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덕수고 야구부, 서울시교육청 고교 이전·재배치 계획으로 존폐 위기

-시 교육청 “학생수 꾸준히 감소…이전과 통폐합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

-야구계 “야구 역사와 전통,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비판…교육청 앞 항의집회도

-‘솔로몬의 지혜’ 발휘해야…새 훈련장 확보, 현 운동장 사용 등 보완책 마련 시급

존폐 위기에 처한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사진 왼쪽은 정윤진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존폐 위기에 처한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사진 왼쪽은 정윤진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한국 고교야구 최고 강팀이자, 수많은 스타플레이어와 명 지도자를 배출한 명문 덕수고등학교 야구부는 지금 햄릿만큼이나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고교 이전·재배치 계획’에 따라 덕수고가 일반계와 특성화계 둘로 쪼개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존폐가 달린 야구부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은 12월 1일 ‘덕수고 이전·재배치 계획’을 행정 예고했다. 학령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갈수록 신입생이 줄어드는 덕수고 일반계를 2021년 3월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로 이전하고, 특성화계는 2023년까지 다른 특성화고와 통폐합한다는 계획이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덕수고 뿐만 아니라 학령 인구 감소가 전국적으로 급격하게 이뤄지는 추세라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특히 덕수고는 일반고와 특성화고를 함께 운영하면서 신입생 모집과 학교 운영상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분리가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야구부 입장에선 날벼락이다. 덕수고는 그간 야구부원을 일반계와 특성화계로 반반씩 나눠 받았다. 하지만 일반계 이전이 실행되면 더이상 일반계열 야구부원은 받기 어렵다. 정윤진 덕수고 감독은 “요즘 야구부원들은 7교시까지 수업을 받은 뒤 4시부터 훈련을 한다. 위례신도시 학교와 행당동을 오가며 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위례신도시 학교 새 부지 면적이 1만1570㎡(3500평)로 현 행당동 학교 부지(4만9586㎡, 1만5000평)에 비해 1/4 수준이라 야구부가 훈련할 만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덕수고 관계자는 지금도 운동장을 일반 학생과 야구부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현재도 야구부원들이 눈치를 보며 훈련하는 형편인데, 더 좁은 학교 부지에서 어떻게 훈련이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교육청 계획대로라면 특성화 계열로만 야구부를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교육청은 2023년 이후 특성화고를 통폐합해 다른 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명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현 훈련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 덕수고 야구부의 ‘역사’마저 사라질 위기다.

교육청 “야구부 존치 입장 확고” 덕수고 동문 “‘살려는 드릴게’와 뭐가 다르냐”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수 감소에 따라 고교 이전과 통폐합은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여파로 명문 야구부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게 문제다(사진=엠스플뉴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수 감소에 따라 고교 이전과 통폐합은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여파로 명문 야구부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게 문제다(사진=엠스플뉴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이전과 통폐합을 실행해도 덕수고 야구부는 계속 존치한다는 게 조희연 교육감의 뜻이라 밝혔다.

하지만 한 덕수고 출신 야구인은 “영화에 나오는 ‘살려는 드릴게’ 대사와 뭐가 다르냐”며 “운동장 없는 신도시로 가든, 특성화 계열로 유지하든 정상적인 야구부 운영이 불가능할 게 분명하다. 우수 신입생들이 덕수고 입학을 꺼리고, 선수 숫자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고사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키움 히어로즈 장정석 감독도 해체를 시키겠다는 건 아니지만 야구부를 궁지에 빠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문들과 정윤진 감독이 오랜 시간 피땀흘려 쌓은 명문 야구부가 결국에 가서는 몰락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야구부 존폐 위기에 덕수 출신 야구인들도 단체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13일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덕수고 야구부 출신 선수모임’ 50여 명이 1차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엔 장정석 감독, 김재걸 LG 트윈스 코치, 한규식 NC 다이노스 코치 등 덕수 출신 지도자를 비롯해 FA(자유계약선수) 최진행·이용규와 한화 이글스 최재훈, LG 트윈스 류제국, KIA 타이거즈 한승택·이인행, 삼성 라이온즈 양창섭 등이 대거 참석했다.

유명 야구인들이 단체행동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건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이들은 항의집회에서 “야구부 학습권도 보장하라”며 “야구장 없는 학교에서 야구하라는 게, 교실 없는 곳에서 공부하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외쳤다.

이들은 1차 집회에 그치지 않고 더 큰 규모로 2차 집회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서울시야구협회 관계자는 덕수고 한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협회 차원에서도 적극 대응할 생각을 갖고 있고, 필요하다면 서울시내 모든 고교야구부를 모아 공동 대응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덕수고 문제, 솔로몬의 지혜 필요…운동장 확보, 현 훈련장 사용 등 대안 내놓아야”

덕수고 시절 피칭 훈련을 하는 양창섭(현 삼성 라이온즈 투수). 덕수고는 양창섭 외에도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와 지도자를 배출했다(사진=엠스플뉴스)
덕수고 시절 피칭 훈련을 하는 양창섭(현 삼성 라이온즈 투수). 덕수고는 양창섭 외에도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와 지도자를 배출했다(사진=엠스플뉴스)

야구계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세자, 서울시교육청은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애초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바꾸기 어렵다”던 시 교육청은 최근 “지역 여론을 비롯해 여러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한 발 물러선 듯한 자세를 취했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1월 3일 엠스플뉴스에 “행정예고 기간이 끝난 뒤에 보도하면 안 되겠느냐”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조희연 교육감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애초) 특성화계열 통폐합도 함께 추진하려다가 기존 야구부원들 진로가 염려돼 특성화계열 통폐합은 2023년부터 추진하게 됐다”며 “위례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운동장이 협소해지는 점은 교육청도 많이 아쉽다”고 밝혔다. 비판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야구협회 관계자는야구 전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밀어붙이기식 행정이라며공부와 경쟁만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교육청이 야구와 스포츠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스포츠의 전통과 역사를 가볍게 여기는 엘리트들의 관점이 반영된 행정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한 원로 야구인도 “만약 일본에서라면 전통의 명문 야구부가 있는 학교를 이렇게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단순히 야구부가 있는 학교 하나가 이전하고 통폐합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야구의 중요한 역사와 이어가야 할 전통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다뤄야 할 문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덕수고 야구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와 교육청이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단 의견도 나온다. 한 아마야구 관계자는 “일반계 고교 이전 자체는 이미 확정돼 돌이키기 어렵다. 특성화고 통폐합도 현재 학생수 추이로 볼때는 시기가 문제일 뿐 기정사실이라 본다”며 야구계 반발에도 교육청의 계획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대신 이 관계자는 일반계가 이전하는 새 학교 부지에 충분한 훈련 공간을 확보하거나, 특성화계가 통폐합 이후에도 학교명을 유지하면서 현재 운동장을 계속 사용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청에서도 말로만 야구부 존치를 얘기할 게 아니라 덕수고 야구부를 배려한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시교육청은 1월 내로 행정예고 기간을 끝내고 덕수고 이전·재배치 계획 실행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행정예고 기간이 끝난 뒤에 (야구부 문제 보완책을) 정리해서 밝히겠다”고 했다. 덕수고 야구부의 전통이, 한국야구 역사의 큰 기둥 하나가 있음과 없음의 기로에 섰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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