 사우나도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곳을 쓰고,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마치 배우처럼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가질 않았죠. 네, 늘 신비스럽게 생활하셨어요. 항상 좋은 걸 먹고, 좋은 걸 입고,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늘 조용히 연습하는 게 장 선배만의 생활방식이었어요. 요즘으로 말하면 그게 일종의 ‘루틴’이었던 겁니다.” 

 

김 코치가 들려준 장효조의 엉뚱하고도 특별한 일면을 잘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1991년 한·일 슈퍼게임에 둘 다 대표팀 멤버로 뽑혀서 룸메이트가 됐어요. 그때 일본에서 선배가 쇼핑을 하면서 옷을 사왔는데 그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 한 1만 엔 정도 했을 거예요. 그때 환율이나 물가로 따지면 꽤 값비싼 옷이었죠. 그러자 장효조 선배가 ‘뭘 놀라 임마. 프로는 달라야지’라면서 씩 웃으셨어요. 늘 그라운드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사생활조차도 ‘무언가 특별해야한다’는 생각했던 분이 바로 효조 형님이었습니다.”

 

김 코치가 회고하는 장효조는 ‘슈퍼스타’이자 프로였다. 유별날 수도 있는 자기관리와 신비로운 사생활은 고인이 생전 절친했던 또 한 명의 야구인인 삼성 레전드 투수 김일융(니우라 히사오)의 영향 때문이었다. NPB(일본프로야구)에서 2번의 평균자책왕, KBO에선 다승왕에 올랐던 재일교포 출신의 김일융을 보며 장효조는 ‘프로’의 사생활에 대해 큰 영감을 받았다. 

 

“팬들에게 냉담한 면이 있었는데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장효조 선배만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였어요. 이만수 선배는 완전히 반대였죠. 밝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지금의 프로라면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쾌활한 이만수 선배의 모습이 사실 더 맞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장효조 선배의 철저한 자기 관리도 프로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선배는 성격도 참 강직했어요. 맞다고 생각하는 일엔 절대 고갤 숙이질 못하는 사람이었죠. 그 때문에 선수로 은퇴하고 난 이후 빛을 보시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삼성 코치로 복귀하고 나서 그분답지 않게 ‘펑펑 우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마음이 그랬던 기억이 나요. 결국 2군 감독까지 돼서 그렇게 열심히 하셨는데, 꽃도 피우지 못하고 참 그렇게…” 

 

한참 동안 고인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때로는 심각하게 떠올리던 김 코치의 앞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라팍’에서 부활한 장효조, 삼성이 그를 불렀다 

 

삼성은 9월1일부터 장효조 감독의 대형현수막을 걸고 그의 불멸의 기록 통산 타율 0.331을 기리는 각종 기념물을 제작했다. (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삼성은 9월1일부터 장효조 감독의 대형현수막을 걸고 그의 불멸의 기록 통산 타율 0.331을 기리는 각종 기념물을 제작했다. (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류중일 삼성 감독은 2011년 신임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삼성으로부터 냉대를 받았던 장효조가 2군 감독을 맡을 수 있던 것도 류 감독의 끈끈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2011년 한국시리즈 5차전서 1-0으로 승리, 4승 1패로 감격적인 부임 첫 해 우승을 달성한 류 감독은 인터뷰서 “마음속으로 ‘(장)효조형 한번만 도와주소. 조금만 더 하면 우승입니다’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밝혔다. 우승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이도 바로 장효조였다.

 

류 감독은 장효조의 5주기를 맞아 “벌써 5년이 지났다. 참 대단한 타자였고, 내겐 또 하늘같은 선배였다”고 추억하면서 장효조의 나이를 더듬은 뒤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특별한 순간, 류 감독은 누구보다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바로 삼성이 마련한 ‘장효조 5주기 추모식’이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삼성은 9월 1일부터 ‘라팍’ 오른쪽 외부 벽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바로 장효조의 불멸의 기록. 통산 타율 0.331을 기념하자는 의도였다. 문구는 ‘기억하겠습니다. LEGEND 0.331’로 새겼다. 삼성의 노력은 단순히 캐치프레이즈로 끝나지 않았다. 삼성은 잔여 시즌 홈경기에 사회취약계층 '331'명을 초대할 예정이다. 단순 숫자일 수 있는 기록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것.

