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조웅천, 정대현 등 뛰어난 잠수함 투수 많이 배출한 인천야구

-조웅천 롤모델 삼아 성장한 박민호와 김주한, 올 시즌 SK 불펜 기대주

-박민호 “지난해 낮은 삼진율 아쉬워…더 완벽한 투수가 목표”

-김주한 “토미존 복귀 2년 차, 올해는 꼭 뭔가 보여줘야죠”

2020시즌 활약을 다짐한 박민호와 김주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2020시즌 활약을 다짐한 박민호와 김주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바다를 낀 항구도시라서 그럴까. 인천은 예로부터 뛰어난 잠수함 투수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1990년대 태평양 돌핀스 시절엔 박정현이란 특급 잠수함 에이스가 활약했고, 노승욱이란 좋은 불펜 투수가 뒤를 받쳤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팀 이름이 바뀐 뒤에는 조웅천(현 롯데 코치)이 불펜 에이스 계보를 이어받았다.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뒤에도 인천 잠수함의 계보는 이어졌다. 인천으로 돌아온 조웅천이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갔고, 여기에 정대현이 등장해 벌떼 불펜의 여왕벌 역할을 했다. 신승현, 이영욱, 이한진 등의 투수들도 저마다의 개성으로 뒤를 받쳤다. 특히 SK가 통합 2연패를 달성한 2007, 2008년은 이들 잠수함 불펜투수의 활약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고교 때부터 조웅천 코치님과 같은 41번을 등 번호로 사용했어요. 조 코치님이 제 롤모델이었거든요. 인하대에 들어가선 정대현 선배님이 던지는 걸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요.

‘성공한 SK 팬’ 투수 박민호의 말이다. 인천 출신인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SK 야구를 보며 SK 팬으로 자랐고, SK 잠수함 투수들의 활약을 보며 프로 선수의 꿈을 키웠다. SK 선수가 된 지금은 더는 관중석에서 SK 야구를 볼 수 없는 게 아쉽다고 할 정도로 ‘골수’ SK 팬이다.

“SK가 우승을 차지한 2007년과 2008년 두 분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죠.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조웅천을 롤모델 삼아 성장한 건 김주한도 마찬가지. 김주한은 성남고 시절 조웅천 코치의 현역 시절 동영상을 보며 사이드암 투구폼과 변화구를 연구했다. 무브먼트가 일품인 서클 체인지업을 던지게 된 것도 조 코치를 보고 배운 영향이다. SK 지명 당시엔 “조 코치님의 지도를 영상이 아닌 눈앞에서 직접 받을 수 있게 됐다”며 크게 반겼던 그다.

박민호 “더 위력적인 공 던지는 게 목표” 김주한 “슬라이더도 위닝샷으로”

SK 마운드의 얼굴 천재 박민호(사진=SK)
SK 마운드의 얼굴 천재 박민호(사진=SK)

문하생이 끊이지 않는 무형문화재처럼 꾸준히 이어져 온 인천 잠수함 불펜 계보는 조웅천의 은퇴와 정대현의 롯데 이적 이후 한동안 끊어진 상태였다. 백청훈(개명전 백인식)의 LG 이적으로 이제 SK 1군에 잠수함 불펜은 박민호와 김주한 둘만 남은 상황. 두 선수 앞엔 올 시즌 인천 잠수함 불펜의 전통을 다시 살려낼 임무가 주어졌다.

작년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사이드암 불펜은 저 하나였어요.미국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출국을 앞두고 인천에서 만난 박민호가 들려준 말이다. 다행히 올해는 저와 김주한, 그리고 21살 최재성까지 세 명이서 함께 갑니다. 다들 겨우내 열심히 준비하던데, 캠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봐야죠.

같은 사이드암 투수들만 가질 수 있는 친밀함, 유대감이 있다. 김주한은 “민호 형과 친하게 지낸다. 아무래도 팀에 옆으로 던지는 투수는 몇 안 되지 않나. 서로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공유할 부분도 많다 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라 했다. 박민호도 “사이드암은 투구 메커니즘이 오버핸드와 다르니까, 함께 훈련하며 많은 얘기를 한다”고 했다.

“한번은 주한이랑 둘이 캐치볼을 하고 있는데, 어떤 코치님이 농담으로 그러시더라고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요.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왼손투수들은 왼손끼리, 우완투수들은 우완끼리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박민호의 말이다. “어떻게 보면 경쟁 상대인데도, 우리 팀은 투수들이 다 친하게 지냅니다. 투수진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인하대 잠수함 에이스였던 박민호와 고려대 잠수함 에이스였던 김주한. 그러나 둘의 투구 스타일은 대조적이다. 박민호가 구속보다 무브먼트를 활용한 피칭을 한다면, 김주한은 140km/h 중반까지 나오는 속구의 힘을 앞세운다.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박민호는 우타자 공략에 강점이 있고, 체인지업을 던지는 김주한은 좌타자를 곧잘 잡아낸다.

