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곳과 다른 곳이 될 것” 전망

-야구 비롯한 프로스포츠에도 치명타…감염병 위협 지속으로 ‘직관’ 줄어들 가능성

-직관 대신 중계방송 시청, VR 체험이 대체할 수도

-야구의 위기, 일시 정지 버튼이 아닌 ‘리셋’ 필요한 때

어느 야구장의 사회적 거리두기(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어느 야구장의 사회적 거리두기(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전 지구적인 팬데믹 이후에도 야구는 우리가 알던 원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올해 93세 생일을 맞은 전설의 스포츠 캐스터 빈 스컬리는 낙관적이다. 1927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경험했고, 그 모든 풍파를 이겨내고 야구가 살아남는 걸 목격했다. 그가 “야구가 시작되면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고 우리의 삶을 살 수 있다. 야구가 시작한다는 것은 나라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한 이유다.

하지만 스컬리의 희망적인 기대와 달리, 많은 전문가와 사상가 사이에선 이번 팬데믹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존 그레이는 ‘뉴 스테이츠맨’에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19 이후에 관해 “황량했던 거리는 다시 사람들로 북적댈 것이다. 우리는 스크린 불빛이 밝히는 은신처에서 나와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평상시에 생각했던 곳과는 다른 곳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것은 안정적인 균형 상태에서 일시적인 파열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위기는 역사의 전환점이다. 그레이의 불길한 예언이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한동안 ‘덜 공동체적이 될 것’”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프로스포츠가 멈췄다. 야구장 앞을 지나가는 행인(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프로스포츠가 멈췄다. 야구장 앞을 지나가는 행인(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빈 스컬리를 비롯해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 대부분은 코로나19가 지나간 뒤 야구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 기대한다. 해마다 봄이 되면 스프링캠프와 개막전을 열고, 8개월에 걸쳐 162경기(144경기) 페넌트레이스를 치르고, 불특정의 수만 관중이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응원가를 부르며 일체가 되는 쾌감을 누릴 수 있길 원한다.

하지만 작가 데보라 타넨이 ‘폴리티코’에 쓴 것처럼, 코로나19를 겪은 뒤 사람들은 물건을 만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밀폐된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포츠 경기장이 선사하는 기쁨과 흥분과 좌절과 그 모든 경험은, 2m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건 아래서는 성립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막을 백신이 나오기까지 앞으로 최소 1년에서 1년 반이 걸린다고 예상한다. 전염병의 시작점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모르는 것처럼, 어디까지가 끝인지도 알 수 없다. “팬데믹이 잠잠해지고 나면 사람들은 서로 축하할 것이다. 그러나 감염 위협의 끝을 나타내는 정확한 지점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존 그레이의 지적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기드온 리치필드 편집장은 “우리 모두는 빨리 일이 정상으로 돌아가길 원하지만, 몇 주 또는 몇 달이 지나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세계에서 누군가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한, 엄격한 통제 하에서도 바이러스는 재발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역사학자 폴 프리드먼은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우리는 적어도 한동안 ‘덜 공동체적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리치필드 편집장은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는 사회생활의 외양을 갖추기 위한 ‘어색한 타협점’을 찾아낼 것”이라며 “영화관은 좌석의 반만 채우고, 의자를 멀리 떨어뜨린 큰 방에서 회의를 열고, 체육관에선 사람이 붐비지 않도록 예약 필수가 될 것”이라 했다. 야구장의 풍경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 전염병으로 장기간 일상생활이 중단되는 경험은 사람들의 습관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스탠포드 경영 대학원 기술 경제학과 수잔 아테이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습관을 바꾸고, 이런 습관 중 일부가 고착될 것이라 했다. 테마파크와 영화 제작이 주력 사업인 디즈니사는 “전염병이 소비자 행동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과거와 달리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고 잔존하면서 사람들의 양태는 상당 기간 그에 적응할 것이다. 이로 인해 서비스업의 회복은 상당히 둔화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스포츠, 문화예술 공연, 콘서트, 전시, 여행 등 사람들 대규모로 이동하고 모이는 서비스가 쉽게 재개될 수 있을까. 굉장히 회의적이다.” IT 기획자 유정곤 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우울한 전망이다.

중계방송 시청, VR 관람…코로나19 이후 야구 ‘직관’ 대체할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2067년의 뉴욕 양키스 홈경기는 허름한 야구장에서 열린다. 경기는 거대한 모래 폭풍으로 중단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2067년의 뉴욕 양키스 홈경기는 허름한 야구장에서 열린다. 경기는 거대한 모래 폭풍으로 중단된다.

물론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본능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여전할 것이다. 지난 주말 전국의 번화가, 놀이공원, 산책로와 벚꽃길로 몰려나온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메리 프랜시스 베리 교수는 ‘폴리티코’ 기고에서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기분전환용 ‘오락거리’를 찾아다닐 것으로 예상했다.

“1918-19 스페인 독감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많은 미국인은 편안한 오락거리를 찾았다. 이는 자동차와 라디오 보급을 촉진했다. 투표권을 얻은 젊은 여성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춤을 췄다...과거의 예를 볼 때, 사람들은 이 유행병이 지난 뒤 안도감,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과 즐거움으로 반응할 것이다.” 베리 교수의 낙관적인 전망이다.

