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시즌 KBO리그 부상 주의보…KT 강백호도 부상으로 수술대 올라

-혹사, 훈련으로 인한 ‘통제 가능’ 부상은 감소 추세…통제 불가 부상이 대부분

-구단들, 부상 최소화 위해 다양한 노력…시즌 중 휴식기, 지명타자 활용, 도루 자제까지

-노력해도 100% 완벽하게 막을 수 없는 부상, 그러나 강백호 부상은 ‘인재’

25일 경기중 손바닥 부상으로 8주간 결장하게 된 강백호(사진=엠스플뉴스)
25일 경기중 손바닥 부상으로 8주간 결장하게 된 강백호(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때는 2010년. 당시 LA 에인절스 소속이던 켄드리 모랄레스는 9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린 뒤 활짝 웃으며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 앞에 도달한 그는, 파티를 준비하는 동료들을 향해 폴짝 뛰어올랐고 모두가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모랄레스가 쓰러졌다. 홈플레이트에 착지하는 과정에서 왼쪽 발목을 헛디뎌 뼈가 부러진 것이다.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의 사례도 있다. 2012년, 리베라는 캔자스시티 원정 경기를 앞두고 외야에서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투수들은 이 시간에 외야에서 캐치볼을 하거나, 타자들이 친 공을 잡으면서 여유롭게 경기를 준비한다.

배팅 훈련을 하던 제이슨 닉스의 타구가 리베라 쪽으로 날아왔다. 리베라는 공을 잡기 위해 점프했고, 착지한 뒤 무릎을 감싸안으며 쓰러졌다. 잔디와 워닝트랙 사이에서 다리가 끌리면서 무릎이 뒤틀린 것이다. 전방십자인대 파열. 당시 상황을 지켜본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입에선 연신 ‘OMG’ 소리가 되풀이됐다.

이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게 부상이다. 야구 선수의 부상은 마치 노상강도와도 같다. 예상못한 순간에 갑자기 들이닥쳐,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고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린다. 모랄레스는 그날 이후 2번의 수술과 2년의 재활을 거친 뒤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리베라 역시 2012시즌을 통째로 날려야 했다.

올 시즌 KBO리그도 부상 강도떼의 공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 팀마다 시즌 개막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부상자가 쏟아져 나와 아우성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NC 다이노스 같은 팀은 간판스타 나성범이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사실상 ‘시즌 아웃’되는 비극까지 겪었다. 부상과 엔트리 말소는 NC 주전 선수급 선수의 통과 의례처럼 돼 버렸다.

리그에서 부상자가 가장 적은 KT 위즈조차 부상 악령을 완벽하게 피하진 못했다. 아직 햄스트링, 종아리 등 ‘근육’ 부상 선수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중 발생하는 불의의 부상까지 막을 순 없었다. 5월 10일 경기에선 배정대가 우측 척골 골절로 쓰러졌고, 6월 25일엔 강백호가 사직구장 펜스에 부딪혀 오른 손바닥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부상 쓰나미, 하지만 ‘통제 가능’한 부상은 줄었다

NC 다이노스 나성범은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대에 올랐다. 그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크고 심각한 부상이다(사진=NC)
NC 다이노스 나성범은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대에 올랐다. 그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크고 심각한 부상이다(사진=NC)

서울 팀 트레이닝 코치는 부상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인간의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부상과,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상이라며최근 야구에선 구단들과 지도자의 인식 변화로 전자에 속하는 부상은 많이 줄었다고 했다.

프로야구가 걸음마 단계였던 시절엔 인간의 힘으로 통제 가능한 영역의 부상이 많았다. 여기엔 과도한 훈련과 잘못된 훈련 방식, 지나치게 많은 투구, 그리고 위험하고 낙후된 시설 때문에 생기는 부상이 포함된다.

오늘날 야구계는 부상 방지를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덕분에 과거 볼 수 있던 후진국형 부상은 많이 줄었다. 실제 최근 야구에선 투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어깨 부상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역병처럼 번지던 팔꿈치 인대부상도 좀처럼 보기 드물다.

지난 시즌 NC 임창민, 올 시즌엔 삼성 양창섭과 LG 신인 이정용 정도가 토미존 수술대에 오른 최근 사례다. 임창민은 팀 마무리로 비교적 철저한 관리를 받았고, 양창섭은 신인이나 마찬가지. 이정용은 프로에서 공 하나도 던지지 않았다. 프로에서 혹사와 훈련 때문에 수술을 받았다고 보긴 어려운 케이스다.

최근 프로 구단들은 과거보다 훨씬 철저하고 세밀하게 투수를 관리하고 있다. ‘투수는 던지면 던질수록 강해진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무리한 선수기용과 무식한 훈련법을 강요하는 지도자는 더는 프로 무대에 발붙일 곳이 없다. 어깨 근육을 단련하는 훈련 방법이 발달했고, 경기 후 보강 운동도 철저하게 이뤄진다. 투수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보호 속에 경기에 나서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를 비롯한 몇몇 구단은 아예 시즌 중 선발투수에게 ‘휴가’를 준다. 이를 통해 선발투수에게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 기회를 주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정규시즌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돕는다. 많은 구단은 도플러 추적 시스템과 랩소도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해 투수의 상태를 수시로 체크한다.