지난해 47경기 평균자책 2.68로 데뷔 이후 가장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박민호는 올 시즌 더 빠르고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게 목표다.

작년에 평균자책 숫자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삼진율 같은 세부지표에선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삼진으로 확실하게 타자를 잡아내는 투수가 되고 싶어요. 맞혀서 잡으면 공이 이상한 데로 튈 수도 있고, 그만큼 변수가 생기잖아요. 결과는 좋았을지 몰라도 저 스스로는 불안 불안한 마음이 있거든요.

박민호는 “평균구속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다. 150km/h를 던지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스스로 만족하고 타자에게 먹히는 수준의 구속이 있다. 130km/h대로는 아무래도 타자를 상대할 때 버거운 면이 있다”며 구속 향상에 의지를 보였다.

“작년 겨울엔 웨이트 트레이닝보단 가동범위에 중점을 두고 운동을 했습니다. 올겨울엔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님과 함께 웨이트를 많이 했고, 가동범위와 유연성 훈련도 열심히 했어요. 작년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9년보다 더 완벽한 투수가 돼서, 승리조의 일원으로 던지고 싶어요.” 박민호의 말이다.

고려대 정기전의 영웅이었던 김주한(사진=SK)
고려대 정기전의 영웅이었던 김주한(사진=SK)

김주한도 토미존 복귀 2년째인 올 시즌, 지난해보다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김주한은 2018년 6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1년의 재활기간을 거쳐 지난해 6월 마운드에 돌아왔다. 속구 평균구속 142.4km/h로 수술 전(139.6km/h)보다 훨씬 빠른 공을 던졌지만, 경기 감각과 제구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수술 전보다 평균 구속은 올랐는데, 제구를 잡는 데 애를 먹었어요. 감각적인 부분도 있고, 몇 개월 동안 공을 안 던져서 그런지 좀 더 투구할 때 힘이 들어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김주한의 말이다.

토미존 수술을 받은 투수들은 대개 복귀 1년 차에 적응기를 거친 뒤 2년째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김주한도 올 시즌을 진짜 승부처도 보고 있다. 작년엔 1군 마운드에 다시 선 게 소득이었습니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해야죠. 이젠 어깨든 팔꿈치든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뭔가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주한은 작년 호주 캔버라 유망주캠프에서 브레이킹볼 연마에 공을 들였다. “체인지업에 비해 슬라이더가 아쉽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캠프 때는 코치님들 조언을 받으면서 슬라이더와 커브를 많이 던졌습니다. 위닝샷으로 슬라이더를 던지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김광현 선배 공백? 누구도 채울 수 없죠. 하지만…”

같은 잠수함 불펜투수인 박민호와 김주한. 둘은 좋은 경쟁자이자 동료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같은 잠수함 불펜투수인 박민호와 김주한. 둘은 좋은 경쟁자이자 동료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올 시즌 SK 와이번스는 중요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에이스 김광현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게 올 시즌 SK 앞에 놓인 과제다. 이를 위해선 박민호, 김주한 등 젊은 투수들이 지난해보다 한 뼘 성장해서 가능성을 결과로 만들어야 한다.

“광현이 형 없는 SK, 전에는 상상도 못 해본 상황이죠.” 2007년과 2008년 관중석에서 김광현의 이름을 소리높여 외쳤던 박민호의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결론은 광현이 형 공백을 다른 누가 대신할 순 없다는 거예요. 작년 17승 투수잖아요. 게다가 투수 조장으로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광현이 형의 역할이 컸는데, 그 자리를 메꿀 순 없죠. 하지만.

박민호는 광현이 형의 공백이 저를 포함한 다른 투수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광현 형의 공백을 메꾸자는 마음으로 뭉쳐야죠.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도 해요. 처음으로 광현이 형 없이 보내는 올 시즌, 다른 투수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저부터도 열심히 해야죠.

김주한도 같은 생각이다. “김광현 형의 자리는 누구도 채울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할 겁니다. 민호 형과 제가 서로 능력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려서, 더 좋은 투수가 돼야죠.”

박민호와 김주한은 올 시즌 개인 기록을 목표로 세우지 않았다. 대신 좀 더 많은 이닝을 책임지고 공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박민호는 “평균자책, 홀드 같은 기록이 아닌 60이닝 이상 던지는 게 목표”라 했다.

“평균자책 5점대, 6점대 투수가 1군에서 60이닝을 던질 순 없잖아요. 부상 없이 꾸준하게 1군에서 보탬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올 시즌엔 훈련부터 휴식, 수분 섭취, 영양, 수면까지 모든 루틴을 지난해보다 꾸준하게 유지할 겁니다. 경기장에 나가면 온 힘을 다해 투구할 거고요.”

김주한도 “숫자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웃카운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겠다. 원아웃, 원아웃 잡아가면서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다. 그러다 보면 결과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 힘줘 말했다.

민호 형도 저도, 후배 최재성까지 서로 다 같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보직과 관계없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공을 던지면서, 좋은 결과를 냈으면 합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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