야구를 통한 즐거움의 추구와 코로나19로 인한 습관의 변화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화상회의, 스트리밍, 인터넷 쇼핑 등 디지털 대체 서비스가 급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19 이후 스포츠에 굶주렸던 팬들의 스포츠 생중계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반면, 그들의 습관은 집에 머무르는 쪽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직접 경기장을 찾아 ‘직관’하는 문화보다는, TV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중계방송을 시청하는 쪽을 선호할 거란 예상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야구장을 찾는 관중 수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였다. 사람들은 3시간 넘게 자리에 앉아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야구 대신 게임, 넷플릭스, 유튜브 등 끊임없이 주의력을 빼앗아 가는 새로운 즐길 거리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흐름에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새로운 IT 기술이 야구장 ‘직관’ 경험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김경민 롯데 자이언츠 전 마케팅 팀장은 “통신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도 마치 야구장 관중석에 있는 것과 똑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열린다”고 했다. “VR(virtual reality)을 사용하면 격리되거나 혼자 있어도 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어쩌면 그건 다음 아웃브레이크에서 우리가 적응하고 안전을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 엘리자베스 브래들리가 ‘폴리티코’ 기고에 쓴 내용이다.

존 그레이는 우리가 하는 활동의 많은 부분을 사이버 공간으로 옮기는 것으로 물리적 이동을 줄일 수 있다고 썼다. 데보라 타넨은 “앞으로는 ‘온라인으로 할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묻는 대신, ‘직접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게 될 것”이라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실에서 가상으로의 전환이 갑자기 급가속을 시작한 세상에서, 이전의 어떤 것들은 결코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 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야구팬은 계속 존재할 것이고, 야구는 살아남을 것이다. 다만 야구를 즐기는 방법이 팬데믹 이전과는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2067년의 뉴욕 양키스 홈경기는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허름한 야구장에서 그리 많지 않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다. 세계적 식량난에 야구장에서 파는 먹거리는 팝콘이 유일하고, 선수들의 야구 실력은 오합지졸이다. 경기 중간에는 거대한 모래 폭풍이 몰려와 그대로 경기가 중단된다. 우리가 아는 온전한 모습의 야구는 어디까지나 세상이 온전한 상태일 때 가능한 것이다.

“야구의 위기, 과감하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뒤, 야구장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뒤, 야구장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기온 리치필드 편집장은 “우리가 아는 ‘노멀’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의사 매튜 콘티네티가 ‘폴리티코’에 쓴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매개 변수 안에서 작동하는 일정한 변화 모델”도 종언을 고했다. 우리는 변화의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지금은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산업에 혁명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미 진행 중인 야구단 경영난을 더욱 가속할 것이다. 야구단 수익은 관중 입장 수입과 모기업 지원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코로나19 이후 예전 수준의 관중 동원을 기대하긴 어렵다. 파괴적인 경제난 속에 모기업 지원도 코로나19 이전보다 매우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야구단의 또 다른 주요 수익원인 광고 역시 이미 줄어드는 추세였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39년간 관성으로 유지해온 프로야구에 큰 위기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옛 방식을 계속 고수했다간 파국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프로야구의 기존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이 (코로나19) 외상 뒤엔, 훨씬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잠재력이 있다.” ‘새로운 미국 안보 센터’ 소속 리차드 댄지그의 말이다.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일련의 상황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다. 초유의 사태에선 그간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불가능해진다. 반면,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을 시도할 가능성이 열린다.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급진적인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들과 대면하게 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일상에서 실제로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썼다.

작가 아스트라 테일러는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노숙자가 정부 건물에 수용되고, 유급 병가가 주어지고, 채무자들이 구제받는 상황을 나열했다. 이는 평상시의 미국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테일러는 위기 상황에서는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규칙이 왜 규칙인지 의문이 생긴다이는 전례 없는 기회다.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수백만 명의 사람이 처음부터 불리하지 않게끔 규칙을 영구히 바꿀 기회라 했다.

지금은 프로야구가 ‘일시 정지’ 버튼이 아닌 ‘리셋’ 버튼을 누를 기회다. 확진자 수가 줄면 개막해서 다시 예전에 하던 식으로 한 시즌을 ‘무난히’ 치르는 것을 목표로 해선 안 된다. 시즌 개막이 미뤄지고 활동이 올스톱된 지금은 프로야구 1982년 체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좋은 기회다. 리그 출범 이후 39년 동안 미뤄왔던 변화, 베이징 금메달 이후 관중 증가에 도취해 현상유지하느라 미뤘던 개혁을 시도할 마지막 기회가 지금이다.

LG 트윈스 단장을 지낸 최종준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야구단 단장 시절부터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프로야구의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야구의 젖줄인 아마야구부터 리그 운영까지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허구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도 “늦기 전에 개혁하지 않으면 프로야구에 미래는 없다”고 경고했다.

김경민 전 롯데 마케팅 팀장은 IT기술의 발전과 스마트 폰의 등장이 촉발시킨 급격한 변화, 그리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감염병의 파괴적 전파라는 잔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신’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과감하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썼다. “프로야구단 자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는 김 전 팀장의 ‘누리엘 루비니적’ 예언이 실현되지 않으려면, 바로 지금 KBO와 야구계가 행동에 나설 때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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