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서울 강남 모 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친 후 차에 탄 KBO 양해영 사무총장을 보며 목을 숙여 인사하는 KBO 팀장급 이상 인사들. 철저한 상명하복과 경직된 조직 문화가 KBO를 '은폐 조직'으로 만들었다. 이날은 '입찰 비리 의혹'을 받는 KBO 강 모 팀장의 퇴사일이었다. 강 팀장도 이 회식에 참석했다(사진=엠스플뉴스)
6월 30일 서울 강남 모 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친 후 차에 탄 KBO 양해영 사무총장을 보며 목을 숙여 인사하는 KBO 팀장급 이상 인사들. 철저한 상명하복과 경직된 조직 문화가 KBO를 '은폐 조직'으로 만들었다. 이날은 '입찰 비리 의혹'을 받는 KBO 강 모 팀장의 퇴사일이었다. 강 팀장도 이 회식에 참석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엠스플뉴스 탐사보도 후, KBO 입장 "이미 자체 조사 중이었다."

+ 6월 초부터 업무 배제됐다던 KBO 팀장, 6월 말까지 업무 수행

+ 한 시간도 안 걸렸을 '가족 회사' 파악. 차일피일 미룬 KBO

+ '입찰 비리 의혹' 직원의 퇴사일에 환송회까지 열어준 KBO

“이미 자체 조사 중이었다.”

7월 5일 엠스플뉴스의 탐사보도('야구 한류' 망친 KBO 입찰 비리 의혹)가 나가자 같은 날 KBO(한국야구위원회) 양해영 사무총장이 모 언론을 통해 해명한 말이다.

양 총장은 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KBO도 사건을 인지해 몇 달째 조사하고 있었다”며 “해당 직원은 6월 초에 업무에서 배제시켰다. 소명도 듣는 등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중에 보도가 나왔다"고 밝혔다.

덧붙여 ”사안이 보도된 직후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에도 유선으로 보고했다“며 ”경찰 수사 의뢰나 형사고발 등의 후속조치는 문체부 가이드라인을 따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5일 엠스플뉴스는 KBO 입찰 담당자의 입찰 개입 비리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KBO 강00 기획팀장이 담당한 두 건의 ‘프로야구 중국 시장 개척 및 홍보 입찰’에서 사업자로 선정된 ‘F(페0)’사가 실제론 강 팀장의 ‘가족 회사’이며 ‘강 팀장이 실제 소유주란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가 나가고서 엠스플뉴스 탐사취재팀엔 제보가 물 밀듯이 밀려왔다. ‘KBO 입찰에 응찰한 적 있다’고 밝힌 한 업체 관계자는 “선정 심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KBO가 특정업체를 밀어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실제로 그 회사가 우리보다 기술력은 떨어지고, 입찰가는 높았는데도 최종 낙찰자가 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2015년 KBO 단일구 선정 입찰에 참여했던 한 야구공 제조사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들려줬다. 이 관계자는 “단일구 업체를 선정하는 프리젠테이션에서 모 업체 대표와 선정 심사위원이 전(前) 직장 동료 사이였음을 알았다. 프리젠테이션 때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는 소릴 듣고 ‘아, 이미 끝난 게임이었구나’ 싶었다”며 “심사 채점 항목을 봤을 때도 ‘KBO가 처음부터 모 업체를 고려해 만들었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엠스플뉴스 탐사보도를 보고나서 그동안 의심했던 여러 일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평소 야구팬이었지만, 납득할 수 없는 KBO 입찰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지금은 야구의 ‘야’자만 들어도 화가 치민다”고 목소릴 높였다.

입찰은 ‘공정성’과 ‘투명성’이란 두 날개로 난다. 아무리 입찰이 성공적으로 진행됐어도 공정성과 투명성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입찰은 ‘특정 업체 밀어주기’와 ‘각종 비리 의혹의 온상’이 될 뿐이다.

KBO는 그간 많은 입찰과 계약에서 불안한 비행을 했다. 공정성과 투명성이란 두 날개 가운데 한쪽 날개가 고장났거나 두 날개 모두 제 기능을 못한 탓이었다.

7월 2일부터 5일 오후까지 양 총장은 타이완에 있었다. ‘심판-구단간의 돈거래’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3차 승부조작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엄중한 상황에서 양 총장은 KBO 사무총장 자격도 아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 자격으로 타이완에 다녀왔다.

