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시도건'에 연루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프로야구 선수는 투수가 아닌 타자로 확인됐다 (위 사진은 해당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승부조작 시도건'에 연루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프로야구 선수는 투수가 아닌 타자로 확인됐다 (위 사진은 해당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엠스플뉴스]

프로야구 선수, 올스타 브레이크 앞두고 검찰 소환돼 조사 받은 것으로 확인 / 검찰 "사실 관계 확인해줄 수 없다. 조만간 수사 결과 발표할 것" / 검찰 조사 받은 선수, 투수가 아닌 야수로 밝혀져 / 법조계 "스포츠계와 조폭간의 교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승부조작과 도박 사건의 원인"

승부조작의 악령은 여전히 야구계 주변을 맴돌고 있다. 지금껏 프로야구 승부조작은 투수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번엔 야수가 '의혹의 중심'에 섰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2014년 5월 특정 경기에서 조폭으로부터 승부조작을 제안받은 것’으로 알려진 한 프로야구 선수가 최근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폭행이 시발점이 돼 드러난 ‘승부조작 시도 사건’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검 포항지청(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검 포항지청(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포항지청은 7월 3일 ‘2014년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 등에서 이득을 챙길 목적으로 현역 프로야구 선수를 매수해 승부조작을 시도한 혐의로 포항지역 전직 조폭 김 모 씨와 대구지역 전직 조폭 박 모 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두 이가 2014년 5월 광주에서 진행된 프로야구 경기에서 승부조작을 시도했다고 보고, 관련 혐의를 집중 추궁했다.

포항지청 관계자는 14일 지청을 찾은 엠스플뉴스 취재진에 “김, 박씨가 ‘(승부조작 시도에) 프로야구 선수가 연루됐다’고 진술한 게 사실”이라며 “이전 보도 내용대로 해당 경기에서 져야할 팀이 이기면서 승부조작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으로 파악한 상태”라고 전했다.

승부조작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김 씨와 박 씨는 함께 범행에 같이 가담했던 또 다른 김 모 씨를 무차별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벌어진 ‘승부조작 시도건’이 3년이 흐른 2017년에야 뒤늦게 알려진 것도 이 폭행 사건이 시발점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올스타 브레이크 앞두고 프로야구 선수 검찰 소환 조사 받았다.” 증언 확보. 검찰 “확인해줄 수 없다. 조만간 수사 결과 발표할 것”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검 포항지청(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검 포항지청(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취재진은 포항, 대구에서 이 사건을 알만한 여러 인사를 만났다. 취재에 응한 한 폭력조직의 관계자는 “구속된 두 사람이 전, 현직 조폭 출신인 건 맞다. 그 가운데 한 명은 포항 S파의 조직원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조직의 수뇌부급이나 이름난 친구들은 절대 아니었다”며 “우리도 이 사건이 터지고서야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전했다.

검찰 관계자 역시 “김, 박 씨를 조폭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며 “잡범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 같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구속된 김, 박 씨에서 프로야구 선수들로 확대된 건 두 이의 휴대전화에서 ‘승부조작 시도 가담 의혹’을 받는 프로야구 선수의 사진을 발견하고서부터다. 김, 박씨와 프로야구 선수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발견한 검찰은 사진 속의 선수가 ‘승부조작 가담 제의’를 받은 선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이 선수는 경북 지역 조폭들과 '형, 동생'하며 긴밀하게 지내왔다. 이는 해당 폭력조직에서도 확인해준 내용이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실제로 검찰은 사진 속의 프로야구 선수를 소환해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검찰이 프로야구 선수를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며 “그간의 승부조작 때와는 달리 투수가 아닌 야수가 조사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포항지청 관계자는 17일 엠스플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프로야구 선수 소환 조사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 알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하고서 “조만간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투수 아닌 타자도 베팅 항목에 올라 있다.

불법 스포트 베팅 사이트 캡쳐 장면. 타자들과 관련한 베팅 항목이 눈에 띈다(사진=한체대 최창환 박사)
불법 스포트 베팅 사이트 캡쳐 장면. 타자들과 관련한 베팅 항목이 눈에 띈다(사진=한체대 최창환 박사)

검찰의 ‘프로야구 승부조작 시도 의혹건’은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간 승부조작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던 야수가 수사 대상이 됐다는 게 특이점이다.