이외에도 선수 부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이제 웬만한 타자는 다 ‘검투사 헬멧’을 착용한다. 주자와 포수의 부상을 방지하는 ‘홈 충돌 방지법’도 도입됐고, 강정호 사례를 예방하기 위한 새로운 룰도 도입됐다. 구단들은 지명타자 자리를 활용해 지친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하고, 로스터의 다양한 선수를 활용한다. 부상 방지를 위해 ‘도루 자제령’을 내린 구단도 적지 않다.

구장 시설도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다. 2013년부터 구장마다 ‘안전펜스’가 설치돼, 과거 강동우(현 두산 코치) 같은 끔찍한 부상을 예방했다. 최근 몇년새 새로 개장한 최신식 야구장은 선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물론 80년대 수준 시설에 80년대 수준의 안전불감증으로 운영되는 사직야구장은 예외다.

“언제든 누구든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직야구장 펜스 안전커버 밖으로 삐져나온 너트. 강백호는 여기에 손을 베어 큰 부상을 당했다(사진=중계화면 캡쳐)
사직야구장 펜스 안전커버 밖으로 삐져나온 너트. 강백호는 여기에 손을 베어 큰 부상을 당했다(사진=중계화면 캡쳐)

안타까운 건, 다각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상이 발생하는 걸 완벽하게 막을 순 없다는 사실이다. 경기를 치르고 장기 레이스를 펼치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상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미국 칼럼니스트 제프 파산은 6년간의 추적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 ‘The Arm’에서, 투수 부상의 원인을 뚜렷하게 규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철저한 관리로 부상을 막을 수 있다면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맷 하비처럼 강박적인 수준의 관리를 받은 투수들이 수술대에 오른 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속구가 부상 원인이란 지적도 저스틴 벌랜더 사례를 보면 100%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신인 선발투수의 투구이닝을 3이닝으로 제한하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2016년 이후 10명의 유망주가 수술대에 올랐고, 이는 메이저리그 평균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관리와 예방으로 부상을 줄일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NC 나성범은 5월 3일 KIA전에서 투수 폭투 때 2루에서 3루로 뛰다 무릎이 꺾이는 부상을 당했다. 당시 나성범은 왼쪽 다리를 뻗고 오른쪽 다리를 구부린 벤트 레그 슬라이딩을 시도했는데, 오른 다리가 미끄러지지 않고 그라운드에 걸리면서 부상으로 이어졌다.

NC 이재학은 투수 땅볼을 잡으면서 착지하다 종아리를 다쳤고, 박석민은 베이스를 밟다가 발목을 접질렸다. 김태진은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유격수 무릎에 머리를 부딪혀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2군에서 복귀를 준비하던 이원재도 베이스를 밟다 발목을 다쳐 1군 복귀 일정을 미뤘다. 트레이닝 코치의 손을 벗어난 불운, 불운, 불운의 연속이다.

‘하드볼 타임즈’의 크리스 기글리는 “아무리 신체적인 느낌이 좋고 모든 준비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언제든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썼다. 서울팀 트레이닝 코치도선수마다 경기 전 취약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강화해서 부상 가능성을 최소화할 순 있지만, 경기중 나오는 불의의 부상을 100% 완벽하게 막을 방법은 없다고 인정했다.

아무리 트레이닝 파트가 빈틈없이 선수들을 챙기고, 코칭스태프가 충분한 휴식을 주고, 선수들이 정석대로 플레이해도 부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아무리 문단속을 잘하고, 화분 밑에 열쇠를 두지 않고, 비싼 방법 시스템을 설치해도 도둑을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키움 히어로즈 한 선수는 “지금은 KT에 있는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가 종종 ‘부상 예방법’이라며 해준 얘기가 있다”며 이 코치가 알려준 방법은 ‘착한 일 많이 하기’다. ‘야구장 바닥에 쓰레기가 있으면 줍고, 길바닥에 침 뱉지 말아라. 그러면 부상은 멀리 가고, BABIP 신이 찾아온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기복신앙을 믿으라는 게 아니다. 그만큼 부상에 사람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과 ‘불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얘기다.

강백호는 누구보다 이 코치의 예방법을 잘 따르는 선수였다. ‘연쇄싸인마’로 불릴 정도로 팬서비스에 최선을 다했고, 야구 후배들에겐 배트와 글러브 등 용품을 아낌없이 선물했다. 집에선 부모 속 한번 썩힌 적 없는 효자였다. 그 덕분인지 데뷔 이후 강백호는 이렇다 할 부상 없이 건강하게 선수 생활을 해왔다. 머리쪽으로 날아온 공도 검투사 헬멧에 맞고 튕겨나갈 정도로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강백호도 끝내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강백호의 부상은 인간의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통제 가능’한 부상이었다. 라팍이나 창원NC파크 같은 최신 야구장에선 절대로 나오지 않았을, 초창기 프로야구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근 야구계에선 사라진 줄 알았던 ‘야구 후진국형 부상’이다.

부상을 최소화하려는 21세기 구단과 코칭스태프와 선수의 온갖 노력도 80년대 수준의 구장과 안전불감증 앞에선 허사가 됐다. 롯데 구단과 KBO는 강백호가 다친 뒤에야 뒤늦게 구장 안전점검에 나섰다. KT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간판타자를 8주 이상 야구장에서 볼 수 없게 됐다. 한 야구 관계자는 “메이저리그였다면 선수가 손해배상 소송을 했을 법한 사고”라고 혀를 찼다. 강백호의 부상 소식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되는 이유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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