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외국인 선수 교체, 시점 결정하기 쉽지 않다

-과거 SK와 KT, 외국인 조기 교체로 효과…로맥과 로하스 영입

-5월까지 기다린 삼성에 반전 활약으로 보답한 러프

-외국인 선수 기다렸지만 실망으로 돌아온 사례도…교체 여부, 확실한 근거 갖고 결정해야

아수아헤와 호잉. 일각에서 교체론도 나오지만 롯데와 한화 사령탑은 여전한 신뢰를 보냈다(사진=엠스플뉴스)
아수아헤와 호잉. 일각에서 교체론도 나오지만 롯데와 한화 사령탑은 여전한 신뢰를 보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야구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이다. 김현수, 박병호 같은 슈퍼스타도 시즌 중 한두경기만 떼어놓고 보면 부진한 기간이 있고, 멘도사급 타자에게도 아주 가끔은 빛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한두 타석이나 몇 경기 활약만 갖고 선수의 진짜 실력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게 야구다. [머니볼]의 빌리빈이 오클랜드 경기를 직접 보지 않은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인지 모른다.

세이버메트릭스 업계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타자의 홈런 생산력이 진짜 실력인지 알기 위해선 적어도 300타석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장타율과 출루율은 최소 500타석은 지켜봐야 신뢰할 수 있고, 타율 같은 기록은 750타석으로도 설명력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다. 충분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몸값 비싼 외국인 선수에 대해선 마냥 인내심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KBO리그 팀 전력에서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원체 큰 탓이다. 300타석, 500타석씩 기다릴 동안 어느새 시즌은 끝나버리고 집에서 TV로 포스트시즌을 보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부진한 외국인 선수를 좀 더 기다릴지, 아니면 집으로 보낼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외국인 선수. 일찌감치 바꾸거나, 기다리거나, 기다렸다 함께 가라앉거나

1호 퇴출의 불명예를 안게 된 해즐베이커(사진=KIA)
1호 퇴출의 불명예를 안게 된 해즐베이커(사진=KIA)

몇몇 구단은 속전속결로 외국인 선수를 교체해 성공을 거뒀다. 2017년 대니 워스를 3경기(타율 0.111)만에 교체한 SK 와이번스가 대표적이다. 이후 SK는 새 외국인 타자로 제이미 로맥을 영입했고, 로맥은 데뷔시즌 31홈런을 때려내며 SK 홈런군단의 선봉장이 됐다.

KT 위즈도 빠른 결단으로 재미를 본 팀이다. 2017시즌 영입한 조니 모넬이 시즌 초반 1할대 타율로 헤매자, KT는 5월 중순 빠르게 퇴출 결정을 내렸다. 대신 영입한 선수가 멜 로하스 주니어다. 로하스는 지난 시즌 43홈런 114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 외국인 타자로 활약했다.

반면 믿음을 갖고 기다려 결실을 거둔 팀도 있다. 2017시즌 삼성이 영입한 다린 러프가 좋은 예다. 러프는 4월 21일까지 타율 0.150에 홈런 2개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삼성은 러프를 2군에 보내 재조정 시간을 갖게 한 뒤, 5월에 다시 불러 올렸다. 러프는 5월에만 홈런 7개를 때려내며 반등했고, 그해 타율 0.315에 31홈런 124타점을 기록하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물론 기다림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인내와 배려가 실망으로 돌아온 예는 특히 지난 시즌에 집중적으로 많이 나왔다.

두산은 지미 파레디스에게 5월 말까지 기회를 줬지만 결과는 실망. 뒤늦게 영입한 스캇 반슬라이크도 과거 메이저리그 중계에서 보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국인 타자가 ‘서프라이즈’ 출연자급 야구 실력을 선보인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도 우승에는 실패했다.

LG는 4월 중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아도니스 가르시아에게 이천 쌀밥을 먹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가르시아는 7월 1군에 돌아왔지만 한 달도 못가 다시 부상을 당했고, 9월엔 3루수가 아닌 지명타자가 돼서 돌아왔다. 함흥차사보다 더 소식 없는 이천차사 가르시아를 기다리는 동안 LG의 시즌도 끝나 버렸다.