2011년 승부조작 사건(박현준-김성현)과 지난해 엠스플뉴스의 탐사보도로 밝혀진 2014년 승부조작 사건(이태양-유창식)의 핵심 인물들은 모두 투수였다. 지난해 야수였던 문우람이 승부조작 가담 혐의로 구속됐지만, 문우람은 승부조작 직접 가담이 아닌 브로커와의 연결고리 역할로 처벌받았다.

불법 스포트 베팅 사이트 캡쳐 장면(사진=한체대 최창환 박사)
불법 스포트 베팅 사이트 캡쳐 장면(사진=한체대 최창환 박사)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 투수는 경기 승패 조작에 가장 용이한 포지션으로 인식돼왔다. ‘경기 후 첫 볼넷’이 승부조작 사건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승부조작 시도 의혹’에선 야수가 사건의 연루자로 의심받고 있다. 야수가 투수에 비해 승부조작 영향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야수가 승부조작에 전혀 가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중요 경기 상황에서 수비 실책이나 무성의한 타격으로 승패에 영향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승부조작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게 많은 수사 관계자의 증언이다.

실제로 엠스플뉴스가 '한국 최고의 불법 스포츠 도박 분석가'로 알려진 한국체육대학교 최창환 박사의 도움을 받아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분석한 결과 ‘특정 경기에서 특정 타자 두 명 가운데 누가 먼저 안타를 칠지와 관련한 베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베팅 항목에 오른 특정 선수를 브로커들이 매수한다면 야수라도 승부조작에 개입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검찰에 소환된 것으로 확인된 프로야구 선수는 승부조작 시도 의혹을 받는 특정 경기에서 무안타로 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스포츠계, 조폭과의 교류에 대해 지나칠 만큼 안이하다. 조폭과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 한 승부조작과 도박 사건은 계속 터질 게 분명"

승부조작과 불법 도박의 배후엔 항상 조직폭력배가 있다. 조직폭력배와 스포츠계의 교류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이유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승부조작과 불법 도박의 배후엔 항상 조직폭력배가 있다. 조직폭력배와 스포츠계의 교류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이유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법조 관계자는 “최초 ‘승부조작 사건’ 의혹이 보도됐을 때 포항지청이 당황했던 게 사실이다. 선수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후 포항지청에서 차분히 수사를 진행해 지금은 ‘외풍’이나 주변 움직임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는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승부조작 시도범들이 해당 선수와 살갑게 지낸 건 맞는 것 같다. 이 선수는 평소 아는 조폭이 꽤 됐다. 물론 이 선수를 포섭 대상으로 삼았을 뿐 실제 승부조작을 제안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종종 자신을 ‘승부조작 사범’이라고 칭하나, 실제론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수사에 혼선을 주는 사람이 더러 있으니까”라며 “구속된 두 이도 그럴 가능성이 있기에 검찰이 수사에 더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 말미 이 관계자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승부조작 가담 여부보다 더 주목하고, 더 고민할 게 있다. 바로 스포츠계가 조폭들과의 교류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오랜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조폭은 일본으로 따지면 야쿠자, 미국이나 유럽으로 치자면 마피아다. 일본, 미국 법을 공부해 잘 알지만, 일본에선 프로야구 선수들과 야쿠자의 교류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 유명 선수가 마피아와 유흥업소에서 어울려 술 마시고, 엉뚱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치자. 미국 스포츠계가 가만히 있겠는가.

하지만, 한국 스포츠계는 이상하게도 조폭과 어울리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감독, 코치, 선수는 물론이려니와 협회도 별 제지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명 조폭이 자기 친구이거나 선·후배인 걸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그 영향을 봐라. 지금까지 벌어진 승부조작과 도박사건엔 예외 없이 조폭이 개입됐다. 포항지청에서 다루는 사건도 마찬가지다. 구속된 김, 박 씨는 알려진 대로 조폭 출신이다. 이들이 프로야구 선수들과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아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스포츠계가 지금처럼 조폭과 어울려 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그걸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한 승부조작과 도박 사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이 될 것이다.“

엠스플뉴스는 '승부조작 시도건'이 공론화된 이후 법조계, 검찰, 조직폭력배, 구단, 정부 기관 등을 상대로 탐사취재를 진행해왔다. 검찰 수사 추이를 지켜보며 취재한 내용 가운데 팩트만을 추려 사건의 실체를 추적함과 동시에 수사 결과가 어떻게 발표되는지 지켜볼 예정이다.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

박동희, 배지헌, 김원익, 전수은, 강윤기, 김근한, 손보련, 이동섭 기자

dhp1225@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