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좌완 고효준, 구속 향상과 제구 향상 동시에 이뤄내다

-롤러코스터 편견 씻고 안정적인 불펜 필승조로 거듭나

-“마음의 여유 생겨, 후배 서준원 보면서 배운다”

-“목표는 30홀드, 롯데에서 우승 꼭 해보고 싶다”

올 시즌 구속 향상과 제구 안정을 함께 이뤄낸 고효준(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올 시즌 구속 향상과 제구 안정을 함께 이뤄낸 고효준(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 투수 고효준은 마치 오랜 편견과 상식을 깨부수기 위해 공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4월 16일까지 고효준이 던진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145.1km/h. 리그 투수(5이닝 이상) 가운데 22위, 좌완투수 중에선 김광현(146.8km/h) 다음으로 빠른 공을 던지고 있다. 지난해 평균(143.5km/h)보다 빨라졌고, 사실 스탯티즈가 집계를 시작한 2014시즌 이후 가장 높은 스피드를 기록 중이다.

일반인의 상식에 따르면, 투수의 스피드와 제구는 반비례에 가까운 관계다. 스피드를 끌어올리려면 제구를 희생해야 하고, 제구를 살리려면 스피드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상식을 올 시즌 고효준이 깨고 있다. 고효준은 올해 9이닝당 볼넷 2.00개(통산 6.12)개, 스트라이크 비율 67.4%(2018년 59%)를 기록하고 있다. 공도 빨라지고, 제구까지 좋아진 셈이다.

고효준이 깨뜨린 편견은 또 있다. 올 시즌 고효준은 세 가지 팔각도로 공을 던진다. 오버핸드, 스리쿼터, 여기에 사이드암으로 던질 때도 있다. 보통 팔 각도를 바꿔가며 공을 던지면 컨트롤을 잡기 쉽지 않다는 게 일반인의 상식이다. 제구가 좋은 투수여야만 가능하다는 편견도 있다.

하지만 고효준은 세 종류의 폼으로 던지면서도 볼넷을 거의 내주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폼으로 던지는 게 제구가 잘 되는 비결이라 말한다. 이쯤 되면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다.


마음의 여유, 3가지 투구폼. 올 시즌 고효준이 달라진 비결

양상문 감독은 고효준이 '힘을 빼고 던지라'는 조언을 잘 수용하면서 올 시즌 달라진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사진=롯데)
양상문 감독은 고효준이 '힘을 빼고 던지라'는 조언을 잘 수용하면서 올 시즌 달라진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사진=롯데)

10경기 9이닝 12탈삼진 평균자책 3.00에 3홀드. 4월 16일 현재까지 고효준의 성적이다. 피안타 8개 가운데 장타는 2루타 1개 뿐이고, 볼넷은 단 2개만 허용했다. 스릴만점 롤러코스터, 월미도 바이킹으로 불리던 투수가 이제는 편안한 ‘모노레일’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고효준의 말이다. 그전까지는 마운드에서 지나치게 흥분하는 편이었어요. 100이 아니라 120, 10000을 하려고 했죠.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조절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맞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감독님 말씀대로 자신있게 던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양상문 롯데 감독도 비슷한 점을 얘기했다. 양 감독은 “힘을 빼고 던지라는 조언을 많이 했는데, 정말 그렇게 던지는 것 같더라. 그랬더니 속도는 빨라지고 제구력은 좋아졌다”고 했다. “사실 힘을 빼고 던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고효준은 그걸 해냈습니다. 자신감도 넘치는 것 같고요.” 양 감독의 말이다.

고효준의 달라진 마음가짐은 까마득한 후배 서준원을 보는 시선에서도 드러난다. 고효준은 “후배지만 서준원이 던지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운다”고 했다.