  

이전에도 의미 있는 기록들을 추억하거나 고인을 추억하기 위한 많은 이벤트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인의 기록을 부각시켜 사회공헌성 이벤트와 연계한 건 사실상 이번이 최초다. 삼성의 고민과 노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장효조를 추모하는 이번 기획은 삼성의 올드팬들은 물론 다른 팀, 신규팬들에게도 깊은 울림이 됐다는 평가다.

 

삼성은 어떻게 이런 방법을 택하게 됐을까. 안현호 삼성 단장과 이찬성 마케팀 팀장을 비롯한 삼성 전직원들의 치열한 고민과 철저한 기획 끝에 나온 성과물이었다.

 

안현호 단장은 “신축구장 설립과 함께 구단 역사를 바로 세우고, 지역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삼성 임직원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장 전 감독의 추모식을 특별하게 기념하자는 생각을 도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그간 최대 수용인원이 만 여명에 불과했던 대구 시민구장을 쓰면서 이벤트를 거의 진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라팍시대’를 연 올 시즌엔 홈경기마다 팬들의 눈과 귀를 충족하는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다. 대규모로 학생들을 초대하고 직접 학교로 찾아가 프로선수가 지도해주는 ‘BBF(baseball is my Best Friend)’를 비롯한 각종 참여형 이벤트도 지역민들에게 상상 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역민과 학생, 그리고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구장에 초대하는 행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구단 역사-지역 친화 가치 떠올린 삼성

팬들은 빼곡하게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을 향한 말들을 남겼다. (사진=삼성) 팬들은 빼곡하게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을 향한 말들을 남겼다. (사진=삼성)

 

'장효조 전 감독 추모 기획'은 몇 달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됐다. 이번 추모행사를 담당한 실무책임자인 채성수 삼성 마케팅팀 대리는 “대구의 스타이며 구단의 레전드인 장효조 감독님을 ‘더 알리자’는 의견을 모았다.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며 “최종 결정이 난 곳이 ‘라팍’ 우측 외벽이었다. ‘야구전설로 1’이라는 우리 구장의 주소가 쓰여진 곳 바로 위이고, 팬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장소라,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9월 1일부터 대형 현수막을 게시한 삼성은 인근에도 소형 현수막을 걸었다. 광장 프리마켓 부스엔 팬들이 장 전 감독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게시판까지 만들었다. 팬들의 마음이 모인 이 게시판은 추모식 영상에도 나와 그걸 지켜 보는 모든 이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331'은 특별한 숫자가 됐다. 장효조를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을 터다. 새 구장 건립과 함께 더 의미 있는 공유와 가치 찾기에 골몰한 삼성의 노력, 그를 기리는 많은 이들의 조력은 반드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아직 KBO리그는 전설에 대한 예우와 스스로의 품격을 높일 방법에 대한 고민과 실행이 부족하다. 장효조 전 감독의 영구결번을 새기고(삼성의 영구결번 10번은 양준혁의 번호다. 양준혁 해설위원은 영구결번 지정 당시 “이 10번은 내 것이 아닌 장효조 선배의 것이다”라고 했다), 새로운 조형 기념물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동시에 장 전 감독을 추모하는 시기가 늦고 미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때가 조금은 늦었더라도, 아직은 부족하더라도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레전드를 기억하는 이 움직임은 늘 옳다. 

 

또, 수많은 레전드가 쓸쓸하게 떠나가는 지금. KBO리그에서도 ‘천재타자’ 장효조를 기억하는 삼성의 이런 움직임은 특별하고, 뜻깊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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