NC와 롯데는 2017시즌 뛰어난 활약을 펼친 재비어 스크럭스와 앤디 번즈를 각각 재신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스크럭스는 타격 정확성과 선구안에 문제를 드러내며 외국인 1루수로는 기대 이하의 성적(OPS 0.826)만 남겼다.

번즈는 홈런은 첫 시즌보다 증가했지만(16->23) 전반적인 타격 생산력이 떨어졌고, 2루 수비에서 무더기 실책(22개)을 범하며 공수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외국인 선수 교체 타이밍을 놓친 두 팀은 나란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조기 교체든 기다림이든 확실하고 합리적인 근거 있어야

제리 샌즈와 멜 로하스는 지난 시즌 놀라운 장타력을 선보인 타자들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제리 샌즈와 멜 로하스는 지난 시즌 놀라운 장타력을 선보인 타자들이다(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에도 외국인 타자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는 팀이 적지 않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를 영입한 두산, 제리 샌즈가 2년 연속 활약 중인 키움, 러프가 조금씩 살아나는 삼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외국인 타자가 기대 이하이거나 썩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다.

가장 먼저 교체 카드를 꺼낸 팀은 KIA다. KIA는 1할대 타율에 부상까지 시달리는 제레미 해즐베이커를 조기 손절하고 프레스턴 터커를 새로 영입했다. 한편 일각에서 ‘교체론’이 불거진 롯데(카를로스 아수아헤), 한화(제라드 호잉)는 감독이 ‘교체 계획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호잉은 한용덕 감독이 경기전 인터뷰에서 신뢰를 표현한 14일, 3안타 1홈런 4타점으로 반등 가능성을 보였다. 역시 교체설이 나온 롯데 제이크 톰슨도 14일 경기 완봉승으로 반전을 이뤘다. 타격부진과 수비 실수로 NC 팬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도 같은날 경기에서 2안타 1홈런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로하스도 이강철 감독에게 질책을 들은 뒤부터 연일 맹타를 휘두르는 중이다.

분명한 건 외국인 선수를 바꾸든 계속 믿고 기다리든, 확실하고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시적 부진만으로 성급하게 교체를 결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때가 되면 좋아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마냥 기다리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KIA 해즐베이커는 컨택트 성공률 61.8%로 리그 최악의 컨택트 능력을 선보였고, 타석당 삼진율도 39.1%로 최하위권에 그쳤다. 부상에서 회복해도 남은 시즌 리그에 적응해 활약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 점에서 해즐베이커보다 훨씬 많은 123타석을 소화한 베탄코트의 컨택트 성공률이 70.4%에 그치고 있는 건 좋지 않은 신호다.

2년 전 KT 위즈가 조니 모넬을 교체할 때도 성적 외의 원인이 크게 작용했다.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꽉 막힌 태도가 모넬의 조기 퇴출로 이어졌다. 2016시즌 넥센의 로버트 코엘로는 꾸역꾸역 5이닝은 버텼지만 많은 투구 수와 긴 수비 시간이 팀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판단에 교체 대상이 됐다.

시즌 초반 키움은 샌즈의 홈런 생산이 주춤할 때, 홈런을 제외한 다른 타격 지표는 정상적이라는 판단에 믿음을 갖고 기다렸다. 샌즈는 아직 홈런은 5개에 불과하지만 대신 0.416의 높은 출루율과 리그 최다 2루타(16개)로 뛰어난 생산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키움 관계자는 “홈런은 때가 되면 나온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화 호잉은 홈런 생산은 물론 타율, 출루율 등 모든 부면에서 지난해보다 지표가 나빠졌다. 지난 시즌 안타로 이어졌던 그라운드볼 타구가 대부분 수비수들에게 잡히고, 외야로 향하는 타구는 타구 속도와 비거리가 줄었다. 14일 3안타를 때리긴 했지만 안타 2개는 빗맞은 행운의 안타였다. “좋아질 것”이란 기대에 보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어느덧 5월 중순. 팀당 44경기씩을 치르고 100경기만 남겨둔 시점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4월까지 부진했던 외국인 선수가 5월 이후 반등에 성공한 사례는 있었지만, 5월까지도 반등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선수는 대개 그대로 시즌이 끝나곤 했다. 외국인 선수 부진으로 고통받는 구단들이 결단을 내릴 시간이 다가온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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