준원이는 기본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선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즐기면서 야구한다는 점이 놀랍더라구요. 마운드에서 타자와 상대할 때 표정을 보면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게 보여요. 저 어린 친구도 즐기면서 하는데, 야구를 오랫동안 해온 나는 왜 못 즐기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베테랑이라도 배울 건 배워야죠. 아직 배울 것도 많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효준은 롯데 이적 첫해인 지난 시즌엔 투구폼 변화를 거의 주지 않았다. “원래 2004년 프로 데뷔 때부터 팔 각도를 바꿔가며 던졌어요. 그러다 SK에선 거의 오버핸드로만 던졌고, KIA에선 드문드문 시도하다가 작년엔 거의 하지 않았죠. 올해 캠프 때부터 다시 다양한 팔 각도로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팔 각도를 바꿔가며 던지는 게 오히려 구속과 제구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게 고효준의 설명이다. 투구폼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가볍게 공을 던져봤는데, 생각보다 구속도 잘 나오고 제구도 잘 되더라구요. 고효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영역이다.

“사실 야수들도 송구할 때 사이드로도 던졌다가 상황에 따라선 위로도 던지고 하잖아요. 투수도 수비할 때 옆으로 던질 때가 종종 있구요. 그런다고 공이 빗나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팔 각도 바꿔서 던지는 걸 오랫동안 해와서 그런지,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느낌입니다.”

고효준이 ‘30홀드’ 목표 세운 이유? 롯데 우승

고효준은 SK 왕조 시절 주축 투수였다. 2017년엔 KIA에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했다. 롯데에서도 고효준의 목표는 팀의 우승이다(사진=롯데)
고효준은 SK 왕조 시절 주축 투수였다. 2017년엔 KIA에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했다. 롯데에서도 고효준의 목표는 팀의 우승이다(사진=롯데)

고효준은 올해 타이완 스프링캠프 때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는 팀의 우승, 두번째는 부상 없이 건강하게 시즌을 보내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30홀드를 올 시즌 목표로 잡았습니다.” 고효준의 말이다.

왜 ‘30홀드’일까. 이에 대해 고효준은 “물론 우리 팀내에도 오현택이란 좋은 투수가 있고, 다른 팀에도 좋은 중간투수가 많지만 올해는 캠프 때부터 저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되더라”며 “중간투수로서 한번쯤은 탑을 찍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만큼 올 시즌 자신감이 넘치는 고효준이다.

30홀드 목표엔 다른 의미도 있다. 불펜투수가 30홀드를 기록한다는 건 팀이 그만큼 많은 승리를 거뒀다는 의미도 된다. 고효준은 그렇게 된다면 팀이 우승하지 않겠나라며팀 성적이 좋아야 홀드왕도 가능한 법이다. 저도 홀드를 위해서, 성적을 위해서, 무엇보다 팀을 위해서 30홀드를 하고 싶다고 했다.

“롯데에서 꼭 한번 우승을 해보고 싶어요. 오랫동안 우승을 못한 롯데의 아쉬움을 깨고 싶습니다.” SK 왕조 시절의 주역이었던 그리고 2017년 KIA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했던 고효준의 말이다.

올 시즌 피칭만 보면 더는 ‘롤러코스터’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러다 별명이 바뀌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자 고효준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쿨한 반응을 보였다.

“(롤러코스터 별명은) 신경쓰지 않아요. 투수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지만, 저 나름대로는 항상 열심히 해왔습니다. 물론 보시는 분들은 다르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지만요.” 앞으로 고효준을 고롤코 대신 ‘고쇼’ 혹은 ‘고효율준’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올 시즌 여러가지 편견과 상식을 깨뜨리고 있는 고효준. 그가 깨부순 가장 큰 편견은 베테랑 선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나이를 먹으면 기량이 하락한다는 상식, 젊은 선수는 발전할 여지가 있지만 베테랑 선수를 바꾸긴 쉽지 않다는 상식 말이다.

고효준은 나이 36세에 기량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다. 고효준이 할 수 있다면, 다른 선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할 수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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