예정된 약속이라, 펑크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면 늘 그랬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타이완행 비행기를 탔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양 총장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귀국하자마자 “‘입찰 비리 의혹’에 연루된 강 모 기획팀장에 대해 자체 조사 중이었고, 6월 초부턴 아예 업무에서 배제했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무엇보다 마치 엠스플뉴스의 탐사보도가 터져 조사에 난항을 겪게 됐다는 듯 “소명도 듣는 등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중에 보도가 나왔다"고 또 ‘남 탓’을 했다. 그래서 엠스플뉴스가 준비했다. 양 총장이 ‘KBO 입찰 비리 의혹’을 강도 높게 조사했는지, 아니면 은폐로 일관했는지 알 수 있는 취재 내용이다.

15분이면 밝혔을 ‘가족 회사’ 여부를 몇달째 조사 중이었던 KBO. KBO가 집중한 건 조사가 아니라 이번에도 은폐

KBO가 2016년 4월 25일 공고한 'KBO리그 입찰공고 중국시장 개척 마케팅 및 홍보 사업 대행' 입찰 건의 개찰 결과(사진=엠스플뉴스).
KBO가 2016년 4월 25일 공고한 'KBO리그 입찰공고 중국시장 개척 마케팅 및 홍보 사업 대행' 입찰 건의 개찰 결과(사진=엠스플뉴스)

첫번째. 양 총장은 “KBO도 사건을 인지해 몇 달째 조사하고 있었다”고 발언했다. 사실일까.

엠스플뉴스는 2016년 4월 25일 나라장터에 공고한 ‘KBO리그 중국시장 개척 마케팅 및 홍보 사업 대행업체 선정’ 입찰과 같은 해 10월 12일 역시 나라장터를 통해 공고한 ‘KBO리그 중국시장 진출 실행계획 수립 및 시범 운영 대행업체 선정’ 입찰에서 모두 F사 최종 낙찰자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두 건의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가 F사였다는 걸 아는 덴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라장터의 입찰결과에 들어가 개찰 순위만 살펴보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에서 확인한 F사의 소유 구조. 누구나 5분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사진=엠스플뉴스)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에서 확인한 F사의 소유 구조. 누구나 5분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사진=엠스플뉴스)

‘F사’의 실체를 파악하는 덴 단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에 들어가 F사의 법원 등기를 열람하면 사업 개시일부터 사업장 주소, 사업영역 말소/추가, 대표이사· 사내이사·감사 등의 사임/신규 선임 등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

엠스플뉴스는 이런 간단한 과정을 거쳐 F사가 첫번째 입찰(2016년 4월 25일 입찰 공고한 ‘KBO리그 중국시장 개척 마케팅 및 홍보 사업 대행업체 선정’ 입찰건)을 불과 13일 앞두고 사업영역을 대폭 변경하고, 대표이사도 전격 교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때 사임한 사내이사가 강00, 강00, 감사가 김00임을 파악했다. 남은 관건은 이들이 입찰 책임자인 KBO 강 모 팀장과 어떤 관계냐를 밝히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땐 당사자들에게 물어볼 시기가 아니었다. 이들이 가족 관계를 부인으로 일관한다면 더 많은 증거를 놓치거나 증거 자체가 인멸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엠스플뉴스는 지난해에도 심판 돈 요구 문제와 각종 KBO 의혹 관련 보도를 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보는 많은 이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실제로 KBO 수뇌부는 기사 노출과 전달을 막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에 협력한 부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는 지난해에도 심판 돈 요구 문제와 각종 KBO 의혹 관련 보도를 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보는 많은 이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실제로 KBO 수뇌부는 기사 노출과 전달을 막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에 협력한 부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그런 까닭으로 엠스플뉴스는 한 달간 탐문 취재를 했다. 결국 강 팀장이 ‘강 씨’ 집안의 장남이며 나머지 두 강 씨는 친동생과 친누나임을 확인했다. 감사인 김 씨는 강 씨 형제의 어머니였다.

엠스플뉴스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KBO는 달랐다. 직원인 강 팀장에게 이들이 가족인지 물으면 금방 답을 들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몇달째 조사했다’는 양 총장의 발언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양해영 총장 “‘입찰 비리 의혹’ 팀장, 업무에서 이미 배제시킨 상태였다.” VS 문체부 직원 “6월 말까지 강 팀장과 업무 협의했다.”

두번째. 양 총장은 모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해당 직원은 6월 초에 업무에서 배제시켰다”고 강조했다. 과연 이건 사실일까.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이는 사실보단 ‘바람’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그도 그럴 게 KBO 강 모 기획팀장은 최근까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문화체육부관광부 ‘프로스포츠 담당’ 직원은 6일 엠스플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강 팀장과 6월 말까지 정상적으로 업무를 공유했다”며 강 팀장이 업무에서 배제됐다는 양 총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강 팀장과 ‘야구 명예의 전당’ 업무를 함께 봤던 부산 기장군 관계자 역시 “강 팀장이 기장에 들른 게 얼마 전의 일인데 ‘무슨 업무 배제를 당했다는 것이냐’”며 “그럼 KBO가 업무 배제한 사람을 기장에 보냈다는 소리냐”고 반문했다.

엠스플뉴스는 강 팀장이 몇몇 지인에게 “6월 30일까지만 출근한다”는 소릴 했다는 여러 증언을 확보했다.

강 팀장과 평소 업무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고 말한 한 이는 엠스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6월 중순쯤 강 팀장이 ‘6월 말까지만 KBO에 다니고, 앞으로 야구 사업에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왜 멀쩡히 잘 다니던 KBO를 그만두려 하느냐’고 묻자 ‘KBO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없다. 열심히 일해도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비전 없는 회사를 계속 다녀봤자 나만 손해’라고 말했다. 입찰이나 업무 배제와 관련해선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다.”

세번째. 양 총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 팀장으로부터) 소명도 듣는 등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중에 보도가 나왔다"며 마치 엠스플뉴스의 탐사보도 때문에 ‘KBO의 강 팀장 조사에 차질이 생긴 것’처럼 불만을 터트렸다. 이는 사실일까.

양 총장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수용한다면 KBO는 몇 달 전 강 팀장의 ‘입찰 비리 의혹’을 알았고, 이를 조사 중에 있었으며, 혹여 ‘딴 짓’을 할까 우려해 그를 업무에서 배제한 상태였다.

만약 이 정도로 KBO가 강 팀장을 ‘요주의 인물’로 판단했다면 KBO가 취했어야할 정상적인 행동은 업무 배제가 아니라 업무 중단이었다. 그리고 더 정상적이었다면 ‘입찰 비리 의혹’이 밝혀질 때까지 ‘증거 조작이나 인멸’을 막는 차원에서라도 강 팀장이 KBO 자료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았어야했다.

하지만, 반대였다. 강 팀장은 최근까지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KBO의 비중있는 업무를 주도했다. 심지어 그가 퇴사하는 날. KBO는 구본능 총재, 양해영 사무총장, 각 부서 팀장이 모인 회식 자릴 가졌다.

‘입찰 비리 의혹’ 팀장의 퇴사를 기념해 환송회까지 열어준 KBO

엠스플뉴스 취재진은 6월 30일 오후 강 팀장의 해명을 듣고자 서울 강남구 도곡동 KBO 회관을 찾았다. 마침 퇴근 시간을 앞두고 강 팀장이 회관 밖으로 나오는 걸 발견했다.

취재진은 강 팀장을 따라갔다. 반드시 강 팀장으로부터 해명을 들어야 한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특히나 강 팀장이 KBO와 업무 관련 파트너들에게 “6월 30일부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알린 터라, 이날이 지나면 강 팀장과의 연락이 끊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남 모 음식점에 도착한 건 강 팀장만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사이 구본능 총재, 양해영 사무총장, 각 부서 팀장이 차례로 음식점에 들어갔다. 이들은 왜 이 자리에 모인 걸까. 어째서 업무 배제를 당한 채로 KBO 조사를 받는 강 팀장이 참석한 것일까.

음식점 관계자는 “누굴 환송해주는 자리 같았다”며 “모임 분위기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KBO 임직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만약 이날 모임이 ‘강 팀장 환송회’였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입찰 비리 의혹’을 조사받고 있는 팀장을 환송회까지 열어줬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런 환송회를 ‘모든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KBO 수뇌부가 참석한 건 더 납득하기 어렵다.

5일 엠스플뉴스 취재진은 KBO를 찾아 이 모임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KBO 고위 관계자는 “환송회는 절대 아니었다. 이미 예정된 팀장 이상 회식이었을 뿐”이라며 “올스타전을 앞두고 열심히 해보자는 뜻에서 모인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양 총장의 발언을 반대로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우리는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

박동희, 배지헌, 김원익, 전수은, 강윤기, 김근한, 손보련, 이동섭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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